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그리움이라는 미완의 희망
―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1953년경, 종이에 유채, 29.5 × 4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① 가슴 가장 따뜻한 곳에 묻어둔 이름, 가족
와츠가 마지막 한 줄의 리라로 희망을 이야기했다면, 이중섭은 가족을 태운 달구지로 그 희망이 향하는 곳을 보여 준다. 희망은 결국 누군가를 향한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 화가였다.
가족은 살아 있을 때보다 떠난 뒤에 더 깊어지는 이름인지도 모른다. 함께 웃고 울며 살아온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남겨진 사람의 삶 가장 깊은 곳에서 오래도록 숨을 쉰다. 그래서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 가족은 단순한 혈연이 아니라, 삶을 지탱해 온 기억이자 사랑의 다른 이름이 된다.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을 바라보고 있으면 따뜻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조금 더 오래 머물러 바라보면, 그 행복한 장면 뒤편에 자리한 깊은 그리움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화면을 가득 채운 황소와 가족들의 환한 표정은 현실의 기록이라기보다, 다시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빚어낸 사랑의 풍경이다.
② 떨어져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가족
이중섭은 강렬한 황소의 이미지와 더불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생명의 기쁨을 가장 깊이 그려 낸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 화가이다. 그의 작품 세계를 끝까지 관통하는 것은 전쟁도, 가난도 아닌 가족이었다.
한국전쟁과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 그는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홀로 남겨진 그는 부산과 제주 서귀포 등을 떠돌며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 시절 담뱃갑의 은박지에 새긴 은지화와 수많은 편지 속에는 언제나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다.
1953년 무렵 제작된 《길 떠나는 가족》은 이러한 그리움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그림 속에는 화가 자신으로 보이는 인물이 소가 끄는 달구지 앞에서 꽃을 뿌리며 걸어가고, 달구지 위에는 아내와 두 아들이 밝게 웃고 있다. 현실에서는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지만, 그림 속에서는 모두가 함께 길을 떠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은 특별해진다. 현실은 결핍으로 가득했지만, 화폭은 사랑으로 충만하다. 이중섭은 눈앞의 비극을 그리기보다 마음속에서 살아 있는 가족의 모습을 다시 불러냈다. 그에게 그림은 지나간 행복을 붙잡는 기억의 공간이자, 언젠가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품는 마음의 안식처였다.
③ 그리움은 사랑이 살아 있는 방식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라고 불렀다. 인간은 세상과 분리된 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사물, 기억과 관계 속에 이미 깊이 얽혀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소중한 이를 잃는다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을 잃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사람과 함께 만들어 온 삶의 세계가 흔들리는 경험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에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남겨진 사람은 그리움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살아가게 된다. 그리움은 지나간 시간을 붙드는 미련이 아니라, 떠난 이를 오늘의 삶 속에 계속 머물게 하는 기억의 방식이다.
《길 떠나는 가족》 속 황소의 묵직한 걸음은 바로 그러한 시간을 닮아 있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무겁지만 끝내 앞으로 나아간다. 현실에서는 함께 걸을 수 없더라도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 그것이 이중섭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가족의 의미이다.
그리움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감상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가장 깊은 마음의 형태이며, 상실 이후에도 인간이 끝내 간직할 수 있는 미완의 희망인지도 모른다.
④ 다시 길을 나서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에도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비어 있는 식탁을 마주하고, 습관처럼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 보는 시간. 남겨진 사람은 그렇게 또 하루라는 길 위에 선다.
그 걸음은 와츠의 그림 속 마지막 한 줄의 리라처럼 위태롭고, 이중섭의 황소처럼 묵묵하다. 때로는 그리움이 너무 커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운 날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은 다시 길을 나선다.
먼저 떠난 이가 남겨 준 사랑을 가슴에 품고, 함께했던 시간을 삶의 이정표 삼아 오늘을 살아간다. 그 하루하루는 결코 멈춰 선 시간이 아니다. 비록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할 수는 없을지라도, 사랑했던 기억을 품은 채 삶을 이어 가는 조용한 순례이다.
길은 때로 끊어진 듯 보이지만, 사랑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그리움은 사랑이 머물렀던 자리가 아니라, 사랑이 지금도 살아 있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오늘도 가슴속에 살아 있는 가족의 풍경을 품고, 다시 하루라는 길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내딛는다.
🎨 작품 캡션
전쟁과 생활고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이중섭이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낸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소가 끄는 달구지 위에 가족이 함께 길을 떠나는 따뜻한 장면을 통해, 현실의 결핍을 넘어 기억 속 사랑과 재회의 염원을 시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첫댓글 네, 가슴 절절하게 풀어 놓은 그림이야기....!.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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