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랑주 포인트 외 2편
서연우
독수리 두 마리가 45도 각도로 내려다본다
소리를 죽이고, 소리 없이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세계에서
먹잇감의 숨통 끊지 못해, 죽기만을 기다린다
독수리는 바보
까치와 까마귀들이 접근한다
큰 날개를 펼쳐 고공에 오래 떠 있다 이때,
필요하다
하늘 서쪽에 초승달과 샛별이 있다
백일 된 아기처럼 웃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하는
나는 숭배한다 숭배하지 않는다
높은 차원의 존재들, 적도는 수평이다
초승달은 미래가 있다가 없다
진리는 거짓이다 거짓 없는 거짓,
필요하다
적당히 속아주고 적당히 눈감아주는 센스
필수다 내가 무언가로 인해
아무도 모르게 말라가도 이 행성에서는
한 번쯤, 태양처럼 붉은 달이 뜬다
빛에 쫓겨나는 지구의 그림자처럼
달은 언제나 변함없이 변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공평하게 끌어당기는 권력이다 일정한 거리,
꼭 필요하다
작약
목덜미에 작약 문신을 새겼다
불안한 마음은 손톱 끝이 모이는
간지러움의 힘 앞에 투신하고
몸이 신뢰의 가면을 벗으려 한다
시간은 자신에게 유리한 시간만을 기다린다
아침 점심 저녁 복용한 것도 아닌데
나 너 우리 과소비한 것도 아닌데
시간은 훌쩍 건너뛴다
내면의 고통을 달래주기 위해 외면을 고쳐주려 한다
실시간으로, 시간이 나를 먹어치우고 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는
기억과 집중력을 씹어 먹는다
내 혈색과 머리카락 색을 빨아 먹는다
진작부터
나를 사라지게 하라는 명령 떨어진 것이 분명하다
붙잡아 세워 시비라도 걸어볼까
시간 위에 시간이 앉아 있다
당분간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시간의 틈을 비집고
알러지의 온기가 시공간을 빠져나간다
살아 있는 이유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밖에 없다
내가 시간에서 내리기 전에
나는, 당신의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잔의 사과
그의 존재를 맛깔스러운
음식이라는 대상에 가두지 않기 위해 나는,
그에게 얼마만큼 다가서며 다가서지 않으며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의
화폭을 내레이션 할 수 있을까
그가 있는 정물화를 통해
나는 다층적 시간과 공간을 누빈다
안과 밖이 융기와 침몰을 거듭하는 그의 허공
나는 유폐된 현실과 충돌하는 혼돈의 길을 낸다
그의 실제인 명암과 색채를
포기하고, 지긋한 바라봄의 시간과
긴장된 완벽한 형태의 펼쳐짐, 그리고 응집, 그것으로 나는
아직 전통적이기만 한 파리를 휘몰아쳐야 한다
수없이 껍질을 깎는 주관적이라는 시각 속에서 나는
존재의 소멸을 견디는 갈망과 내통한다
나에게 그는
유혹하는 표면과는 비각된 시간의 독백,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내면에 야생의 언덕을 세우는 부동의 육체,
다른 시선이 일방적으로 규정한 나라는 존재와
나의 시선에 투사된 그라는 존재의
폭풍과 고요가 공존하는 내가 판단하는 내 모습, 사람이 어려운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과 그는
완벽한 소용돌이다 세상을 움직이며
움직이지 않는, 백지의 공중이 소리 없이 먹어치우는 사과
-시집 라그랑주 포인트. 한국문연, 2017.
▲ 서연우
경남 창원 출생. 창신대학교 미술디자인학과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를 졸업했다. 2012년 격월간 《시사사》에「하늘은 도대체 몇 개의 물뿌리개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외 2편으로 등단했다. 2017년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문화예술창지원금을 받았다. <思月>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2018년 시집 라그랑주 포인트를 펴냈다.
[경남신문]
창원 서연우 시인, 첫 시집 ‘라그랑주 포인트’ 펴내
현대사회 특정한 단면 성찰 49편에 담아
기사입력 : 2018-01-18 07:00:00
마산에서 활동하는 서연우 시인이 첫 시집 ‘라그랑주 포인트’를 냈다.
책에는 총 4개 갈래에 49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서 시인은 “나 이면서, 나 아닌 나는 어디에 있었는지 알고 싶어졌는데 ‘나’는 삭막한 현실에서 숨 쉴 수 있는 공간 즉 ‘라그랑주 포인트’임을 깨닫고 쓴 시들을 수록했다”고 말했다.
비유적 시선을 통해 현대사회의 특정한 단면을 성찰하는 내용을 담은 시들이 눈에 띈다. 이를테면 ‘카메라 연대기’ 속 CCTV는 감시사회의 도래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는 자신을 드라마에 출연하는 조연 또는 유리곽 안에 사는 인형으로 규정하는데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감시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같은 운명임을 꼬집고 있다.
시인은 ‘미행당하는/주연배우는 사절’이라고 경고하며 이러한 문명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내보인다. 현대사회에 대한 관심은 ‘엘리베이터’를 ‘감옥’으로 표현하는 ‘엘리베이터’ 시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현대인의 필수적인 도구가 된 엘리베이터에 인격을 부여해 엘리베이터를 작동하는 것이 오롯이 승객은 내부자라는 의지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시인의 강렬한 회화적 느낌의 시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인간 내면의 본질적 고독과 깊이 만나게 된다.
고봉준 문학평론가는 “시인의 시 특이성을 현대성에 대한 부정적 시선으로 환원하는 것은 그녀의 시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독법이다”며 “목소리를 갖고 있지 않은 사물 또는 대상에게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제공하려는, 뒤집어 말하면 인간-시인의 목소리를 침묵케함으로써 사물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태도야말로 지향하는 바가 아닌가 추측된다”고 평했다.
창원 출생인 서연우 시인은 2012년 격월간 ‘시사사’로 등단했으며 ‘思月’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