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작
양은성
도보가 끝났다. 항상 다 끝나고 나서야 ‘좀 더 즐길걸. 좀 더 주위를 둘러볼걸’ 하고 후회가 된다. 막상 그 시간이 또 와도 똑같이 행동했을 텐데. 간디에 오지 않았더라면 해보지 못할 경험이다. 그래서 재밌었다.
출발하기 전, 도보에 대해 알아보고 유가족분들도 만났다. 을순 쌤, 용산 쌤, 기은 쌤, 은혜 쌤께서 우리 각자의 도보의 의미를 찾기 위해 쌤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은혜 쌤과는 도보에 가서 밥 먹기 전에 할 공양송을 외웠다. (^^)
유가족분들과는 샴푸바를 만들었다. 이런 체험하는 거 너무 좋아하는데 우릴 위해서 해주신 다고 한 유가족분들 너무 멋지시다. 특히 우리가 쓸 수 있는 거여서 더 좋다. 짐 될까봐 기숙사에 두고 왔는데 빨리 써보고 싶당. 총 3분이 오셨는데 다 잘 웃으시고 인상이 좋으셔서 넘무 친해지고 싶었는데 조금 친해진 것 같아서 좋다. 샴푸바에 넣고 싶은 재료도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도보 개인 깃발도 만들었는데 거꾸로다. 근데 거꾸로 인게 더 좋다.
진도로 출발했다. 그날은 하루종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짐은 이미 다 쌌지만 뭔가 안 챙긴 것 같은 허전한 느낌. 아침을 먹고, 배낭을 메고 등교해도 평소 같았다. 버스에 타고 갈 때도 멍만 때렸다. 첫날엔 8km만 걸었다. 4km를 가고 셨을 때 벌써 절반이나 왔다고? 하고 너무 좋았다. 이대로 가면 130km정도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닌 것 같다.
마을회관인가? 신기마을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밥을 먹고, 씻었다. 밥 먹기도 귀찮고 씻기도 귀찮았다. 할 거 대충 다하고 애들이 공기할 때 심심했는데 주은이가 해진다며 나가자고 해서 나갔는데 노을이 너무 예뻤다.ㅇ0ㅇ
주황빛이 하늘에 가득하고 구름도 붉은색이었다. 노을이 잘 보이는 곳에서 사진도 찍었는데 주은이가 진~짜 이쁘게 나왔다. 그때 카메라가 없었던 게 너무 아쉽다. 원래 일출이 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일몰이 더 예쁜 것 같다. 이걸 봐서 너무 갑자기 도보가 더 기대됬다.
다음날엔 20km를 걸었다. 방파제를 걷는데 쉴 틈도 없게 걸었다. 다리가 아프지만 종혁 쌤과 기은 쌤이 틀어주시는 노래를 부르며 가는 게 신났다. 도보가 재밌었던 이유는 노래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힘들 때 음악을 들으며 텐션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게 가장 즐거웠다.
8km에서 훅 20km를 걸으니 다리가 마비된 것 같다. 길은 푸르미? 여기선 축구도 했는데 오랜만에 했는지 체력이 딸려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래도 재밌었다. 난 중간에 꼈는데 껴줘서 고맙다:D
3일차가 제일 버티기 힘들다고 한다. 근데 16기 모두 잘 버틴 것 같다. 좀 걸었는지 물집이 잡혔다. 용산 쌤이 실로 째주셨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음날. 기억의 숲에 갔다. 리본도 매달고 비석에 새겨진 유가족들의 편지와 이름들을 봤는데 이름만 봐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편지는 제대로 안 봤다. 우는 애들도 있는 걸 보니 세월호를 깊이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팽목항에 가서 기억관에 갔다. 주말이라 유가족분들이 안 계셔서 아쉽다. 사진들을 봤는데 한 명 한 명을 볼 때마다 울 것 같다. 아직 시신도 못 찾은 5명이 눈에 들어온다. 도보 준비할 때 다큐같은 거 봤을 땐 화가 나고 답답했는데 기억관 왔을 땐 우울하고 슬펐다.
이제 관매도로 들어간다. 관매도 총 2일은 노는 날이다. 너무 신난다. 은혜 쌤이 점심을 준비하실 동안 애들은 갯벌에 갔다. 난 통 쌤이 하신 말씀이 찔려서 어차피 갯벌가기도 귀찮고, 예원이도 있으니까 남아서 은혜 쌤이 요리하시는 걸 도와드렸다. 별거 한 것도 없다. 대충 볶기만 했을 뿐이다. 애들이 돌아와서 참치마요밥이랑 된장찌개가 맛있다고 엄청 칭찬을 해줘서 왠지 더 으쓱해졌다. 오후에 바다에 갔다. 애들이랑 해운대 연기한 게 제일 재밌었다. 윤지를 모래로 덮고 놀았는데 진짜 좋았다. 물놀이 하고 먹는 라면도 굿굿
9/5 내 생일이다. 관매도에서 팽목항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어떤 도서관 같은데서 기다리는데 아무도 ‘생일 축하해’ 한마디 안하는 게 서운했다. 마음속으로는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겠지. 저녁에 다 같이 축하한다고 하겠지. 하고 생각은 하는데. 오 생일 축하해. 한마디로 내 생일이 그냥 지나갈 것 같다. 그래서 기은 쌤께 뭐 까먹으신 거 없냐며 말했는데 기은 쌤께서 까먹은 게 너무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건 괜찮았다. 도보 땜에 바쁘실 텐데. 그래도 챙겨주셔서 너무 고맙다. 대충 눈치채는 애도 있고 날 달래주러 온 애도 있는데 세연이가 너무 고마웠다. 근데 난 거의 눈물 삼켰는데 생일 축하한다고 하니까 더 눈물이 멎지 않아서....
은혜 쌤이 미역국 끓여주시려고 경찰차 타고 미역 사러 가신 게 진짜 감동이다. 감사합니다! 은혜 쌤. 케잌도......
이렇게 기억난다. 또 어딘지 모르겠지만 바다 가기 전에 눈감술을 하다가 여자애들끼리 다툼이 있었는데 다 잘 해결한 것 같다. 난 한 게 거의 없지만 1학년밖에 안된 우리가 우리 힘으로 화해하고 얘기를 나눈 게 자랑스럽다. 마지막쯤에 지루하고 졸렸는데 힘들기도 했지만 각자의 얘기를 솔직하고 진지하게 할 수 있던 시간이 좋은 것 같다. 다음에 또 모임을 만들어서 만나기로 했다.
그 바다는 바닥이 너무 날카로워서 발이 아작날 것 같다.
회동리 마을회관인가 여기선 14km밖에 안 갔는데 언덕이 많아서 엄청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땐 애들이랑 공기하고 화투도 치고(?) 제일 잘 놀았던 것 같다.
마지막! 진도타워 가는 날. 28km라니 미칠 것... 아니 이건 사람이 갈 수 없어. 정말. 저어어엉말 다행인 건 가방이 없다는 것이다. 가방이 있었다면 진심 죽었을 것 같다. 가벼워서 처음엔 1시간에 6km를 갔다는 게 아싸 하고 좋았는데 언덕이 많아서 갈수록 힘들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너무 좋았다. 공기도 하고 재밌었다. 또 걸어야 한다고 하는데 벌써?... 8km정도인 줄 알았는데 이거 거의 20km아닌가. 이쪽 산에서 보이는 저쪽 산으로 가는 것 같다. 저 멀리 보이는 곳에 갈 순 있나. 했는데 가보면 다 갈 수 있더라고. 진짜 힘들어 죽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숨이차다. 도보 갔다 와서 오래 걷기 트라우마 생기는 건 아닌지. 진도 타워에서 본 풍경은 그리 기억에 남지 않았다. 이 높은 곳에서 우리가 온 길을 봐서 오는 감동이 없었다. 이제 도보 끝났다. 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중국집에 갔다가 벽파리로 돌아왔다. 이제 보니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평소처럼 흘러갔다고 느낀다. 대신 더 많은 경험이 쌓인 것 같다.
마지막 해단식을 했다. 오랜만에 엄마 아빠도 봤다. 해단식도 생각했던 것처럼 그냥 흘러갔다. 정말 첫 번째 밤엔 내가 싫었는데 도보를 하며 점점 내가 좋아졌다. 불안감ㅇㄹ 놓으니 친구들과 더 친해진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도보란 첫 시작이다. 이제 내가 겪을 일에 첫 출발인 것이다.
와 에세이 자정 넘었는데 망했다:ㅇ
늦게 올렸는데 죄송하고 할 말이 없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