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최용현(수필가)
‘왕과 사는 남자’(2026년)는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이후 단종의 청령포 유배 생활과 영월 광천골 촌장 엄흥도와 주민들의 생활상, 금성대군의 역모 사건을 다룬 장항준 감독의 첫 사극 영화이다.
이 영화는 2019년에 기획되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창고에 묻혀버렸다. 그 당시 CJ에서 일하던 임은정이 초고를 쓴 황성구 작가와 함께 이 작품을 들고나와 2023년 (주)온다웍스를 설립하고 첫 번째 영화로 만들었다. 장항준 감독은 단종을 다룬 소재의 신선함과 아내 김은희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연출을 결심했다고 한다.
제작비 105억 원을 투입하였고 2026년 2월 4일에 개봉하여 2026년 4월 18일 현재 관람객은 1,655만 명으로 ‘명량’(2014년)의 1,761만 명에 이어 국내 영화 2위를 기록하였다. 수익은 국내에서 1억 3백만 달러를 벌어들여 국내 영화 1위를 기록하였고, 국내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는 1억 7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백상예술대상 7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관객들의 열화같은 호응에 비해, 이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가는 박한 편이다. 씨네21 평가에서 평론가 7명으로부터 10점 만점에 평균 6.57점을 받았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아시아 콘텐츠를 집중 조명하는 우디네극동영화제에 초청되었다. 그 외에 미국과 캐나다, 호주, 대만, 뉴질랜드 등에서도 개봉되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어린 단종 이홍위(박지훈 扮)는 조선을 뒤흔든 계유정난으로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등된다. 계유정난의 핵심 인물 한명회(유지태 扮)는 노산군이 완전히 잊힌 사람이 되게 하려고 산골 오지에 유배 보낼 곳을 찾는다.
이 무렵, 청령포가 있는 영월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유해진 扮)는 예전에 지체 높은 양반을 유배지로 모신 덕분에 이웃 노루골이 부유한 마을이 된 것을 알고, 다시 귀한 신분의 양반이 이곳으로 유배를 온다면 먹고 살기 힘든 광천골도 부자마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험하고 외딴 산골짜기라는 이유로 광천골의 청령포가 노산군의 유배지로 결정된다. 노산군은 궁녀 매화(전미도 扮)와 함께 청령포에 도착한다. 엄 촌장이 부푼 꿈으로 맞이한 유배된 양반은 왕위에서 쫓겨난 노산군이었다. 그의 정체를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크게 두려워하지만, 엄흥도가 앞장서서 그들을 진정시킨다.
노산군은 사육신들이 고문당하다가 처형된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며 절벽에서 몸을 던지려 하지만, 엄흥도가 가까스로 그를 구해낸다. 그의 모든 일상을 감시해야 하는 촌장은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노산군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다. 그 무렵 노산군의 숙부인 금성대군(이준혁 扮)이 비밀리에 연락을 보내와 왕위를 되찾기 위한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알린다.
금성대군을 감시하고 있던 한명회는 노산군 복위 음모를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노산군에게 글을 배우는 엄흥도의 아들 태산이 노산군의 거처에 들어가다가 한명회의 군사들에게 잡혀 심한 매질을 당한다. 노산군이 호통을 치자, 한명회는 ‘노산 저것이 아직도 지가 왕인 줄 아는구나!’하며 조롱한다. 노산군은 거사에 참여하겠다며 금성대군에게 답신을 보낸다.
거사일 밤, 노산군은 거처를 빠져나와 금성대군과 합류하려 한다. 엄흥도는 노산군을 막으려 하다가, 그를 약속 장소까지 호위한다. 그러나 그곳에 한명회의 군사들이 미리 매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붙잡히고 만다. 노산군은 엄흥도와 광천골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그를 배신자로 몰아세우지만, 금성대군이 체포되면서 거사는 실패로 끝난다.
사약이 내려진다. 금성대군은 영월을 향해 절을 올린 뒤 사약을 마시고, 노산군은 엄흥도에게 마지막 부탁을 한다. 엄흥도는 눈물을 흘리며 방문 밖에서 활줄로 노산군의 목을 조른다. 향년 16세, 영월에 유배된 지 4개월 만이었다. 노산군의 시신은 동강에 버려지고, 궁녀 매화는 동강에 몸을 던진다. 노산군의 시신을 매장하면 3족을 멸한다는 훈령이 내려졌지만, 엄흥도는 시신을 건져 장례를 치르고 사라진다.
노산군 이홍위는 죽은 지 242년이 지난 숙종 때 다시 단종으로 복위되었고, 의로움을 지킨 엄흥도의 묘 역시 단종이 묻힌 영월에 있다는 자막과 함께 영화가 끝난다.
MBC 사극 ‘조선왕조 오백년’ 이후 한명회는 왜소하면서 볼품없는 외모로 묘사되곤 했으나, 장항준 감독은 이 이미지를 깨고 싶어서 유지태에게 그 역할을 맡기면서 다른 사료 속의 기골이 장대한 한명회의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 유지태는 촬영 당시 100kg까지 근육을 키운 상태였고, 우렁찬 발성으로 극을 압도하였다.
2026년 3월, 엄흥도의 후손이면서 2019년에 사망한 연극배우 엄모 씨가 쓴 시나리오 ‘엄흥도’의 초고(草稿)가 이 영화와 비슷하다면서, 유족들이 표절 의혹을 제기하며 제작사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들은 금전적 보상보다는 아버지의 이름이 원작자로 들어가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작사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순수창작물’이라며 반박하였다.
영월의 청령포가 관광지여서 촬영이 어렵게 되자, 제작진은 유사하게 생긴 지형을 찾아서 세트장을 짓고 촬영에 임했다. 그런데 그곳은 법적으로 건축 불가능한 지역이라 촬영 후에 세트장을 철거하고 원상 복구하였다. 광천골의 부흥을 추구했던 엄흥도의 소원이 600년이 지나서야 이뤄지고 있다. 요즘 영월은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연일 들썩이고 있다고 한다.
‘왕의 남자’(2005년),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에 이어 이 영화까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제목에 ‘왕’과 ‘남자’가 들어간 한국 영화는 전부 천만 관객을 돌파한다는 공식이 생겼다. 세 편 모두 조선시대에 폐위된 국왕을 다룬 사극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