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덩이 자원봉사
최 양귀
자원봉사는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는 럭비공처럼 인생행로에 어떤 행운을 가져 올지 모르는 복덩이 이고, 자아성취의 디딤돌이자 우리를 감싸는 공기 같다.
지난 추수감사절 때 시애틀을 방문한 우리에게 딸은 자원봉사를 권유하였다. 학부모 초청을 앞두고 모든 교직원이 환경정리 중이라 한식으로 힘을 북돋우고 싶단다. 우리부부는 기꺼이 응했다. 첫날은 색동 꼬까옷 입고는 잡채와 김밥 그리고 김치전을 만들어 현장으로 갔다. 비록 그들이 음식문화가 달라서 먹는 모습이 아주 서툴엇지만 말이다. 그들은 잡채를 포크로 한두 가닥씩 겨우 집어 입에 넣었고, 김밥은 속까지 분리하여 야채를 따로 먹었다, 김치전은 매운지 호호 하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해 웃음을 곁들여 선물했지만 말이다.
한 중년 여교사는 ‘다정한 우리 모녀’를 보며 ‘ 자신의 딸이 자신의 어려움이 엄마 때문이다’며 연락을 끊었다며 마음이 아프다고 눈물을 흘렸다. 가족 간의 애로점은 동서양 별반 다르지 않은가보다. 우리는 눈길 위를 달리듯 조심스런 운전으로 시장보고, 오전 내내 많은 양의 음식을 요리하느라 손발이 굳는 듯 했지만 짧은 수고로도 그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다.
딸은 다음날도 성탄행사를 앞두고 학생들이 연습 중인 캐럴 송을 아빠는 하모니카, 엄마는 동화책을 펼치며 따라 하란다. 우리는 어떨 결에 크리스마스 요정이 되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교실을 찾아 다녔다. 아이들은 맑고 고운 하모니카 선율이 신기한 듯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귀에 익은 곡조에 흥겨운 듯 자연스럽게 일어나 율동 하며 노래했다. 나는 남편 옆에서 노래배경에 어울리는 동화책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노랑반 교사는 고국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떠올라 울컥했다며 예쁜 그림이 있는 초대장을 살며시 손에 쥐어주면서 따님과 함께 송년 파티에 오라고 한다. 그녀는 캄보디아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홀로 미국으로 왔다며 아이들과 단체 사진도 찍자고 했다.
성탄절 발표회는 유, 초, 중, 고등학교와 실버타운을 운영하는 이 재단의 연중 큰 행사였다. 대강당은 가족동반 학부모로 붐벼서 겨우 뒷자리를 잡았다. 무대 단상 대형스크린에 우리 부부 얼굴이 크게 나타나 깜짝 놀랐다. 노랑반 교사가 올렸나 보다. 작은 사랑이 하루 만에 큰 나무로 자랐다. 딸은 독특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자신감 있게 대형피아노 앞에 앉았다. 어릴 때부터 자원봉사로 시작한 피아노 반주는 삶의 일부가 되어 그녀의 앞길을 비추는 등대지기다. 딸은 제 친정엄머ㅏ와 아빠에게 자원봉사는 미국사회를 이해하는 삶의 발판이자 꿀단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주말에는 딸과 함께 한껏 멋을 부리고 여인들만 참석하는 파티에도 갔다. 로비에서 검은 드레스에 화려한 숄을 걸친 노랑반 선생님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테이블로 향했다. 그녀는 어제 밤늦게 까지 연회장 장식을 도왔다고 한다. 테이블에는 미국, 파키스탄, 캄보디아, 페루인이 빙 둘러 앉아 있었다. 차를 마시며 자발적으로 서로 소개하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기뻤던 일을 나누면서 친교를 했다. 식사는 많은 인파로 테이블에 있는 숫자에 따라 차례로 먹었다. 전형적인 미국 아침식사 메뉴가 세 줄로 배열되어도 꽤 시간이 걸렸다. 본 행사 전 오락시간에 선물까지 준다니 귀가 쫑긋하다. 산타 모자를 쓴 진행자의 처음 질문은.
“손님을 가장 많이 초청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였다. 여기저기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주인공이라며 일어섰다. 차례대로 인원수를 비교하여 마지막 사람이 선물을 받았다. 분위기는 고조되고 긴장감이 감도는 두 번째는 질문이 이어진다.
“가장 먼 곳에서 온 사람은 일어나세요.”
노랑반 선생님이 나를 보며 일어나라고 재촉하여 엉거주춤 일어났다. 대부분 거주지가 미국에서 보면 아주 먼 나라에서들 온 사람들이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주인공은 나란 듯이 당당히 일어나 말했다.
“나는 대한민국(사우스코리아)에서 왔습니다.”
라고 큰소리로 말하자 모두 놀란 듯 손뼉을 치며 축하한다. 예기치 못한 선물이 손에 안겼다. 디딤돌 같은 자원봉사 덕분이다. 예쁜 주머니 끈을 풀어보니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가 웃고 있다.
한국에 도착하여 며느리에게 선물하니 미국에서만 사용가능하다며 사진을 찍어 딸에게 보낸다. 시공을 초월한 공기 같은 자원봉사가 줄이 되어 이곳저곳을 즐겁게 돌아다녔다. 미국문화도 체험하고 성탄의 즐거움도 온몸으로 느꼈다. 선물 카드가 딸에게 되돌아가는 걸 보니 자원봉사는 럭비공을 닮았나보다. 복덩이 자원봉사가 다시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