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7월 21일 금요일 맑음
아침 6시. 아산을 향해 출발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할 만큼 다급한 일은 아니었지만, 오늘 보겸이 할머니 장례가 무더위를 피해 일찍부터 시작된단다.
보겸이네 집은 우리 집에서 큰 길로 나가는 길목에 있어서 운구행열이 도착한 후에는 제사까지 끝나길 기다리려면 한참 동안 발목이 잡힌다.
평소의 은덕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당연히 장례가 끝날 때까지 도움을 드려야 하지만 아산의 메밀이 워낙 하루가 급하여 빨리 떠났다.
큰길가에 벌써 꽃상여가 준비되고 있었다. 모처럼 보는 예쁜 상여였다.
‘할머니 꽃상여 타고 안녕히 가세요.’ 마음이 찜찜하였다.
“엄마 나 지금 아침을 안 먹고 집에 가서 먹어야 돼요”
“그래 그래 얼렁 와” 엄마 목소리가 커진다. 자식에게 밥 한끼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의 마음이 와 닫는다.
먼저 엄마가 안달을 하시는 고추밭 탄저병 농약을 해드려야 한다.
그까짓 것은 일도 아니지. 농약 두 통으로 해결을 했다.
다음은 메밀을 심어야 할 논으로 갔다. 승우가 로타리를 치기 전에 비료를 뿌리고, 메밀씨를 뿌려야 한다. 요즈음에는 비료나 씨앗을 뿌리는 기계로 뿌린대서 빌려왔는데 처음으로 해 보는 일이라 사용법을 모르는 게 문제였다.
천안에 사는 외사촌 인철이를 불렀다.
“아이구 형님 여기다 무슨 메밀을 심어요. 땅이 질어서 안돼요. 트랙터가 들어가지도 못하고 로타리를 쳐도 땅이 떡이 돼서 메밀 싹이 나질 않아요. 형 다른 것을 심어야 되겠어요.” “다른 거 ? 지금 심을 게 뭐가 있어 ?” “들깨는 아직 늦지 않았어요” “들깨 ? 들깨 모도 없잖아 ?” “사오면 되지” “어디서 사와 ?”
맥이 탁 풀린다. 얼마나 기다려 온 일인데.... 오늘 메밀을 심지 못하면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했으니까 땅이 더 질어질 테지. 그럼 못심고 마는데.....
“메밀은 말복 때 누워있는 말 등어리 만큼 커야 먹을 수 있대” 장모님의 말씀이셨다. 그렇다면 내일이 중복이다. 지금 심어도 늦는데 며칠이 더 지난 후에는 정말 포기해야 한다. 마음이 다급해진다.
이 땅에 메밀을 심어 이효석의 ‘메밀꽃이 필 무렵’에서처럼 보름달 아래 소금을 확 뿌려놓은 듯한 메밀꽃을 보고 싶었는데.....
매몰비용을 생각했다.
어떤 일을 하려고 준비를 하며 여러 가지 투자를 했는데 다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 매몰비용이다. 즉, 나는 이미 메밀을 심으려고, 포크레인으로 작업을 하고, 메밀씨를 구입하는데 200만원을 투자해놓은 상태였다. 그 중에 포크레인 비용 160만원이 회수할 수 없으니 이 게 매몰비용이다. 메밀씨야 다시 팔 수 있거나 가루로 만들어 메밀 부침개를 만들어 맛있게 먹으며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들은 시간, 돈, 노력을 투자해 의사결정을 한 이후에는 상황의 변화에 상관없이 이미 투자한 매몰비용이 아까워 과거의 결정을 계속하려고 하는 오류를 범하고 그로 인해 더 큰 손해를 보는 일이 왕왕있다.
내가 지금 그 꼴이다. 이미 투자한 돈이 아까워 메밀을 심는 노력을 투자하고, 트랙터를 불러 로타리를 치는 비용을 지불하여, 가을에 미처 크지 못한 메밀 쭉정이를 거둘 것인가 ? 아니면 자금 접어버릴 것인가 ? 논둑에 앉아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뒤돌아 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이다’라는 시 구절이 생각났다.
마음 속에 단단한 결정을 하고, 마지막으로 밭고랑 위에 올라서 봤다.
땅이 트랙터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질은지....
그런데 겉 보기와는 달리 발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어라 이 거 포크레인으로 로타리를 쳐도 되겠는데....’ “인철아 여기 봐봐. 이만큼 단단해. 포크레인이 빠지진 않을 것 같은데.....” “그럼 한 번 해 봐요. 안되는 곳은 형이 쇠스랑으로 긁는다 생각하고,,,,?
“그래 해 보자. 지금까지 노력하고 고민한 보답을 받아보자”
이미 시간은 많이 흘렀고, 오늘따라 왜 이리 뜨거운지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후에 포크레인을 부르려면 오전 중에 비료와 씨뿌리기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주저하거나 쉬며 할 여유가 없었다.
인철이에게 기계 사용법을 배우고 나니 그런대로 할만 했다.
‘이 거 편리한데’ 비료를 뿌린 후 메밀씨도 뿌렸다. ‘오늘이 제일 덥구나’
중간에 너무 더워 작업을 중단하고 둘이서 슈퍼로 차를 몰아 얼음물로 열을 식힌 후 다시 시작했다. 겨우 마치니 1시 반이 지났다. 제일 뜨거울 때다.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 찬물을 뒤집어써도 온몸이 화끈 거렸다. 오늘 날씨 정말 대단했다. 엄마와 고모님을 모시고 삼계탕을 대접해 드렸다. 나도 잘 먹어야 견디겠더라. 오후 다섯시 승우가 트랙터를 몰고 왔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트랙터가 빠지면 안되는데.... 과연 트랙터는 힘이 대단했다.
바퀴가 빠지는 곳에서도 엄청난 힘으로밀고 나갔다.
‘이젠 됐다. 트랙터 파이팅’ 속이 시원하게 씨를 덮어나간다. 중간에 고장이 나서 고치러 온양까지 다녀오는 바람에 한 시간 가량 지체됐지만 어두워질 즈음까진 마칠 수 있었다.
‘아, 막힌 속이 뻥뚫린 것처럼 시원하다. 열흘 후인 말복에 누은 병아리 등어리 만큼이라도 컸으면 좋겠다’
작업이 끝나자 허둥지둥 대전으로 향했다. 17분회 장길호 형제님이 모친상을 당했다. 얼마나 슬프실까. 11시쯤 인사를 드리고 집에 들어오니 12시가 훌쩍 넘었다. 아, 오늘 하루 기록적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