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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진리는 가까운데 있다 했습니다.
당 대륙조선사연구회 최초이자 독보적으로 대륙조선과 한양의 강역을 정확하게 명기해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고인이 되신 최찬동 선생님...
전 생전에 한 번 밖엔 못 뵈었고...
조문도 하지 못해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티무르가 이성계 같고...
단군조선은 알타이 서쪽에서 발원하지 않았을지 싶다.
사라센이 사로(신라)가 아닐까..란 의문글로 당 사이트에 들어 왔을 때...
이미,확고 부동하게 조선의 강역과 한양의 위치를 명기해 주신 최찬동 선생님...
그간엔,
아니다, 시안(서안)이 한양이다...라 주장하시던 선생님들께선...
다시 아니,타클라마칸 근처 "카쉬"가 고려란 뜻이요...거기가 고려와 조선의 황도다...란 주장도 계셨고...
더 나가선, 중앙아 카스피해인근이 조선의 중심이다...고로,아시아 전체가 조선이다.
근간엔 더 서쪽으로 나가...지중해 동쪽이 단군조선이자 근대 조선의 중심지다...
라 주장하시는 선생님들께서 당 싸이트를 나가셔서 별도의 싸이트까지 내셨는데...
단군조선의 개국지가...환국(파미르 이동 전체)를 벗어난 신천지니...
당연 파미르 서쪽밖엔 신시를 열 땅이 없으니...신시배달국은 ..
고지도들에 수없이 표기돼는 천해(북해)인 신장성과 알알호(아리수?) 일대...알타이산맥 중심의 카자흐스탄 정도일 거란
제 주장은 당연 현재도 마찬가지이나...
당나라에 먹힌 삼국 이후,
이성계(티무르)와 분열됀 이방원시대의 동국조선&한양과...
특히나 청조(타타르)에 서북영토를 죄다 먹힌 인조대왕 이후의 조선강역까지도 내내 카자흐스탄 정도가 중심였다 보는 건...
상당한 무리라 전 납득이 가질 않았습니다.
솔직히 최찬동선생님의 글을 전에 것까진 게을러 상당수는 정독을 못 했었는데...
우연한 검색 중 최찬동 선생님의 주옥같은 글을 접하니...
존경에 저절로 옷깃이 여며집니다.
내내 선생님들께서 왈과왈부 하시며... 아직도 기본 합의을 못 본 한양의 위치와 그 위치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고...명확하게 제시해 주신 글...
전 이게 진실의 종결이라 생각합니다.
첨으로 돌아간게 결국 진실이란 제 생각입니다.
많은 검증을 거쳤을 뿐이겠고여...
중앙아나 지중해가 조선의 중심인 황도가 있는 곳이였다면,...
그건 같은 단군(탱그리)의 자손인 여진족과 커라키타이(거란),달단,사한국(서몽골)의 조선이지...
우리가 아는 왕건고려나 이방원 이후의 그 동국조선은 아니란 제 생각입니다.
특히, 한양은...그 입지조건을 충족시킬 서방의 도시가 없습니다.
동이 문자인 한자도 가끔 무역의 결과로 약간 출토될 뿐...역시 동이문자인 한자의 주 사용처는 중원입니다.
조선& 단군조선의 후예들인...스키타이와 거란,여진, 몽골의 서역 지배흔적들을 가지고...
그게 근대이씨조선 강역의 증거라 하긴 너무 무리가 많단 제 걱정도 보테며...
고 최찬동 선생님께...
맘속 깊은 곳에서 존경의 향불을 올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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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漢陽), 한성(漢城)의 유래(由來).
장삼식(張三植) 저서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에서,
한(漢)글자를 보면,
한수한(漢水漢), 은하수(銀河水漢), 놈한(천한남자을칭함), 나라한(國名), 이라고 풀이했고.
한성(漢城)은
서울의 별칭, 옛 지명으로 한양(漢陽), 경성(京城), 고구려 북한산주(北漢山州) 백제(百濟)의 두 번째 서울, 3국(三國)이 쟁탈(爭奪)하던 지역이며 한양(漢陽) 양주(楊州) 좌신책군(左神策軍) 남경(南京) 등으로 불리다가, 서울을 여기에 옮기고 한성부(漢城府)로 고쳐UT고, 이조말(李朝末) 경성부(京城府)로 고쳤다,
한양(漢陽)은
한(漢=BC,206-AD24년)때에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경부현(慶符縣) 남쪽을 한양(漢陽)이라했고,
후한(後漢=25-219년)시대 전(前) 한수군(漢水郡=지금 감숙성 감곡현 남쪽)을 한양(漢陽)으로 고쳤고,
3국(三國) 촉(蜀=221-263년)때에 지금 사천성 경부현 남쪽을 또 한양(漢陽)이라 했고,
남조 송(宋=420-479년)때 지금의 사천성 현죽현(縣竹縣)의 땅을 한양(漢陽)이라 했고,
남조 제(齊=478-502년)때 지금의 사천성 경계에 한양(漢陽)의 지역을 두었다,
원(元=1206-1368년)때에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한양현(漢陽縣)을 두었으며, 지금은 호북성에 큰 도시로써 한양현청(漢陽縣廳)이 있어 무한(武漢) 3진(三鎭)을 이루어 군사공업(軍事工業)의 요지(要地)이다. 또 이를 한성(漢城)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한양(漢陽)을 지금 이땅에 옮겨심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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