지난 1998년 타임(Time)지 커버스토리에 등장했던 중국의 루관추(魯冠球·58) 완샹(萬向)그룹 회장은 전형적인 입지전적 사업가다. 지난 1969년 단돈 4000위안(약 60만원)으로 고향인 장쑤(江蘇)성 샤오산(蕭山)에서 작은 농기구 공장을 인수하면서 사업을 시작, 지난해에는 중국 7대 갑부(개인재산 약 5억달러)에 올랐다.
어린 시절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철공소에 들어가 하루 내내 쇠망치를 내려치는 혹독한 노동을 해야했다. 하지만 이 철공소에서 해고된 후 그의 사업가적 기질은 본격적으로 표출됐다.
첫 사업은 역시 실패였다. 집안의 돈을 몽땅 끌어모아 마을에 작은 쌀국수 공장을 세웠으나, 정부로부터 ‘자본주의 똘마니’라는 비판을 받고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그는 철공소 근무 경험을 살려 작은 농기구 수리점을 경영하다가 25세 되던 1969년 부인 및 동료 7명과 함께 농기구 공장을 인수,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닝웨이(寧圍)농기구 부품 수리회사’라는 이 향진(鄕鎭)기업은 주력 상품으로 ‘첸차오파이(錢潮牌)’라는 상표의 ‘유니버설 조인트’(엔진 동력을 바퀴에 전달하는 차축의 연결고리)를 생산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향진기업들은 처음에는 지역의 집단소유 기업이었지만, 중국이 시장경제로 변하면서 사실상 개인기업으로 자리잡는 경우가 많았다. ‘닝웨이’도 최고 경영자인 루 회장이 독자적인 경영권을 행사, 현재의 완샹그룹으로 성장했다.
1984년 완샹그룹은 일찌감치 최고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 도전했다. ‘유니버설 조인트’ 제품 하나에 모든 승부를 건 루 회장의 집념 때문이었다. 현재 완샹그룹은 주력 상품인 유니버설 조인트를 미국 GM에 독점 공급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엔 향진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UAL을 인수했다.
얼마 전 루 회장 앞으로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소비자의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루 회장은 직원 수십명을 전국에 파견, 실태를 조사케 했다. 회수한 불량제품은 3만여개에 43만위안(약 6500만원)어치에 이르렀다. 루 회장은 이 물건들을 몽땅 폐품공장으로 보내고 “앞으로 불량품을 만드는 사람은 ‘밥그릇’이 깨질 줄 알라”는 엄명을 내렸다. 소비자에게 신용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평소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완샹그룹은 미국뿐 아니라 일본·이탈리아·독일·프랑스 등 세계 20여개국에 시장을 개척한 국제적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루 회장의 가족과 친척들에 대해 어떠한 특혜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의 부인 장진메이(章金梅)는 루 회장의 창업동료 7명 중 1명이지만 20년 넘도록 간부로 승진하지 못하고 여전히 기계 조작공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