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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일시; 2017년 9월 9일~2017년 9월 12일(3박4일)
2. 여행지: 타이완
3, 관광 일정
1)스페셜포함; 101타워 전망대. 발마사지
2)화사지에 야시장; 먹거리 장터
3)야류해양공원; 수억년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 낸 걸작품
4)온천욕; 타이완 양명산의 최대규모의 실외 수영장겸 유황온천욕
5)화련; 태로각협곡, 연자구, 자모교.자모정, 치칭탄해변 등 자연의 경이로움을 한폭의 그림처럼 담아둔곳
6)고궁박물관, 충렬사,용산사, 충렬사는 출입이 제한되어 관람을 못하고 용산사는 향을 태워 공가가 탁해 얼른 동영상만,
7)중정기념관; 장개석의 업적을 기린 대표적 랜드마크 중 하나
4. 항공편;중화항공
<여행일정> * 중정기념관 ; 장개석총통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중정기념관 및 부인둥 가족이 기거한 사림관저
타이페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로 대만의 영웅 장개석을 위한 기념관이다. 그림같이 조경된 광대한 정원위에 거대한 대리석 건물인 기념관이 서 있고, 우아한 정자, 연못 등 이 배치되어 있다. 25톤 장개석 총통동상이 본관이 시내를 바라 보고 서 잇으며, 1층 전시실에는 사진과 일생 생애에 관한 기념품등이 전시 되어 있다.
기념품의 높이는 70m이며 중화문화의 품격을 잘 반영 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우리나라와 정치적 배경이 흡사한 관계로 두나라 최고 지도자끼리 한때 왕래한적이 있지만 지금은 외교가 단절된 상태이다.
*야류 해양 국립공원
야류 지질공원의 바위는 석회질로 수천만 년 전부터 파도의 침식과 풍화 작용에 의해 독특한 모양의 바위로 생성된 것으로 거대한 계란 모양의 바위가 제각기 흩어져 있고, 슬리퍼 모양의 바위는 어부들에게 승강대로 사용된다. 파도가 만들어 놓은 기암괴석들이 독특한 이름을 지니고 있어서 왕관을 쓰고 있는 듯한 여왕머리, 계란바위, 목욕하는 미녀바위 등 파도의 조각솜씨를 십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총 3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관광할 수 있는데, 제 1구역은 버섯바위가 밀집되어있어, 버섯바위의 생장과정을 감상 할 수 있으며, 이곳에는 유명한 촛대 바위가 있다. 제 2구역은 1구역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야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여왕바위가 있다. 이집트의 여왕인 네페르티티의 옆모습을 꼭 닮은 이 바위에는 항상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사진을 찍는다. 제 3구역은 기암괴석과 자연경관을 보존하고 있다. 바닷가 옆으로 조성된 산책길을 따라 바위들을 구경하며 관광하는 코스로 총 관광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정도이다.유명한 바위를 걷는 도중에 식당과 돌고래와 바다 표범이 있는 해양세계공원, 기념품 가게 등을 지날 수 있으며, 파도가 심하기 때문에 수영 금지구역이지만 낚시를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나 안전상 이유로 경계선을 넘을 수 없다.
금지선으로 바닷가전역에 그어져 있다.
*화리엔,대만 최고의 관광지 태로각협곡
태평양과 접한 대만의 동쪽지방 화롄(花蓮)은 중앙산맥과 높은 산들로 인해 다른 지역과는 다른 이국적인 지형을 보인다. 인구가 적
고 공해도 없어 대만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자연을 접할 수 있다. 바로 이곳에 대만이 자랑하는 타이루거 협곡이 있다.
타이루거 협곡은 동서횡단은 우리나라 전철비슷한 철로로 2시간반을 대만의 산야를 감상하며 가야한다. 초입에서 약 19㎞ 구간까지 걸쳐 있다. 하늘을 찌를 듯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폭포가 힘차게 내려오고 강 위에는 수십~수백m 높이의 대리석 기둥이 솟아있다. 운해서린 산자락에는 갖가지 전설을 간직한 정자와 탑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깊다. 흡사 계곡으로 몸이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아슬아슬하게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떻게 이런 곳에 길을 만들었을까 싶다. 특히 추록대단은 바닥에서 높이가 200m나 되는 대리석 암벽으로 그랜드캐넌 보다도 깊은 협곡이다.
이곳은 또 원주민과 대리석으로 유명하다. 협곡의 재질 자체가 석회암과 대리암이다. 대리석 가공 공장만 무려 500곳에 이른단다. 이 지역은 호텔의 욕조에서부터 커피 탁자 그리고 쓰레기통까지 대리석으로 돼 있다. 심지어 거리의 보도블록까지 모두 대리석이다. 8만명에 달하는 원주민이 이 지역에 살고 있는데 대부분이 아미족이다. 대만의 고산 부족인 아미족의 본거지이며, 대만 최고의 경승지로 꼽히는 타이루거협곡 여행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타이루거협곡은 대만에서 네 번째로 지정된 국가공원인 타이루거국가공원의 중심....바위를 뚫고 깍는 49년간의 공사로 212명이 죽었고, 702명이 다쳐서 ‘땀과 눈물’의 도로라고도 불린다. 영혼을모신 사당과 장춘사 폭포가있다. 흐르는 물색이 석회물이라 운치는 느끼기보다는 공사현장을 생각케하는 오싹한 기분이다. 아마도 타이루거 협곡윗쪽에 시멘트 광산이 있어서 모래도 검다고 한다.
협곡은 가는 곳마다 험하여 사이가 좋지 않은 이와는 함께 걷지 말라고 주의줘서 웃었다. 아마도 밀쳐내어 사고칠까봐 그런가싶기도.... 태풍지난 일주일이 제일 위험하다고 한다. 대만은 태풍이 많은 나라 태평양에서 생성된 태풍이 거의 이곳을 지나 우리나라로도 닥치곤 한다. 태풍휴가를 제일 좋아하는 나라. 자연은 늘 경이롭다. 사람의 생각과 계획으로 만들어 질수 없는 것. 다만 파괴할뿐..... 두줄기의 계곡물중 한쪽은 유리알처럼 맑고 한쪽은 석회물이 힘차게 소리를 낸다.
이 많은 굴과 협곡이 외정시대때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졌단다. 입구에서 차로 군데군데 차에서 내려 사진 찍고 걸었지만 구경하랴,셔터누르랴, 정신이 없었고,호텔의 음식이 좋고 가는 식당마다 우리음식과 비슷하고,샤우나의 물이깨끗하고 좋아서 하루밤 푹쉬고나니 피로는 쌓이지 않았다. 사진이나 글로는 표현이 불가능 할정도니까 현지를 직접 보아야만 이럴수가 있는가 싶어서 어안이 벙벙하다.
사진을 옆으로 찍어서 그렇지, 위로 쳐다보면 하늘과 맞닿을 정도로 높은 기암절벽이다.
사람의 손으로 터널을 내어 차가 다닌다. 그렇지 않는곳도 더러 있다.
차들도 교차를 못해 한참을 기다려주고를 교대로 한다. 그만큼 태로각협곡에 정말 놀라 입이 벌어진다.
바위가 부서져 흐르는 물은 허연 바위색깔이다.낙석이 진행형이라..
*푸르른 녹음을 감상하며 즐기는 노천 온천, 양명산 티엔라이온천
타이베이 북쪽에 우뚝 솟은 양명산은 1120m 높이의 활화산이다. 양명산 일대는 유황온천이 분출되는 온천 지역으로 곳곳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푸르른 녹음 한가운데 피부 각질 제거, 해독 기능 등 유황온천의 효능을 경험할 수 있다. 추천하는 온천 호텔은 티엔 라이 스프링 리조트는 양명산이 한눈에 담기는 야외 스파, 현대적인 시설의 실내 스파, 커다란 노천탕 등 다양한 시설을 보유한 대규모 온천 시설이다. 작년에는 일본온천여행을 했는데 대만도 역시 온천여행이 될 수 있다. 노천 수영도 했다.
유황물이라 냄새도 나고 물빛이 부옇다. 넓은 수영장은 물이 푸르다.방수휴대폰이라야 수중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 대만국립고궁박물관
타이완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인 국립 고궁 박물원은 영국의 대영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전시품은 중국 송나라와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네 왕조의 황실 유물로, 본래는 중국 베이징의 고궁 박물원 등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1948~1949년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이전해 온 것들이다.
박물관은 20만 6천m2의 넓은 대지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본관은 중국 궁전 양식의 4층 건물로 녹색 기와와 황색 벽면이 인상적이다. 그 밖에도 여러 동의 부속 건물이 있으며, 본관 뒤로 보이는 산의 중턱에는 지하 수장고를 지어 귀중한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다.
■ 대만의 개관
대만(타이완)은 중국 본토의 남동 해안에서 160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으로, 17세기부터 네덜란드, 청나라, 일본 등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 2차대전 이후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자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피신, 대만의 행정·입법·사법부 3권을 장악하였으며 이후 대만과 중국과의 갈등이 이어져오고 있다.
– 정식 명칭 : 중화민국(中華民國, Republic of China) – 수도 : 타이베이(Taipei)
– 인구 : 약 2325만 명(2012년 7월 기준) – 면적 : 약 3.6만㎢ – 주요 민족 : 대만인(본성인) 84%, 대륙 본토(외성인) 14%, 고산족 2% – 언어 : 북경어(공용어), 대만어 – 종교 : 불교ㆍ도교 93%, 기독교 4.5%, 기타 2.5% – 지리 : 북쪽으로는 일본, 남쪽으로는 필립핀 의
중간에 위치한 섬으로, 중국 대륙의 동남해안으로부터 약 160㎞(100마일) 떨어진 서태평양에 자리잡고 있다.
■ 대만의 민족 구성
대만의 선주민족인 말레이-폴리네시아계는 고산족(高山族) 또는 산지동포(山地同胞)라고 불리며, 대부분이 산악지대에 정주하고 있고 전 인구의 2%를 차지한다. 대륙에서 이주해 온 한족(漢族)은 조기 이주자인 본성인(本省人, 대만인)과 1949년 전후에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과 함께 건너온 외성인(外省人)으로 나뉜다. 대만인은 전 인구의 84%, 외성인은 14%를 차지하고 있다.
■ 대만의 국가기구
국가기구는 총통과 행정원ㆍ입법원ㆍ사법원ㆍ고시원ㆍ감찰원의 5원(院),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통은 국가원수로서 임기는 4년으로 1회에 한하여 재임이 가능하다. 1949년 이래 국민당 1당 지배체제를 펴오다가 1987년 7월 계엄령을 해제하고 1989년 1월 복수정당제를 도입, 국민당 1당 체제를 벗어났으며, 2000년 대선에서 민진당의 천수이볜이 총통에 당선됨으로써 국민당 집권 정치에 마침표를 찍었다.
■ 대만의 역사
대만(타이완)은 선사시대에는 말레이-인도네시아 계통의 종족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오랜 세월을 두고 중국 본토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 대만에 정착했다.
1590년 포르투갈인이 이곳을 처음으로 방문해 '아름다운 섬'이란 뜻의 일하 포르모사(Ilha Formosa)라고 부르고 동 명칭으로 서양에 소개했다. 1626년 이전에 네덜란드인과 스페인인들이 섬의 서쪽 해안을 따라 요새화된 상업지구를 세웠으나, 1642년 필리핀 내란으로 스페인이 대만 북부에 신경을 쓸 틈이 없는 사이에 네덜란드가 스페인 점령 북부지역까지 차지하고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대만을 직접 관할하게 되었다.
그 뒤 1644년 만주족의 명나라 침입으로 중국 대륙이 혼란에 휩싸이자 많은 중국인(명나라 관리)들이 대륙으로부터 대만으로 이주하였고, 네덜란드의 중국인들에 대한 농지 소유 불허 및 중과세 정책에 항거한 중국인들이 1652년 봉기, 네덜란드의 식민통지를 크게 약화시켰다. 이들 중국인들은 청나라에도 대항하였으나 청나라는 1683년 군대를 파견, 대만을 점령하였다. 청나라의 통치가 시작되면서 대만에서는 농업이 집중적으로 발전하였고, 19세기에 들어서는 영국, 미국, 프러시아 및 일본 등 당시 제국주의 세력의 대만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1875년 타이베이가 대만 북부의 수도가 되었으며, 1886년에는 대만이 중국의 1개 성이 되었으나, 1887년 청일전쟁에 진 청나라와 일본 간의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청나라는 대만을 일본에 할양하였다. 이후 대만은 일본에 쌀과 설탕을 공급하는 주요공급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한 일본이 대만을 연합국에 양도하자 1945년 중국의 국민당은 국부군을 대만에 파견, 인수 작업을 실시했다. 대만 거주민들은 초기에는 이들을 환영하였으나, 이들의 부패와 고압적인 태도로 점차 이들에 대한 불만이 증가되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47년 소위 '2ㆍ28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949년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이 승리하고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과 동시에 공산화를 선포하자, 12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도피해 타이베이에 수도를 정하고 손문의 삼민주의를 건국이념으로 한 '중화민국' 정부의 출범을 선언하였다. 이로써 중국은 두 개의 중국으로 분리되었다.
국민당 정부는 철저한 반공주의를 내걸고 1954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에 서명, 미국으로부터 군사ㆍ경제원조를 받아 경제발전에 주력해 고도성장을 이뤘다. 냉전시대 미국은 대만을 지원하면서 중국을 고립시켰으나, 1970년대 미-중 해빙무드와 더불어 1971년 10월 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가 중국으로 넘어가고 UN에서 대만이 축출되었다. 이후 1972년 2월 미국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대만이 중국의 일부이며, 미국은 대만에서 군사력을 철거할 것 등을 약속했다. 이 사건 이후 수많은 나라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며,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 대만의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움직임
대만은 국민당 시절 소위 ‘대륙수복’을 통한 중국과의 통일을 외쳤지만, 이후 2000년 국민당의 장기집권이 끝나고 대만 현지 출신인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1951~ ) 총통이 집권하면서 대만의 독립을 지지, 중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대만의 독립 움직임을 둘러싸고 중국-대만 양안(兩岸)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2003년 11월 대만 입법원은 국민투표 법안을 가결하였는데, 국가‘방어성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2004년 3월 총통선거와 함께 ‘국방강화안’과 '대등담판안'에 대한 2건의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방어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는가’하는 ‘국방강화안'과 ‘정부가 중국과 협상을 재개,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양안 관계를 설정해 나가는 것에 동의하는가’라는 '대등담판안’ 모두 투표율 저조로 부결됐다. 천수이볜 총통의 측근 비리혐의로 국민당, 친민당 주도하에 타이완 정치사상 최초로 총통파면안이 입법원에 제출되었으나 2006년 6월 27일 부결되었다. 2008년 3월 마잉주(馬英九, 1950~ )가 제12대 총통에 당선되었고, 2012년 재선에 성공해 제13대 총통에 재임 중이다. 아열대라 비가 많고 우리나라는 가을이지만 평균기온 32도로 무덥다. 그래서 차내와 실내는 4철 에어컨을 켠다. 길거리 건물도 처마를 달아내어 그늘로 다니게 지었다. 태풍과 열대야, 이런 악조건에도 열심히 잘 사는 국민이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있어 산수륙이 세계 어느나라에도 없는데 단 북쪽의 미련한 비인간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인구밀도가 높아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오트바이를 이용한다. 신호를 기다리는 오트바이부대가 장관이다. 자동차는 거의다 일본제이고 어쩌다 우리나라 현대차도 두어번 보였다. 철저한 반공주의 국가, 오랫동안 식민지로 견뎌온 민족, 일본에게도 우리보다 거의 배인 50년을 식민지였으면서도 가장 일본과 가깝단다. 얼마전 일본의 천재지변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조금을 보낸 나라이다. 대기업은 없고 중소기업이 많단다.
농사도 사시사철로 할 수 있으니 3모작 4모작 농사를 짓는다. 서로가 협조하고 남을 배려하는 국민성과 3일간 알뜰살뜰 호텔방정리를 해주는 어느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고마워 오는날 아침에는 두둑한 팁을 놓고 떠나왔다. 다시 또 오고싶은 나라- Goodby Republic of China-
[네이버 지식백과] 대만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작성자; 죽헌
첫댓글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