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倫常)이 한번 무너지면
····································································· 병산 이관명 선생
“윤상(倫常, 인륜의 떳떳한 도리)이 한번 무너지면 마치 큰 건물의 대들보가 먼저 무너지는 것과 같아서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될 것이다.” <춘추(春秋)>
“신(臣)이 뜻을 행하고자 하는 것은 일신(一身)의 뜻이 행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의(大義)를 밝히려는 것입니다. 대의를 밝히고자 하는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바로 난신적자(亂臣賊子)를 토죄(討罪)하여 국가의 전장(典章)을 바로잡으려는 것입니다. 난신적자를 토죄하지 않아 전장이 어지러워지면 대의가 따라서 어두워지고 막히게 되며 윤상(倫常, 인륜의 떳떳한 도리)이 이로 인하여 무너질 것이니, 비록 명신(名臣)과 석보(碩輔)로 하여금 날마다 묘당(廟堂)에서 정무(政務)를 계획하게 하더라도 나라가 망하는 것을 조만간 보게 될 것입니다.”<병산 이관명 선생, ‘돈유 후에 면직을 청하는 차자(敦諭後乞免箚)’ 영조1년 (1725년) 7월 15일>
돈유 후에 면직을 청하는 차자〔敦諭後乞免箚〕
········································· 영조1년 (1725년) 7월 15일, 병산 이관명 선생
삼가 아룁니다. 공자의 가르침은 만세토록 전해져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법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말에 “도(道)로써 군주를 섬기다가 불가하면 그만둔다.”라고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이것을 해석하기를 “‘도로써 군주를 섬긴다’는 것은 군주의 욕망을 따르지 않는 것이고, ‘불가하면 그만둔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臣)처럼 형편없는 자가 어떻게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만분의 일이나마 봉행하기를 바라겠습니까마는, 지금 전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은 구구한 자애로운 인(仁)이고 신들이 행하고자 하는 것은 천하를 경영하고 국정을 다스리는, 고금을 통틀어 폐할 수 없는 대의(大義)입니다.
신이 명을 받은 초기에 이를 가장 급선무로 여겨 조정에 들어가서는 연석에서 아뢰고 나와서는 소장(疏章)에 덧붙여 진달하였으니, 고심했던 간절한 마음은 신명(神明)에게 질정(質正)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의(誠意)가 부족하여 성상(聖上)께서 들어주실 기약(期約)이 아득하자, 마음이 답답하여 죽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제 정청(庭請)에 대한 비답(批答)에서 훈계하고 꾸짖는 하교를 거듭 내리시는 가운데 신하로서 차마 듣지 못할 말이 있기까지 하였으니, 신이 이에 황공하고 두려워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성상의 마음이 이미 굳게 정해졌으니 신이 비록 강력히 간쟁하고자 하나 신을 믿지 못하는 성상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고, 지엄하신 명에 못 이겨 뜻을 굽혀 따른다면 초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명교(名敎)에도 죄를 짓게 될까 염려스러웠습니다. 백방(百方)으로 생각해 보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쩔 수 없이 사직(辭職) 단자(單字)를 올려 급한 사정을 아뢴 뒤 몸을 이끌고 물러났으니, ‘불가하면 그만둔다’는 의리(義理)를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 가문이 망극한 은혜를 모두 입어 구천(九泉)의 길이 다시 밝아지고 깊은 골짜기에 봄이 찾아와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은택(恩澤)을 입었으니,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도 보답할 수 없는데 티끌만큼도 보답하지 못한 채 밝은 세상을 곧바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이에 미치면 마음이 찢어져서 천지를 둘러봄에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성상께서 특별히 밝은 유지를 내려 마음과 뜻이 믿음을 주지 못했다고 유시(諭示)하고 갑자기 사직 단자를 올린 것을 책망하심이, 마치 신이 어렵고 걱정스러운 국사를 생각하지는 않고 망녕되이 말 한마디 부합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지나치게 발끈 성을 내고 떠나는 것처럼 하셨으니, 이는 신이 평소에 지닌 뜻을 위에 드러내지 못해서 마침내 이런 뜻밖의 하교를 내리신 것입니다. 더구나 두 조정에서 입은 은혜를 신이 어떻게 감히 잊을 수 있겠으며, 신의 아우가 나라에 충성한 것을 신이 어떻게 감히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성상의 하교가 이에 이르자 저도 모르게 피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토복(討復)하는 의리는 《춘추》의 대경(大經)으로, 윤상(倫常 인륜의 떳떳한 도리)이 한번 무너지면 마치 큰 건물의 대들보가 먼저 무너지는 것과 같아서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신이 이에 의거해서 서두르는 것은 대들보를 부지하여 국가에 보탬이 되게 함으로써 두 조정에서 입은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려는 것이고, 신의 아우가 충신이 된 것은 윤상의 도를 얻은 것에 불과하니 이를 버리고 그의 충성을 따르고자 한다면 어찌 이치에 어긋나지 않겠습니까.
아, 신이 뜻을 행하고자 하는 것은 일신(一身)의 뜻이 행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의(大義)를 밝히려는 것입니다. 대의를 밝히고자 하는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바로 난신적자(亂臣賊子)를 토죄(討罪)하여 국가의 전장(典章)을 바로잡으려는 것입니다. 난신적자를 토죄하지 않아 전장이 어지러워지면 대의가 따라서 어두워지고 막히게 되며 윤상이 이로 인하여 무너질 것이니, 비록 명신(名臣)과 석보(碩輔)로 하여금 날마다 묘당(廟堂)에서 정무(政務)를 계획하게 하더라도 나라가 망하는 것을 조만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신들로 하여금 주장하는 대의를 내팽개치고 한갓 장부의 기일을 맞추는 말단적인 일에 매달리게 해 놓고 전하께서 바라는 대로 다스려지는 정치를 구하신다면, 이는 마치 수레채를 북쪽으로 향하고서 초(楚)나라로 가려고 하는 것과 다름없어서 분명 기대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신은 미욱하여 후회할 줄을 몰라 물러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으니 성상께서도 어찌하여 부질없이 은례(恩禮)를 베풀어 이 우매한 일개 천신(賤臣)을 오래도록 붙들고서 여러 가지 일이 방치되도록 내버려둔 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신은 선조(先朝)의 구물(舊物)로 4년 동안 산골로 유배되었다가 만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왔습니다. 명릉(明陵 숙종(肅宗)의 능)을 우러러 바라보니 송백(松柏)은 푸르고, 혼궁(魂宮)에 달려가 곡하니 설치한 유상(遺像)은 엄숙하였습니다. 천지간에 울부짖어도 여생이 돌아갈 곳이 없어 제사 지내는 반열에서 분주히 일하며 지극히 애통한 마음을 때때로 폈습니다. 지금 처지가 불안하여 금문(禁門)을 지척(咫尺)에 두고도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하고 단지 산반(散班)의 끝을 따라서 망극한 애통함을 쏟아내니, 정례(情禮)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황공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성상께서 특별히 구신(舊臣)을 생각하여 재차 승지에게 명하여 계속해서 불러오게 하셨으니, 신이 비록 우매하고 완고하나 어떻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신하의 거취는 염치(廉恥)와 의리가 중요합니다. 신이 물러나야 하는 것은 신이 마음속으로 스스로 맹세한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나라 사람들이 아는 바인데 한갓 은총을 의지하여 의기양양하게 함부로 나아간다면 신의 부끄러운 마음은 이미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은 어떻겠습니까. 은혜로운 유지를 내리셨는데 재차 명을 어기고 태만히 한 죄를 지었으니, 나라의 법으로 헤아려 보건대 만번 주륙(誅戮)해도 오히려 가벼울 것입니다.
삼가 자애로운 성상께서는 굽어 헤아리시어 속히 물러나도록 해 주시고, 이어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신을 꾸짖으며 벌하는 것을 정해서 교만한 죄를 드러내시고 다시 현덕(賢德)한 인물을 복상(卜相)하여 신들이 진달한, 평범한 말이나 죽은 법이 아닌 훌륭한 계책을 별도로 구하시어 백성들이 기뻐 복종하고 국가가 안정되게 한다면 신은 혀를 깨물며 함구하고 뒤늦게 후회하면서 깊은 산골에서 부끄러워하며 죽을 것입니다. 충의(忠義)로운 울분이 격해져서 말을 가리지 않고 하였으니 성상께서 조금이나마 가엾게 여겨 주십시오.
<출처 : 병산집(屛山集) 제5권 / 소차(疏箚) 22수>
[주-1] 돈유 …… 차자 : 《승정원일기》 영조1년 7월 15일 기사에 보인다.
[주-2] 도(道)로써 …… 그만둔다 : 《논어》 〈선진(先進)〉에 보인다.
[주-3] 정수리부터 …… 입었으니 : 이관명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은 임금이 만들어 준 은혜라는 말이다. 남조(南朝) 양(梁)나라 임방(任昉)의 〈주탄조경종(奏彈曹景宗)〉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공을 조화〔군주〕에 돌려야 할 것이니, 간뇌가 으깨어져 중원을 바르고 고액이 흘러내려 풀을 물들이게 할지라도 어떻게 스스로 그만둘 수가 있겠는가.〔自頂至踵, 功歸造化, 潤草塗原, 豈獲自已.〕”라고 하였다. 《文選 卷40》
[주-4] 밝은 유지를 …… 하셨으니 : 《승정원일기》 영조 1년 7월 14일 기사에 보인다.
[주-5] 수레채를 …… 것 : 전국 시대에 위왕(魏王)이 조(趙)나라의 한단(邯鄲)을 공격하려고 하자 대신들이 모두 반대하였다. 계양(季梁)이 왕에게 “큰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북쪽으로 수레채를 잡고서 초나라로 가려고 한다고 하기에 ‘초나라로 가려고 하면서 어찌 북쪽으로 향하는가?’ 하니 자신에게는 좋은 말과 많은 노자와 수레를 잘 모는 기술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몇 가지가 좋으면 좋을수록 초나라로 가는 길은 더 멀어질 뿐입니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戰國策 魏策4》 이 말은 행위와 목적이 상반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황교은 채현경 오항녕 (공역) | 2015
敦諭後乞免箚
伏以孔夫子垂訓萬世。以爲人臣事君之法。其言曰以道事君。不可則止。朱子釋之曰以道事君者。毋從 o君之欲也。不可則止者。必行己之志也。如臣之不肖無狀。其何望奉行聖訓之萬一。而第今日殿下之所欲者。是區區慈愛之仁也。臣等之所欲行者。是經天緯地亘古今不可廢之大義也。臣於受命之初。以此爲第一急務。入而陳白於筵席。出而附達於疏章。苦心血懇。可質神明。而誠意淺薄。天聽邈然。抑塞悶鬱。覓死不得。日昨庭籲之批。荐降誨責之敎。至有臣子所不忍聞。臣於是惶恐悚慄。撫躬罔措。聖心旣已堅定。臣雖欲强爭。而無益於君父之不信。迫於嚴命。屈意承順。則不但初心之違背。抑恐 o得罪於名敎。百爾思量。莫知攸爲。不得不尋單請急。奉身以退。以自附於不可則止之義矣。雖然臣之闔門渾被罔極之恩。泉塗改照。幽谷生春。踵頂皆歸造化。糜粉莫可酬報。而涓埃未效。便訣明時。念一及此。心焉如割。俯仰天地。蹙蹙靡騁。不意聖上特降明旨。諭之以情志未孚。責之以遽上辭單。有若臣不念國事之艱虞。妄以一言之不合。過自悻悻者然。是臣之素志未暴於上。而乃有此情外之敎也。伏况兩朝之恩遇。臣豈敢忘諸。臣弟之忠國。臣豈忍忽諸。聖敎及此。不覺血淚之被面。臣竊念討復之 o義。春秋大經。而倫常一墜。則若大廈之先摧棟樑。國不可以爲國。今臣所以仗此而汲汲者。將欲扶持棟樑。以輔我國家。以粗報兩朝之恩遇。而臣弟之所以爲忠者。不過得其倫常之道。則舍此而欲追其忠者。豈不悖哉。噫。臣欲行其志者。非欲己之志行也。乃所以明大義也。欲明大義者。非他故也。乃所以討亂賊而正國家之典章也。亂賊不討。典章紊亂。則大義從以晦塞。倫常以之斁滅。雖使名臣碩輔。日訏謨於廟堂之上。而國之亡可立而待也。今欲使臣等弁髦所執之大義。徒屑屑於簿書期會之末。而求 o殿下從欲之治。則此無異於北轅而適楚。必無幸矣。今臣迷不知悔。一退之外。無他道矣。聖朝亦安可虗紆恩禮。久縻此愚昧之一賤臣。一任庶績之癏曠而莫之恤乎。臣以先朝舊物。四載囚山。萬死歸來。瞻望明陵。松栢蒼蒼。奔哭魂宮。像設儼然。攀號天地。餘生無歸。奔走祭班。至痛時展。今因情地之危蹙。咫尺禁門。趑趄不進。只從散班之末。以瀉罔極之哀。情禮掃地。惶惕靡容。不自意聖明特軫簪履之舊。再命承宣。招致不捨。臣雖冥頑。寧不感激。雖然人臣去就。廉義爲重。臣之當退。不但臣心之自 o誓。抑亦國人之所知。徒藉寵靈。揚揚冒出。則臣心愧恥。已不可言。而其於四方之譏誚何哉。恩諭之下。再犯違慢。揆以邦憲。萬戮猶輕。伏乞聖慈俯垂諒察。亟賜斥退。仍令有司勘臣譴罰。以彰偃蹇之罪。改卜賢德。別求良策於臣等所陳常談死法之外。以致人心悅服國勢奠安。則臣當咋舌噬臍。羞死空谷而已。忠憤所激。言不擇發。惟聖明之少加矜憐焉。
<출처 : 병산집(屛山集) 제5권 / 소차(疏箚) 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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