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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에스겔-19 계시를 대하는 자세(에스겔 43장 10-12절)
성경말씀은 에스겔서 43장 10절에서 12절까지 봉독합니다.
[에스겔 43장]
10 인자야 너는 이 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11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12 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에스겔서를 우리가 꽤 오랜시간에 걸쳐서 같이 상고해 왔는데, 오늘 저녁에 우리가 보는 부분이 40장부터 48장까지, 굉장히 많은 분량이죠.
왜 많은 분량을 다루느냐 하면 아무리 봐도 모르니까..
신구약을 통틀어서 이 부분이 아마 제일 난해하고 또 해석이 안 되고, 적용도 안되고 그런 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저만 어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학자 주경학자 설교자 할 것 없이 누구든지 이 부분은 참 애매하다.
그래서 해석하기 참 어려운 그런 부분인데,
40장을 펴봅시다. 40장 1절을 보면,
[에스겔 40장]
1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 오 년이요,
25년 된 해라면 여러분 계산을 해 보세요.
BC597년에 사로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25년을 빼면 얼마죠? BC572년경 쯤 되겠죠.
그런 정도인데, 그 때에,
.. 성이 함락된 후 십 사 년 정월 십 일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그러니까 이상 중에 꿈도 생시도 아닌 어떤 이상중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갔다는 거죠.
거기 이스라엘 땅으로 갔다는 곳에 줄을 그으시고..
2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 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그것은 나중에 내용을 읽어가다보면 우리가 예루살렘 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예루살렘 땅이 해발 800고지쯤 됩니다.
해발 800고지니까 상당히 높은 산이죠.
여기 무학산도 해발 800m 안 되죠.
무학산이 해발 얼마죠? 762m. 정확하신 분이 있구만..
그보다도 50m 더 높은 그런 꼭대기에 예루살렘 도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높은 도시가 헤브론이예요. 헤브론..
그 지역이 더운 지역이기 때문에 산 꼭대기에다가 도시를 만듭니다.
한국에는 산꼭대기에 만든 도시가 하나도 없죠?
예를 들어서 부산 같은데에는 산꼭대기는 달동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어요.
사실 달동네가 아니고 원래 선진국에 가면 높은데 바다가 잘 보이는 데는 부자들만 사는 곳이예요.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지역에 가면 어디를 가도, 산호세 지역에 가면 부자들만 사는 곳인데, 부자들이 평지에 살지 않습니다.
저 산 능선에.. 그러면 태평양이 바라보이는 그런 높은 곳에 집을 짓고 살아요.
대개 더우면 위로 올라가면 선선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성을 이야기 하는데, 동쪽문 그리고 남쪽문 그리고 북쪽문이 있다. 하고 서쪽문은 없고, 성전쪽 문이 있다 그런 말을 하고 있어요.. 40장 전체를 보면..
그러면서 이 이상중에 보이는 이 성이 성과 성전과 또 땅을 나눈 것과 여러 제도 이런 것들을 쭉 말씀해 가시는데,
41장에 보면,
[에스겔 41장]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에 이르러,
하면서 성소가 나오고,
41장 4절을 보면,
4 그가 내전을 척량하니 장이 이십 척이요 광이 이십 척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지성소니라 하고
성소도 있고 지성소도 있다는 거야.
그 장소는 예루살렘이고..
성이 있는데, 동편 남편 북편 그리고 성전쪽 문이 있고 이렇게 되어 있으면서,
거기 성소도 있고 지성소도 있다. 하는 것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이것은 다른 어떤 것을 비유한다든지 어떤 상징한다든지 하는 것에 해당이 안 되고, 그냥 예루살렘성을 다시 재건을 할 어떤 설계도, 아직 설계도까지는 아니라도 재건을 할 어떤 구상 혹은 이상.. 이런 것을 본 거죠.
그리고 42장에 보면, 42장 13절에,
[에스겔 42장]
13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편 남편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서 먹을 것이며,
그러니까 제사장들이 있어요. 제사장들..
만약에 천국에서 같으면 제사장들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한분이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한 분만 있고, 땅이 예루살렘 땅이고 거기에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다는 것은,
여러분 예수님 이후 같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순간에 지성소는 이미 다 사라집니다.
휘장이 찢겨져서 오픈 되어버리고 했으니까, 이제는 우리가 여기 지성소가 나온다는 것만 해도, 성소나 지성소가 나오는 것만 해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후의 교회라든지 무슨 천년왕국이라든지 아니면 하늘의 되는 지성소, 하늘의 어떤 성전..
이렇게 볼 수 없는 것이 아까 구체적으로 땅이 예루살렘이고..
거기 제사장들이 있고 또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고 지성물을 제사장들이 먹는 방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43장 6절에 가서 보면,
[에스겔 43장]
6 들은즉 누구인지 전에서 내게 말하더니 사람이 내 곁에 서서
7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그러니까 성전이라는 것을 두고 말할 때, 내 보좌의 처소 곧 내 발을 두는 곳이다.
..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
그러니까 이것은 이스라엘 족속과 관계된 것이지, 오늘 우리 교회와는 아무 상관없는 내용이예요.
이스라엘 족속과 관계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제가 짧은 시간에 40장부터 48장까지를 아홉장을 다 정리할려고 하는 겁니다.
9절 보세요.
9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거하리라
여기 보면 ‘어떻게 어떻게 하면’ 이라고 하는 조건적 약속이예요.
조건적 약속.. 이런 것이 성경에 몇번 나오는 얘긴데,
‘너희가 이렇게 이렇게 하면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할 것이고, 너희가 이렇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도 이렇게 하지 않겠다.’ 하는 그런 조건적 언약들이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에 다시 봅시다. 10절,
10 인자야 너는 이 전을,
이상으로 보여준 그 전을,
..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하면서,
11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거기 줄을 그으세요.
역시 조건적 언약이죠.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하고 조건이 걸려서,
..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그러니까 어떤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만 허락되는 그런 계시요 그런 이상이야.
만약에 그들이 이런 에스겔이 이런 이상을 보여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얘기예요.
그리고 나중에 끝까지 읽어보면 ‘아하 이것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이상이구나’ 하는 것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루어질 뻔 했었는데, 그들이 이런 계시를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주시는 이런 계시를 겸손하게 겸허하게 진지하게 애통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해서 이루어질 뻔 했다가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운 계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는 사람이 저 말고 또 있는지 모르겠는데, 어떻든 저는 그렇게 봐요.
왜냐하면 여기 쭉 읽어보면 이대로 안 이루어졌거든요. 에스겔 이후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에 바벨론 포로에 돌아오는 것은 지금부터 36년, 에스겔이 이 계시 받은 이후 36년 지나야 돼요.
BC572년이죠.
BC536년에 돌아오니까.. 맞습니까?
BC536년에 돌아오니까 BC572년에 이 계시를 받았다면 또 36년이 남았잖아요..
그러니까 에스겔이 이 계시를 받은 후 36년 후에 이들이 돌아오는데, 돌아와서 건축했던 그 성전이 이런 모습으로 안 되었고, 그 성도 이런 모습의 성이 안 되었고, 토지분배도 여기 약속한 것처럼 그렇게 분배가 안 되었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볼 때, 예수님때까지 안 이루어졌고, 오늘까지 안 이루어졌거든요. 지금까지 한번도..
그렇다면 어떻게 봐야 되느냐 하면, 그들이 정말 겸허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죄를 뉘우치고 자기 스스로 부끄러워하면서 이 계시를 겸손히 받아들였더라면 굉장히 영광스럽게 이런 모습으로 회복될뻔 했었는데, 계시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먹지 않아서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한 계시에 불과하다..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우리와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과 상관있는 계시예요.
이런 것은 간단히 그 정도만 하고 넘어가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에 어떤 그런 자세와 별개 문제니까요..
그 다음에, 43장 15절에 보면,
15 그 번제단 윗층의 고가 사 척이며 그 번제하는 바닥에서 솟은 뿔이 넷이며
제단을 보면, 번제하는 제단을 보면, 이쪽에도 뿔이 있고 그 제단 네 모서리에 뿔이 나와 있어요.
소 뿔처럼 뿔이..
그런데 그것이 옛날 솔로몬이 만들었을때도 그런 것이 있었거든..
지금은 다 없어졌는데, 새로 만든 번제단에 꼭 같이 뿔이 나와있는 그런 번제단을 얘기해요.
그래서 이것은 전혀 신약과 관계가 없고, 신약 이전 다시 말하면 에스겔 당시의 한 36년 후에 잘만 했다면 이루어질 뻔 했던 그런 계시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18절,
1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제단을 만드는 날에 그 위에 번제를 드리며 피를 뿌리는 규례가 이러하니라
자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이후의 일이라면 번제단을 만든다든지 피를 뿌린다든지 이런 의식은 없는 겁니다. 그렇죠?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것이 아직도 있다는 것은 구약시대를 말하는 것이고, 구약시대를 말하면 에스겔이 지금 포로된지 25년 된 그 해인데, 36년 있다가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면, 그 때 일이지, 그 때 이루어질 뻔했던 이상일 뿐이지,
우리가 이것을 가지고 세세히 자자구구 절절이 다 해석해서 우리 삶에 적용할만한 그런 것은 많지 않습니다.
단, 계시를 대하는 자세가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에게 보여졌을 때, 늘 겸허하고 우리 죄를 슬퍼하고 애통하는 그런 마음의 자세는 필요하다는 거죠.
19절,
19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를 가까이 하여 내게 수종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너는 어린 수송아지 하나를 주어 속죄 제물을 삼되
이것은 제사장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 모두가 다 제사장이다’ 그런 얘기가 아니고, 레위 자손 중에서 아론의 자손 이렇게 하지 않고, 이제는 사독의 자손들이 제사장 직을 이어간다는것만 해도, 이들이 사독의 자손들이 나중에 예수님때까지 이어오면서 사둑가이, 사둑가이가 사두개야 사두개..
그래서 사독 자손들이 제사장 직을 이어간다는 말씀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44장에 가면 왕의 출입하는 제도가 언급 돼요.
43장 3절에,
[에스겔 44장]
3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
그래서 왕이 출입한다는데, 오늘 우리는 왕이 예수님 이외에 다른 왕은 안 되잖아요.
여기 지금 육체를 가지고 있는 성소에 와서 음식을 먹고 나가는 어떤 그런 제도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이루어질 뻔 했었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얘기라는 거죠.
그 다음에, 44장 9절에 가서 보면,
9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이런 것도 구약의 제도죠.
이방인이라는 사람들이 구별되고 차별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이것은 구약이라 할 수 있겠죠.
44장 15절 봅시다.
15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역시 사독의 자손들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 때부터 그랬죠.
다윗 때부터 제사장 아히멜렉이나 아비아달 이런 사람들은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한다든지 아도니아의 반역에 가담했던 사람들인데, 사독 자손들은 다윗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거야..
그 이후에는 사독의 자손들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서 그런 흔적이 있었고, 또 언급되고 있는 거죠.
그 다음에, 20절에,
20 그들은 또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
여러분 보세요. 제사장들은 빡빡 깎으려고 해도 안 돼.
스킨 헤드(skin head)라고 해서 중대가리처럼 하면 안 된다는 거야.
그리고 지나치게 장발족이 되어도 안 돼.
그것 다 잘못된 거야.
머리를 다 밀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도 안 돼.
그래서 머리를 적당하게 깎기만 하라..
21절에,
21 아무 제사장이든지 안뜰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
22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 것이며
제사장 처신규례가 나오는데, 이것은 레위기 21장에 있는 내용과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그대로 구약의 연장선상에서 하시는 말씀이죠.
그 다음에, 24절에 보면,
24 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여전히 내 규례대로 하는 것은 레위기라는 재판법을 따라서 재판한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그대로 구약입니다. 그대로..
그리고,
.. 내 모든 정한 절기에는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이며,
그리고 절기도 그대로 구약의 절기를 그대로 지키라는 것이고,
.. 또 내 안식일을 거룩케 하며
안식일도 그대로 언급되고 있죠.
25 시체를 가까이 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가지 아니한 자매를 위하여는 더럽힐 수 있으며
그 다음에, 45장 1절 보세요.
[에스겔 45장]
1 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을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지니,
그러니까 땅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는데, 이집트부터 해가지고 저 하솔 위에까지 다 땅을 차지한다고 되어 있어요.
경계가..
여기 자세하게 집에 가서 읽어보면 남편경계는 어디까지이고, 북편경계는 어디까지이고, 서편경계는 대해 지중해라고 하는데, 그 땅을 나눌 때 아까 에스겔이 보여준 성전 있는 산의 일부분은 하나님께 구별된 땅이 있다는 거야.
그리고 하나님께 구별된 땅이 있고, 레위인들에게 구별된 땅이 있고, 그리고 왕에게 돌아갈 땅이 얼마 있다.
이렇게 딱딱 구분을 했어요.
땅을 분배한다고 하는데,
그리고 그 나머지 가지고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 해 줍니다.
그 땅 나누는 얘기를 하는데, 제가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이렇게 열두 지파별로 땅을 나눈 것을 보지 못했거든요.
우리가 다음 시간부터 에스라 느헤미야서를 볼거거든요.
거기 보면 땅 나누는 이야기가 나와야 되는데, 안 나와요.
그래서 이런 것을 보면, 에스겔에게 보여주시기는 했지만, 그 계시를 받아들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세가 되먹지 않아서 이루어질 법도 했던건데, 이루어지지 못한 계시다...
거참 설교하기가 어려워요. 뭘 또 해야 되느냐? 그러면..
그렇지만 성경에 있으니까 그냥 간과할 수 없어요.
그래서 참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전에도 이 부분을 설교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던건데, 설교할 때 마다 이 부분은 늘 고민이 됩니다.
그 다음에, 45장 9절을 봅시다.
9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아,
이스라엘 백성들 국민들만 치리하는 어떤 치리자들이 있다는 거죠.
.. 너희에게 족하니라 너희는 강포와 겁탈을 제하여 버리고 공평과 공의를 행하여,
정치라는 것은 공평과 공의를 행해야 돼요.
공의라는 것은 공평과 정의. 공평과 정의를 행해야 돼요.
.. 내 백성에게 토색함을 그칠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0 너희는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밧을 쓸지니
그러니까 저울은 무게를 다는 것이고, 에바라고 하는 것은 곡식을 되는 도량형이고, 밧 하는 것은 액체를 담는 무슨 리터같은 것..
요새 석유 1리터 이런 것처럼 액체를 담는 거예요.
곡식이나 가루를 담는 것은 에바, 저울은 중량, 액체를 담는 것은 밧..
그런 도량들을 공평한 것을 쓰라..
11 에바와 밧은 그 용량을 동일히 하되 호멜의 용량을 따라 밧은 호멜 십분지 일을 담게 하고 에바도 호멜 십분지 일을 담게 할 것이며
12 세겔은 이십 게라니 이십 세겔과 이십 오 세겔과 십 오 세겔로 너희 마네가 되게 하라
그렇게 화폐 단위도 정확하게 지시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천국이라 할 수 없겠죠.
천국에 저울로 달고 그런 것은 없어요.
그래서 이것은 그냥 구약 시대에 예수님 이전, 에스겔 시대에 이루어질 뻔 했던 그런 이야기라고 봐야 되겠죠.
13절부터 보면,
13 너희의 마땅히 드릴 예물이 이러하니 밀 한 호멜에서는 에바 육분지 일을 드리고 보리 한 호멜에서도 에바 육분지 일을 드리며
14 기름은 정한 규례대로 한 고르에서 밧 십분지 일을 드릴지니 기름의 밧으로 말하면 한 고르는 십 밧 곧 한 호멜이며(십 밧은 한 호멜이라)
이렇게 해서 왕에게 세금으로 낼 것을 이야기합니다.
17절,
17 왕은 본분대로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절기에 드릴지니,
그래서 월삭도 나오고 안식일도 나오고 정한 절기. 이런 것이 전부 다 옛 언약의 연장선상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18절,
1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정월 초 하룻날에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를 취하여 성소를 정결케 하되
19 제사장이 그 속죄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전 문설주와 제단 아랫층 네 모퉁이와 안뜰 문설주에 바를 것이요
이런 것은 전부 다 옛 언약이죠.
21절,
21 정월 십 사 일에는 유월절 곧 칠 일 절기를 지키며 누룩 없는 떡을 먹을 것이라
유월절에서 이후 7일은 무교절이라고 해서 누룩없는 빵을 먹으라. 이것 역시 구약의 율법이죠.
그 다음에 46장에는 안식일이 언급되고 있고, 또 월삭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전체가 옛 언약의 연장이죠.
그리고 백성의 대표로서의 왕에 대한 이야기는 46장 8절 이하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왕이 어떤 백성들에게 독재적 전횡을 하지 못하게 하는데, 46장 18절 보세요.
[에스겔 46장]
18 왕은 백성의 기업을 취하여 그 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할지니 왕이 자기 아들에게 기업으로 줄 것은 자기 산업으로만 할 것임이니라,
자기 아들에게 준다해가지고 뭘 빼앗아서 주고 하면 안 된다는 거야. 왕이 자기 것으로 가지고 해야 한다는 거죠.
.. 백성으로 각각 그 산업을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권력이 있다해가지고 아합처럼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아 가지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권력이 있어도..
그렇게 하면 백성들이 흩어져 갈 수 있으니까..
저는 왕뿐 아니라 우리 목회자들도 성도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줘가지고 교회에서 신앙생활 못하게 흩어지게 하는 그런 것 곤란합니다.
그런 것 목표를 위해서 성도들 집을 끌어다가 전당을 잡혀가지고 나중에 갚지도 못하게 하는..
이런 전화가 가끔 와요.
에스겔서를 안 봐서 그래요..
그런 것은 신앙은 놔두고라도 인격적으로도 그러면 안 돼요.
정치도 우리가 잘못하면 교회가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되는데, 교회가 그런 짓 하면 안 되죠.
그 다음에, 47장에 보통 우리가 부흥강사들이 옛날에 많이 써먹던 물이 문지방에 나오다가 발목에 오르고 허리에 오르고 하는데, 전혀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우리와는 아무 소용없는 소리야..
우리와는 아무 관계있는게 아니고, 예루살렘에서 그런 하나님께서 멋있게 해가지고 예루살렘에서 물이 콸콸 터져나와서 그 물이 아라바로 내려가서 그 물이 요단으로 흘러내려서 사해 바다에 고기가 펄펄 뛰게 이렇게 할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일이 이루어졌어요? 안 이루어졌어요?
안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이루어지기 틀렸어요.
앞으로 어디에서 예루살렘에서 물이 나오겠나?
그래서 이루어질뻔 했는데, 하나님께서 엄청난 일을 하실려고 했는데, 계시를 받는 자세가 되먹지 않아서 이루어지지 못한 얘기라고 봅니다.
그래서 여기 47장 읽어봅시다.
[에스겔 47장]
1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동쪽으로 내려가다가 남편으로 흘러내려갔다.
그러면 예루살렘에서 동편으로 흘러 갔으면 여리고 쪽으로 내려간 것이고, 남편으로 내려갔으면 사해바다쪽으로 내려간 거죠.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여러분 우리가 한국에서는 밑에서 물이 나오면 그 집 천하에 못 쓴다. 하면서 수맥이 있는가 하고..
물에 대해서 참 부정적이죠.
그런데 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우리 성지순례 가 보신분은 아시겠지만, 물이 그저 손가락만큼 나오면 동네가 하나 산다니까..
물이 생명이야.
물이 있다는 것은 복 중에 복인거야..
그러니까 성전 밑에서 물이 나온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영적으로 해석하면 말씀이라고 하는데, 무슨 말씀이 흘러가서 사해바다로 흘러가서 사해바다에 고기가 펄펄 뛰겠소? 그게..
뒤에까지 연결하면 그런게 아니고, 실제적으로 그냥 물이 나온 거야.
그래서 47장 2절,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물이 있으면 나무가 나오는 거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아라바 광야가 여리고 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광야예요.
.. 바다에 이르리니,
바다는 사해바다입니다.
..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 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에네글라임은 사해 서북쪽 해안인데, 여리고에서 내려가다보면 사해 북쪽 어귀를 지나가는데 첫머리 쿰란 그 근방입니다.
에글라임이라고도 합니다.
..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제가 볼 때 지금까지 이런 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사해바다에 고기가 펄펄뛰고 어부가 거기 모여 살고 동네를 이루고 그런 것은 글쎄..
물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말라가고 있고.. 소금은 더 진해지고 있고 한데..
그러니까 이것이 이루어질뻔 했었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이야기로 봐야 될 겁니다.
..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 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그런 참 복스러운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자세가 되먹지 않아서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운 그런 계획이라고 봐야 될 겁니다.
그리고 땅에 경계를 말하는데, 13절,
1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 지계대로 이스라엘 십 이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 두 분깃이니라
그것도 여전히 구약에 있는 언약대로죠. 요셉에게 두 몫을 주라..
지금까지 스룹바벨이 인솔하거나 에스라가 인솔하거나 느헤미야가 인솔해와서 그 에스겔 이후에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이렇게 열두 지파에게 다 구획을 정리처럼 나누어 주지 않았다는 거야.
그리고 나눈 것도 옛날에는 들쭉날쭉했었는데, 지금은 줄을 딱 그어서 칼로 자르듯이 그렇게 해요. 토막을 내어가지고..
그래서 48장에 보면, 땅 경계가 나오는데,
[에스겔 48장]
1 모든 지파의 이름대로 이같을지니라 극북에서부터 헤들론 길로 말미암아 하맛 어귀를 지나서 다메섹 지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 곧 북으로 하맛 지계에 미치는 땅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단의 분깃이요
원래 단은 위에 있었죠. 옛날에..
2 단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아셀의 분깃이요
3 아셀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납달리의 분깃이요
4 납달리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므낫세의 분깃이요
5 므낫세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에브라임의 분깃이요
6 에브라임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르우벤의 분깃이요
7 르우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유다의 분깃이요
그 다음에 유다 근방에 예루살렘에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땅이 있고, 제사장에 돌릴 땅이 있고, 왕에게 돌릴 땅이 있고, 대제사장 사독의 자손에게 돌릴 땅이 있다. 그렇게 말하고,
23절에 가면,
23 그 나머지 모든 지파는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베냐민의 분깃이요
24 베냐민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시므온의 분깃이요
25 시므온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잇사갈의 분깃이요
26 잇사갈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스불론의 분깃이요
27 스불론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갓의 분깃이며
28 갓 지계 다음으로 남편 지계는 다말에서부터 므리바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그러니까 저 애굽 국경선까지 갓 지파가 차지하도록 그런 계획을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30절에 보면,
30 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편의 광이 사천 오백 척이라
4500척이면 여기에 나오는 에스겔서에 나오는 척수로 하면, 오늘날 2.5km 정도 그 정도 되는 성이 예루살렘 성입니다.
빙둘러서 10km 안팎 그런 성을 만들었는데, 한 변마다 세 문이 나오는 거예요. 세 문..
동편 성벽을 따라서 문 세개가 있고, 서편 남편 북편으로 해서 열두문이 있는데, 열두문에 각 지파의 이름을 따라서,
31절에,
31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32 동편의 광이 사천 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33 남편의 광이 사천 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34 서편도 사천 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
이렇게 열두문이 이루어진다.
마치 천국과 비슷한 모양이예요.
이런 계획이 하나님이 있었는데, 이런 설계도가 있었는데, 이것을 에스겔에게 보여줘서 자기들이 행한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통한히 여기고 애통하고 겸비하고 하거든 그대로 행하게 하라..
‘하거든’ 하는 조건절이 붙어가지고..
그런데 이것이 이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거든요.
그러면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대로 그들이 잘만 했다면 이렇게 굉장한 회복이 가능했을 법도 한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주신 계시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먹지 않아서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한 이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홉 장이 끝났죠. 순식간에.. 꿈에서나 본 것 같죠?
이 성의 크기가 요한계시록에 있는 새 예루살렘의 약 천분지 일쯤 됩니다.
천분지 일.. 크기가..
그리고 모양이 아주 한 변에 세 문이 있어서 열두 문이 있다는 것도 매우 비슷해요.
새 예루살렘도 열두 진주문이 있거든요.
그렇지만 그 규모에 있어서는 새 예루살렘에 비해서는 천분지 일 정도로 작은 거죠.
그러니까 한 변의 길이가 십배쯤 되는 거예요. 십배가 좀 넘나요?
천분지 일이니까..
천국은 한 변이 새 예루살렘이라는 것은 2,200km되는 것 같거든요.
1만 2천 스타디온이라는 그 숫자를 상징으로 볼 것인지, 실제의 측량으로 볼 것인지 모르지만, 천국을 묘사한 단위는 1만 2천 스타디온 하면 약 2,200km 2,300km 정도 되는 것이고,
그것보다 천분지 일 정도로 축소된 모습이 지금 에스겔에게 보여준 예루살렘의 회복된 모습인데, 물론 그 만큼도 회복이 안되고 말았지만,
어떻든 40장에서 48장까지 아홉장이라는 것은 모두에 말씀드린대로 잘만 했으면 영광스러운 회복될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던 이상이다. 이렇게 볼것 같으면 이런 내용을 가지고 우리가 너무 긴 시간 자자구구 절절 단어풀이 해봐야 별 의미가 없고, 아쉬운 그런 면을 남깁니다.
그래서 사실 이렇게도 다 정리가 안 된채로 에스겔서 주석을 보면 읽어도 자기도 모르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주석하는 사람들이 대개..
무슨 말인지 자기도 모르면서 쓰는 거야. 안 쓸 수는 없고..
빼먹을 수는 없고..
그렇게 이 부분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보신대로 에스겔은 거기에서 돌아오지 못했죠.
거기에서 세상을 떠났을 텐데, 아쉬움을 안고 바벨론에서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에스겔이 사로잡힌지 5년 되었을 때, 25살 정도때에 포로잡혀 갔고, 30살 되는 해에 그가 소명을 받았는데, 25살에 포로잡혀가서 다시 사로잡힌지 25해에 다시 말하면 50세 쯤 될 때 에스겔이 이 계시를 받은 거예요.
그리고 36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에스겔이 86세 쯤 될 때 돌아왔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 때 에스겔은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보는 것은, 돌아온 자들 명단에, 스룹바벨이 인솔한 첫 번째 예루살렘 귀환자 명단에 에스겔 예언자 이름이 빠져 있어요.
그러면 아마 86세 안팎으로 해서 세상을 떠났지 않았는가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에스겔이라는 예언자에 대해서 다른 역사서 안에 에스겔 이름이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또 생소하기도 하고 내용으로도 구약성경 중에 어떤 면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무겁고 가장 두렵고 그런 면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대부분 우리 구원과 관계없다든지 해서 외면해버리고 일반적으로 그저 파순군의 사명이라든지 그런 정도 인용하는 설교 한번 하면서 인용하는 정도고, 아니면 마른 뼈가 살아난다든지 아니면 물이 일천척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런 정도 외에는 그냥 에스겔서 전혀 볼려고 하지 않거든요..
이번에 쭉 우리가 에스겔서를 보면서 하나님이 그렇게까지 사랑하시던 그 사랑이 수용되지 않을 때 얼마나 진노하셨는가 하는 것을 충분히 보셨을 거예요.
신구약 66권을 통틀어서 에스겔서와 스바냐서 예레미야서 그런 책들 안에서 아마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가장 격한 감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뒤에 우리가 다시 볼 책은 에스라서와 역대상하서 이런 책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긴 시간, 에스겔서 너무 오래 걸려서 힘이 많이 들었죠.
그래도 어려운 책도 여러분 혼자 보기 힘드니까 함께 보는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 일단은 우리가 에스라서로 가겠습니다.
에스겔서 끝에다가 에스라서라고 쓰면 좋겠죠.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그 언약을 옳게 분별하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하고 또 바로 가르치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한 후에 비참하게 망했고,
또 마지막으로라도 회복될 때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올 때 좀 더 잘 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계시 곧 에스겔로부터 받은 계시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잘못되어서 이렇게 풍성하게 회복될 것이 초라하게 회복되는 듯 했지만, 그들이 바르게 그 회복된 그 정신도 이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신구약 중간사때에 400-500년 그런 암흑기를 거치게 되고,
예수님이 오셨어도 불과 소수의 무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더 큰 멸망으로 심판 받는 그런 역사를 우리가 헤아려 보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 계시를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를 배워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 모든 선한 것들을 우리가 다 막히지 않고 가리우지 않고 다 받아누릴 수 있는 우리모두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