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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연의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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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가는 곳 스크랩 안중근의사 `가묘`를 `초혼묘`로 바꾸자
큰 바위 얼굴 추천 0 조회 44 10.03.25 16: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나는 오늘(2010.3.26)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순국100주년기념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효창공원에 있는 삼의사(三義士) 묘역을 방문하였다.

여기에는 이봉창(1901~1931), 윤봉길(1908~11932), 백정기(1896~1934) 세 분의 묘소가 있고, 맨 왼쪽에는

중국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의사(1879~1910)의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려고 마련한 가묘가 있다.

 

 

 삼의사(三義士) 묘는 1946년, 백범 김구선생의 주선으로

봉환(奉還)하고 안장(安葬) 되었다.

 

 

삼의사(三義士) 묘

 

나는 삼의사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안내판을 읽어보지 않고 그냥 입장했다가 깜짝 놀랐다.

묘는 넷인데 '삼의사 묘'라니 한 분은 누구의 묘란 말인가! 가까이 가서 봐도 누구묘소란 표지석 하나 없어 궁금했다.

비석이 서 있는 삼의사 묘소는 순국하신 년대에 따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순으로 모셔져 있다.

 

 

 

네 기의 묘소 뒤쪽 정중앙에는 태극기단이 있다.

 

 

                                        안중근의사 가묘

 

나는 삼의사의 묘를 참배하고 나서 혹시 표지석도 없는 묘의 주인공이 누군가 알아 보려고 해도.

주위에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어 궁금하던차에 네 사람이 석물을 운반해 오는 게 아닌가! 

잠시 후 보훈처 직원이 와서 물어 보니 안중근의사 가묘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국가보훈처 김양 처장이 이 묘역을 돌아 보고

표지석을 세워야겠다고 하여 오늘 공사를 하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으나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안중근의사가 순국하기 전에 동생들에게 최후로 남긴

유언을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안중근의사 최후의 유언 -

 

"내가 죽은 후에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 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 의사 가묘 표지석 공사 현장

 

나는 가묘 표지석을 세우는 공사를 하는 동안 시종일관 지켜서서 바라 보았다.

이것이 가묘 표지석이 아니라 정말 유해를 찾아다 봉안을 하는 의식이라면 얼마나 기쁠까!

나는 이 지면을 통하여 정부 당국에 다음 세 가지를 건의를 하고자 한다.

 

첫째, 이곳을 '삼의사 묘'라고 하지말고 '사의사묘(四義士墓)라고 할 것.

둘째, 안중근 의사 묘를 가묘(假墓)라고 하지 말고 초혼묘(招魂墓)라고 할 것.

셋째, 비석도 가묘 표지석이 아니라 다른 의사들과 똑같이 제대로 세울 것.

 

가묘도 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꼭 '삼의사 묘'라고 해야 하는가!

'초혼묘'라면 그 앞에 엎드려 절을 할 수 있으나 '가묘'라면 절을 할 수 있겠는가!

 

유해를 찾아 봉안할 때까지 그토록 소원했던 고국에 초혼묘라도 꾸며 놓으면

하늘나라에 계신 안의사님이 기뻐하실 것 같다.

 

 

[찾아가는 길]

 

창렬문(彰烈門) 

 

효창운동장 앞에서 정문인 창렬문(彰烈門)을 통과하여

효창공원으로 진입하면 왼쪽에 서있는 아래 안내판이 있다.

 삼의사(三義士)묘는 정문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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