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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지능과 진화 심리학
저명한 인공 지능 연구자 Marvin Minsky가 시각 인지 메커니즘을 만들어오라고 제자에게 여름방학 숙제를 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진짜로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창기 인공 지능 연구자들의 전망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전자 컴퓨터가 처음 세상에 선을 보였을 때부터 컴퓨터는 사칙연산을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했다. 사칙연산과 같은 단순한 계산뿐이 아니었다.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내는 미분 방정식도 척척 풀어냈다. 초창기에 연구자들은 평범한 인간이 잘 못하는 것들을 컴퓨터가 잘 해내는 것을 보고 자신을 얻었던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도 눈만 뜨면 볼 수 있고, 특별히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곧 말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미분 방정식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어려워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을 컴퓨터가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매우 쉽게 하는 것을 컴퓨터가 곧 해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얼핏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연구가 진행되면서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컴퓨터는 이제 체스 세계 챔피언도 이긴다. 평범한 사람이 세계 챔피언만큼 체스를 두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게 어려워 보이는 것을 컴퓨터가 해낸 것이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던 것을 컴퓨터가 하도록 만드는 것이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다. 여전히 컴퓨터는 시각, 언어와 같이 인간이 별 어려움 없이 해내는 것을 아주 조잡한 수준에서 흉내 내는 정도다. 상당히 정확하게 번역하는 프로그램이 곧 개발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여전히 번역 프로그램은 인간 번역가에 비해 한심한 수준이다. 울퉁불퉁한 표면을 자빠지지 않고 달리는 과업도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다.
인공 지능 연구자들은 “쉬운 것은 어렵고, 어려운 것은 쉽다”고 반 농담조로 이야기한다. 인간이 아주 쉽게 하는 시각, 언어를 컴퓨터로 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인간이 어렵게 배우는 미분 방정식, 체스 등을 구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는 이야기다.
다른 도구의 도움 없이 초음파를 이용해 “보는” 일이 박쥐에게는 아주 쉽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도구의 도움 없이 하늘을 나는 일이 갈매기에게는 아주 쉽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초음파를 이용해서 주변의 정보를 상세히 파악하는 것이 박쥐에게 쉬운 이유는 그 자체가 쉽기 때문이 아니라 박쥐(정확히 말하면 박쥐의 직계 조상)가 그런 일을 잘 하도록 오랜 기간 진화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것이 갈매기에게 쉬운 이유는 그 자체가 쉽기 때문이 아니라 갈매기가 그런 일을 잘 하도록 오랜 기간 진화했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이 기적에 가까운 놀라운 메커니즘을 만들었기 때문에 박쥐나 갈매기에게 그 일이 쉽게 느껴질 뿐이다.
인간은 많은 일들을 아주 쉽게 한다. 어떤 것들은 일 자체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엄청나게 힘든 일임에도 인간이 쉽게 하는 이유는 인간이 그런 일을 잘 하도록 오랜 기간 진화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박쥐와 갈매기가 하는 놀라운 일을 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박쥐와 갈매기는 인간처럼 말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이 시각, 언어 등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잘 모른다. 이럴 때 자신의 주관적 느낌에 의존하게 되면 어떤 과업 자체의 난이도에 대해 엄청나게 오판할 수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말을 하고 인간처럼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어와 추상적 사고력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 보는 것은 개나 소나 다 할 줄 안다. 심지어 물고기도 볼 줄 안다. 그래서 이전부터 보는 것이 쉬운 일인 줄 착각한 것이다.
인공 지능 연구는 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실제로 인간처럼 볼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려고 하는 순간 그냥 눈만 뜨면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수학의 확률과 통계 시간에 순열(permutation)과 조합(combination)을 배운다. 엄밀하게 말하면 순열과 조합은 다른 개념이지만 여기에서는 그 차이까지 따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여기에서는 인지 심리학계에서 흔히 쓰는 조합이라는 용어를 쓰겠다.
tic-tac-toe 게임의 경우의 수는 몇 개인가? 정확한 숫자는 http://en.wikipedia.org/wiki/Tic_tac_toe 에서 볼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대충 따져볼 것이다. 첫 번째 선수는 아홉 군데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두 번째 선수는 남아 있는 여덟 군데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되기 때문에 9*8*7*6*5*4*3*2*1 개의 경우의 수가 나온다. 중간에 끝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보다는 작은 수일 것이다. 9! 이라는 숫자는 컴퓨터에게는 별로 큰 숫자가 아니다. 컴퓨터가 tic-tac-toe 게임을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하는 것은 숙련된 프로그래머에게는 상당히 쉽다.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살피도록 만들면 그만이다. 여기에서 조합적 폭발(combinatorial explosion)은 별로 대단하지 않다.
그렇다면 바둑은 어떤가? 바둑판에 돌을 놓을 수 있는 위치는 19*19=361 군데다. 편의상 모든 바둑이 261 수 만에 끝난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패, 착수 금지 등 골치 아픈 문제들을 무시해 보자. 그러면 경우의 수가 몇 개인가? 361*360*359*358* …… *103*102*101 이다. 361!/100! 은 엄청나게 큰 숫자다. 여기에서 조합적 폭발의 위용이 당당하게 드러난다. 만약 그 엄청나게 많은 경우의 수를 모두 고려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많다면 바둑을 완벽하게 두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전문 프로그래머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프로그램을 돌릴 시간이 조금(?) 부족할 뿐이다.
번역의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편의상 한 단어가 뜻하는 의미의 수가 10 개라고 하자. 그리고 하나의 문장이 10 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하나의 문장의 뜻의 경우의 수는 10의 10제곱 가지나 될 수 있다. 인간은 그 수 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의 의미(때로는 중의적이어서 두 개 이상의 의미일 때도 있다)를 순식간에 알아낸다. 컴퓨터가 사전을 몽땅 외우게(?) 하는 것은 상당히 쉽다. 하지만 상상할 수 있는 이 수 많은 의미 중 하나를 상당히 정확히 골라 내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바둑에서 완벽한 수를 두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우의 수를 몽땅 고려해야 한다. 100 수 연속으로 완벽한 수를 두려면 그 엄청난 경우의 수 중 지극히 작은 부분 집합을 찾아내야 한다. 100 수 연속으로 프로 기사 수준으로 바둑을 두려고 한다고 하더라도 둘 수 있는 수의 집합에서 지극히 작은 부분 집합을 찾아내야 한다.
자빠지지 않고 달리기를 하려고 할 때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인간의 몸에는 수 많은 근육들이 있다. 가능한 근육들의 움직임들의 조합 중에서 극히 소수만 자빠지지 않고 달리는 것이 가능하도록 한다. 인간은 용케도 그것을 찾아낸다. 인간이 하는 어떤 일이든 잘 살펴보면 엄청나게 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생존과 번식으로 향하는 지극히 작은 부분 집합을 찾아낸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많을 것이다.
인간의 여러 감각 기관에는 엄청난 정보들이 쉬지 않고 쏟아져 들어온다. 인간이 말을 배우는 것을 살펴보자. 말을 배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주로 청각 정보를 통해 말을 배운다. 그리고 인간은 다른 인간으로부터 말을 배운다. 이것은 너무 뻔해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보기에 뻔하고 쉬운 것이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것일 수 있다.
말을 배우는 기계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백지론(tabula rasa, blank slate)에서 말하는 범용 학습 메커니즘만 달랑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메커니즘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청각 정보에 주목하자”, “인간의 말에 주목하자”가 뻔하지 않다. 왜냐하면 언어 학습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어떤 선천적 지식 또는 선천적 메커니즘도 없기 때문이다. 그 일반적인 학습 메커니즘은 조합적 폭발 문제에 부닥친다. 인간의 뇌에 전달되는 온갖 감각 정보의 조합에 비교하면 바둑의 경우의 수는 귀여운 정도다. 당장 얼핏 생각해도 인간에게는 청각뿐 아니라 시각, 촉각, 미각 등의 정보로 들어온다. 청각 정보만 따져도 경우의 수는 엄청나다. 인간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소리를 낸다. 물론 시냇물, 천둥, 돌멩이처럼 무생물도 소리를 낸다. 소리를 낼 수 있는 물체의 종류와 19*19 인 바둑판에서 착수할 수 있는 위치의 수를 비교해 보라.
“말을 배우기 위해서는 청각 정보, 그 중에서도 인간의 소리, 그 중에서도 비명, 박치기, 이가는 소리 등이 아니라 말 소리에 주목하라”와 같이 틀(frame)을 제시해 주는 무언가가 이미 장착되어 있지 않다면 말을 배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직 Chomsky가 말하는 보편 문법은 이야기도 안 꺼냈다.
틀 문제(frame problem)라는 용어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지만 여기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틀을 미리 제시해 주지 않으면 조합적 폭발 때문에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정도로 소박하게 정의할 것이다. 틀 문제는 언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조합적 폭발이 언어에만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합적 폭발이 있는 곳에 틀 문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 지능 연구자들이 실제로 인간이 하는 지적인 작업(자빠지지 않고 달리는 것도 겁나게 지적인 과업이다)을 흉내 내려고 하면서 조합적 폭발과 틀 문제를 절실하게 실감하게 되었다.
조합적 폭발과 틀 문제는 하나의 학습 메커니즘만 가정하는 행동주의 심리학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그리고 언어 학습 정도만 인정하고 다른 것들은 거의 모두 하나의 학습 메커니즘이 해결한다고 보는 전통적 인지 심리학에도 마찬가지 이유로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는 것이 (좁은 의미의) 진화 심리학자들의 입장이다.
언어 학습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엄청나게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인지 심리학자들이 동의하며 언어 학습을 위해 설계된 선천적 지식 또는 선천적 메커니즘이 있다는 Chomsky의 주장에 공감한다. 하지만 온갖 문제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이 금방 드러났다. 조금 과장하자면, 조합적 폭발은 모든 곳에서 그 위용을 드러낸다.
질투의 예를 살펴보자.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질투의 선천성을 인정했을 때 자신이 얼마나 기분이 더러워지는지만 따지려고 한다. 나는 질투 메커니즘이 선천적이라는 주장을 봐도 하나도 기분이 안 더러워진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기분 또는 Stephen Jay Gould의 기분이 아니다.
적응적으로 질투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인간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질투하는지를 따져보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질투 문제에 어떤 조합적 폭발이 숨어있는지 점점 더 실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질투 전문가가 아니며 이 글은 질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약간만 살펴보자. 편의상 남자의 입장만 따져보자.
첫째,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교미하면 남의 유전적 자식을 키우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일 위험이 있다. 이것은 위험이다. 따라서 질투는 부정적 감정이어야 한다.
둘째, 여자끼리 아무리 뭔가를 해도 임신이 되지 않는다.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뭔 일을 벌이는지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질투 상황에서는 아내를 더 감시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넷째, 질투 상황에서는 아내의 자식에게 덜 투자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다섯째, 아내가 바람을 많이 피울수록 이혼하는 것이 더 적응적일 가능성이 크다.
여섯째, 연적에게 상을 주는 것보다 공격하는 것이 아내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일곱째, 아내에게 상을 주는 것보다 공격하는 것이 아내가 바람을 피우지 못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덟째, 아내가 다른 남자와 교미했을 가능성이 높을 때에는 아내와 재빨리 교미해서 정자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유리하다.
아홉째, 남의 아내를 위해 대신 질투해주는 것은 자신에게 큰 이득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자신이 남의 아내와 바람을 피웠을 때 그 아내의 남편을 위해 질투를 하는 것이 번식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웠을 때 질투해야 한다.
여기에 조합적 폭발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따져보자. 질투가 통증처럼 부정적인 감정일 가능성도 있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처럼 긍정적인 감정일 가능성도 있고, 별 뚜렷한 쾌-불쾌가 없을 가능성도 있다. 쾌-불쾌의 정도를 따지면 경우의 수는 더 늘어난다. 아내가 바람을 많이 피울수록 더 불쾌해지는 가능성도 있고,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정도와 무관하게 어느 정도의 불쾌로 정해지는 가능성도 있고, 아내가 바람을 적게 피울수록 더 불쾌해지는 가능성도 있다. 이런 식으로 따지다 보면 질투와 쾌-불쾌의 정도와 관련하여 엄청나게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춘기 이후의 남자만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다. 따라서 아내가 다른 여자와 단둘이 떨어져 있을 때, 아내가 여섯 살짜리 남자 애와 단둘이 떨어져 있을 때, 아내가 토끼와 단둘이 떨어져 있을 때, 아내가 나무와 단둘이 떨어져 있을 때, 아내가 돌멩이와 단둘이 떨어져 있을 때, 아내가 시냇물과 단둘이 떨어져 있을 때 질투를 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두 가지(쾌-불쾌의 문제, 누구를 연적으로 인정할 것인가)만 따져도 경우의 수는 엄청나게 많다. 아홉 가지를 다 따지면 경우의 수가 얼마나 많아지겠는가? 그리고 내가 다루지 않은 것들까지 고려한다면?
인간은 이 엄청나게 많은 경우의 수 중 지극히 작은 부분 집합을 용케도 찾아낸다. 남자는 아내가 바람을 더 많이 피울수록 더 질투하며 더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아내가 사춘기 이후의 남자와 단둘이 있을 때에 강력하게 질투하는 경향이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질투 문제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도록 설계된 선천적 지식 또는 메커니즘이 없다면 이런 식으로 질투와 관련된 문제들을 상당히 적응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육체는 전문화된 수 많은 기관들을 통해서 적응적 문제(adaptive problem)들을 해결한다. 그리고 각 기관들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안정되게 발달한다는 의미에서 선천적 인간 본성이다. 심장은 피를 온몸으로 유통시키는 일을 전담하고, 간은 독소를 해독하는 일을 전담하는 식으로 육체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들을 상당히 잘 풀어낸다. 조합적 폭발과 틀 문제를 고려해 볼 때 인간의 뇌 속에는 수 많은 선천적 메커니즘들이 있어 보인다.
사회생물학과 행동 생태학의 전통에서는 인간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런 면을 고려해 볼 때 그런 전통을 행동주의 심리학적 진화 심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심리를 행동주의 심리학자처럼 블랙박스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진화 이론의 논리에서부터 인간의 행동으로 직행하려고 한다.
반면 (좁은 의미의) 진화 심리학에서는 중간에 심리적 메커니즘을 끼워 넣어서 설명하려고 한다. 자연 선택이 심리적 메커니즘을 만들어내고 심리적 메커니즘이 행동을 산출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을 고려해 볼 때 인지 심리학적 진화 심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좁은 의미의) 진화 심리학자들은 진화 심리학을 인지 심리학(또는 컴퓨터 과학)과 진화 생물학의 결합이라고 이야기할 때가 많다.
(좁은 의미의) 진화 심리학자들은 컴퓨터 과학의 용어로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기술하려고 한다. 결국 인간의 마음을 튜링 기계(Turing machine)처럼 기술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마음의 계산 이론(computational theory of mind)이라고 한다.
마음의 계산 이론은 다른 한편으로 강한 인공 지능(strong AI)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마음이 본질적인 수준에서 디지털 컴퓨터와 다를 바 없다면 인간만큼 똑똑한 기계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할 근본적인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인간만큼 수학과 과학을 연구하고, 철학을 하고, 교향곡을 작곡하고, 소설을 쓸 수 있는 기계가 바로 강한 인공 지능이다.
따라서 (좁은 의미의) 진화 심리학은 강한 인공 지능에 대한 희망과 운명을 어느 정도 공유한다.
강한 인공 지능에 대한 초창기의 허황한 믿음이 산산이 깨지면서 강한 인공 지능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었던 것 같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서 출발하여 인간이 할 수 있지만 튜링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Alan Turing은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1950)」에서 이런 주장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The short answer to this argument is that although it is established that there are limitations to the powers of any particular machine, it has only been stated, without any sort of proof, that no such limitations apply to the human intellect.
불완전성의 정리는 튜링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연수에 대한 명제 중에는 튜링 기계가 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도,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튜링 기계의 근본적인 한계이기 때문에 컴퓨터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해결할 수 없다.
강한 인공 지능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던 사람에게 불완전성의 정리는 좋은 소식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불완전성의 정리에서 시작해서 인간이 기계보다 근본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튜링 기계가 풀 수 없는 문제를 인간이 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Douglas Hofstadter는 『괴델, 에셔, 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Go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 1979)』에서 비슷한 테마를 다룬다.
저명한 물리학자 Roger Penrose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두 권의 책을 썼다. 두 번째 책은 첫 번째 책의 후속편이라고 한다.
『황제의 새마음(The Emperor's New Mind: Concerning Computers, Minds, and the Laws of Physics, 1989)』
『Shadows of the Mind: A Search for the Missing Science of Consciousness(1994)』
그는 튜링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인간이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큰 소리 치지만 Drew McDermott는 「Penrose is Wrong」에서 그 증명에 버그가 있다고 지적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버그가 있으면 고치면 되지만 수학 증명에 버그가 있으면 끝장이다. http://www.calculemus.org/MathUniversalis/NS/10/09mcdermott.html
Jerry Fodor는 『The Mind Doesn’t Work That Way: The Scope and Limits of Computational Psychology(2000)』에서 Steven Pinker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과학이 발견한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와 진화심리학의 관점(How the Mind Works, 1997)』를 비판한다. 『The Mind Doesn’t Work That Way』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지만 핵심 테마 중 하나는 인간에게는 튜링 기계를 뛰어 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Fodor는 Penrose처럼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끌어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둘의 결론은 상당히 비슷하다. Pinker는 「So How Does the Mind Work?」에서 Fodor의 비판을 반박했다.
http://pinker.wjh.harvard.edu/articles/papers/So_How_Does_The_Mind_Work.pdf
John Searle은 「Minds, Brains and Programs(1980)」와 「Can Computers Think?(1983)」에서 중국어 방(Chinese room)의 비유를 통해 인공 지능보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나은 점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별로 영양가가 없어 보인다. 그의 비유가 왜 인지 심리학계에서 중요한 화두로 인정 받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튜링 테스트와 중국어 방」에서 그 문제를 간략히 다루었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335
튜링 기계보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낫다고 주장하는 학자는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학자를 알지 못한다.
아직까지 인공 지능은 단순 작업만 잘 한다. 체스 세계 챔피언을 컴퓨터가 이겼다는 사실 자체만 보면 아주 놀라워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보면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backtracking과 같은 무대뽀 방식을 사용해서 인간을 이겼다. backtracking이란 모든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비교하는 것을 말한다. alpha-beta pruning 등의 방법을 사용하면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살펴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변함이 없다.
backtracking 같은 방식이 tic-tac-toe와 같이 조합적 폭발이 미미한 곳에서는 잘 통한다. 그리고 체스처럼 조합적 폭발이 상대적으로 작은 곳에서도 그럭저럭 통한다. 바둑은 체스에 비해 경우의 수가 훨씬 더 많지만 인간이 하는 시각, 언어, 과학 연구 등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컴퓨터는 조합적 폭발이 상대적으로 작은 분야에서 대대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다.
이전에는 없던 상대성 이론을 제시했던 아인슈타인만큼 똑똑해지려면 무대뽀 방식만으로는 턱도 없다.
우리 조상들이 진화하면서 엄청나게 오랜 기간 동안 엄청나게 많은 개체들이 번식 경쟁을 벌였다. 그것은 자연의 실험실이었으며 자연 선택을 통해 더 잘 적응한 것들이 선택되었다. 자연 선택은 때로는 점점 더 복잡한 쪽으로 진화를 이끄는데 인간의 경우는 뇌가 그런 식으로 진화했다.
인간은 아직 기계가 흉내도 못 낼 일들을 해 내고 있다.
첫째, 인간의 뇌에는 수 많은 정교하고 복잡한 선천적 모듈들이 장착되어 있다.
둘째, 기계도 학습을 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학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셋째, 인간의 뇌에는 수 많은 프로세스들이 병렬 처리되고 있지만 잘 다운되지 않으면서 상당히 잘 작동한다.
인공 지능 연구자들이 독립적으로 연구해서 인간만큼 똑똑한 기계를 만들어내지 못할 근본적인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미 잘 작동하는 인간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면 인간을 흉내내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인공 지능 연구와 심리학 연구는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아야 한다. 그래야 둘 모두 좀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 이미 자연 속에는 놀라운 해법들이 널려 있다.
Caenorhabditis elegans라는 편형동물(flatworm)의
C. elegans의 회도로가 완성되었을 뿐 아니라 그 회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즉 회로들의 의미까지도 어느 정도 밝혔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C. elegans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를 어느 정도 알게 된 것이다.
지렁이의
개미의 뇌는 인간의 뇌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작다. 하지만 개미도 어엿한 생물이다. 아직까지 인간이 만든 인공 지능은 자활하지 못한다. 반면 개미는 스스로 생존하고 번식한다. 즉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문제를 모두 풀어낸다. 이런 면에서 개미는 현존하는 어떤 로봇에 비해서도 훨씬 우월하다. 인공 지능 연구자들은 개미의 뇌로부터 배워야 하며 이미 개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아낼 수 있을 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한 것 같다.
현재 인공 지능 연구자들과 심리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으로부터 배우려는 의지인 것 같다. 심리학과 인공 지능은 너무 인간에게 쏠려 있다. 아직 우리는 개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할 때다. 개미에 대해(그것이 어렵다면
지렁이에 대해) 대부분 알게 되었을 때 좀 더 야망을 키워서
인간의 뇌를 수 많은 모듈들로 쪼개서 살펴보려고 하는 진화 심리학을 환원론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환원론 맞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인간의 신체를 수 많은 기관들로 쪼개고 각 기관을 하위 부품들로 쪼개서 살펴보는 것도 환원론이다. 그래서 생리학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나?
이미 생리학은 상당히 많이 발전해서 각 부품들의 기능들이 상당히 상세하게 밝혀졌을 뿐 아니라 각 부품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도 상당히 많이 밝혀졌다. 전체론(holism)은 환원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우선 심장과 허파를 구분하고 그 다음에 상호작용에 대해 따져야 한다. 환원의 과정을 생략하면 “균형이 깨졌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한의학의 엉터리 전체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뇌에 대해 연구하는 진화 심리학은 아직 각 부품의 기능에 대해서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각 부품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전체를 이루는지 알아내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앞서간 것이다. 그렇다고 환원론을 거부한다면 “그냥 영혼이 있다”는 식의 엉터리 전체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미와 같은 ‘하등 동물’ 연구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미는 자활할 수 있는 전체다. 개미의 뇌 속에 있는 여러 부품들은 전체를 이루며 상당히 조화롭게 문제를 해결한다. 아마 여러 가지를 병렬 처리할 것이다. 개미와 인간은 너무나도 다르다. 하지만 개미의 뇌 속에 있는 각 부품들이 어떻게 전체를 이루는지 속속들이 밝혀낸다면 인공 지능 연구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엄청난 것들을 알게 될 것 같다.
인공 지능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은 컴퓨터가 시키는 일만 하기 때문에 무엇을 할지 항상 예측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공 지능이 인간만큼 똑똑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컴퓨터는 시키는 일만 하기 때문에 무엇을 할지 항상 예측할 수 있다?」를 참조하라.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333
실수를 할 수 있는 능력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찾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은 왜 실수를 하는가?」를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