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딸기
정 규 준
‘딸기 작은거 2키로에 만이천언’
‘큰건 1키로에 만언’
‘어떤 걸루 사갈까 ㅋ~’
회사에 출근한 딸내미한테서 온 카톡이다.
얼마 전에도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아빠, 친구네 농장에서 재배한 딸긴데 몸짱이야. 1팩에 만원. 사 갈게~”
마침 딸기가 먹고 싶었던 터라 기특하다며 나는 반색을 했다. 그날 저녁에 딸아이가 가져온 딸기는 특상품이었다. 크기는 자두만 하였고 투명한 선홍빛에 모양새는 에스라인 아가씨의 둔부처럼 섹시했다. 비닐팩 안에 위로 열 개, 아래로 열 개, 도합 스무 개가 잘 훈련된 여군 하사관들처럼 도열해 있었다.
“와우~ 명품이로구나!”
한 개에 오백 원 꼴인 딸기는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돌았다.
딸내미는 명품광이다. 옷은 물론이고 화장품, 액세서리, 심지어 먹을 것까지, 명품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녀석은 슬쩍만 봐도 명품인지 아닌지 안다. 한번은 아내가 새 핸드백을 매고 들어왔는데 단아하고 세련된 것이 아이돌 스타가 매고 다님 직한 품새였다. 딸내미의 눈이 번쩍였다.
“어마! 내 가방~”
하고 낚아채더니 맞선 나온 남자 살피듯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구석으로 던져버리고 만다. 여자들이 거리에서 마주 오는 남자를 곁눈질로 스캔하고 시선을 거두어들이는 시간이 번개 같다고 한다. 눈길에 칼이라도 달렸으면 남자들의 모가지가 댕강댕강 달아나는 참극이 벌어질 거라나. 그렇게 감별되어 자격미달로 폐기처분된 총각신세를 떠올리고는 나는 풉― 하고 웃어버렸다. 아내가 구해 온 짝퉁 핸드백은 저녁 어스름 빛에서 명품감별사에게 공중부양되었다가 한순간에 추풍낙엽이 된 것이다.
딸의 명품취향은 제조품에 그치지 않는다. 봉급을 모아서 틈나는 대로 해외여행을 가는데 세계 10대 휴양지가 대상이다. 그 정도는 가줘야 물 건너 다녀왔다는 체면이 선다는 것이다. 녀석은 소위 럭셔리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휴양지를 선호한다. 제주도는 연습이고, 싱가폴을 기본으로 끊더니, 괌에서 대양의 치마폭에 안긴 후, 얼마 전에 보라카이 해변을 마스터했고, 현재는 하와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비취빛 해변에서 찍은 수영복 사진이 휴대폰 광고 속의 모델 못지 않다.
녀석의 명품취향은 남성 스타들에 대한 해바라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탤런트 김수현이 나오는 드라마는 시청 대상 0순위고, 얼마 전부터는 ‘태양의 후예’ 송중기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꽃미남들의 부드럽고 진정성 넘치는 카리스마는 본방사수를 책임지는 튼튼한 성이다. 다가오는 남자마다 스타들과의 비교 견적에 걸려든다. 여자 인생 뒤웅박 팔자라고, 그런 멋지고 돈 많은 남자들을 만나면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뀐다며, 저렇게 국제여행을 다니고 타로점에 매달리며 토정비결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런은 명품 소비 현상의 원인을 ‘자긍심을 느끼는 동시에 주위 동료나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브랜드 제품이 지닌 기호, 즉 상징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정 제품의 소비를 통해 선택받은 소수라는 신화와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남의 시선을 지독히도 의식하는 딸내미의 평소 언동을 보면 과히 틀린 말 같지는 않다. 도대체 내 속에서 어떻게 저런 녀석이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러다가 겉모습만 멀쩡하고 속은 텅 빈 쭉정이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보라카이 여행 때, 가족이 함께 가게 되었다. 세계 3대 해변 중의 하나라며 같이 가자는 딸내미의 말에 좋으면서도 돈 걱정부터 앞섰다. 더구나 패키지여행도 아닌 자유여행이라니, 안전도 우려되었다. 태평양의 에메랄드 빛 해변을 보는 게 평생 나의 꿈 아니었던가. 마음은 이미 이역만리를 달려가면서도 망설이는 나에게 녀석은 자기만 믿고 따라 오라고 했다. 그렇게 여행에 동행하면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딸내미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철저히 여행 준비를 하였다. 항공사 특별 이벤트를 이용해 50% 이상 항공료를 할인 받아 경비를 대폭 절감하였다. 현지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식업소와 여행 상품을 찾아서 편안한 잠자리와 다양한 식도락 및 여유로운 해변투어를 즐길 수 있었다. 뒷골목 수산시장을 찾아가 부르는 값의 90%를 후려치며 해산물을 사들이는 장면에서는 쾌감을 넘어 소름이 돋았다. 살아 꿈틀대는 생물에게서 태평양의 거친 숨결이 느껴졌다. 도깨비방망이라도 가진 듯 신통방통한 녀석의 행보가 거침없이 이어졌다. 신기해하는 나에게 브랜드 제품은 80% 이상 할인 행사시 할부로 사거나 중고품을 저렴하게 구입한다고 녀석은 귀띔했다. 사실 자기에게 명품이라 해봤자 몇 년에 한 벌씩 구입한 메이커 옷 몇 벌이 있을 뿐이라고. 유행을 타고 자주 갈아입는 옷은 보세품을 활용한다나. 그래서 자기의 명품취향은 적은 봉급으로도 가능하다며 까르르 웃었다. 안전에 대한 우려도 사라졌다. 녀석의 약간의 영어실력과 바디랭귀지로 무난히 소통이 이루어지면서 여행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물 흐르는 듯한 딸아이의 리드로 우리 가족은 오로지 여행의 즐거움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현대를 소비지향시대라 한다. 명품이 더 이상 특정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세대가 되었다. 기업들은 명품의 대중화를 위해 대량생산체제로 바꾸고, 판매촉진을 위한 각종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어쩌면 명품 소비는 더 이상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취향이나 기호로 바뀌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능력 안에서 명품취향의 감성과 욕구를 누려가고 있는 딸내미를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인터넷 시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할까. 꿈꾸는 세계와 자신의 현실적 처지를 절묘하게 저글링하며 조화시켜가는 녀석의 행보가 당당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나는 딸아이의 명품취향에 대한 염려를 파라다이스 해변과 야자수 그늘 아래 내려놓고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딸아이가 반대편 해변도 보고 가자며 숙소를 옮겼다. 호화 팬션이었다. 여러 개의 객실에, 바다가 보이는 넓은 테라스까지 있어 하룻밤 숙박비가 40만원이나 되었다. 그것도 평일이라 할인 받은 것이라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루 10만 원짜리 숙소였는데…. 아름답던 바다는 갑자기 거센 바람에 출렁이기 시작했다. 넓은 객실은 망막한 우주 공간처럼 휑뎅그렁하게 느껴졌다. 경비가 많이 절약됐다며 마지막 날이니까 호사를 누려봐야 한다고 딸아이는 호들갑을 떨었다. 녀석 덕분에 며칠 동안 잘 먹고 잘 놀은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카운터펀치 한 방 맞은 것 같다고 할까. 녀석의 명품취향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하룻만에 곤두박질쳐 내려갔다.
딸아이가 가져온 딸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기대했던 대로 맛이 좋았다. 크기가 커서 두세 번 잘라먹어야 하는 딸기가 속살을 드러냈다. 허연 벽면에 바람들은 무처럼 벌어져 있는 틈새가 스산하게 느껴졌다. 빨리 크다 보니 실하게 채워지지 못했던 것일까. 여러 번 나눠 먹어야 하는 크기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인지 맛도 금방 시들해졌다. 아내도 딸도 표정이 알쏭달쏭했다. 몇 개씩 먹으니 금방 없어져 버렸다.
딸내미가 명품취향을 버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녀석의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고 자기를 알아가는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은 외형적인 멋을 행복의 척도로 생각하는 녀석이 그 허와 실을 경험하면서 명품행복을 찾아가는 아이로 변하기를 바랄 뿐이다.
스티로폼에 올망졸망 담겨 있는 크고 작은 딸기들은 조화롭고 정겨워 보인다. 값싸게 사서 한참을 먹어도 남아 있는 풍족함. 한입에 쏘옥 넣으면 입안 가득히 퍼져가는 풍미가 그립다.
나는 딸아이 카톡에 답신 문자를 보낸다.
‘작은 게 좋아’
녀석의 답장이 뜬다.
‘콜!’
‘큰게 맛이 별루여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