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도 세월 따라/ 전 성훈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있다. 즐겨 찾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자주 찾지는 않아도 어쩌다 우연히 먹는 음식도 있다. 그런가하면 세월 따라 입맛이 변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어떤 음식의 좋은 추억이나 나쁜 기억들이 희미해진다. 과거에는 전혀 입에 대지 못한 음식을 이제는 아무 문제 없이 먹기도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있다.
양식은 젊은 시절부터 그다지 즐기지 않은 음식이다. 이십대의 청년시절부터 중늙은이인 지금까지 왜 그런지 모르지만 양식은 그 맛을 모르겠다. 음식의 감칠맛을 전혀 느끼기 못하고 그저 텁텁하고 느끼한 감만 있다. 그 때문에 양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거의 없다. 양식 이름도 몇 가지 빼고는 모른다. 게다가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이 서툴러 남의 눈치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내 편리한 대로 사용한다. 우리가족은 양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외식하러 나갈 때 양식이 싫다고 하면 함께 가자는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아 아무 말 없이 그냥 따라나선다. 양식을 먹은 후 집에 돌아와 입가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은 적이 몇 번이나 된다. 어쩌다 해외여행을 하면 별수 없이 현지 음식을 열심히 먹는다.
음식은 어떤 것이나 대체로 소화를 잘 시킨다. 우리 음식과 중화요리 그리고 일식은 입에도 잘 맞고 소화도 잘 된다. 밀가루 음식은 먹으면 가스가 많이 차서 방귀가 자주 나와 곤혹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을 제외한 밀가루 음식을 좋아한다. 심부름이나 선물을 하려고 제과점에 들리기는 하지만, 빵이 먹고 싶어서 빵집에 간 적은 한 번도 없다. 빵을 좋아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빵을 먹으면 생목이 올라서 싫다. 국수와 수제비 그리고 라면은 즐겨 먹는다. 국수는 국수발이 가느다란 잔치국수보다 면발이 굵은 국수를 좋아한다. 뜨거운 국물로 만든 멸치칼국수나 닭 국물 칼국수, 특히 홍두깨로 밀은 멸치국물 칼국수에 ‘김 부스러기’를 넣어 먹는 걸 좋아한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칼국수는 남대문 시장 골목 칼국수다. 주인아주머니가 손이 커서 커다란 그릇에 하나 가득 퍼준다. 다 먹고 조금 더 먹고 싶다고 하면 또 대접 절반 정도의 칼국수를 건네준다. 술 마신 다음날 해장국으로 종종 이 칼국수를 먹는다. 속이 시원하고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의 추억속의 칼국수다. 바지락 칼국수는 바지락을 건져 먹는 일이 귀찮아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맵거나 찬 밀가루 음식은 입에서는 괜찮지만 장에서 탈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빔냉면과 비빔국수 같은 매운 음식과 콩국수, 메밀국수, 동치미국수 등, 찬 음식은 먹으면 여지없이 뱃속이 불편하다.
매주 화요일 저녁, 성당에서 신자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를 바치는 모임이 있다. 모임은 통상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모임이 끝나면 함께한 분들과 늦은 저녁에 종종 술 한 잔 나눈다. 창동역 주변 음식점 중에서 족발집을 즐겨 찾는다. 가격도 저렴하여 부담 없고 맛도 괜찮다. 주위에 족발집이 몇 집 있지만 족발 맛의 차이가 나서 어느 한 집에 자주 간다. 종종 찾는 집 족발은 한약 냄새가 조금 나며 쫀득쫀득하고 돼지기름이 쪽 빠져서 식탁에 차려진 족발을 보는 순간 군침이 돈다. 음식의 맛이나 향기에 대하여 그다지 예민한 편이 못 되어 잘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 집 족발이 최고라고 한다. 매운 족발과 맵지 않은 족발이 있는데 매운 족발에는 거의 손이 가지 않는다. 족발과 함께 나오는 계란 풀은 떡국이 별미다. 청양고추를 썰어 넣은 뜨겁고 매콤한 국물을 마시면 그 맛이 그만이다. 게다가 계란 떡국은 리필이 되어 더욱 맘에 든다. 맨 처음 이 집을 찾았을 때 일행 중 누군가 청양고추를 넣어 매워서 먹기 힘들었다. 그런데 자주 먹게 되자 입에서도 당기고 뱃속도 잘 적응 했는지 그 다음날에도 탈이 없다.
세월 따라 입맛이 변하는지, 환경 따라 변하는지 그도 아니면 입맛 따라 세월이 변하는지? 예전에는 풋고추나 오이고추만 먹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청양고추에 푹 빠져 있다. “늦게 배운 도적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혀끝이 아리고 입속이 매워 정신을 차릴 수 없고, 뱃속마저 혼돈의 세계에 빠뜨리는 매운 청양고추의 매력에 흠뻑 젖어 지낸다. 청양고추 맛을 알고 나서 찌개나 국을 끓이는 아내에게 꼭 청양고추를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내가 좋아하는 두부에 애호박을 숭숭 썰어 넣은 다음 새우젓이나 명란젓을 넣고 끓이는 젓국찌개, 아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에도 잘게 썬 청양고추 몇 개를 넣는다. 아욱국, 시금치국, 콩나물 북어국, 뭇국, 감잣국 등에도 청양고추를 넣으면 그 맛이 더욱 진해지는 마력이 있다. 가끔 혼자 라면을 끓여 먹을 때 계란 한 알을 넣고 청양고추와 대파를 듬성듬성 썰어 넣는다. 그렇게 펄펄 끓은 라면에 소주 한 잔 곁들이면 최고의 한 끼 식사다. 추위에 떨며 퉁퉁 불어터진 라면을 먹던 군대시절을 생각하면 슬그머니 미소가 터져 나온다. (2017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