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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 야구단] 김현석
0. 제작사 타이틀
'배급 XX 엔터테인먼트', '투자 XX 캐피탈'의 자막이 차례로 떴다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제작 명필름' 이라고 떴다가 사라지는데, o 받침만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동그란 o 의 크기가 점점 커져 화면의 반 정도 크기에서 멈춘다.
1. 실내, 태훈의 집, 밤
앞 씬의 동그라미 형상 그대로 동그란 마패 - 군데군데 녹슬어있고, 말 3마리가 양각으로 새겨져있는 -
가 보여진다. 마패는 나무로 된 장식장의 한 가운데에 '가보'처럼 모셔져있다.
카메라, 집안의 분위기를 슬쩍 훑으며 이동한다.
거실 한쪽 벽에는 커다란 가훈 액자가 붙어있고, 반대쪽 벽에는 몇 개의 사진 액자가 붙어있다.
카메라, 거실을 지나쳐서 문이 조금 열려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10살 정도의 사내아이(태훈)가 길다란 가방(야구장비가방)에 짐을 챙기고 있다.
야구글러브, 스파이크 등을 가방에 집어넣고, 지퍼를 채우는 태훈.
가방 옆에 가지런히 개어진 야구유니폼 위에 야구모자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태훈의 표정.
태훈,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루로 걸어 나오고, 카메라, 태훈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한다.
태훈, 사진액자들이 걸려있는 벽을 바라본다.
30여명에 이르는 대가족이 찍은 가족사진과, 직계 조상으로 보이는 몇 명의 남자 사진이 연달아 붙어있다.
카메라, 태훈의 시선으로 사진들을 차례로 훑다가,
맨 왼쪽에 걸려있는 (서열상 4代 위쯤 되는) 사진액자에 눈길이 머문다.
콧수염을 기른 40대 남자(호창)가 두루마기를 입고, 정자관(양반들 쓰던 모자)을 쓰고 찍은 사진.
호창의 사진을 바라보는 태훈의 표정.
사진 속의 호창, 태훈에게 웃고 있는 듯하다.
F.O.
2. 다큐멘타리 몽타쥬, 각종 타이틀.
1900년대 초의 대한제국의 모습의 흑백 다큐멘터리
그 위로 연기자, 메인 스탭 등의 타이틀이 떴다 사라진다.
1) 커다란 독을 등에 지고 가는 사내, 조그만 독을 머리에 이고 지나는 아낙네.
2) 등짐을 가득 진 소를 끌고가는 10대 아이 옆으로 지나는 전차
3) 서당에서 공부하는 학동들의 모습.
4) 대중 강연회에 운집한 사람들.
마지막으로, 돼지오줌보로 만든 축구공을 차고 있는 흰옷 입은, 까무잡잡한 얼굴의 젊은이들.
축구공을 몰고가는 젊은이의 등 뒤에서 태클을 하는 청년1.
청년2,3,4...10이 차례로 그 위로 뛰어들어서 조그만 인간 무덤(?)이 만들어진다.
다큐멘타리 화면의 스크레치가 벗겨지면서, 또 화면 안의 인물들의 움직임도 정상속도가 된다.
(이상의 다큐멘타리는 실제 현존하는 화면과 연출된 화면의 결합.)
3. 실외, 공터, 낮
흑백의 다큐멘타리 화면이 컬러로 바뀌면서,
인간 무덤에서 공이 쪼르르 삐져나오는가 싶더니 20대 중반 젊은이(호창)가 그 안에서 나온다.
이내 인간무덤은 무너진다.
단독 드리블을 해서 카메라를 향해 달려오는 호창.
수많은 젊은이들이 호창을 뒤따르지만, 호창을 따라잡지 못한다.
씩씩거리며 달려온 호창, 힘차게 슛을 날리고,
공은 카메라를 향해 날아와서 화면을 새카맣게 만든다.
4. 실외, 공터, 해질녘
새카맣던 화면이 공 지나가듯 열리면,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고, 공터엔 호창과 20대 남자(광태)만 있다.
신식 옷차림 (하얀 셔츠, 검은 바지, 검은 운동화)의 광태는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영문 신문(뉴욕타임스) 하나를 펼쳐놓고 열심히 보고 있고,
구식 옷차림의 호창은 혼자서 축구공을 톡톡치며 놀고 있다.
호창
무슨 말인지 알고 보는 거냐?
광태
내가 언어에 재능이 있긴 있나보다.
호창
한문은 언어가 아니었던가?
광태, 신문 구석구석을 훑으며 곳곳에 펜으로 동그라미표를 하고 있다.
광태
(펜을 내려놓으며)
햐, 다 찾았다. 요 한 면에만 에이(a) 짜가 122개가 있네.
...... 이젠, 비(b)짜를 찾아 봐야지.
호창, 따분한 듯 공을 톡톡치던 게 어쩌다 한번 세게 맞아서 광태 뒤로 넘어가 버린다.
광태의 머리 위를 너머 언덕쪽으로 굴러가는 축구공.
내리막 언덕을 굴러가며 속도가 붙어 통통 튀면서 내려간다
언덕 아래에는 200평 정도 규모 건물이 있고, 뒤편 벽이 언덕 아래와 맞닿아있다.
통통 튀면서 내려가던 축구공이 건물 벽을 훌쩍 넘어가 버린다.
언덕 위에서, 낭패한 표정으로 건물 쪽을 바라보고 있는 호창.
5. 실외, YMCA 회관 뒤뜰, 해질녘
담벽에서 쑥 얼굴을 내미는 호창. 낑낑대는 모습이다.
호창
야, 그만 됐으...
쿵 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호창.
호창,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공을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건물 벽 아래쪽에 키 작은 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있다.
호창, 나무들을 들쳐본다. 나무 사이에 보이는 하얀 공.
호창, 나무 사이로 손을 넣어 공을 집는다. 그런데, 공이 호창의 손보다 작다.
호창의 손에 들린 작은 하얀 공(옛날 야구공)
호창, 황당하고 궁금한 표정으로 공을 바라본다.
광태(소리)
아직 못 찾았냐?
담벼락에서 얼굴을 내민 광태가 호창을 바라본다.
광태
어? 그거 뭐냐?
호창
...... 공이 작아졌다!
건물 쪽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큰 키의 백인 남자(질레트)가 두 손으로 축구공을 든 채 서 있다.
호창과 질레트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질레트
(축구공을 들어보이며)
(영) 당신 꺼?
난데없는 영어에 당황한 호창, 담쪽의 광태를 돌아보며 도움의 눈길을 보낸다.
광태, 호창의 눈빛을 일부러 외면하면서 잽싸게 담 아래로 얼굴을 감춘다.
질레트, 축구공을 내려놓고 호창에게 발로 차 준다.
호창, 굴러온 축구공을 발로 멈춘다.
호창, 손에 든 야구공을 질레트에게 들어보이며 "니꺼지?" 하듯 눈짓으로 묻는다.
질레트, 고개를 끄덕인다.
호창, 야구공을 발앞에 떨궈놓고 질레트를 향해 차려한다.
질레트
(영) 아냐, 차지마, 그거 축구공 아냐.
(던지는 시늉을 하며)
던져요, 그건 야구공이란 거야.
호창,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다.
질레트, 다시 한번 던지는 시늉을 한다.
호창, 공을 집어들고, 엉성한 자세로 질레트를 향해 던진다.
질레트, 왼손에 낀 가죽장갑으로 날아온 공을 잡는다. -고속촬영-
호창, 매우 놀란 표정이다.
질레트
(영) 고맙수.
질레트, 건물 저편으로 사라진다.
호창, 감전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담에서 삐꼼 얼굴을 내미는 호창.
질레트와 또다른 미국인(선교사1)이 가죽글러브를 낀 채 캐치볼을 하고 있다.
신기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호창.
6. 실내, 호창의 방 안, 밤
화선지 위에 내려앉는 붓.
마당 밖에선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가 들린다.
붓 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차츰 미간에 힘이 들어가는 호창의 얼굴.
한 획이 그어지지만, 반듯하지가 않다.
호창, 붓을 내려놓고, 화선지를 구겨버린다.
구겨진 화선지는 마침 둥그런 모양이 돼있다.
호창, 공 모양이 된 화선지를 집어들고, 슬쩍 벽을 향해 던져본다.
벽에 맞고 다시 호창의 앞으로 튕겨오는 화선지 모양 공.
7. 실외, 언덕 위, 낮
축구공을 든 호창, 언덕 아래 Y 건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호창, 골키퍼가 골킥 하듯 축구공을 힘차게 차서 Y 건물로 넘겨 보낸다.
호창
(주위를 한번 살피며)
어흠!
8. 실외, Y 건물 뒤뜰, 낮
호창, 저만치 떨어져있는 축구공을 집어들어 다시 뻥 내지른다.
저만치 굴러가는 축구공을 따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 호창.
그렇게 공을 찼다 주웠다를 반복하며 뜰 전체를 탐색(?)하는 호창의 모습이 부감으로 보여진다.
뜰에는 아무런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실망스러운 호창.
호창, 문득 건물 옆 잔디밭 위에 놓여진 가죽글러브와 야구공을 발견한다.
반가운 표정의 호창, 그 옆으로 다가가서 글러브를 한번 만져 본다.
호창, 두리번거려서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후, 글러브를 한번 오른손에 껴본다.
왼손에 껴야할 글러브를 오른손에 꼈으니 뭔가 이상해보이는 게 당연하다.
이때, 호창의 뒤로부터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데, 그 사람은 길다란 방망이를 들고 있다.
호창의 시야에 블쑥 들어오는 나무 방망이(옛날 야구배트).
호창 앞에 서 있는 이는 야구 방망이를 든 20대 여자(정림).
호창
(놀라며)
아,아니오. 오해 마시오!
공 찾으로 왔소! 공...
정림, 황당한 표정으로 호창을 바라본다.
정림은 신식의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다.
호창
(짐짓 태연한 척)
이제... 공 찾았으니까... 가야지!
(멋적은지 한 마디)
다듬이질 하는 데 방해해서 죄송하오!
정림
이거 다듬이 방망이 아닙니다.
호창
어쩐지.. 좀 길다 싶더니만.. 그럼, 빨래방망인가?
(정림의 눈치를 보다가 아니다 싶은지)
아니면 말고...
축구공을 들고 돌아서려는 호창에게
정림
운동 좋아하십니까?
호창
나, 선비올시다.
그 말을 해 놓고 자기 손에 들린 축구공을 바라보는 호창, 조금 떫떠름해진다.
CUT TO
호창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불안하게 서 있다.
질레트가 투수가 되어 호창에게 야구공을 던진다.
호창, 가만히 있다.
정림
공을 보기만 하지 말고, 휘두르십시오!
호창, 말도 안되는 헛스윙을 한다.
정림
그냥 휘두르기만 하지 말고, 공을 맞추십시오!
호창, 엉성하게 스윙을 하고 공은 틱 맞아서 떼굴떼굴 굴러간다.
정림
멀리 칠수록 좋은 거랍니다.
호창, 쫑알쫑알 대답하는 정림때문인지 약이 좀 올랐다.
호창
거,참 말 많소!
악에 받친 호창, 도끼 휘두르듯 냅다 방망이를 휘두르고,
얼떨결에 맞은 공이 딱 소리를 내며 Y회관 담장을 넘어가버린다.
놀란 질레트와 정림, 더 놀란 호창.
정림
(호창에게 다가오며)
이게 베이스볼이란 겁니다.
호창
배..이....?
정림
어떻습니까? 본격적으로 베이스볼을 배워볼 생각 없습니까?
호창
(조금 흔들리며..)
...... 나, 선비라니까 그러시오.
정림
지금 베이스볼을 하게 되면...
(강조하듯)
조선 최초가 됩니다.
'조선최초'라는 말에 흔들리는 호창의 얼굴을 향해, 카메라 서서히 들어간다.
9. 실외, 종로거리 , 낮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광태의 옆으로 전차가 지나간다.
카메라, 확 빠져서 종로거리의 전체 모습이 보여지면서, 자전거 탄 광태의 모습은 아주 작게 보인다.
1905년의 종로거리의 모습이 보여진다.
초가집과 기와집의 비율이 8대2 정도 되고,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 중 신식 옷차림은 10% 내외다.
10. 실외, 종로 뒷골목, 낮
자전거를 탄 광태의 시점샷으로 종로 뒷골목의 사람들의 모습.
앞 씬의 종로 메인 거리에 비하면, 조선시대에 더 가까운 분위기.
자전거를 탄 광태의 시점샷으로 종로 뒷골목의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 앞으로 Y 야구단원이 될 인물들의 개성적인 모습이 짧게 소개된다.
체구보다 큰 지게를 지고 지나가는 쌍둥이 형제, 거드름을 피우고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한량 같은 모습의 병환과 재철, 좌판을 벌여놓고
이것저것 팔고 있는 성한, 삿갓을 쓰고 괜히 폼잡고 지나가는 은 등.)
사람들이 전봇대 앞에 빙그르 몰려있다.
광태, 자전거를 멈추고, 모여있는 사람들 뒤에서 전봇대를 바라본다.
전봇대에 붙어있는 자보.
< 황성 기독교 청년회 빼스볼 단원 모집 >
카메라 뒤집어지면, 앞에서 짧게 소개됐던 인물들이 죄다 자보를 바라보고 있다.
11. 실외, 호창의 집(청학서당), 밤
적당한 크기의 초가집. 낡은 느낌이지만 나름의 기풍이 느껴지는.
문 밖에 <靑鶴 書堂>이라는 문패가 붙어 있다.
집 뒤쪽으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대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안방에 불이 켜져있다.
12. 실내, 호창부의 방, 밤
벽에 걸려있는 흑백사진
- 10년 전에 찍은 3부자(40대 호창부, 15세 호창, 18세 호창형 대창)의 사진.
특이한 것은, 호창과 대창 모두 댕기머리를 하고 있다는 점.
호창부(소리)
변변찮은 관직 하나 받아서 한양으로 올라와서,
정파 싸움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카메라 이동하면, 호창부 앞에, 호창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호창부
20년 한양 생활에 나도 지친 모양이다.
... 내 나이도 있고, 이제 여생은 고향에 가서 보내고 싶다.
묵묵히 듣고 있는 호창.
호창부, 슬며시 호창의 표정을 살핀다.
호창부
그러자치니 마음에 걸리는 게 이 서당이다.
학자된 도리로 무책임하게 서당문을 닫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말인데... 네가 이 서당을 맡아서 운영하면 어떠냐?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는 호창의 얼굴.
호창
아,아버님.. 제 문리를 인정해주시는 것은 기쁩니다만...
호창부
네 문리가 탁 맘에 들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문리야 네 형이 더 잘 트였었지.
호창, 떫떠름해진다.
호창
아버님, 갑작스런 말씀이시라, 당최 생각을 가늠하기 힘듭...니다만...
좀 시간을 갖고 숙고해봤으면 합니다.
호창부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해라!
자리에서 일어서는 호창, 저린 발 때문에 잠시 비틀거리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호창부에게 큰 절을 한다.
호창
아버님, 물러가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호창,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으려는데,
호창부
호창아.
호창, 멈추고 호창부를 본다.
호창부
난 네 형한테 무척 기대가 컸었다.
물론 네 형이 지금 하는 일이 허튼 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만...
그래도 부모 된 마음은 다르다.
...... 너만큼은 날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호창의 표정.
13. 실외, Y 건물 정원, 낮
삿갓 쓴 채 무표정하게 서있는 은으로부터 PAN 하면,
씬 10의 종로거리에서 소개되었던 선수들을 비롯한 10여명의 젊은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연령대는 10대에서 30대까지 다양하다. 그 중의 병환과 재철.
재철
근데, 빼스볼이라는 건, 어떻게 하는 건가?
병환
모른다, 공으로 한다는 것밖에.
또, 공으로 하는 거라면, 내가 잘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지.
꾀죄죄하게 생긴 30대 남자(성한)가 병환과 눈이 마주치고, 성한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인사를 하는 성한이나, 인사를 받는 병환이나 그닷 편치 않는 표정이다.
병환
여긴 뭐하러 왔나?
성한
머... 운동 가르쳐 준다고 해서 왔... 습... 죠 (말끝이 애매하다.)
성한, 어색하게 굽신거린 후, 지나친다.
재철
누군가?
병환
(불쾌한 표정)
전에 우리집에서 머슴 살던 놈이다.
세상 좋아졌다. 아무리 반상의 구별이 없어졌다지만...
광태의 모습이 보인다. 광태를 본 병환
병환
어이, 이봐, 같이 다니는 선비는 안 왔소?
광태, 병환을 슬쩍 피해간다.
CUT TO
젊은이들이 한 곳에 모여 있고, 건물 안에서 정림이 나온다.
여전히 신식의 세련된 차림의 정림은, 기껏해야 하얀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광태가 베스트드레서인 젊은이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인다.
모여 있던 젊은이들, 경계하는 눈초리로 정림을 본다.
정림
황성기독교청년회 베이스볼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전, 베이스볼팀을 담당하게 된 YMCA 교사 민정림이라고 합니다.
젊은이들 웅성거리는 소리 커진다.
병환
(정림 들으라는 듯)
말세다!
재철
이봐, 처자, 장난하지 말고, 얼른 다른 어른들 불러와.
정림, 조금 기분 상한 듯 하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는다.
정림
물론 야구의 기술적인 부분들은 미국인 선교사들이 책임질 겁니다.
정림의 뒤로, 질레트와 선교사1,2가 나타나서 손을 흔든다.
정림
하지만, 제가 없으면, 이 분들이랑 여러분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몇몇 젊은이들, 피식 웃는다.
정림
그렇다고, 제가 야구에 문외한인 것도 아닙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클럽활동을 했었지요.
서양에서는 여자들도 운동을 즐긴답니다.
맨 뒷줄의 광태, 정림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어디서 봤더라?'하는 표정으로.
이때, 건물 뒤쪽 담으로부터 포물선을 그리며 예의 돼지오줌보 축구공이 날아와서,
통통거리며 굴러온다.
모여있던 선수들과 정림, 선교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축구공에 집중된다.
건물 뒤편으로부터, 이제 '익숙해진' 탐색 동작을 하며 모습을 드러낸 이는 호창.
호창을 바라보는 정림, 선교사, 선수들의 표정.
호창, 예상못한 상황에 벙 찐 표정이다.
정림
(피식 웃으며)
베이스볼팀은 정문으로 출입하십시오!
쪽팔린 호창의 표정.
대충 상황을 파악한 호창, 고개를 숙인 채 쪼르르 선수들 틈으로 와서 광태의 옆에 선다.
광태
이제 생각났다!
호창
(얼떨결에)
뭐가?
광태
저 처자...
호창
저 처자가 왜?
광태
시종무관 민영환 어른의 딸이다.
호창
민영환?
광태
아마 조선에서 세계여행을 가장 많이 다닌 사람일 거다.
참, 그러고보니 여기 YMCA 설립에도 많이 관여하신 어른이지, 그분이.
호창
그래?
호창, 다시 한번 정림을 본다.
14. 실외, 공터, 낮 - 야구 연습 몽타쥬 -
1) 10여명의 청년들이 2인 1조로 캐치볼을 한다.
호창과 병환이 맨손으로 공을 주고 받고 있다.
호창, 기를 쓰고 세게 던지면, 병환은 더 세게 던지는 식이다.
호창과 병환의 손바닥이 모두 벌겋게 부어올라있다.
CUT TO
깁스 하듯 헝겊으로 손바닥을 둘둘 감는 호창. (원시적 글러브의 탄생!)
호창이 공을 던지면, 짚신처럼, 짚으로 만들어진 글러브 아닌 글러브로 병환이 공을 받는다.
그 공을 병환이 던지면, 이젠 보다 '진화'된 헝겊 글러브로 호창이 공을 잡는다.
2) 성한, 곡괭이를 하나 들고 와서, 머리부분을 빼내느라 힘을 쓴다.
곡괭이 자루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 성한.
재철이 공을 던진다.
질레트
(오른 손을 올리며)
STRIKE!
선수들, 일제히 정림을 바라본다.
정림
(이해못하는 선수들의 표정을 보고)
그게, 스트라이크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곰곰히 생각하다가)
우리말로 해도 스트라이큽니다.
... 프랑스가 우리말로도 프랑스인 것처럼 말입니다.
호창
외람된 말씀이오만, 프랑스는 우리말로 하면 법란서(法蘭西)이오.
법법, 난초란, 서쪽 서.
정림
(그런걸 꼭 따져야겠냐 싶은 표정으로 호창을 본다.)
그럼, 우리말로 ... 수투락이라고 합시다!
물 수(水), 아니 빼어날 수(秀)가 낫겠다...
던질 투(投)... 즐거울 락(樂)...
... 빼어나게 던지니 즐겁다!
정림, 나름대로 재치껏 대응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쑥스러워서 그런지 조금 과장되게 깔깔 웃는다.
CUT TO
포수 광태, 투수가 던진 공을 받지 못하고 얼굴에 맞는다.
정림
秀投樂 !
팅팅 부은 광태의 얼굴에 하회탈이 씌워진다.
3) 성한, 짤막한 빨래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다.
뒷뜰에 대충 1,2,3루를 돌로 만들어 놓고, 수비 위치에 몇몇 젊은이들이 나가 있다.
성한, 오른쪽(1루)이 아닌 왼쪽(3루)으로 달려간다.
정림
거긴 3룹니다. 1루는 오른쪽입니다!
4) 호창, 화선지에 붓으로 글을 써내려가고, 선수들은 '야 명필이다!' 하며 구경한다.
화선지에 쓰인 문구는, < 朝鮮 베이스볼의 搖籃 조선 베이스볼의 요람> 이다.
5) 성한, 커다란 절구공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다.
호창이 공을 들고 주자 은을 쫓고 있다.
정림
그렇습니다, 공으로 주자를 타치하면 아웃이 됩니다!
하며 바라보던 정림, 한숨을 쉰다.
은, 2루베이스를 지나서 외야로 달아나버리고, 호창은 기를 쓰고 끝까지 쫓아간다.
카메라, 조금 이동하면, 공터 입구에 호창의 필체 그대로 < 朝鮮 野球의 搖籃>
라고 새겨진고, 그 아래 각 선수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나무팻말이 땅에 박혀있다.
15. 실내, 종로거리 위의 전차 안, 낮
1900년대 초의 개방형 전차 안.
사람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밖으로는 종로거리의 풍경이 보여진다.
서양식 옷 차림에 짧게 머리를 깎은 승객들이 간간이 보이고,
갓을 쓰고 도포를 걸친 50대 남자 2명이 나란히 앉아 있다.
가만 보면 그 중 한 명은 호창부다.
호창부, 전차가 그리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기둥을 꼭 붙들고 있다.
50대 선비
어떤가? 지금도 어지러운가?
호창부
(무뚝뚝하게)
내가 언제 어지럽댔었나?
호창부, 태연한척하며 창밖을 본다.
종로 거리 한 켠에서 맨 손으로 어린 아이들 3명이 야구를 하고 있다. (던지고 받고, 치고, 하는 약식의)
호창부
저건 또 뭐 하는 짓들인가?
청량리에서 여기 오는 동안 저런 걸 벌써 몇 번 보네.
50대 선비
어디... 아, 저거... 요새 젊은 아이들이 저걸 많이 하더라고...
빼..스볼 인가 뭔가?
요새 웬만한 신식학교들은 다 저걸 한다는구만!
호창부
(쯧쯧거리며)
쌍것들....!
서양식 차림의 단발의 사내, 호창부 말에 슬쩍 돌아 본다.
16. 실외, 넓은 평지, 낮
무명저고리에 무명바지, 짚신을 신은 양팀 선수들.
자막: 1905년 10월, 황성 YMCA : 덕어학교 대한제국 최초의 야구시합
YMCA 선수들이 정림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여있다.
정림
우린 최초일 뿐 아니라, 최강의 베이스볼팀입니다!
정림, 선수들을 향해 손등을 위로 한 채 손을 내민다.
선수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다가, 광태가 먼저 정림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자 이내 차례로 손을 얹는다.
마지막으로 남은 호창, 잠시 가만 있다가 손을 맨 아래로 집어넣어 정림의 손 아래에 놓는다.
부감으로, 선수들과 정림의 모인 손이 펴지며
선수들
최초, 최강 와이엠씨에이, 야!
1번타자, 쌍둥이형 타석에 들어선다.
포수
야, 꼬마야, 젖은 떼고 온거냐?
투수가 던진 공을 쌍둥이형이 잽싸게 휘둘러서 안타를 만들어버린다.
2번타자, 쌍둥이 동생이 타석에 들어선다.
포수, 쌍둥이동생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포수
너 방금 치지 않았었냐?
3번타자 성한, 말끔하게 깎인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다.
포수, 성한의 방망이를 부러운 듯 본다.
호창, 방망이를 들고 타석으로 나가려다가 정림에게
호창
나 4번 하기 싫소. 재수 없소, 죽을 死.
정림
가장 잘 치는 이가 4번을 맡는 겁니다.
호창
(주먹을 불끈 쥐며)
선비 士...!
헝겊과 대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과도적 단계의 보호마스크를 쓴 채 포수 광태의 모습.
3루수 성한, 땅볼 타구를 잡아서, 1루로 던진다.
1루수 병환, 공을 던지는 성한을 보고는 떫은 표정이 되어,
공을 받지 않고 흘려보내고, 공은 뒤로 빠진다.
정림, 어이없어 한다.
병환
(불쾌한듯)
상놈이 던진 공을 양반이 어떻게 받아?
한숨을 내쉬던 정림, 뭔가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다.
성한과 병환의 수비위치가 바뀌어있다. (성한 1루수, 병환 3루수)
병환, 타구를 잡아서 1루수 성한에게 건방지게 던지고 성한은 두 손으로 공손히(?) 받는다.
떫떠름하게 웃는 정림.
그 위로 자막. < YMCA 12 : 3 덕어학교 >
영어학교 주자, 런다운에 걸려서 2루수 쌍둥이형과 유격수 쌍둥이동생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쌍둥이형과 쌍둥이동생, 주자를 토끼 잡듯 요리저리 쫓는다.
이리 가나 저리가나 똑같은 얼굴에 헷갈려 하던 주자, 지쳐서 주저앉아버린다.
그 위로 자막. < YMCA 8 : 5 영어학교 >
재철, 우익수 앞 깨끗한 안타를 쳐내고 1루를 향해 양반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배재학당 우익수, 재철이 천천히 걷는 것을 보고 1루에 공을 던진다.
반쯤 걸어가던 재철, 황급히 달려서 겨우 세잎된다.
그 위로 자막. < YMCA 5 : 0 배재학당 >
호창이 힘차게 방망이를 휘두르고, 까마득하게 날아간 공은 황성신문으로 변하여
화면을 향해 날아든다.
황성신문 기사 인서트 < 황성 기독교 청년회 베이스볼팀 연전연승>
17. 실내, Y 회관 교실, 낮
앞씬의 황성신문 인서트와 이어지는 느낌으로,
정림의 손에 들려있는 대한 매일신보 영문판 (The Korea Daily News) 의 기사.
< 황성 YMCA 베이스볼팀 인기 하늘을 찌를 듯 하다. >의 큰 제목 아래,
<Y 베이스볼팀을 이끄는 맹렬 신여성 민정림.> 이란 작은 기사 옆에 사진
대용의 캐리커쳐같은 정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정림, 유심히 자신의 캐리커쳐를 보면서 '이게 어딜 봐서 나야!' 라는 식의 표정을 짓는다.
18. 실내,Y회관 복도,낮
호창, 짚신을 양손에 들고 나무복도를 걸어온다.
교실 안에서 노래 소리가 들린다.
소리
원리틀, 투리틀, 쓰리리틀 인디안... 포리틀...
조심스럽게 교실 안을 바라보는 호창.
창 너머로 학동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정림의 모습이 호창의 시선으로 보인다.
호창, 정림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19. 실외, 종로거리. 낮
하늘을 가득 덮고 있는 시커먼 먹구름이 후두둑 비를 쏟아낸다.
쏟아지는 비에 전차와 전선 사이를 연결하는 트롤리에서는 간간이 불꽃이 인다.
거리 한쪽에는 비를 맞으며 일렬로 늘어선 일본군인들의 위협적인 모습.
몇몇 비모자를 쓴 채 지나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리에는 거의 인적이 드물다.
이때 물을 튀기며 종로거리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인력거.
INSERT
황성신문 1면의 장지연의 논설 <是日也放聲大哭>
20. 실내, 정림의 집, 밤
전통 한옥의 방이되, 서양식으로 인테리어된 퓨전분위기의 방.
벽에는 사진 액자 몇 개가 걸려있는데, 에펠탑을 비롯한 세계 각국 풍물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다.
사진 가운데 하나를 클로즈업으로 잡으면, 5년 전쯤의 정림과 민영환이 나란히 서 있고,
저 뒤쪽으로 우연히 앵글에 걸린 듯한 군복 입은 대현의 모습이 보인다.
책상에서 책을 읽고 있던 정림.
방 밖으로 들리는 빗소리 사이로, 마당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21. 실외, 정림의 집 마당, 밤
관복을 입은 민영환이 비를 맞으며 마당을 나선다.
대문 밖에 있던 인력거꾼이 다가와서 급히 민영환에게 우산을 씌운다.
조금 열린 방문 새로 그런 민영환의 모습을 바라보는 정림.
22. 실외, Y회관 복도, 해질녘
호창, 복도를 걸어다니며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마도 정림을 찾고 있는 듯하다.
호창은 길다란 원통 모양으로 둥그렇게 말린(가운데가 끈으로 묶인) 종이를 손에 들고 있다.
23. 실외, 민영환의 집 근처, 저녁
호창, 두리번거리며 골목으로부터 나타난다.
호창은 어딘지 모르게 들떠있다.
몇몇 사람들이 호창을 제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웅얼거리며 노래를 부르며 길을 가는 호창
호창
원리틀.. 투리틀... 쓰리리틀 인디안.... 포리틀...
순간, 험악한 표정으로 호창을 돌아보는 몇몇 사람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호창.
호창,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저만치 앞에 기와집이 보이고, 문 밖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호창, 점차 그쪽으로 다가가자, 집 안에서 통곡소리가 들려온다.
호창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집앞에 걸려있는 喪中임을 알리는 초롱.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운 호창의 표정.
24. 실외, 정림의 집 마당, 밤
수십명의 사람들이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거나 울분을 토하고 있다.
그 가운데, 호창이 멍하게 서 있다.
자막 < 1905년 11월 30일 민영환 비분자결>
저만치 소복을 입은 정림이 힘없이 앉아 있다.
호창, 정림 쪽으로 다가간다.
호창이 다 다가가기도 전에 정림이 고개를 든다.
정림, 뜻밖이라는 표정이다.
호창, 어정쩡하게 손을 든다.
정림, 무표정하게 혹은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호창,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는 듯하다.
그러던 호창,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 보면 정림의 시선은 호창으로부터 약간 비껴나있다.
정림의 충혈된 눈에서 발원한 시선은 호창을 비껴가서,
호창 뒤쪽에 서 있는 20대 남자에게 가서 꽂힌다.
호창, 돌아보면, 검은색 양복을 입은 20대 남자(대현)가 정림을 바라보고 서 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호창, 아까 올린 손을 아직 내리지 않고 있음을 깨닫고 이제야 내린다.
25. 실외, 민영환의 방 안, 밤
민영환의 영정 앞에 유품 전시되듯이 하얀 비단 위에 놓여있는 피묻은 단도 한 자루와 유서.
영정 옆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20대 남자가 상주노릇을 하고 있다.
민영환의 영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흐느끼는 대현.
상주와 맞절을 마친 대현이 밖으로 나오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호창, 방안으로 들어가며 슬쩍 대현을 바라본다.
26. 실외, 정림의 집 마당, 밤
정림, 조금 뭉클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올려다보고 있다.
정림의 앞에는 광태,병환,성한,재철,은 등의 Y 선수들이 빙그르 둘러서 있고,
가장 나이 어린 쌍둥이 형제가 정림의 손을 꼭 붙든 채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정림, 쌍둥이 형제의 손을 잡은 채 애써 눈물을 참는다.
호창, Y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온다.
광태
문상 함께 가자고 널 찾았었는데...
너 먼저 여기 와 있었구나!
호창
으응, 그렇게 됐다.
문득, 마당이 소란해져서, 돌아보면,
일본관료 제복을 입은 50대 남자(호시노)와 대한제국 관복을 입은 50대 남자(광태부)를
상주와 정림모가 막아서고 있다.
광태, 광태부의 모습을 보고, 반가움과 동시에 떫떠름해진다.
상주
(냉랭하게)
문상을 거절하겠습니다.
광태부
(호시노를 가리키며 난처한 표정으로)
이 분은 대일본제국을 대표해서 공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오셨소이다.
소복을 입은 40대 여인(정림모)가 다가와서
정림모
(노기 가득한 표정)
누가 뭘 애도한단 말이시오? 이곳이 어딘 줄 아시오?
정림
어머니!
정림모
(광태부를 쏘아보며)
더러운 변절자!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광태부, 떫떠름한 표정의 호시노.
주위에 있던 문상객들이 포위하듯 호시노와 광태부를 둘러싼다.
이때 위협을 감지한 듯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10여명의 무장 일본군들.
주위의 문상객들, 일본군의 위압적인 자세에 움찔하며 뒤로 물러난다.
어수선해진 상가.
여전히 영정이 있는 방 안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호창, 그저 그런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호시노, 일본군 지휘관에게 물러서라는 신호를 하고,
지휘관의 손짓에 따라 일본군들은 뒤로 물러선다.
호시노, 냉소적인 표정을 하고 문밖으로 나간다.
뒤이어, 광태부, 일본군들도 따라나간다.
광태부가 광태 앞을 지나칠 때,
광태
아버지..!
광태부, 광태를 보지만, 쓴 웃음을 한번 지은 후, 지나친다.
문밖으로 나가는 호시노와 광태부를 차갑게 노려보는 정림의 얼굴. - 고속촬영
호창, 대문을 나서기 전, 정림을 한번 본다.
정림은 호창이 바라보는 것을 모르는지, 호창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슬픔을 억제하며 입술을 굳게 다문 정림의 얼굴.
눈이 심하게 충혈된 40대 남자가 마루 위에서 마당의 사람들을 향해 외친다.
충혈남
민공이 비분 자결을 하시면서 우리 동포들에게 남기신 말씀을
여러분 앞에 읽어보이겠수다. 경청해주시오!
충혈남, 둘둘말린 종이를 펴고 목청을 가다듬는다.
호창은 무심코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충혈남을 본다.
충혈남, 목이 메인 듯 몇번을 멈칫했다가...
충혈남
(떨리는 목소리로)
대나무 숲에 앉아 바람 이는 소리 듣는 중에
나도 모르는 새 도둑이 다녀갔네.
바닥에 앉아 듣는 충혈남2가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이 도둑놈들!" 하고 울부짖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 역시 절로 충혈돼 간다.
충혈남
내 마음을 훔쳐간 도둑,
내 잠을 훔쳐간 도둑
호창,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사람들 대부분은 충혈남이 읇는 내용과는 상관 없이 비분에 젖어있고,
호창만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다.
호창, 당황한 표정으로 소매 안을 뒤진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호창, 얼굴이 사색이 된다.
충혈남
차라리 내게 남아있는 그리움마저 훔쳐가주오.
멀쩡한 사람 잠못들게 만든 그대, 마음의 도둑이여!
이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끼지만, 도리없이 계속 격정적인 목소리로 읽는 충혈남,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통곡하는 사람들,
사태가 잘못된 것을 알지만 미처 저지하지 못하는 호창...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조하듯, 이제야 구름 사이로 얼굴을 들이민 그믐달...
등이 모두 한 프레임에 롱샷으로 '수묵화처럼' 잡힌다.
27. 실외, 한강, 낮
얼어붙은 한강 위에 몇몇은 두툼한 솜옷을 입은 장정들이 얼음을 자르고,
몇몇은 우마차로 자른 얼음을 나르고 있다. 강바닥 위로 부는 매서운 바람.
28. 실외, 마을 어귀, 낮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 호창과 호창부가 나란히 앉아 있다.
호창부, 마을 풍경을 보면서,
호창부
올 겨울에도 학 한 마리 못 보고 지나가는구나!
원래 명륜동 선비골이 겨울이면, 학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했었는데...
몇 해 전부터 자취를 감췄으니...
이 땅에 변절한 선비들이 많은 탓이 아닌가 싶다.
호창
......
호창부
(기다렸던 얘기를 꺼내듯)
그래, 내 얘기는 생각해 보았냐?
호창
(난처한 표정이 되며)
... 아버님, 그 문제에 대해선... 심사숙고...를
해봤... 어야 했는데.... 못했고...
좀더 심사숙고가 필요한 듯 싶습니다.
... 죄송합니다, 아버지. 제가 아직 마음을 못 정했습니다.
호창과 호창부, 멍하니 앞을 바라본 채 한참동안 아무말도 없다.
호창부
네 형은 이렇게 추운데, 옷이나 제대로 껴입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호창, 씁쓸해진다.
호창
(뜬금없이)
아버지, 저기 학이 있습니다.
호창부, 호창이 가리킨 곳을 보다가
호창부
저건 오리 아니냐 이눔아.
호창
오리치고는 다리가 너무 깁니다.
호창부
(한심하다는 표정)
그럼, 저 부리는 뭐냐?
호창
(떫어지며)
음, 부리를 보니까 아닌 걸 알겠습니다.
썰렁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부자.
29. 실내, Y 회관 교실 안, 낮
거울에 비친, 유니폼 입은 호창의 모습.
유니폼은 하얀 광목으로 펑퍼짐하게 만들어져있고, 가슴에 YMCA라고 박혀있다.
기분 좋은 표정의 호창.
30. 실외, Y 회관 복도, 낮
호창, 유니폼 각을 잡으며 교실로부터 나오다가, 문득 멈춰선다.
걸어가던 정림이 멈춘다.
정림은 짧아진 머리를 비롯해서 예전과는 다른 느낌을 풍긴다.
( 화장기도 많이 없어지고, 약간의 공주풍 의상도, 단아한 차림으로 바뀌었다.)
호창, 정림의 바뀐 모습을 보고 잠시 아무말을 하지 못한다.
정림
잘... 지냈습니까? 호창군..!
호창
네, 잘 지내셨습니까, 정림양?
목인사를 하며 지나쳐가는 정림의 뒷모습을 보며,
호창은 왠지 모를 거리감 같은 걸 느낀다.
31. 실외, Y회관 뜰, 낮
Y회관 뜰에 예쁘게 피어있는 동백꽃.
선수들, 유니폼을 입고 Y회관 앞으로 모인다.
선수들, 기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카메라, 유니폼 입은 선수들을 훑는 동안,
재철 (소리)
야, 같은 옷을 입혀놓으니까 더 구분하기 힘들다야.
선수들 웃음 소리.
유니폼 상의만 걸친 정림이 유니폼을 입은 대현을 대동하고 나타난다.
선수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대현을 보고, 대현을 알아본 호창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대현을 본다.
정림은 예전의 모습과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보인다.
정림
신입단원을 소개하겠습니다. 오대현 군입니다.
동경 유학 시절, 베이스볼을 했었답니다.
대현, 선수들 쪽으로 다가오며
대현
Y 베이스볼팀이 아직껏 한번도 진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호창, 달갑지 않은 표정.
유니폼 입은 선수들, Y회관 건물 앞에 사진 촬영 대형으로 모인다
선수들과 정림, 외국인 선교사들이 포함돼 있다..
사진사, 선수들에게 옆으로 조금 움직이라는 손짓을 한다.
선수들 게걸음으로 옆으로 몇 걸음 움직인다.
사진사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소리와 함께 흑백 사진화면으로 변한다.
사진 우측 하단에 '1906년 봄, Y 베이스볼팀'이라는 글씨가 박힌다.
32. 실외, 호창의 집, 해질녘
호창부, 마당에 나와서 거닐어본다.
앞마당에는 빨래들이 줄줄이 걸려있다.
호창부, 집 뒤쪽으로 걸어가서 대나무숲을 바라본다.
대나무숲을 바라보던 호창부, 문득 집 뒤쪽으로 시선이 가면,
대나무숲과 별채 사이의 좁은 공간에 빨래줄이 묶여있고, 하얀 YMCA 유니폼이 걸려있다.
호창부의 의아한 표정.
33. 실내, Y회관 강당, 저녁
<YMCA 베이스볼팀 후원의 밤>이라는 현수막이 강당 벽에 붙어있다.
100여명의 청중들이 모여있다.
강단은 초등학교 학예회 같은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10살 정도의 어린이들 20명 정도로 구성된 합창단(하얀 저고리에 검정치마 입은 여자아이들,
아래위로 하얀 무명옷을 입은 남자아이들)이 올라온다. 그중에는 영희도 껴 있다.
정림이 피아노 전주를 시작한다.
남자아이1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셔요.
넌 자라면, 꼭 장군 되거라고...
남자아이2
하지만 아버지는 내 마음 모르셔요.
내가 되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여자아이1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셔요.
넌 자라면, 정경 부인 되거라고...
영희
어머니, 정경 부인이 별건가요?
내가 시집가고싶은 이는 따로 있는데...
남자아이들
내가 되고 싶은 건...
여자아이들
내가 시집가고 싶은 이들은...
합창단 뒤의 커튼이 서서히 올라가면서 YMCA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청중들, 환호하기 시작한다.
남녀 아이들 합창
와이 엠 씨 에이 빼스볼 팀~~
아이들 합창단은 퇴장하고,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선수들이 앞으로 나온다.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맨 30대 중반 남자(하일송)이 사회자인양 올라와서,
하일송
여러분, 제국 최강 빼스볼팀 황성YMCA 빼스볼팀원들을
열렬히 환영해주시기 바라오!
우레와 같은 박수.
선수들, 청중들에게 인사를 한다.
하일송
우리 황성시민들의 염원을 담아 준비한 선물 증정식이 있겠수다!
커다란 보따리가 풀리면서 나타난 것은 9개의 가죽 글러브.
Y 선수들, 각기 하나씩 손에 끼어보며 기쁜 표정이다.
하일송
황성에서 제일 알아주는 갓바치들이
몇날 며칠을 고생해서 만든 것이외다!
광태가 나서서,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서 흔들며
광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청중1
(불쑥)
그렇게 고마우면, 말로만 그러지 말고,
노래 한 자리 하쇼!
청중2
옳소! Y 선수들의 노래 한 곡 들어봅시다!
청중들 박수를 친다.
Y 선수들, 돌발 상황에 곤란한 표정들이다.
정림이 해결사처럼 Y 선수들에게 다가온다.
CUT TO
얼굴을 글러브로 가린 9명의 Y 선수들이 합창 대형으로 늘어서 있다.
피아노 전주 소리 들린다.
<열꼬마 인디언>의 멜로디에 맞춰서.
쌍둥이형
(글러브를 내려 얼굴을 드러내며)
한 청년,
쌍둥이동생
(글러브 내리며)
두 청년,
광태
(글러브 내리며)
세 청년 모였네.
병환
(글러브 내리며)
네 청년,
재철
(글러브 내리며)
다섯 청년,
대현
(글러브 내리며)
여섯 청년 모였네.
은
(글러브 내리며)
일곱 청년,
성한
(글러브 내리며)
여덟 청년,
호창
(글러브 내리며)
아홉 청년 모였네.
Y 선수 전원
빼~스볼 합~~시~~다~~
청중 사이엔 썰렁한 정적이 흐른다. Y 선수들, 청중들의 정적에 멈칫하다가 이내,
Y 선수 전원
(글러브를 낀 손을 활짝 펼치며)
빼~스볼~ 합~시~다~~~
(마지막 음을 올린다.)
34. 실외, Y회관 뜰, 저녁
앞씬의 축제 분위기를 이어받듯... 잔디 위에 모여있는 사람들.
서양식 가든파티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선식 동네잔치도 아닌 이상한 퓨전 분위기.
한쪽에는 장구를 치는 사람 주위로 동네 사람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춤을 추고 있고,
한쪽에는 대현이 하모니카를 불고 있고, Y 선수들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어울려있다.
꼬마아이들과 어울려 야구를 하고 있는 야구단의 최연장자 은과 성한도 보인다.
그런 광경을 뒤로 한 채, 호창과 정림, 돌턱에 앉아있다.
호창
애팰...머시기?
정림
에펠 타워. 그러니까 일종의 탑입니다.
호창
탑이라, 그럼, 다보탑 보다 높소?
정림
(웃으며)
모르긴해도 다보탑이나 석가탑보다
(눈을 치켜세우며 머릿속으로 그려보다가)
... 서른 배쯤은 높을 겁니다.
호창
다보탑의 서른 배라...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다가)
거짓말 마시오. 내가 조선땅에만 있었다고 무시하는 거요?
깔깔 웃음을 터뜨리는 정림의 얼굴로부터
디졸브.
정림
형님이 계십니까?
호창
사실... 내 형님이 의병장이오.
...지금은 소식이 끊겼지만...
정림
...... 호창군 형님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이 나라가 빨리 정리정돈이 돼야겠습니다.
호창
정림양 아버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래야겠지요.
35. 실외, 밤 거리, 밤
호창이 노란 연등을 들고, 정림과 함께 걷고 있다.
호창
난 어렸을 적 꿈을 이룰수가 없게 됐소.
정림
왜 그런지요?
호창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오.
정림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거라면...
호창
(정림이 생각할 여유를 잠시 준 후)
암행어사...
정림
암행어사?
호창
(웃으며)
사실, 글공부를 그렇게 좋아했던 건 아닌데,
암행어사 되겠다는 일념으로 과거준비 열심히 했었소.
근데, 과거가 없어져버리니... 황당합디다.
정림
(반갑게)
저희 외삼촌이 암행어사셨답니다.
호창
에이, 거짓말 하지 마시오.
정림
진짭니다, 조선의 마지막 암행어사셨답니다.
존함이 이씨 면짜 상짜 되십니다.
호창
(놀라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정말 이면상 어사님이 외삼촌 되시오?
정림
속고만 살았습니까? 정말입니다.
이때, 옆 골목에서 호각 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호창,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한 표정으로, 소리나는 쪽을 한번 봤다가 돌이킨다.
정림,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변하며 소리나는 쪽을 바라본다.
36. 실외, 광태의 집, 밤
일본식으로 지어진 집 외경.
37. 실내, 거실, 밤
현관문이 열리고, 광태가 들어온다.
광태, 발소리를 죽여서 불꺼진 거실을 걸어간다.
거실 창문이 열려있고, 바람이 불어와 커튼이 날린다.
광태, 창가로 가서, 창문을 닫는다.
광태, 2층으로 올라가려다가 문득 안방 문 틈새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본다.
안에서 무슨 대화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궁금한 표정의 광태.
38. 실내, 광태부의 방, 밤
잠옷을 입은 광태부와 복면을 쓴 사내가 대치해있다.
광태부
난 흔히 말하는 을사오적에 끼진 않는데, 네놈들의 정체가 뭐냐?
복면 사내
어찌 을사오적 다섯 놈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겠냐?
을사오적단이 응징못하는 이들은 우리가 처리한다!
광태부
(침착하게 냉소적으로)
그럼, 을사오십적단 쯤 되냐?
복면사내
그렇잖아도 우리 조직의 이름이 없던 차였는데,
이름까지 지어줘서 고맙군... 을사오십적단...
광태부
...... 너희가 하는 일들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겠지?
그 길만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테고...
얘기하는 동안 벽쪽으로 조금씩 물러서고 있던 광태부, 벽에 걸린 장도(長刀)를 슬쩍 의식한다.
광태부, 순식간에 장도에 손이 가는 순간, 잽싸게 광태부에게 달려드는 복면사내.
복면사내와 광태부,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 협탁이 와당탕 하고 넘어진다.
복면사내, 광태부를 넘어뜨려놓고, 칼집에서 칼을 뺀다.
복면사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해서거나,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너 같은 놈 보기 싫어서 그렇다.
복면 사내, 칼을 들어서 내리치려는 순간.
광태(소리)
아버지!
문을 열고 달려든 광태가 야구방망이로 복면사내를 내리치지만, 스친다.
광태부는 얼른 일어나서, 주전자를 들어 유리창으로 내던져 깨뜨린다.
야구방망이를 든 광태를 가격하려다가 문득 움찔하는 복면 사내.
복면사내가 움찔하는 틈을 타서 광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복면 사내, 이번엔 피하지 못하고 오른 쪽 어깨에 맞는다.
복면사내, 고통스러워하면서, 광태의 복부를 강타한다.
광태, 쓰러지면서 복면사내를 붙잡는다.
복면사내, 광태를 발길질한다.
복면사내, 다시 광태부를 향해 칼을 겨누다가 문득 멈칫한다.
집 밖에서 호각 소리가 나고, 현관에서 나는 군인들 소리.
복면 사내, 재빨리 창밖으로 달아난다.
쓰러져있던 광태가 안간힘을 쓰며 복면사내를 붙들고, 복면사내는 뿌리치며 달아난다.
복면 사내, 집 밖으로 달아난다.
39. 실외, 공터, 낮
Y 선수들, 장비를 들고 걸어간다.
호창
아버님은 괜찮으시냐?
광태
타박상만 좀 입으셨다.
호창
천만다행이구나!
늘상 야구를 하던 그 공터에 다다른 Y 선수들의 표정이 변한다.
공터에는 일본군들 1개 소대 정도가 대기하고 있고, 공터 주위에 말뚝을 박아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인부들이 보이고, 또 저 멀리서는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병환
(놀라며)
이게 뭐야?
성한
이것들이 우리 자리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이여?
일본군들이 Y 선수단을 보고, 뭐라뭐라 하고, 그중 하나는 건방진 손짓으로 가라는 신호를 한다.
영문을 모르는 Y 선수들, 그 자리에 가만 있다.
일본군1이 Y 선수들 쪽으로 다가와서는
일본군1
(일) 여기서 뭣들 하는거냐?
여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다.
ここでなにをしている.
ここは,一般人の出入りは禁止されているんだぞ.일본군1
호창
뭐라는 거냐?
뒤늦게 나타난 대현이 나서서
대현
(일) 우리는 YMCA 소속 야구부원들이고,
이곳은 YMCA 학생들이 운동을 하는 곳이다.
당신들이야말로 여기서 뭐하는 거냐?
私たちはYMCA所屬の野球部員で,
ここはYMCAの學生が運動するところです.
あなた達こそ,ここで何をしているんですか.
일본군1
(일) 이곳은 우리 일본군들의 훈련원이 들어설 자리다.
ここは,われわれ日本軍の訓練所が建てられるところだ.
대현
(일) 관청의 허락은 받았는가?
우리는 관청의 허락하에 이곳에서 운동을 해왔다.
お役所の許可は受けたんですか.
私たちは役所の許可を受けて,ここで運動してきたんですよ.
일본군1
(일) 네가 얘기하는 관청이 어디인줄은 모르겠다만,
우리는 통감부의 승인을 받고 공사를 시작했다.
지금 이 나라에 통감부보다 높은 관청이 있느냐?
お前の言う役所がどこだかは知らないが,
われわれは統監部の承認を得て工事をはじめた.
今この國に,統監部より上の役所があるのか.
대현
......
병환
(답답한 듯)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요?
여긴 예전부터 우리가 운동했던 곳이니, 그냥 하면 되지않아?
병환, 선수들을 선동해서 공터 쪽으로 나아가려한다.
일본군들이 몇 명 더 몰려와서, 병환을 비롯한 선수들을 막아선다.
선수들과 일본군들간의 팽팽한 대치.
이때, 쌍둥이 동생이 갖고있던 야구공이 떨어져서 공터 쪽으로 굴러가고,
쌍둥이 동생은 무심결에 그쪽으로 걸어간다. 일본군2가 냅다 쌍둥이 동생을 걷어차고,
쌍둥이 동생은 그대로 바닥에 넘어진다.
쌍둥이 형
번칠아!
쌍둥이형이 쌍둥이 동생에게 다가가려하자, 일본군3이 막아선다.
은이 욱하고 달려가서, 일본군3의 얼굴을 가격한다.
일본군4,5,6이 달려가서 은을 제압한다.
일본군들에게 막혀있는 다른 선수들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아무런 대응도 하지못하고, 바라볼 수 밖에 없는 Y 선수들의 표정.
입술을 질끈 깨무는 호창.
말을 탄 일본군 장교복장의 20대 남자(다츠나미)가 이쪽으로 온다.
일본군1이 다츠나미에게 가서 뭐라뭐라 얘기를 한다.
일본군들, 쌍둥이 동생과 은을 그제야 놓아준다.
다츠나미
(일) 이곳은 앞으로, 우리 조선 주둔 일본군들의 훈련장으로 사용되게 된
다. 야구를 하려거든 다른 장소를 찾아보기 바란다.
ここは今から,われわれ朝鮮駐屯日本軍の訓練場として使用することになった.
野球をするんなら,他の場所を探すように.
대현, 다츠나미를 바라본다.
다츠나미 역시 대현을 바라보더니, 표정이 변하며
다츠나미
(일) 오따로?
おたろ.?
대현
...!!!
다츠나미
(일) 너를 여기서 다시 보게되다니...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는 들었다만, 여기서 재회하게 될줄은 몰랐다.
おまえとここでまた會えるとは .
朝鮮に歸ったという話は聞いたが,
ここで會えるとは思わなかった.
대현
(일) 나도 너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 너는 야구복보다 군복이 더 잘 어울리는구나.
お前は野球服より軍服がよく似合うんだなあ.
다츠나미
(피식 웃으며)
(일) 황성YMCA 가 조선 최강의 야구단이라더니,
오따로 네가 있어서 그런 모양이구나.
아직도 그 강속구는 여전한가?
皇城YMCAが朝鮮最强のや球團だそうじゃないか.
おたろ.お前がいるからそうなんだな.
あの快速球はまだ健在か.
대현
......
다츠나미
(일) ... 훈련원이 완공되면, 우리 클럽팀이랑 시합 한번 하는 건 어떠냐?
이 곳의 옛 주인과 새 주인의 대결... 그럴 듯 하지 않나?
나 개인적으로는 동경에서 너에게 패한 걸 갚아주고 싶고...
訓練所が完成したら,我 のクラブチ-ムと一度試合をしてみないか.
ここの舊主人と新主人の對決.そんなことになるかな.
おれとしては,東京でお前に負けた借りを返したいし .
대현, 대답하지 않고 씁쓸하게 웃으며 돌아선다.
축 처진 어깨를 한 채 공터를 빠져나가는 Y 선수들.
몇 걸음 가다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일제히 멈춰선다.
땅바닥에 반으로 부러진 채 놓여있는 예의 나무팻말.
('조선 베이스볼의 요람' , 그리고 선수들 개인의 이름들이 새겨져있는)
호창, 부러진 나무팻말을 주워든다.
Y 선수들, 공터 쪽을 돌아본다.
화면의 양 끝에 위치한 채 마주보고 있는 Y 선수들과 일본군들.
화면이 반으로 나뉘어, 호창과 대현의 얼굴이 왼쪽에, 다츠나미의 얼굴이 오른 쪽에 위치한다.
( TV 야구중계 예고 화면 처럼)
40. 실외, 운동장, 낮
(이씬은 상당 부분 TV 야구 중계방송 화면의 앵글과 구성을 차용할 것임.)
앞 씬의 공사가 완료되어, 공터 외곽에 철망이 빙 둘러져 있고,
저 끝에 초소 비슷한 목조 건물이 한 채 서 있다.
호창의 시야로 보이는, 나란히 서 있는 정림과 대현이 은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정림은 뭔가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호창, 두사람의 모습을 보자, 괜히 기분이 다운된다.
대현과 다츠나미가 홈플레이트 앞에서 악수를 하며 팽팽한 눈빛을 교환한다.
다츠나미
(일) 조선 최강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볼까?
朝鮮最强の實力がどの程度かみてみるか.
호창
우린 져 본적이 없다!
호창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비해, 대현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모습.
호창의 시야로 보이는 관중들.
다른 경기보다 2배 이상 많은 100여명의 관중들이 운동장 주변에 모여있다.
Y 선수들, 파이팅을 힘차게 외친다.
광태, 안타를 때려낸다.
병환
별 것 아니네!
화면 우측 하단에는 야구중계방송의 그것처럼, 다이아몬드가 표시되고, 1루에 주자가 있음을 알려준다.
멋있게 방망이를 휘두르며, 타석에 들어서는 호창.
최고타자의 자존심과 권위가 깃든 폼으로 걸어온다.
그런데, 호창의 표정이 갑자기 똥씹은 표정이 된다.
1루쪽 관중들 틈에서 고개를 기웃기웃하고 있는 갓쓰고 도포 입은 호창부.
호창, 오른 쪽 타석에 들어서면, 호창부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호창, 갑자기 호창부를 등지고 왼쪽 타석에 들어선다.
정림을 비롯한 선수들,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다.
일본투수가 공을 던지고, 비록 왼쪽 타석에 들어섰지만, 호창, 재주껏 공을 때려낸다.
호창, 1루를 향해 달려가는데, 오른 손을 의식적으로 높이 쳐올려서 얼굴을 가리며 달린다.
호창부, 그렇게 요란스런 동작을 하는 호창을 갸우뚱하며 바라본다.
투수로 마운드에 대현, 어깨가 시원치 않은지 어깨를 빙빙 돌려본다.
정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대현을 바라본다.
공을 던지는 대현. 바로 받아치는 일본 타자. 안타를 친다.
또다른 타자가 가볍게 공을 쳐낸다.
호창, 플라이볼을 잡기 위해 다가온다.
갑자기 호창의 시야로, 관중들 가운데, 호창부의 모습이 포커스인된다.
호창, 얼굴 노출을 방지하기위해 고개를 숙이며 글러브를 내밀고,
그 바람에 뜻하지 않게 덤블링 비슷하게 만세를 부르고 공은 뒤로 빠진다.
화면 상단에 일장기와 구식 태극기(세로로 된)가 CG로 보여지고, 2:0의 점수가 표시된다.
Y 주자가 1,2,3루에 꽉 차있고, 호창이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려한다.
호창, 조심스럽게 관중들 사이를 보면, 호창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희색을 띤 호창, 방망이를 힘차게 휘두르며 오른쪽 타석에 들어선다.
호창
니들은 이제 끝난 줄 알아라!
일본 투수, 강속구를 뿌리고, 호창의 방망이가 힘껏 돌아간다.
강하게 날아간 타구, 좌익선상 밖으로 떨어진다.
안타까워하는 관중들.
가슴을 쓸어내리며, 호창을 다시보는 일본투수.
일본투수, 이제까지와는 다른 폼으로 공을 뿌린다.
호창, 방망이를 휘두르고, 공은 호창의 바로 앞에서 휙 떨어진다.
허공을 가른 방망이, 호창의 손에서 빠져나가 저만치 가 떨어진다.
황망한 표정의 호창. 비웃는듯한 표정의 일본투수.
일본팀 공격. 화면 하단 다이아몬드, 1,2,3루가 모두 빨갛게 표시돼있다.
마운드의 대현, 아픈 표정으로 어깨를 매만진다.
타석에 들어선 다츠나미.
다츠나미
(일) 어째 오늘은 예전의 너답지 않구나!
どうした.今日は以前のお前らしくないぞ.
대현
(일) 그래도, 너 하나 쯤은 문제 없다!
だけど,お前は全く問題ないな.
다츠나미, 비웃는 듯한 미소를 대현에게 보낸다.
대현, 이를 악물고 공을 뿌린다.
다츠나미, 부드럽고 힘찬 스윙을 한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는 타구.
고개를 떨구는 대현. 한숨 쉬는 정림. 눈을 질끈 감는 호창.
실망하는 관중들의 표정과 탄식소리.
F.O.
41. 동장소, 경기 후
F.I.
관중들은 모두 사라졌고, Y 선수들만 남아있다.
몇몇 선수들은 허탈하게 바닥에 주저앉아있다.
저멀리, 일본 선수들이 짐을 챙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들 말이 없는 가운데, 성한이 일어서서,
성한
이러고 있으면 뭐합니까들, 일어섭시다.
성한, 쌍둥이 형제를 일으키며
성한
내 글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도, 이거 하난 알지요.
실패는 병가지상사!!
성한, 이제 쪼그리고 앉아있는 병환을 일으키려한다.
병환, 성한의 손길을 뿌리친다.
병환
(기분 나쁜듯)
내 몸에 손대지마, 감히 상놈 주제에...
성한, 한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성한
내 한 마디만 합시다, 도련... 정병환씨.
조선땅에 양반 상놈 구별이 없어진 게 언젠데,
아직껏 날 당신 머슴 취급하오?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병환.
병환, 말문이 막힌 듯 "에이씨!" 하며 저만치 가버린다.
아까보다 더 분위기 썰렁해진 선수들.
정림
이러지 말아요. 이러면 우린 한번 더 지는 거예요.
일본은 우리보다 30년 먼저 베이스볼을 시작했어요.
어쩌면 지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몰라요.
정림의 말도, 실망한 Y 선수들을 위로하지 못한다.
대현
내 잘못이오. 오늘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았소.
호창
아니오, 다 내 탓이오.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시는 바람에, 제대로 할 수가 없었소.
대현
내가 못 던져서 그렇소.
호창
내가 못 쳐서 그런 거라니까...
호창과 대현의 이상한 자존심 싸움...에 정림이 끼어든다.
정림
각각 못 치고, 못 던졌습니다, 이러면 됐습니까?
정림의 중재(?)를 받아들인 호창과 대현, 서로를 바라본 후, 정림과도 시선을 교환한다.
이어, Y 선수들 모두 무언의 시선이 교차되면서 어떤 공감대가 형성된다.
CUT TO
훈련원 내 목조건물 앞에 모여있는 일본 선수들을 향해, 대현이 달려온다.
대현, 다츠나미 앞에 서자 마자, 다짜고짜
대현
(일) 다음에 한 판 제대로 붙자. 진검 승부로...
次は一本勝負でいこう.眞劍勝負で.
다츠나미
(비아냥대듯)
(일) 오늘은 진검을 쓰지 않았단 얘긴가?
今日は眞劍を使わなかったっ手言うのか.
대현
(일) ...... 조만간 날짜를 잡아 연락하마.
ちっ會うちに日にちをきめて連絡しよう.
다츠나미
(일) 얼마든지...
그때 가서 또, 진검 승부 아니었다고 변명하지 마라!
いつでも.
その時になって,また,眞劍じゃなかったなどと言い譯するなよ.
대현,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승부욕에 불타는 표정.
42. 실외, Y회관 뜰, 낮
호창, 뜰에서 방망이를 휘두르며 타격연습을 하고 있다.
대현이 나타난다.
대현
자네 타격의 문제점이 뭔지 아오?
스윙을 멈추고 돌아보는 호창,
대현
내가 보기엔 자넨 성격이 너무 급하오. 방망이가 너무 빨리 나가오.
그러니까, 빠른 직구에는 강하지만 변화구에는 약할 수 밖에 없소.
호창
잘난 척 하지마시오.... 난 변화구는 치지 않소.
그건 변칙이오. 정정당당하지 못하오.
대현
변화구는 정당한 기술이오.
내 말 들으시오. 방망이가 나갈 때, 한 호흡만 쉬고 공을 보시오.
호창
(무시하고)
... 불란서에 다보탑보다 서른 배쯤 높은 탑이 있는 것 아오?
대현
(뚱딴지 같은 질문에 당황하다가)
... 에펠 탑 말이오?
호창, 실망스러운 표정이 된다.
혼자 뜰에 남은 호창, 계속해서 스윙연습을 한다.
호창, 대현의 가르침대로, 한템포 멈췄다 휘두르는 스윙을 몇번 해본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몸에 안 맞는지, 원래대로 막스윙을 한다.
그런 호창의 모습을 창가에서 지켜보고 있는 정림.
43. 실내, Y 회관 교실, 낮
천으로 둘러싸인 둥그런 물체가 정림의 손에 들려있다.
호창
뭣이오,이건?
정림, 둥그런 물체를 호창에게 건네며
정림
안에 뭐가 있는지 보십시오!
호창, 무심하게 받아들고, 천을 벗겨보면,
주머니 안에서 나온 것은 둥그런 모양의 노란 쇠붙이.
표면에 3마리의 말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마패(馬牌)다.
호창
(놀라며)
이...이건?
정림
이젠 믿겠습니까?
호창, 황당해하면서도, 신기한 표정으로 마패를 이리저리 돌려서 구경한다.
호창
정림양 말을 아예 안 믿었던 건 아닌데...
사람 무참하게 이게 뭣이오?
호창, 마패를 다시 정림에게 건넨다.
정림
아니예요. 호창군 가지십시오!
호창
뭐라 하셨소?
정림
외숙부님께 조르고 졸라서 얻어낸 겁니다.
호창
(짐짓 퉁명스러웠던 게 일순간에 풀리며)
정말이오?
정림
(웃으며)
또 못 믿으신다!
호창
그래도 그렇지... 이 귀한 걸...
정림
실은 마패를 2개 갖고 계시긴 했지만,
그래도 귀한 물건인건 사실입니다.
호창
(은근해지며)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오?
혹시...정표(情表)...
(슬쩍 정림의 표정을 보며)
... 는 아니겠지요?
정림, 긍정도 부정도 아닌 미소만 짓는다.
정림
일본과의 재대결에서 꼭 이겨주길 바라는 의미입니다.
호창, 기대했던 답이 아니라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정림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언뜻 비장한 표정이 되며,
호창
그걸 바란다면... 기꺼이...
(마패를 가슴에 대고)
... 마패를 걸고... 약속드리겠소.
호창과 정림,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호창
그거 아시오? 과거가 없어지면서 조선의 젊은 유생들이 얼마나
큰 허탈감에 빠져 살았는지...
나 역시 그랬소. 아무런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소.
... 그러다가 빼스볼을 만난 거요.
(중의적인 뉘앙스를 풍기며)
정림양은 내게... 목표를 갖고 살게 하였소.
그래서, 고맙소...
호창의 중의법을 알아차렸는지, 못했는지,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 정림.
44. 실외, Y회관 정문 앞, 낮
장비를 들고 나오는 Y 선수들.
손에 글러브를 낀 채 히히덕거리며 나오던 호창,
갑자기 온몸이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버린다.
도포에 갓을 쓴 호창부, 호창을 바라보고 있다.
눈앞이 캄캄한 호창의 표정.
광태 역시 분위기에 눌려 차마 인사도 못한다.
호창부의 표정은 분노라기보다는 허탈함에 가깝다.
45. 실외, 거리, 낮
호창부가 걸어가고 호창이 뒤따른다.
걸어가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않는 父子.
46. 실내, 호창부 방 안, 밤
호창부 앞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호창.
호창부
내가 아들 두 놈을 두고 바랐던 것은,
나보다 더 나은 문리가 트여서, 나보다 훨씬 더 학식있고 기품있는 선비
가 되어 우리 가문을 빛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놈은 의병이 되어 전국을 떠돌아다니고,
또 한놈은 듣도 보도 못한 쌍놈들 짓을 하고 다니고...
... 조상님들 뵐 낯이 없구나...
호창
아버지, 이런 말씀 드리기 외람되옵니다만,
제 비록 유생으로는 이름을 널리 알리지 못한 뜨내기 선비일 뿐이오나,
베이스볼 선수로서는 조선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듭니다.
유생으로 치면, 퇴계 이황 선생이나, 서애 류성룡 선생 급이라고 생각하
시면 됩... 웁~~~
호창의 얼굴에 쏟아지는 검정 바둑알들. 호창부가 바둑알통을 호창의 얼굴에 던져버린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검정 바둑알들을 줍던 호창, 고개를 들며
호창
아버님께서는 늘 모름지기 선비는 학처럼 고고하게 살아야하노라고
하시지만, 지금은 20세기입니다.
전차 타면 서울에서 인천까지 한시간이면 가는 세상입니다.
학처럼 살다가는 세상에 뒤처집니다.
제가 보기에 요새 황성에 학이 뜸한 것은, 금세기에는 학처럼 살아서는
힘들다는 일종의 자연의 계시가 아닌가...
이제 호창의 얼굴로 하얀 색 바둑알통이 날아든다.
호창부
여러말 할 것 없고, 나는 마음 정했다.
서당 문을 닫고, 낙향하겠다.
너 같이 발칙한 생각을 갖고 있는 놈한테, 한때나마
서당을 물려줄 생각을 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호창
아버지...
호창부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마라.
47. 실내, 광태의 집 거실, 낮
광태, 과일을 먹으며, 거실에서 야구공을 던졌다가 받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
야구공이 떨어져서 거실의 장식장 밑으로 들어간다.
엎드려서 손을 뻗어보는 광태.
야구공이 굴러나왔는데도, 광태는 손을 빼지 않는다. 뭔가 다른 게 잡히는 모양이다.
광태의 손이 빠지고, 먼지 쌓인 조그만 금속물체가 나온다.
하모니카다.
광태, 의아한 표정으로 하모니카를 바라보다가 이내 표정이 상기된다.
48. 실외, Y회관 공터, 낮
대현이 병환과 캐치볼을 하고 있고,
아까부터 그런 대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광태가 대현에게 다가온다.
광태
... 오랜만에 당신 하모니카 연주 한번 듣고 싶은데,
들려 줄 수 있소?
대현
하모니카를 잃어버렸소. 새로 장만하면, 들려주겠소.
광태
그래?
광태, 굳은 표정으로 어디론가 걸어가고, 대현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Y회관 담 밖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러개의 군화 소리가 강조되어 대현의 귀에 들린다.
대현,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상한 직감이 최고조에 다다른다.
병환이 던진 공을 일부러 놓치는 대현.
대현, 공을 줍기 위해 건물 뒷편으로 간다.
한동안 나오지 않는 대현.
병환
이봐, 오대현! 없으면 그냥 오시오, 여기 공 또 있소.
대현이 달아났음을 눈치챈 일본군들이 갑자기 Y회관 안으로 들이닥친다.
놀라는 병환과 Y 선수들.
49. 실외, 종로거리, 낮
행인들 가운데, 호창의 모습이 보인다.
반대쪽에서 빠른 속도로 인력거 한 대가 달려온다.
호창을 지나치는 인력거, 호창은 아무런 낌새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걸어간다.
저만치 가다가 멈춰서는 인력거.
인력거의 검은 천 틈 새로 카메라, 들어가면, 정림이 안에 있다.
정림,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돌아보지는 않는다.
다시 출발하는 인력거.
50. 실외, 종로거리, 낮
정림과 대현의 초상화가 그려진 수배전단이 붙어있는 벽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51. 실외, Y회관이 보이는 언덕, 낮
Y회관 정문이 굳게 닫혀있고, 일본군 몇이 앞에 서있다.
Y회관 담벼락에도 수배전단이 붙어있다.
정문 앞에서 쌍둥이 형제와 병환 등 몇몇 Y 선수단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다.
쌍둥이 동생
이젠 우리 어떻게 되는 거야, 형?
쌍둥이 형
네가 모르면 나도 모르는 거야.
재철
(병환에게)
우리 빼스볼팀 해체되는 건가?
병환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다, 그 두 사람!
정문에 기댄 채 아예 털썩 주저앉은 채 담배를 피우는 성한과 은.
슈퍼크레인 이동으로 카메라 쭉 빠져서, 언덕으로 이동하면,
호창과 광태가 쪼그리고 앉아서 폐쇄된 Y회관을 바라보고 있다.
한참동안 말이 없던 두 사람
광태
작년 겨울에, 민영환 어른 돌아가시고 나서,
겨울에 베이스볼팀 활동을 쉴 때, 그때 모의를 했었나보더라.
자기들의 존재를 감추기엔 YMCA 만한 곳이 없었겠지.
일본의 간섭에서 자유로웠던 곳이니까...
호창의 허탈한 표정.
INSERT
씬 26 민영환 장례식에서, 호시노와 광태부를 노려보던 싸늘한 정림의 표정.
광태
그건 알았냐? 정림양이랑 오대현이랑 예전에 연인사이였다는 것.
정림양 집에서 둘의 교제를 반대해서, 정림양을 미국으로 유학보낸 거였
다지, 아마.
호창,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만 있지 못하고, 주위를 이리저리 서성인다.
호창, 돌멩이 하나를 주워서 저 멀리 힘껏 던진다.
해질녘 황성 풍경.
52. 실내, 경부선 열차 안, 낮
객실칸에는, 일본관료들이 주로 타고 있고, 가끔 조선인 부유층들이 타고 있다.
창가쪽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남장여자 정림.
반대편 창가쪽에는 일본군 장교 제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창밖을 보고 있다. 가만 보면 대현이다.
53. 실외, 호창의 집, 낮
힘 없이 마루에 앉아있는 호창.
집 뒤편의 대나무 숲이 바람을 맞아 사각사각 하는 소리를 낸다.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커지더니, 대나무 숲 사이에서 하얀 두루미(白鶴) 한 마리가 기어나온다.
학은 호창의 집 마당을 우아하게 걷는다.
놀란 호창, 반사적으로
호창
아버지...!
하며, 안방 쪽을 보다가 이내 아버지의 부재를 깨닫는다.
호창, 무심히 백학을 보고 있다.
학은 한 다리를 감추고 한 다리로 서 있다.
호창, 그렇게 외다리로 서 있는 학을 유심히 본다.
인기척이 나고, 학은 날아가버린다.
호창, 돌아보면, 남루한 행색의 20대 남자가 보따리 하나를 들고 있다.
호창
뉘시오?
남루남
여기가 이대창 어른 댁이오?
호창
이대창? 맞습니다. 제 형님 되시오만...
CUT TO
호창의 집 마루.
보따리가 펼쳐지면, 창이 너덜너덜해진 갓과, 말라서 검어진 핏자국이 있고, 군데군데 찢겨진 도포.
호창, 도포자락을 매만지며, 어두운 표정이 된다.
호창의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다.
F.O.
54. 실외, 어느 농촌의 전경, 낮
F.I.
논과 밭이 널찍하게 늘어서 있는 20세기 초의 농촌.
55. 실외, 시골 서당 , 낮
황성의 <청학서당> 보다 더 여유롭고 호젓한 느낌의 서당.
문 앞에 <李家 書堂>이라는 팻말이 있다.
마루 위.
호창이 호창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호창
제가 허튼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곳에서 아버님을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
호창부
갑자기 웬 꿍꿍이냐?
됐다, 너 같이 시원찮은 놈 접장으로라도 쓸 생각 없다.
호창
이제, 제 본분대로... 학처럼 살겠습니다.
호창부
........
근데, 네 형이 황성 집으로 돌아올텐데,
네놈이 이렇게 내려와버리면 어떡하냐?
호창, 갑자기 아픔이 밀려오지만, 내색하지 못한다.
호창
이웃들에게 부탁을 해놨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56. 실외, 시골 서당, 낮
마당에 나와 곰방대를 물고 한모금 빨던 호창부가 돌아보는 시선을 따라 카메라 이동하면,
마루 위에선, 시골 학동 대여섯명이 서예를 하고 있고, 호창이 지켜보고 있다.
무덤덤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던 호창부... 조금 표정이 풀린다.
57. 실외, 다른 시골, 해질녘
대현과 정림, 논길을 걷다가 잠시 멈춰선다.
정림
아직, 우리 아버지 원망하십니까?
대현
(정림을 바라보다가)
아니, 난 어르신을 모셨을 때가 가장 행복했었소.
그걸로 만족했으면 됐으련만, 더 큰 행복을 바랐던 게 잘못이지...
정림, 씁쓸한 표정.
논길 옆 공터에서 시골아이들 5명 정도가 약식 야구를 하고 있다.
대현과 정림, 아이들이 야구하는 광경을 지켜본다.
아이들이 놓친 공이 정림과 대현 앞으로 굴러온다.
대현, 공을 주워든다. 실을 뭉쳐 만든 원시적 형태의 야구공이다.
대현, 공을 아이들을 향해 힘껏 던져준다.
58. 실내, 대형 한정식 식당, 저녁
요정 분위기의 커다란 좌식 식당.
정장을 한 광태부와 광태가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있다.
한복을 곱게 입은 여인이 들어와서 인사를 하며,
한복 여인
호시노 선생 일행이 오셨습니다.
광태부와 광태,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복 차림의 호시노와 다츠나미가 들어온다.
광태, 다츠나미의 얼굴을 보고 놀란다.
다츠나미도 광태의 얼굴을 보고 언뜻 놀라다가 이내 미소를 보낸다.
음식을 먹고 있는 네 사람.
광태부
(일) 듬직한 아드님을 곁에 두셔서 든든하시겠습니다.
立派なご子息がおありで,心强いことです.
호시노
(일) 지금은 이래도, 한 때 내 속을 많이 썩였었지요.
사관학교에 보내놨는데, 야구에 푹 빠져가지고는...
いまはそうですけど,一時は惱みの種でしたよ.
士官學校へ入れたのに,野球に夢中になって.
(다츠나미에게)
어떠냐, 지금도 야구를 그만두고 군인이 된 것 후회하냐?
どうだ,いまでも野球をやめて軍人になったことを後悔しているのか.
다츠나미
(일) 아닙니다. 만족하고 있습니다.
いいえ,滿足しております.
호시노
(일) 그래, 야구는 취미로 해도 되잖아.
참, 류선생 아들도 야구를 한다면서요?
そうじゃ,野球は趣味でやればいいんだ.
そういえば,リュウ先生の息子さんも野球をやっているとか.
광태부
(일) 이 녀석이야 말로 취미로 하는거죠.
더구나 지금은 YMCA가 문을 닫아서 안하는 것 같습니다.
あれは趣味でやっておるんですよ.
それに,いまはYMCAが閉鎖されて,やっていないようですが.
일본말을 모르는 광태, 머리만 긁적이고 있다.
호시노
(일) 몇몇 불순분자들 때문에
죄없는 YMCA 야구단이 야구를 못하게 됐구만.
그나저나 그 을사오십적단인가 하는 놈들은,
조선관료 일본관료 안 가리고 노리니까
별것도 아닌데 우리가 신경을 쓰게 돼.
一握りの不純分子のせいで,
罪もないYMCA野球團が野球をできなくなったか.
それもこれも,あの乙己五十賊團とか言うやつらが
朝鮮の官僚も日本の官僚も見境なく狙うから,
なんでもないことにまで氣を使わなければならない.
(다츠나미에게)
수사는 어떻게 돼 가냐?
搜査のほうはどうなっているんだ.
다츠나미
(일) 달아난 두 사람의 종적을 파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逃げた二人の足跡把握に全力を傾けていますが,
思ったほどやさしくありません.
호시노
(일) ......
쥐를 잡을 때, 쥐를 쫓아다니기만 해서는 절대 잡을 수 없다.
쥐가 제발로 찾아오게 만들어야지.
鼠を捕まえるとき,鼠を追い掛けてばかりでは絶對つかまらぬ.
鼠が向うからやって來るようにしなければ.
난데없는 듯한 호시노의 이야기에 의중을 살피던 광태부와 다츠나미.
대화에서 소외된 광태는 아예 먹는 것에 집중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닭고기 한 점을 입에 문 채 오물오물하던 광태, 문득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의아해한다.
59. 실외, 종로거리, 낮
상점이 밀집해 있는 거리.
좌판이 벌어져있고, 말끔하게 깎인 각종 방망이들이 놓여있다.
칼로 방망이를 깎고 있는 성한의 모습.
성한의 앞에 드리워지는 그림자.
성한
예, 골라보십시오.
빨래 방망이, 다듬이 방망이 다 있습니다.
소리
더 긴 방망이가 필요하오!
성한, 고개를 들면, Y 유니폼을 입은 광태가 서 있다.
성한의 표정.
60. 실외, 산 아래, 낮
무거운 지겟짐을 지고 내려오는 쌍둥이 형제.
앞서가던 형이 갑자기 걸음을 멈춰서자, 뒤따르던 동생은 형의 지겟짐에 부딪쳐 쓰러진다.
쌍둥이 형제 앞에 Y유니폼을 입고 서 있는 광태와 성한.
61. 실외, 유곽 앞, 낮
술취한 병환과 재철이 기생들과 히히덕거리며 밖으로 나온다.
병환이 옆에 끼고 있는 기생의 젖가슴이 보일듯하다.
유곽 문 앞에 서 있는 Y 유니폼 입은 광태, 성한, 쌍둥이형제.
광태는 쌍둥이 형의 눈을, 성한은 쌍둥이 동생의 눈을 가린다.
62. 실외, 종로거리, 낮
유니폼을 차려입은 (호창, 대현을 제외한) Y 선수들이 일렬횡대로 종로거리를 걸어간다.
행인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Y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63. 실외, 어느 사찰, 낮
사찰내의 정자 앞.
대현이 혼자 서있고, 저만치서 정림이 나타난다.
대현
황성 상황은 어떻다 하오?
정림
다들 근신하고 있답니다.
자금도 아직은 여유 있구요.
정림의 표정이 밝지 않다.
대현
무슨, 다른 일 있소?
정림
(대현의 눈길을 피하며)
아니예요...
대현과 정림의 굳은 얼굴들.
지나가는 승려들이 대현과 정림을 힐끗 보고 지나간다.
정림, 문득 눈 앞을 보고 놀란다.
정림과 대현 앞에는 10m 높이의 다보탑이 우뚝 솟아있다. (이곳은 불국사였던 것이다.)
정림, 신기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다보탑을 바라본다.
대현, 무심히 함께 다보탑을 보다가 문득 뭔가에 생각이 미친 듯 정림을 돌아본다.
정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대현, 정림이 다보탑에서 눈길을 떼지 않자,
다시 시선을 돌려서 다보탑으로 향한다.
그렇게, 다보탑을 바라보고 있는 대현과 정림.
한참의 침묵을 깨고,
정림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대현
......
정림
나, 황성으로 돌아가겠어요.
대현
무슨 소리요?
정림
(망설이다가)
... 베이스볼팀이 재결합해서, 일본과 재대결한대요.
대현, 놀란다.
대현
가면 위험한 것 모르오?
정림
난 직접 테러에 가담한 건 아니니,
조직에 관여한 내 구체적인 혐의는 잡기 힘들거예요.
대현, 고뇌하는 표정으로 정림을 바라본다.
정림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을사 오적, 오십적, 아니 오백적이 사라진다고,
이 나라가 뭐가 달라질까...
그런 암적인 존재들이 사라진다고, 사람들이 과연 기뻐하기나 할까...
그런데, 확실한 건...
우리 베이스볼팀이 이길때마다, 그들은 기뻐했었죠...
대현
감상적인 생각인 듯하오, 그건.
대현, 정림의 의중을 헤아리고,
대현
재대결을 하자고 했던 건 나였소.
정림
당신은 안돼요, 나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대현
(정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당신을 혼자 어떻게 보내오?
정림
........
불국사 경내에 울려퍼지는 범종 소리.
64. 실내, 시골 서당 방 안, 저녁
호창부와 호창, 마주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다.
호창부, 문득 탁자 아래에서 황성신문 한 부를 집어서 호창쪽으로 밀어놓으며,
호창부
황성신문 내려온 게 있어서 가져왔다.
한번 읽어보거라.
호창
황성 소식 궁금하지 않습니다.
호창부
(넌지시 호창의 표정을 살피며)
그래도 한번 보거라. 좋은 글 많더라.
호창, 무심히 황성신문을 받아서 옆에 놓는다.
65. 실외, 시골 서당, 낮
호창, 학동1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치고 있다.
학동1, 아픈 시늉을 한다.
호창
이놈, 훈장님 며칠 출타하셨다고 숙제 안해도 되는 줄 알았지?
학동2이 학동3에게 소곤소곤하며 키득댄다.
호창
뭘 그리 소곤대느냐?
이놈들이 접장 알기를 우습게 아네.
학동2
아닙니다. 접장 어른.
호창
뭐라고 소곤댔는지 말해봐라.
학동2
그게...
호창
어서!
학동2
네, 빼스볼을 잘하셔서 그런지 회초리도 잘 때린다고 그랬습니다.
학동들 까르르 웃는다.
호창
(뜻밖의 대답에 놀라며)
빼스볼..! 내가 빼스볼 했다는 얘기 어디서 들었느냐?
학동3
훈장님이 맨날 자랑하셨드랬습니다.
아드님이 조선 최고의 빼스볼 선수라고...
(종아리 맞던) 학동1
퇴계 이황 선생님 만큼 유명하셨다고 그러셨드랬습니다.
호창의 상기된 표정.
학동2
접장님, 황성에서 빼스볼 하던 얘기 좀 해주세요!
학동들
그래요, 접장님!
호창, 아이들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학동1이 더듬더듬 책을 읽고 있다.
학동1
有子曰, 信近於義 言可復也...
호창, 멍하게 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옆에 놓인 황성신문에 눈길이 간다.
무심히 황성신문을 펴는 호창의 손.
순간, 호창의 시야로 과장되게 확 다가오는 황성신문 기사.
< 황성 YMCA 빼스볼팀 재결합, 일본 성남구락부와 재대결 갖는다. 모월 모시 모처>
한쪽 귀퉁이에 조그맣게 쓰여진 그 기사가 운명적으로 호창의 눈을 끌어당긴 것이다.
호창의 표정.
학동1(소리)
유자께서 말씀하시길, 신의는 의로움에 가까우니
신의있는 자가 한 말은 실천할 수 있어야 하고...
호창의 귀에 맴도는 " 신의 있는자... 실천 할 수 있어야하고..."
호창,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66. 실내, 00 역, 낮
1906년 당시 00 역사 내부.
짚신을 신은 한 남자의 발로부터 틸업하면, 하얀 무명 바지, 희미하게 핏자국이 남아있는 하얀 도포.
창과 천장을 수선한 표가 나는 갓을 쓴 호창의 얼굴.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비로소 오리지날 '선비룩'을 갖춘 호창.
매표소 앞에 호창이 서 있다.
호창
황성 가는 열차 표 한 장 주시오!
역무원
오늘은 더 이상 황성 가는 열차가 없소이다.
내일 오후에야 한 대가 있소.
호창
(당황하며)
이런, 내일 정오까지 황성에 닿아야하는데...
67. 실외, 논길, 해질녘
소를 끌어 쟁이질을 시키고 있는 농부.
농부, 허리를 한번 펴본다.
문득 농부의 시선이 어딘가에 한참을 머무는데, 카메라 이동하면,
논두렁을 따라 갓쓰고 도포입은 호창이 자전거를 타고 간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 선비...그 언발란스한 모습이란...
68. 실외, 산길, 밤
실루엣으로 산의 경사면이 보이고,
역시 실루엣으로 자전거탄 호창의 모습이 보인다.
비뚤비뚤 가다가 급격한 속도로 미끄러지는 자전거.
호창(소리)
아~~~~
69. 실외, 강변 공터, 오전
한 사내가 운동장 바닥에 회 가루를 뿌리면서 금을 긋는다.
운동장 저 뒷편으로는 얕은 강이 흐르고 있어, 자연스레 홈런 펜스의 구실을 하고 있다.
70. 실외, 수원(水原) 입구, 오전
지친 표정의 호창, 자전거를 끌고 겨우겨우 걸어온다.
자전거 뒷바퀴에 펑크가 났는지 푹 꺼져있다.
돌턱에 걸려 넘어지며 자전거를 놓치는 호창,
길바닥에 넘어진 자전거의 앞바퀴가 떨어져 나가버린다.
호창, 한숨을 쉰다.
호창, 고개를 들어 마을 어귀의 이정표를 보면 경기도 수원(水原)이다.
71. 실외, 강변 공터, 낮
일본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Y 선수들도 금 밖에서 대충 연습을 하고 있다.
병환, 재철을 앉혀놓고 투수연습을 하고 있다.
병환
(신이 나서)
세상에 핏차가 오대현만 있는 게 아니다.
재철
근데, 좀 느리네, 그려.
병환
그게 바로 내 공의 특징이지.
구비구비 아리랑 고개를 넘듯 천천히...
그러고 보니, 이 공의 이름을 이렇게 지어야겠다!
아리랑 볼!
광태는 연습도 하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웅성댄다.
저쪽에서 유니폼을 입은 대현과 정림이 걸어온다.
Y 선수들 놀란 표정으로,
선수들
오대현! 감독님!
대현과 정림의 모습이 보이자, 관중들이 술렁인다.
Y 선수들, 어떤 반응을 보여야하는지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대놓고 반기는 사람은 없다. 그러다가.
재철
(슬쩍 희망 섞인 표정)
이제 오대현이 핏차를 하면 되는건가?
병환
자존심도 없냐? 우리 빼스볼팀이 이 꼴이 된 게 누구 때문인데...
성한
사람은 밉지만, 그래도, 오대현이 던지면 이길 수 있소!
병환
저 놈이 하면, 난 안 한다!
광태
(굳은 표정)
아니오. 시합은 할 필요 없소!
병환
무슨 얘기요?
나루터 뒷편으로부터, 갑자기 일본군 2개 소대 정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Y 선수들, 관중들, 당황스런 표정이다.
오히려 대현과 정림은 담담한 표정이다.
순식간에 대현과 정림을 포위한 일본군들.
Y 선수들, 어리둥절한 가운데.
광태
미안하오. 애초에 이 자리는 시합이 목적이 아니었소.
일본군들에게 붙들린 대현과 정림.
대현, 태연한 표정으로 다츠나미를 바라본다.
대현
(일) 진검 승부 하기로 하지 않았었나?
眞劍勝負しようと言わなかったか.
다츠나미, 굳은 표정이다.
운동장 곁에 세워진 자동차에서 호시노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자동차 쪽으로 달려가는 다츠나미.
자동차 창문이 열리고, 호시노가 모습을 드러낸다.
다츠나미, 야구유니폼 차림으로 경례를 붙인다음
다츠나미
(일) 시합이 끝나고 체포해도 되지 않습니까?
試合が終わってから逮捕してもよいのでは.
호시노
(일) 놈들을 몰라서 그러나?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어떻게 알아?
やつらをしらんのか.どんなたくらみがあるかもしれんのだぞ.
다츠나미
(일) 놈들은 잡힐 걸 알면서 나타났습니다.
이게 바로 스포츱니다.
아버지께서는 늘 이해 못하셨지만요.
やつらは捕まることがわかっていながら出てきました.
これがまさにスポ-ツなんです.
父上には決して理解できないでしょうが.
호시노
(일) ..... 넌 아무래도 군인 체질은 아닌 것 같다
お前はやはり軍人には向かないらしい.
호시노, 운동장 쪽을 훑어보며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한다.
호시노
(일) 좋다. 시합이 끝나는 대로 체포한다.
... 다만... 반드시 이겨라!
よし.試合が終わり次第逮捕する.
だが,必ず勝つんだぞ
다츠나미
......!!!
호시노
(구경나온 조선인들을 가리키며)
(일어) 저기 모인 조선인들을 봐라.
어쩌면 그들은 조선 정부에 실망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YMCA를 응원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기를 살려줘서 좋을 것 하나도 없다.
본때를 보여줘라!
あそこに集まっている朝鮮人たちを見よ.
彼らは朝鮮政府への失望を
YMCAを應援することではらそうとし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
彼らを活氣付けるようなことがあってはならない.
目にもの見せてやろう.
다츠나미, 자세를 바로하고 절도있는 동작으로 경례를 하며
다츠나미
(일어) 대일본제국의 명예를 걸고!
大日本帝國の名譽にかけて.!
호시노, 경례를 받아준다.
정림과 대현, Y 선수들 앞에 선다.
정림, 두리번거리며 선수들을 보다가 호창이 없음을 확인한다.
Y 선수들, 마냥 반가워하지 않으며 조금은 싸늘한 기운 감도는 시선으로 본다.
정림
우리 둘한테 배신감 느끼고 있다는 것 알고있습니다.
변명할 생각 없습니다.
여러분이 원하지 않으면 우린 빠지겠습니다.
병환
그럼, 빠지시오!
Y 선수들,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다.
CUT TO
수비위치로 뛰어나가는 선수들.
병환
(악쓴다)
안 돼! 내 아리랑 볼!
재철, 투덜대는 병환을 끌고 나가서 3루에 세워놓는다.
대현은 마운드에서 몸을 풀고, Y 선수들은 수비위치에 나가있는데,
포수 광태만 금 밖에서 멍하니 서 있다.
광태, 금밖에 있던 정림과 눈이 마주치고, 이어서 마운드 위의 대현과 눈이 마주친다.
광태, 뭔가 결심한 듯 무거운 걸음으로 마운드로 걸어간다.
마주한 광태와 대현.
대현
아버지 일은 미안하게 생각하오.
굳은 표정의 광태,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대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쓰러진 대현에게 공을 던져 놓고, 포수 위치로 가는 광태.
심판
9회 경기, 연장전은 없습니다!
72. 실외, 수원 역마소(驛馬所), 오전
10대 후반의 청년이 갈색 말의 갈기를 다듬고 있다.
(소리)
이보시오!
마부청년, 돌아보면 갓 쓰고 도포 입은 호창이 서 있다.
호창
급히 갈 데가 있는데, 말을 좀 쓸 수 있겠소?
마부청년
지금 탈 수 있는 말이 한 마리도 없습니다.
호창
그건 말이 아니라 소요?
마부청년
이 말은 비상용 말이올시다.
호창
비상이라 함은 뭘 말하는 거요?
마부청년
관청 사람들의 급한 용무를 말하지요.
호창,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서서 몇 걸음 가다가 문득 다시 돌아선다.
73. 실외, 훈련원 운동장, 낮
점수판 한 0 : 0 일
경기가 한창인 가운데, 여기저기서 관중들이 몰려든다.
경기시작 때는 30여명에 불구했던 관중수가 얼추 200명을 넘어섰다.
관중들 대부분이 YMCA 쪽에 앉아 있고,
일본쪽에는 대현과 정림을 잡으러왔던 일본군들만 쪼그리고 앉아 있다.
여기저기 하얀 현수막을 들고 응원하는 이들도 있다.
< 필승, 황성 기독청년회 빼스볼팀 >, < 조선의 자존심, YMCA > 등등.
저 뒷편 홈런 펜스 구실을 하는 강 위에도, 노젓는 배 두어대가 떠 있고,
사공들이 경기를 구경하고 있다.
관중들 앞 쪽에는 돗자리를 깔고 앉은 하일송이 현장해설을 하고 있다.
하일송
양팀 핏차의 눈부신 역투로 8회까지 0:0이외다.
특히 Y 오대현 핏차의 역투는 인상적이구려.
일본팀 주자가 1,2루에 있다.
하일송
일본의 9회초 마지막 공격, 주자는 1,2루, Y의 위기외다.
오대현 핏차 조금 지친 듯 하외다.
다츠나미, 방망이를 돌리면서 타석으로 나온다.
하일송
일본팀 4번 치는 이, 다츠나미 등장합니다.
대현, 침을 삼키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하일송
오늘은 두 번 모두 죽었수다만,
이번은 왠지 느낌이 이상하외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는 공.
하일송(소리)
아, 슬픈 예감은 왜 이리도 잘 들어맞는단 말이냐?
좌중간을 가르는 타구.
1,2루주자 모두 홈인한다.
마운드 위의 대현, 어깨가 축 처진다.
2루에 선 다츠나미, 주먹을 불끈 쥐고 금 밖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
관전하던 호시노, 박수를 친다.
74. 동장소, 9회 상황.
Y 선수들, 공격에 앞서 둥글게 한 데 모였다.
선수들, 많이 맥이 빠진 모습들이다.
관중들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고, 아까 높이 들려있던 현수막들은 어느샌가 땅바닥에 떨어져있다.
정림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합시다!
선수들
(힘빠진 소리들로)
조,선,최,강, 와이,엠,씨,에이...
재철이 친 빨래줄 같은 타구를 3루수가 정면에서 잡는다.
은이 친 잘맞은 땅볼을 유격수 다츠나미가 역동작으로 잡아서 1루에 던져 아웃시킨다.
하일송
아, Y에게는 운도 따라주지 않는구나!
잘맞은 공 2개가 모두 잡혔시다!
타석에 들어서는 병환
하일송
이제, 한 명만 더 죽으면 경기는 끝나외다!
앉아서 구경하던 일본군들, 기립해서 정렬한다.
정림, 광태에게 다가가서,
정림
지금 아니고는 얘기할 기회가 없을지 모르겠군요.
광태
...??
정림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테러에 실패한 게,
광태군 아버집니다.
광태
...!!!
일본 투수, 공을 뿌리고, 병환이 방망이를 휘두르지만, 방망이가 부러져버린다.
병환, 선수들 쪽으로 가서 방망이를 바꾸려한다.
이때, 성한이 다가와서 매끔하게 깎인 나무 방망이를 병환에게 건넨다.
병환, 망설이고, 성한은 방망이를 더 내민다.
병환, 방망이를 건네받는다.
일본투수, 공을 던지고, 병환 성한이 준 방망이를 휘둘러서 깨끗한 안타를 만들어낸다.
성한, 누구보다 더 크게 박수를 치고, 1루를 밟은 병환은 성한을 향해 손을 들어보인다.
하일송
기사회생이외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할텐데...
다음 치는이인
(목소리가 작아지며)
신철 선수가 해줘야겠시다!
어설프게 생긴 신철, 방망이를 위태위태하게 들고 타석으로 걸어간다.
하일송
(목소리가 더 작아지며)
근데... 오늘은 좀 부진하구려.
세번 모두 삼진이외다.
귀가 유난히 큰 관중1, 귀가 움직이더니
관중1
이거이 먼 소리지?
자그맣던 말발굽 소리가 점점 커진다.
저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갈색 말이 보인다.
(저멀리서 들리는) 소리
멈추시오!!!
관중들, 웅성거린다.
선수들,관중들, 돌아 보면,갈색 말에는 두 사람이 타고 있다.
마부청년이 말을 몰고 있고, 뒤에 앉은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도포자락이 바람에 날린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말.
잠시 경기가 중단되고, 운동장은 어수선해진다.
어리둥절한 사람들.
홈플레이트 앞에서 히히힝~ 하며 멈춰서는 말.
말에서 내려서는, 갓쓰고 도포 걸친 호창.
호창, Y 선수단 쪽으로 걸어간다.
다들 호창을 알아보지 못한 가운데, 정림만 호창을 알아보고 작은 탄성을 낸다.
호창, 걸어가며 갓을 벗어 던진다.
호창의 얼굴이 드러난다.
Y 선수들, 놀란다.
호창, 계속해서 걸어가며 도포를 벗어 던진다.
도포 안에서 드러나는 선명한 YMCA 유니폼.
관중들, 이제야 탄성을 지른다.
하일송
(광분하며)
이, 이, 이럴수가...
말을 타고 나타난 남자는, 바로,
바로,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정림
(심판에게)
대타, 이 호 창!
어리둥절한 마부청년의 표정.
관중들 가운데 두 청년이, 바닥에 떨어져있던,
말려있는 하얀 광목 현수막을 양쪽에서 좍 펼쳐서 세워들면,
현수막엔 < 조선에서 최고로 잘치는 이 이호창 만세 >라는 큼직한 글씨들이 쓰여있다.
유격수를 보던 다츠나미, 마운드로 올라가서 투수에게 얘기를 한다.
다츠나미
(일어) 빠른 직구에는 동물적으로 강한 놈이다.
변화구로 승부해!
速球には動物的感の く奴だ.
變化球で勝負しろ.
방망이를 들고 타석으로 가는 호창에게 대현이 와서는
대현
한 호흡 참았다가, 변화구를 노리시오!
호창, 피식 웃으며 지나친다.
호창, 방망이를 타석에 서서 방망이를 높이 세운다.
온 관중의 시선이 호창을 향해있다.
숨죽이며 호창을 바라보는 관중들.
일본투수, 초구를 던진다.
뚝 떨어지는 변화구로, 스트라이크가 된다.
호창
직구 던져!
일본투수, 제 2구를 던진다.
호창, 냅다 방망이를 휘두른다.
역시 공은 홈플레이트 직전에 휘어서 떨어진다. 헛 스윙
관중들의 탄식.
대현
자네한테는 직구 안 던진다니까?
정림, 광태, 다츠나미, 대현 등의 얼굴이 차례로 보여진다.
일본투수가 공을 쥐는 손의 모양이 클로즈업으로 보여진다. 한쪽 실밥에 손가락 2개를 밀착시킨,
전형적인 변화구 그립이다.
일본투수, 3구째를 던진다.
초고속촬영으로..
일본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자마자,
평소의 템포대로 호창의 방망이가 큰 궤적으로 스윙을 시작하는 듯하다.
대현, 고개를 저으며 눈을 질끈 감는다.
공이 홈플레이트를 향해 다가올 때쯤, 호창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나고,
호창, 갑자기 왼 다리를 높이 들면서(학다리 타법) 스윙을 한템포 조절한다.
홈플레이트를 지나면서 공은 바깥쪽으로 휘고,
호창은 들었던 왼 다리를 내딛으면서 공을 끝까지 보면서 방망이에 정확히 맞춘다.
따~ 악
방망이에 맞은 공이 하늘 높이 치솟아오른다.
하일송
(목이멘 소리로)
쳤소이다! 날아가외다. 날아가외다.
떨어질 줄을 모르외다!
일본 팀의 중견수, 하늘을 보며 뒤로 달려간다.
강물 앞까지 달려가지만 공은 떨어질줄 모르고, 일본 중견수는 뒷걸음질하다가 강물에 빠진다.
타구는 강물 가운데 풍덩하고 떨어지고, 배 위에서 응원을 하던 사공 하나는 만세를 부르고,
다른 사공 하나는 홈런 타구를 잡기 위해 노를 저어 공이 빠진 곳으로 간다.
하일송
넘어갔시다~~
동점이외다, 극적으로 동점~
(그 말을 하고는 그 자리에 픽 쓰러져버린다)
발광하는 Y 선수들, 더 발광하는 관중들.
호창, 베이스를 돌며 관중들을 향해 손을 번쩍 든다.
허탈해진 일본 투수, 마운드 위에 쭈그려 앉고, 다츠나미가 와서 투수를 일으킨다.
홈을 밟고 Y 선수 쪽으로 들어온 호창, 선수들에게 몰매를 맞는다.
열광한 관중들 사이에서 엉엉 울고 있는 영희.
호창, 영희를 번쩍 들어올린다.
호창, 정림과 눈이 마주친다
......
대현이 2루타를 치고 2루에 나가 있다.
관중들은 다 같이 하나되어 '와이엠씨에이'를 연호한다.
광태,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기 전 심판에게 '타임'을 요구하는 제스쳐를 한다.
2루로 달려가는 광태.
다가오는 광태를 본 대현, 궁금한 표정
대현
무슨 일이오? 투아웃인데 작전 같은 것 필요없잖소.
대현, 광태를 바라본다.
광태, 고뇌 가득한 표정이다.
광태
내 말 똑똑히 들으시오.
내가 안타를 치든 아웃이 되든 경기는 여기서 끝나오
경기가 끝나면, 당신이랑 정림양은 잡혀갈테구...
대현
내가 선택한 길이오.
광태
난 이번에 뽄뜨를 댈거요.
기습 뽄뜨니까, 치는 이인 나에게 시선이 집중될 거요.
대현
......?
광태
(3루 뒤편에 서 있는 말 가리키며)
저기, 저 말 보이오? 아까 호창이가 타고 왔던...
3루까지 가면 저 말에 올라타시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리시오.
대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경기는 어떡하고?
광태
보내줄 때 가시오!
광태, 다시 홈플레이트쪽으로 걸어가다가 문득 돌아서서
광태
... 우리 아버지, 살려줘서 고맙소.
대현의 표정.
CUT TO
호창은 홈플레이트 뒤에서 정림과 얘기하고 있다.
호창
약속을 못 지켜서 죄송하오.
정림
... 목표를 갖고 살게 해줬다며 내게 고맙다고 했었죠?
우리 베이스볼팀은... 내게 목표를 잊고 살게 했습니다.
호창
...... 잘 가시오!
타석에 들어선 광태.
2루주자 대현, 심난한 표정.
호창은 3루 바로 옆에 서 있다.
호창의 뒤쪽으로 말이 대기하고 있다.
일본투수가 공을 던진다.
광태, 잽싸게 3루쪽으로 번트를 댄다.
깊은 수비하던 일본 3루수 황급히 달려온다.
대현, 3루를 향해 뛴다.
일본 3루수, 뒤늦게 공을 잡아서 1루에 뿌린다.
대현, 3루를 밟았다.
호창, 정림을 말에 올려태운다.
전력질주한 광태, 공보다 먼저 1루를 밟았다.
호창, 대현에게 길을 터준다.
말 위의 정림, 대현에게 손을 내밀고, 대현은 정림의 손을 잡고 말에 오르려한다.
이때, 관중들의 탄성!
일본팀 1루수가 송구를 놓쳐서 공이 뒤로 빠뜨렸다.
정림과 대현, 동시에 그 상황을 바라본다.
대현, 미처 말에 오르지 못한 채, 정림을 바라본다.
정림, 대현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대현의 손을 놓아버린다.
대현, 갑자기 방향을 틀어 홈으로 달린다.
말 위의 정림, 홈으로 달리는 대현의 뒷모습을 보며 표정이 풀린다.
일본팀 1루수, 빠뜨린 공을 뒤늦게 잡아서 홈으로 던진다.
전력질주하는 대현, 홈으로 날아오는 공.
대현,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홈에 들어온다.
자욱한 먼지.
먼지가 걷히면, 홈플레이트 위에 대현과 일본팀 포수가 겹쳐 쓰려져있다.
심판, 손을 들어 아웃 선언을 하려는 순간,
쓰러진 포수 옆으로 공이 쪼르르 굴러 나온다.
심판, 들어올리던 손을 옆으로 옮기며
심판
세잎~~
관중들, 열광한다.
Y 선수들 만세를 부르며 홈으로 달려나온다.
다츠나미,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흥분한 Y 선수들,달려와서 홈에 엎드려 있는 대현을 향해 뛰어든다.
거기에 광분한 열성 관중들까지 뛰어든다.
그렇게 인간무덤이 쌓아진다.
대기하고 있던 일본군들, 총칼을 앞으로 든다.
일본군 짱
체포해.
逮捕しろ.
일본군들, 인간무덤을 향해 다가간다.
쌓여있는 사람들을 한거풀(?)씩 벗겨낸다.
맨 아래 바닥에 찌그러져 있는 이는, 일본팀 포수.
일본군 짱
(뒤통수 맞은 표정으로)
이런 썅!
この野郞.
저 뒤쪽에서, 말이 출발한다. 대현과 정림이 타고 있다.
일본군1, 잽싸게 총을 들어 겨눈다.
광태, 야구공을 들어서 일본군1에게 던지지만, 빗나간다.
호창, 다급해져서 던질 무언가를 찾지만, 주위엔 돌도 없다.
호창, 허리춤에서 마패를 꺼낸다.
프레스비 던지듯, 마패를 날리는 호창.
일본군1이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날아온 마패가 총을 떨군다.
일본군 짱
(열받아서)
잡아!
つかまえろ.
일본군들, 총을 앞에 들고 달려간다.
일본군들, 총칼로 관중들을 제압하고, 또 Y 선수들을 제압한다.
몇몇 관중들과 선수들은 무릎을 꿇려있고, 몇은 넘어져서 짓밟혀있다.
그런 진압 과정이 보여지는 중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패를 누군가가 집어든다. 바로 마부청년.
마패를 든 마부청년의 눈에 보이는, 일본군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엎드려있는 호창.
마부청년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어사님!
마부청년, 마패를 높이 들어서 목이 터져라 외친다.
마부청년
암 행 어 사 출 두 요!
마부청년의 한 마디에 운동장의 소음이 벗겨지며,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황당해하는 일본군들, 진압을 잠시 중단한다.
황당하기는 진압 당하던 선수들이나 관중들도 마찬가지다.
마패를 높이 들고 있는 마부청년, 주위를 둘러본 다음,
아무런 변화가 없자 조금 머쓱해진다.
일본군에게 눌려있던 호창, 고개를 들어 마부청년을 바라본다.
코피가 한 줄 흐르는 얼굴로 마부청년에게 미소를 짓는 호창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75. 실외, 목동 야구장, 낮
앞 씬의 호창의 얼굴이, 태훈의 얼굴로 바뀐다.
태훈, 가슴에 <충암>이라고 박혀있는 야구유니폼을 입고, 마운드 위에 서있다.
전광판을 보면, 충암초교가 서림초교를 3 : 2 로 앞서고 있다.
서림초교 주자들이 1,2,3루에 꽉 차 있다.
충암초교 감독이 나와서 태훈을 진정시킨다.
마운드 위의 태훈, 긴장된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킨다.
감독, 다시 덕아웃으로 들어가고,
태훈은 와인드업을 하려다 말고, 다시 투수판에서 발을 뗀다.
태훈, 모자를 벗어서 땀을 닦는다.
태훈,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땀을 닦다 말고 돌아보면,
그라운드의 충암초교 수비수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YMCA 야구단 선수들이 당당하게 서 있다.
100년 전의 그 흰색 광목 유니폼을 입은 채.
1루 성한, 2루 쌍둥이 동생, 3루 병환, 유격수 쌍둥이 형, 외야에는 광태, 대현, 재철 등
태훈의 놀란 표정.
소리
힘내라!
태훈, 소리나는 쪽으로 돌아보면,
홈플레이트 뒤편 포수의 위치에, YMCA 유니폼을 입고, 하회탈을 쓴 사람이
포수 미트를 낀 채 앉아 있다.
하회탈을 벗어 얼굴을 드러내는 호창.
태훈이 더욱 놀란다.
빙긋 웃으며 던지라는 시늉을 하는 호창.
가슴이 벅차오르는 태훈.
증조부와 증손자 배터리의 은밀한 눈빛 교환.
힘을 얻은 태훈, 힘차게 와인드업을 한 후 공을 뿌린다.
카메라를 향해 날아오는 공이 점점 커지다가 화면을 새까맣게 덮어버린다.
76. 에필로그.
실제 YMCA 야구단의 사진이 보여지고, 그 아래 다음과 같은 자막이 깔린다.
황성 YMCA가 다른 팀을 꺽는 것은 얘깃거리가 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이 져야만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한국 야구사 ( 대한야구협회,한국야구위원회 공동 간행, 1999년) 84쪽
F.O.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