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생이다.
동생은 돈을 빌려주고 몇 년이 되어도 달라는 말을 못 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대학 시험에 낙방하고 더욱더 소심하고 말이 없어졌다. 그때 한동네 사는 내 동창이 착하고 마음씨 곱다고 자기 처제를 중매했다. 연애 한 번 못 해본 동생은 식구들과 오빠의 억압에 떠밀려 결혼을 허락했다. 결혼식 날 무슨 이유인지 한없이 우는 것을 보았다. 이유를 물어도 말이 없다. 그때 동생은 앞으로 닥쳐올 전쟁을 예상했을까?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떠나질 않았다.
동생댁은 큰일도 척척 해내는 대범한 여자였다. 영주에서 마트를 했는데 무거운 물건도 번쩍 들고 손님이 시비를 걸어오면 당당히 옳고 그름을 밝혀 해결하기에 여장부인 줄 알았다. 손님들도 안주인을 찾고 어쩌다 자리를 비우면 되돌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부모님은 아들보다 강하고 듬직함에 좋아하셨다.
부산이 친정인 그녀는 수입이 부실할 때마다 부산에 가자고 끝없이 동생을 설득했다. 浮草부초같은 동생은 마누라 높은 물결에 모든 것을 처분하고 부산으로 떠내려갔다. 영주와 부산은 하늘과 땅 차이다. 소심한 성격에 더욱 장사하기가 어려웠다. 슈퍼는 여의치 않아 사촌이 하는 장사를 배워보기로 했다. 사촌은 장사로 잔뼈가 굵었고 부산에 9층짜리 빌딩도 샀다. 동생과는 전혀 맞지 않아 절치부심 사촌 형한테 간과 쓸개를 빼주고 비닐봉지 제작기술을 배웠다. 슈퍼, 마트, 시장, 백화점에 납품하는 일도 차근차근 배웠다.
동생댁은 식당 종업원으로 얼마 안 되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다며 식당을 하겠다고 또 동생을 볶아쳤다. 하루는 동생 부부가 우리 집에 왔다. 식당을 하려고 돈을 빌려 달란다. 아이들 학교 다니고 겨우 살고 있는데 돈이 없다니 집문서라도 빌려주면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고 한다. 그것은 안 된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우리 전 재산이 이 집뿐인데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렇게 되면 너도 못살고 나도 못산다. 가진 것 없으면 직장을 다녀야 하고 자영업엔 5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일렀다.
첫째 = 하고자 하는 일에 달인인지? 둘째 = 3년 동안 적자가 나도 버틸 수 있는지? 셋째 =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있는 탁 트인 성격인지? 넷째 =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으로 남들보다 몇 배의 일을 할 수 있는지? 다섯째 = 지독하리만큼 부지런한지? 돈도 장래성이 있어야 빌려주지 불 보듯 뻔한 일, 우리도 아직 대출금도 다 갚지 않았어, 식당 몇 달 다닌 지식 가지고 식당을 한다고 고생하지 말고 직장이나 다니게.
그렇게 다녀간 후 풍문에 들으니 집을 담보로 식당을 차렸단다. 동생은 비닐장사로 식당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단다. 어느 날 동생의 전화다. 퇴근해 오니 베란다에 화려하고 예쁜 서양란과 크고 멋있는 화분이 즐비하게 들어차 있더란다. “어쩐 일이냐? 물으니 집 단장 좀 했단다. 지금 빚이 얼마인데 제정신인가?” 남자가 돈도 못 벌면서 잔소리나 한다고 賊反荷杖 적반하장 큰소리, 塗炭之苦도탄지고에 빠져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더란다. 또 하루는 번들 번쩍 장롱과 멋있는 가죽 소파가 바위같이 主客顚倒주객전도 되어 기를 누르고 멋진 식탁이 남의 집 같았다. 어항 속 열대어 물살 가르는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하늘이 노랗고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더란다. 雪上加霜 다음날 컴퓨터도 TV도 새것으로 안방을 차지하여 동생을 더욱 옥죄어왔다. 네 식구 옷도 전부 유명한 메이커, 이 累卵之勢누란지세 형국을 어떻게 해쳐갈까?
그녀는 남편의 말은 안중에도 없고 점점 호랑이로 변해갔다. 아이들 챙겨서 밥 먹여 학교 보내고 아침밥도 못 먹고 출근해야 하는 게 지옥이다. 밤마다 늦게 아이들 반찬을 가져와서 다음날 식사를 해결했는데 언제부턴가 아예 집에 들어오지도 않더란다. 전화하면 늦게까지 손님이 있어서 식당에서 자고 아침 일찍 일해야 한다기에 그런 줄 알았단다. 어느 날 동생이 같이 퇴근하려고 식당에 갔더니 모르는 아줌마가 있더란다. 배 순희씨 어디 갔나요? 그분 우리한테 가게 팔고 가셨는데요!!
세상에 뭐 이런 황당한 일이,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하다. 장사고 뭐고 집어치우고 마누라 찾기에 나섰다. 온갖 궂은일 다 해가며 빚내서 식당 차려줬건만 이렇게 배신하다니 치가 떨린다. 심부름센터에 의례를 했다. 드디어 찾았다는 연락, 경찰과 원룸 앞에서 잠복, 남자와 팔짱을 끼고 온다. 둘이 나란히 들어가는 것을 현장에서 잡았다. 식당 인테리어 하던 인부였다. 이리하여 그 남녀는 간통죄로 6개월간 구속되었다. 식당 판돈을 회수하려 했으나 “영창 살면 죗값 치른 건데” 배 째라고 하더란다. 나중에 보니 동생 이름으로 온천지 빚을 내서 멋대로 쓰고 다녔다고 한다. 자동 이혼이 되었고 동생은 알거지로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 남매를 떠안고 불쌍한 홀아비 신세가 되었다. 당장 죽이고 싶도록 분노가 치밀지만 그래도 내가 중병에 걸린 것보다 낫다고 욕 한번 하지 않았다는 천하 호인이다.
눈앞에 태산 같은 일들이 현실이 되었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아이들 육아에 당장 먹고 살 일이 멍에로 씌워졌다. 나도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보태고 언니도 오빠도 도움을 주었다. 부모님은 막내아들이 가엾고 불쌍하여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어머니가 아이들 돌보고 밥도 해주시고 얼마 동안 같이 사셨다. 밉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애 엄마를 오게 해라, 하지만 동생은 어림없다. 모든 게 다 자기 무능이라며 晝耕夜讀주경야독 성실하게 십 년 세월을 보냈다.
동생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아이들도 다 컸고 재혼하라는 집안의 권유, 사람은 있는데 남의 자식 잘 키울 자신이 없다면서 망설인다고 했다. 딸이 애인이 생기니 엄마 되어 주겠다며 만나던 여자가 혼인을 허락했다. 아내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니 이제 사는 것 같단다. 야위던 몸도 차츰 살이 붙고 얼굴이 훤해졌다. 자식들 끔찍하게 챙기고 사위에게 더 없이 잘해주는 장모다.
딸 결혼 시키고 자전거로 어디든 같이 다닌다. “형님 오늘 울산 태화강 대숲에 갔다 왔어요” 사진과 함께 카톡이 왔다. 마음 맞는 새사람 얻어서 행복에 젖어 사는 동생을 응원한다. 올캐는 부모도 동기도 없다. 남편 자식을 자기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착한 여인,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보내주신 선물이라 여긴다. 동생은 인생 공부 제대로 했다며 금쪽같은 아내가 자기의 전부란다.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와 서광이 비치는 황혼길이 아름답다. 호랑이를 만나 공포와 지옥에서 살다가 보들보들 폭신한 양과 사니 구름위를 걷는듯한 동생, 부자도 필요없다. 이대로만 오래 살았으면 한다. 딸의 아이 둘을 전부 산바라지 해 주고 산후조리도 잘 해준 엄마보다 더 나은 계모, 천사가 바로 여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