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은 과학자를 배출한다
2023. 4. 5. 12:30
이은직 연세대 의과대학 학장
우수한 인재의 의과대학 진학은 서구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만큼 우려를 표하는 곳은 많지 않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의과대학을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 의사를 만드는 곳으로만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우리 사회가 의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본다.
의과대학은 과학자를 배출하는 기관이다.
신의료산업을 이끌 의과학자 말이다. 우리나라의 정상 의료비 비율은 국가 국내총생산 (GDP)의 약 9%를 차지한다.
미국은 18%나 되며 전 세계적으로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의료는 이미 중요한 국가 산업이다.
세계 100대 우수 의과대학과 병원 등에 많은 국내 기관이 이름을 올리는 등 우리 임상 의료의 우수함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단 의약품이나 장비, 치료 기술 등은 대부분 외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기술 개발에 가장 뛰어난 인력이 의사 출신 과학기술자다.
통칭 의사과학자라 불리는 이들이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주도했고 생명과학 부문 노벨상의 절반을 가져가고 있다.
정부가 의사과학자 양성을 국가 바이오산업 발전의 중요 어젠다로 채택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와 상반된 교육정책방향, 일부 언론의 잘못된 해석이 국민에게 혼동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존의 의대는 의사과학자를 육성하지 못하기에 과학기술대학에 의과대학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의대는 의사과학자 배출을 위해 오래전부터 노력해 왔고, 그 결과 배출되는 과학자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연세대 의대는 졸업생 중 과학기술 분야에서 전일제 박사과정 의사과학자 비율이 8%에 이르며, 서울대 의대도 비슷한 비율로 알고 있다.
이는 미국 상위권 의과대학 평균인 5%보다 높다.
또 우수한 의학교육 기관은 그리 쉽게,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사과학자의 최대 장점은 중증·난치성 질환 등 다양한 임상에서의 경험과 과학기술 능력을 바탕으로 신의료기술을 창출하는 데 있다.
과학기술대학에 신설되는 의대와 관련 병원에서는 중증·난치성 질환의 진료와 교육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는 하버드 의과대학과 MIT가 협력해 의사과학자를 육성하는 HST(Health Science&Technology)란 프로그램이 있다.
의사과학자를 꿈꾸는 우수 인재를 선발해 의학 교육은 하버드의대가, 과학기술 교육은 MIT가 맡아 협업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세계적인 의학교육기관과 병원들이 여러 곳 있다.
이들이 KAIST 및 포항공대 등의 과학기술대학과 함께 협력한다면 많은 국가 재원의 투입 없이도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의과대학을 바이오신산업 발전의 이재 육성기관으로 인식하고 정책을 펼치기를 제언한다.
우수 인재가 의과대학으로 집중되는 현실에서 이를 강제로 제한하기보다는 이들 인재가 임상 진료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래 신산업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