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파엘의 ‘시스티나 성모상’
이 그림의 역사는 비교적 단순하다. 1512-3년 사이에 그려서 1514년에 시스티나 성당의 중앙 제단화로 봉헌 되었다. 그러나 시스티나 성당의 성모상을 다른 종교화와 구분짓는 커다란 특징은 마리아와 예수의 강렬한 표정이다.
라파엘은 초상화를 잘 그린 화가이다. 인물화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자기의 양식을 만든 화가이다. 그가 그린 인물화 중에는 성모자 상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성모자상을 수없이 그렸고, 지금도 거의 모든 카톨릭 신자들이 복제판의 성모자상을 모시고 있을 정도이다.
많은 성모상 중에서 ‘시스티나 성모’를 예로 들면서 성모상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작품은 원래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분묘를 장식하기 위해서 주문했다. 화면의 왼쪽에 보이는 시스투스 1세는 델라 로베레 가문의 율리우스 파의 수호신이었으므로 시스티나 성당의 장식 벽화에 그를 그렸다. 성모 마리아의 오른 쪽에 그려진 성녀 바르바라는 날개가 달린 푸토를 바라보면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푸토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골돌히 바라보고 있다. 어린 아이 모습의 푸토는 장례행렬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의 호기심을 드러내면서, 맥이 빠진 모습을 하고 있는, 날개를 달고 있는 푸토는 오늘날에 박물관의 티서츠나, 마그컵, 마우수패드를 아름답게 장식하는데 그려진다. 이 그림에서는 관람자의 시선을 뻬앗지 않은 자리에 그려져서 감상자의 시선을 분산시키지는 않는다.
화면을 삼각구도로 만드는, 양쪽으로 갈라진 커튼 사이에 애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는 정돈되고 우아한 모습을 보여준다. 성모의 발 아래의 구름은 연기가 나오는 무대처럼 부풀어져서 관람객의 시선을 끌어 들인다. 그림이 가장자리에 불안하게 서 있는 시스투스 성인은 손으로 그림 밖의 관람객을 가르킨다. 이것은 신도들이 영원히 경배토록 하게 하는 그의 역할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그린 라파엘의 그림은 색채 배합 효과와 흠 잡을 데 없는 구성이다. 이 그림은 그와 같은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그림은 처음에 피아첸차에 있는 성 시스투스 수도원에 걸려 있었다. 이후에 작센의 아우구스투스 3세에 기증되었다. 2차 대전 이후에 그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패전국으로 피폐해진 독일에서 모스코바로 옮겼다. 10년 후에는 드레스덴으로 다시 옮겼다.
이제 라파엘이 그린 여인상을 보자. 그는 인체를 그리는데 ‘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감각을 통하여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내었다. 조화는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바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파엘의 타고난 감각으로 만들어 내었다. 라파엘에게 그림을 주문하는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서 우아하고, 고상하고,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여인상을 그렸다. 이러한 분위가가 반영된 것이 라파엘의 성모상이고, 또 라파엘의 성모상은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시스티니 성모상도 그렇고, 그가 그린 수많은 다른 성모상도 그렇다.
성모와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자상은 그리스도교 미술 초기 수 백년 동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431년에 교황이 칙령으로 ‘하느님의 어머니!’로 정하고 난 뒤부터 서서히 그려졌다. 중세에 이르러 마리아 숭배 열기가 뜨거워지자 성모자상을 그린 종교화가 많이 나왔다.
라파엘의 그림은 레오나르드 다 빈치와 미텔란젤로의 양식을 자기화하여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색조를 더 강화하고, 입체적인 양감을 더하고, 구도는 우아한 삼각형으로 했다. 삼각 구도는 레오나르드 다 빈치의 양식을 본 땄지만 평온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순전히 라파엘이 찾아낸 양식이다.
1506년의 말에는 레오나르드 다 빈치외 미켈란젤로가 피렌체를 떠나면서, 피렌체 사람들은 라파엘에게 그림을 준문했다. 라파엘이 그린 우아하고 격조 높은 그림은 젊은 화가들이 모방했다. 이후로 라파엘의 성모상은 종교화의 하나의 양식으로 굳어졌다. 후대의 화가들이 수없이 모방하여 그렸고, 현대도 모방화가 널리 팔리고 있다.
라파엘 성모상의 일반적인 양식을 보자.
1) 단순하고, 조용하고, 뻔한 작품(곰브리치 표현)이다.
2) 완벽한 균형의 효과를 지니고 있다.
3) 인물들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모델을 그린 것이 아니고 관념상의 미인을 그렸다.
4) 거의 모든 가정에 성모상이 있다. ---> 이것은 쉽고,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성모상이 그려진 이후로 19세기까지 모든 예술사가들이 이 성모상을 칭찬했고, 수많은 후배 화가들이 모방했다. 성모상의 인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20세기초가 되면 이 그림에 대한 비평가의 해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세기는 종교화의 황금시기는 아니었다. 학문적 평가와 예술적 모방도 큰 흐름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비평가의 찬사와 예술가의 사랑을 오래동안 받았지만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이제는 일반 미술사 책에 조차 실리지 않는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미술사가 잰슨과 곰브리치는 미술사 교재의 재판을 거듭하면서도 어디에도 싣지 않았다.
그러나 라파엘 성모상에 대한 대중의 인기는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