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 굶고 갔다.
서울 송파구 잠실새내역 부근의 내과병원.
간호사가 손가락을 주사바늘로 살짝 찔러서 피를 내고는 혈당을 조사했다.
공복혈당 136.
'조금 넘네요'라는 간호사 말에 나는 죄 지은 양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여의사가 '공복혈당이 좋은 것은 아니네요'라고 말했다.
몸무게 67.2kg.
'작년에는 62.7kg였는데 왜 이렇게 늘었어요?'
'작년, 어떤 병원에서 위내경을 받았는데 잘못 되었는지 8개월이나 설사했어요. 오늘 잰 무게는 예전의 몸무게네요.'
나도 안다. 내가 요즘 살이 무척이나 쪘다는 사실을.
'운동하시고요. 내일 당화혈색소 등에 대한 검진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서 약 처방할 게요.'
라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원을 나섰다.
3개월의 혈당 평균수치인 당화혈색소.
내일 판정되겠지. 그리고 지금보다 더 센 당뇨약으로 처방할 것이라고 미리 추측한다.
요즘 발가락, 발등이 무척이나 가려웠고, 장단지 등이 찌르르 통증이 이어졌다. 이런 증상은 당뇨가 더 심하게 진행된다는 증거이다.
그 곁에 있는 비뇨기과에도 들렀다.
2개월마다 전립선비대증 약을 처방받는다.
근처의 약국에서 약 두 종류를 샀다.
귀가하면서 잠실 새마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덮개 포장을 덮어서 영업을 하지 않는 가게도 상당히 많았다.
장꾼도 드물었다. 장터가 한산하면 구경꾼도 심심하기 마련이다.
나는 촌사람답게 채소전이나 기웃거렸다. 생고구마가 나왔다. 100g 510원. 크기가 크고 매끈하다지만 무척이나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다. 손가락 크기만한 고구마는 값이 다소 헐할 것 같다.
고구마를 보니 또 시골 생각이 난다.
서해안 중부 산골마을에 있는 시골집. 빈 집이 된 지도 여러 해가 되었고.
올 5월, 시골 5일장에서 고구마 순을 사다가 텃밭에 심었다.
지난 7월 말경에 시골에 내려갔더니만 멧돼지가 고구마 두둑을 깡그리 뒤짚었다. 아직 고구마가 매달리지도 않았는데... 마구 파훼쳐진 고구마 순을 거둬서 다시 흙속에 묻고, 물 주고는 서울 올라왔다. 고구마 수확을 기대하지 않게 생겼다. 그런데도 그 시골 텃밭이 생각났다.
빈 손으로 아파트로 되돌아왔다.
늦은 아침을 먹었다.
공연히 지친다. 서울 생활이...
2.
아내가 외출했다.
배 안 고픈데도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기에 점심 반찬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또 곁에 있는 냉동고 문을 열었다. 냉동고 안에는 작은 플라스틱 박스와 통병에 든 식재료가 잔뜩 찼다. 검정비닐을 위로 쳐들었더니만 물컹하는 느낌이 들었다. 비닐봉지 입구를 푼 뒤에 속을 들여다보니 파프리카 몇 개가 썩어서 능정거렸다. 언제 샀는데?
아내가 돌아왔기에 무어라고 지청구했다.
'식재료를 샀으면 이내 먹어야지. 썩혀서 내다버리면 안 되고, 또 잘못 먹으면 식중독 걸릴 수가 있다'는 말이 귀에 거슬렸나 보다.
'왜 냉장고, 냉동고를 뒤져요?'
쫑알대는 아내의 대꾸가 길어졌다.
평소에도 나는 냉장고, 냉동고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서 군것질을 한다.
당뇨환자이기에 무엇인가를 늘 입에 넣으려고 했다.
남자가 냉장고, 냉동고 문을 열어 본다는 그 자체에 대한 아내의 불만인가 보다.
냉장고, 냉동고를 열어본다고 서너 차례나 지청구를 들었던 터라 오늘은 내가 꾹 참다가 결국 폭발했다.
'냉동고에 든 음식물이 상해서... 음식물을 장만하면 얼른 먹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잘못이야?, 여름철에 썩혀서 내다버려야 정상이야?'
오고 가는 말이 거칠어졌다.
입 다무는 게 상책이라서 내가 입 다물었다.
설득이 아닌 강요로 번진 상황에 대한 회의였다.
갑자기 시골집으로 내려가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또 꿈틀거렸다.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기에.
냉장고에 오랫동안 보관한 뒤에 두고 두고 꺼내서 먹는 성미가 아니기에.
갑자기 지쳤다.
내 방으로 들어가 요 위에 퍼졌다.
낮잠 자면 밤에 잠 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 뜨니 두 시간 넘게 잤다. 밤 여덟 시.
말없이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3.
막내아들이 '요즘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까요?'라고 물었다.
북한 김정은이 태평양에 있는 미국 영토인 괌을 공격하겠다고 엄포했으며,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을 폭격하겠다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젊은날 국제정치, 지정학이 무엇인지를 짐작했고, 딱딱한 조직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나로서는 두 지도자의 성향을 조금은 짐작할 것 같다. 무기장사꾼의 시각에서, 정책담당자의 견해에서 본다면 두 사람 모두 함량미달이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정치 군사적 목적과 현실적인 방산무기 생산, 전쟁 필요성의 견지에서 모면 둘 다 웃기는 씨나리오이다.
북한 저 서른 살을 갓 넘은 어린 것이 통치하려면 북한인민을 결속하는 정책으로써 무엇인가를 쇼해야 한다. 이에 맞서 막말로써 신뢰를 잃은 미 트럼프로서도 무엇인가 저지르는 체를 해야 한다. 위기전환용으로...'
내가 보는 견해를 자식한테 빠르게 들려주었다.
내 식탁 유리판 밑에 있는 세계지도를 가리키면서 지정학적으로 덧붙였다.
극동지역 지도를 보면 위험한 가짜들(정치인, 언론매체, 전문가 등 포함)이 얼마나 맹랑한가를 깨닫는다.
다가오는 올 8월 4주째에 실시하는 '한미 을지연습'에 북한 방송인의 말투가 더욱 거칠어지겠지.
해마다 실시하는 전쟁연습은 다행히도 도망다니는 연습이기에...
그러나 급하면 되돌아서 꽉 문다.
나한테는 웃기는 짓이다.
슬슬 즐기고 싶다. 함량미달의 가짜들이기에...
일전, 새로 임명된 군수뇌부 7인 가운데 두어 명은 안다. 합참의장, 육참총장 등...
오늘 인터넷 뉴스에는 외무부 조준혁 대변인의 한국 전쟁설에 대한 말이 조금 떴다.
이 분도 예전에 ...
남한사람, 한국사람은 전쟁설을 일상처럼 여긴다.
하도 뻥치는 전쟁위기설에 숙달되어서 이제는 무덤덤해졌다는 뜻도 되겠다.
이게 외국인한테는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나는 인간이 싫다. 특히나 교활한 지도자들이다.
지식계급, 권력자, 가진 자들이 정말로 혐오스럽다.
이에 동조하는 자들이 숱하기에 '가짜 뉴스'가 넘치는 것이겠지.
퇴직한 뒤 시골에 내려가서 아흔 살인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시골에서는 신문도 없고, TV도 안 보았다.
농사 짓는데 필요한 날씨나 필요로 해서 밤 9시 55분 일기예보나 5분 정도를 들었다.
세상 깜깜하게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서울로 올라온 지금 나는 넘쳐나는 매스컴에 정신이 혼란하다.
가짜 뉴스들이 너무나 판친다. 가짜뉴스들이 판칠수록 돈이 더 많이 번다는 것을 잘 아는 매스컴이라서 그럴까?
내 삶과는 관계도 없는 세상사이다.
먹고 사는 데에만 관심 가진 소시민이기에 서울에서는 할 일이 없어서 요즘 어떤 문학카페에 자주 들락거렸다.
한자어가 넘친다. 시골사람인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한자어다.
오늘 어떤 글을 보았다. '일신우일신'. 이게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日新又日新. 나날이 새롭다라는 뜻이란다.
나는 고개를 흔든다. 정말로 유식한 세상에 나는 정말로 무식하게 산다고.
오늘 밤에는 내 아파트에 외국인 사위가 오겠지.
그 외국인은 한자를 어떻게 이해할까?
한자를 잘 모르는 딸은 한자어를 지나치게 많이 쓰는 현 세태를 어떻게 이해할까?
나는
흙 파고 먹고 사는 두더지이니까 그냥 쉬운 말로 하는 그런 글을 원한다.
허위허식 과장이 아닌 평범한 삶을 원하기에.
4.
고층아파트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크게 들린다.
서울과 200km 떨어진 시골에는 혹시 비 피해가 없는지 모르겠다.
비가 자주 내리면 고추에는 탄저병이 생긴다. 고추농사를 망치는 병균은 빗물 따라 공기 중에 흘러내리고, 습기 찬 밭에서는 순식간에 번진다.
나는 조금만 심었다. 피해가 나도 별 것은 아니다.
고추농사를 크게 짓는 농사꾼한테 피해가 없거나 적었으면 싶다.
도시에 올라와 사는 나도 채소를 사 먹는 소비자이기에 식자재 구입 가격이 쌌으면 싶다.
직장 벗어난지 10년째인 나는 백수가 되었기에 돈을 아껴 쓰려고 한다.
이런 마음씀씀이가 아내한테 전달되지 않았다.
채소 산 지 오래되어서 썩었다는 말 꺼냈다가 가벼운 말다툼으로 번졌던 오늘.
나는 되돌아 본다. 내가 잘못한 것도 많이 있을 텐데...
결언한다.
당뇨 진행 결과가 걱정된다.
요즘 발가락의 가려움증과 통증을 견주면.
내 삶이 시시하다.
나이가 일흔 살이니 앞으로도 덜 아프다가 먼 여행 떠났으면 싶다.
2017. 8. 10. 목요일
오자, 탈자를 다듬어야 하는데...
첫댓글 쏟아지는 뉴스를 보다 이제는
점점 사는게 바빠서
모든 일이 심심할 수도 있지요
정치는 정치꾼들한테 맡기면 되지요.
일반 국민은 4년마다 국회의원 선거를, 5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제대로 하면 되겠지요.
당리당략, 지연 학연 등을 떠나서 무엇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길인지를 제대로 판단하면요.
저도 일상의 삶을 먼저 치중합니다.
직설적으로 살았기에...
저 시 못 씁니다. 에둘러서 살지 않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