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중락은 1960녀대 울;나라 최초의 idol이자 최초의 원조 "오빠"라고 . .
그가 죽자 , 수많은 소녀 팬들이 그의 장례식장을 메웠고 그의 무덤에는 수많은 여성 팬들이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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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중락(車重樂, 1942년 ~ 1968년 11월 10일)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68년 11월 10일을 기하여
27세( 만 26세 ) 젊은 나이에 뇌막염으로 요절하였다.
차중락은 1942년 경성부에서 8남 3녀 중 셋째
아들(3남)로 태어났다.
차중락의 부친은 경성 보성전문학교 마라톤 선수이자 큰 인쇄소를 경영하여 집안이 매우 부유하였고
모친은 경성여자고등상업학교 단거리 선수였으며, 시인 김수영은 차중락 큰이모 아들이었으니 차중락
그와는 이종사촌간이었다.
사촌형 차도균(키 보이스 구성원 중 일원)의 권유로 1963년 키 보이스에 합류했다. 그는 미8군 무대에
오른 첫날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시민회관 공연때는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나갔는데 이 모습까지 비슷하다하여 '한국의 엘비스'로 각인
되는 계기가 됐다.
차중락의 애인은 에바 가드너와 비교될 만한 미인이었으며 키보이스 멤버인 윤항기의 훗날 1980년대에
발간한 수필에서는 이화여자대학교 메이퀸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녀와 차중락의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66년 가을 어느 날, 차중락의 애인은 미국으로
떠나 버렸다.
그리고 그 해(1966년) 11월 10일, 엘비스 프레슬리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번안 및
편곡한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 전국에서 크게 히트하였다.
1968년 11월 10일, 차중락은 서울의 어느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뇌막염으로 쓰러져 사망하였다.
차 중락 : 낙엽따라 가버진 사랑
Elvis Presley : Anything That's Part Of You
"Anything That's Part Of You"
I memorize the note you sent
Go all the places that we went
I seem to search the whole day through
For anything that's part of you
I kept a ribbon from your hair
A breath of perfume lingers there
It helps to cheer me when I'm blue
Anything that's part of you
Oh, how it hurts to miss you so
When I know you don't love me anymore
To go on needing you
Knowing you don't need me
No reason left for me to live
What can I take, what can I give
When I'd give all of someone new
For anything that's part of you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잎 단풍으로
곱게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을
고이 간직하렸더니
아아 그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옆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꿈이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아아아아 그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꿈이
낙엽따라 가버렸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