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이야기를 위해
<나무 이야기 - 나무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
(케빈 홉스, 데이비드 웨스트 지음, 티보 에렘 그림, 김효정 옮김, 한즈미디어, 2020년)
사람이 있기 전에 나무가 있었다. 성서의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땅에 풀과 나무를 내게 하신 다음에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약 30억 년 전 조류, 균류 등의 모습으로 식물이 지구에 처음 등장했고 4억 3천만 년 전 고생대 실루리아기에 이르러 현재의 외형을 가진 나무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후로 나무는 곤충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상호의존적인 공생의 관계를 형성하며 지구 생태계의 중추 역할을 감당해왔다. 지금 지구의 나무들은 모든 생물종의 1/4에 해당하는 100,000여 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지역 식생에 적응한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도 열대우림지역에서는 심심찮게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종의 나무가 발견되고 있으니, 성서의 아담처럼 아직 불러줄 이름이 없는 생명에 멋진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면 식물학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다. 아무튼 나무는 창조세계의 오랜 존재로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이다. 우리는 나무를 더욱 존중해야하며 더욱 깊이 이해해야한다. 나무를 가까이 하는 일은 창조세계의 신비를 만나는 일이다. 기후위기의 시대, 탄소중립이니 ESG니 호들갑을 떨지만, 결국 우리가 거룩한 나무를 본받아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내려주시는 한 줌 햇볕에 만족하며 살지 못하는 한 구원, 생존의 가능성보다 종말, 멸종의 가능성으로 다가설 뿐이다.
‘나무 이야기 - 나무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는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오랜 시간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나무에 대한 책은 수도 없지 많지만 특별히 이 책은 그림 작가가 식물도감에 수록된 나무의 사진이 나무 전체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에 큰 아쉬움이 있었는지, 우리가 흔히 보지 못하는 나무 전체의 멋진 자태를 펜으로 정성스럽게 그려낸 것이 참 돋보인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이 책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마치 그리스 아테네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의 신상들을 하나씩 만나는 느낌이었다. 아,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더 크고 깊고 넓고 오랜 세계가 이렇게 존재하는구나. 내가 이 세계에 잠시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거구나. 황망한 무기력이 아니라 평온한 귀속감이었다. 일단 나에게는 그랬다.
몇 년 동안 기독교환경운동 단체에 몸을 담으면서 보람 있다고 생각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몽골 은총의 숲’ 사업이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의 몽골 은총의 숲 사업은 기후변화로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몽골에 나무를 심는 조림 사업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교회의 헌금으로 2만 8천 여 그루의 나무를 은총의 숲에 심어왔는데, 이제 전체 30년의 계획 중에 1차 숲 조성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 기반이 취약한 몽골도 코로나19로 난리가 아닌데 그래도 은총의 숲 나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이제 숲에서 자라는 과실수들에서 열매도 제법 거두고 있는데, 앞으로 이 열매들을 기반으로 몽골 사람들이 스스로 숲을 가꾸고 살아갈 수 있는 경제기반을 마련하는 2차 생태공동체 조성 계획을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몽골 은총의 숲 조성 사업의 관건은 몽골 사람들이 오래된 나무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보게 하는 것에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유목의 전통을 지닌 몽골 사람들은 높은 산마다 거룩한 신이 산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함부로 산에 발을 들이지 않고 산의 나무를 베지 않는 것이 몽골 사람들의 오랜 문화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기후변화로 강과 샘이 말라붙어 생존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몰린 몽골 사람들은 나무의 거룩함을 존중해줄 여유가 없어졌다. 그들의 마지막 한 마리 양을 빼앗은 사람들은 다름 아닌 우리들이다.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몽골 사람들의 목초지를 말라붙게 한 것이다.
우리가 그들이 간직해온 오랜 나무 이야기를 잊게 만들어버렸다. 몽골 사람들이 감당하고 있는 기후재난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래서 우리가 몽골에 심는 나무 한 그루는 용서와 화해를 비는 속죄의 기도다. 더 많은 나무를 심어 몽골 사람들이 나무와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내 영혼에 스며든 죄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적어도 내가 살아온 나이만큼 나무를 심으시기를. 나무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첫댓글 오랜 나무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한 그루의 나무라도 더 심어야..
시간이 많지 않다..가슴이 먹먹합니다..
사람이 있기 전에 나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