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이 끝나고 보름 쯤 지난 6월 30일 서방 각국의 언론인 중 유일하게 김정일 위원장과 인터뷰한 언론인이 있었다. 재미 한국 언론인 문명자 주필은 5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가 계속 평양에 체류했다. 김정일과 단독회견을 하기 위해서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6월 30일 오전 원산초대소에서 문명자의 인터뷰에 응했다. 파격적인 단독회견이었다. 회견에는 김용순 아태위원장이 배석했다. 이날 인터뷰는 6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문명자는 김일성 주석 생전에 몇 차례 인터뷰한 베테랑급 언론인이다. 인터뷰 중 김대중ㆍ이희호와 관련된 내용을 발췌한다.
문명자 :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비행장까지 나가서 맞이하셨는데 이는 외교 의전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 어떻게 하여 그런 결심을 하셨습니까?
김정일 : 내 스스로 결심했습니다. 통일 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발언이나 통일운동가 구속, 장기수를 돌려보내지 않는 일 등이 보도되어 사실 김대통령에 대한 인민들의 인상이 좋지 않았습니다. 김대통령이 어려운 결심을 해서 통일을 위해 평양까지 오시는데 분위기가 그래서는 안 되겠기에 예정이 없이 공항에 나갔습니다.
문명자 : 김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김정일 : 이번 수뇌급회담에서 합의된 5대 공동선언은 민족의 통일대헌장이라 할 정도의 의의를 가집니다.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실천돼야 합니다. 나는 김대통령께서 이를 차근차근 설천에 나가려는 의지와 성의를 가진 분이라 믿습니다.
문명자는 인터뷰 기사에서 김위원장의 이희호와 관련한 발언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김위원장은 “사람의 5대 복 중 하나가 처복이라는 데 김대통령은 처복이 있는 분이다”라면서 이희호 여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체구도 크지 않은 분이 여성계 지도자로서, 또 남편의 석방을 위해 그처럼 강인하게 투쟁했다는 데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문명자 : 6월 14일 만찬석상에서 김위원장께서 이희호 여사를 김대통령 옆으로 부르셨지요?
김정일 : 그날은 한국측 초청만찬이었기 때문에 자리 배치를 남측에서 했습니다. 제가 가보니 남자 여자 갈라서 앉혔는데 이희호 여사도 여자들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여사를 모셔오라고 말했지요. “이거 통일을 하자는 뜻입니까. 안 하자는 뜻입니까. 가족을 갈라 이산가족을 만들어 놓아서야 되겠습니까?”
김위원장은 다시 물었다.
“김대통령은 가톨릭신자이신데 이희호 여사는 가톨릭입니까? 기독교신자입니까?”
문명자 : 여성지도자가 남편따라 개종하면 되겠습니까. 이여사는 기독교신자입니다.
문명자 : 그동안 역사를 보면 남북관계가 전향적으로 풀렸다가도 다시 대결구도로 돌아간 일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현재도 그런 점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는데 6ㆍ15공동선언의 실현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정일 : 이번 5대 공동선언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합니다. 비전향 장기수 송환시기가 합의보다 늦춰지는 등 다소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5대 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문명자 : 남쪽에서는 김위원장님의 서울 방문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 언제쯤으로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김정일 : 5대 공동선언의 실천과정을 보면서 결정할 것입니다.
문명자 :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즉각적인 철수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김위원장께서 완전한 동의는 아니나 일부 납득했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정일 : 그동안 미군더러 나가라고 했지만 그들이 나가겠습니까. 우선 미국 스스로가 생각을 달리해야 합니다. 그들은 분단에 책임이 있는만큼 통일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지난날 닉슨도 카터도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했는데 주한미군 문제는 우선 그들 스스로가 우리 민족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방향을 알아서 결정해야 합니다. (주석 13)
주석
13) <월간 말>, 2000년 8월호, 56~61쪽,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