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센치가 조금넘는 키에 몸무게60키로가 채 되지 않은 체중.
이름조차 “작고(小) 평범한 (平) 덩씨” 인 거는 중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거인 중국 “개혁 개방사의 총 설계사” 라
불리는 덩에 대한 추모열기는 국가지도자들이 앞장서고 있다.
등소평은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을 기른다” 의
기본방침을 확립 미국등 서방과 대결 협력을 통해 경제발전을
추구함으로써 중국이마침내 세계의 강자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등소평은추모열기에 빛만 있는 것은 아니고 중화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이면에는 빈부.지역 격차.관료부패.금전만능주의,
천안문사태등 어두운 그늘이많치만 등소평의 장점만 들어
이야기 하고저 함
거대한 중국 대륙을 한 손에 거머쥐고 오늘의 중국으로 발전
하도록 밑거름 역할을 한 작은 거인 등소평에 대하여 말하기
전에 중국의 정치와 사회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누구나 중국을 쉽게 잘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너무도 잘 모르고 있다.
중국은 우리 민족과는 역사적으로 많은 이해 관계를 갖고
지내 왔으며 지금도 북한의 핵 문제를 비롯한 군사적 문제와
문화의 교류뿐만 아니라 교역등 긴밀한 이해 당사국으로 많은
부분에서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지금은 구 소련 권이 무너지고 미국이 세계의 패권 국가로
독주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새로운 패권을 갖게될 국가가
바로 중국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갖게 한다.
우리는 이런 중국의 눈부신 발전에 기대와 두려움 속에서
중국을 연구하고 알아야 하는데 분주하다.
중국 내의 한국 유학생만도 세계 157개국 6만여명중 단연
제일 많은 2만4천 여명의 학생이 유학 중이다.
우리의 기업체도 1만여 기업이 123억불의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얼마 전 유인 우주선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여 세계
세 번째 유인 우주선 국가로 그 위세를 과시하며 세계를
놀래게 했다.
이런 국력을 만들어낸 이들은 13억 인구에 56개 다수 민족이
사는 거대한 대륙을 통치하는 정치력은 어디서 나왔고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사회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중국을 만든 사람은 여러 사람이 있겠지만
그 대표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바로 그는 등소평이다.
등소평은 모택동이 1966년부터 10년간 주도한 문화혁명으로
6년4개월의 연금과 유배를 당했다.
그후 1977년 권좌에 복귀하면서 우리가 상상도 못할 일들을
해 냄으로서 하나의 중국으로 통합하고 국론을 통일시키는데
그의 모든 정열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는 정권 교체로 인한 국론 분열을 방지하는 지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이다.
등소평은 자신을 투옥시킨 모택동을 비판하지 않았고
끝까지 중국의 영도자로 만드는데 온갖 노력을 다 했다.
그는 모택동이 수천만 명의 건국 원로들을 린치 하여
생명을 잃게 하거나 병들게 했으며 300만명 이상의 지식인을
농촌으로 유배하고, 1천7백만명 이상의 학생이 학교를 떠나야
할만큼 경제를 어렵게 하여 국론은 완전히 분열되었고
무법천지의 세상을 만든 장본인 모택동을 등소평은 오히려 문화 혁
명기간은 중국 민을 어려움을 체험하게 하고많은 경험을
통하여 성숙시킨 기간이라 하면서 모택동이 잘못은 물론 있지만
그가 잘못한 것은 30% 이면 잘한 것은 70%로 못한 일 보다
잘하고 훌륭한 일이 더 많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등소평은 모택동에 대한 평가 작업을 1980년 4000여명이
참가하여 20여 일간 토의를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모택동의
업적을 찬양했으며 1981년에 중앙위원 전체 회의에서 중국의
영원한 영웅으로 추대했다.
이와 같이 이 넓고 많은 인구와 다양한 민족을 통치하려면
과거의 문제를 들추어내 단죄하느니 보다는 오히려
국론을 통일하기위 하여는 과거의 좋지 못했던 일보다는
좋은 점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마음을 안정시킨 후에
중국의 현안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영웅적 영도력을
갖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등소평이 모택동에 대한 관용에 대하여
박수를 보냈다.그리고 등소평을 믿고 따랐다.
등소평은 이 많은 56개 민족을 구분하지 않고 다수 민족이든
소수 민족이든 가리지 않았다. 특히 다수 민족인 한족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지 아니한 사람이다. 그는 인재를
등용하는데도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물을 발탁했다.
그리고 그 발탁 과정에는 인사 위원회에서 공정하고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처 추천되고 이 추천된 사람은 아무리 임명권자라
하더라도 임의로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인물 중심과 능력 중심의
공정한 인사 정책을 채택함으로서 필요한 자리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등용되고 이 절차를 거처 발탁된 관리는 누구의 배경으로
된 것이 아니므로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그 능력과 공로를 인정받으면 정권이나
특정 세력과 관계없이 나라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었다.
이런 현실은 오늘의 우리 정치권과는 전연 다른 점으로
본 받아야 할 일들로 생각한다.
그 한 예로 조선족 출신인 조남기를 국방 장관으로 등용했으며
그에게 중국군 400만을 300만으로 감군 하는 어려운 작업을
하도록 했으며 부주석의 자리까지 오르게 했다. 이는 조선족이
많아서도 아니고 오직 그의 능력을 인정한 결과이다.
그도 그런 것이 중국에는 조선족이 불과 20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학연이나 지연은 더 더욱 아무 의미가 없었다.
등소평은 1904년 사천성 광안현 협흥향 패방촌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15살에 프랑스로 유학 나와 죽을 때까지 고향을
한번도 안 찾아갔다고 한다.
23살에 어머니가 돌아 가셨고 36살에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그러나 그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가지 아니
하였으며 자신은 고향도 중국이고 부모도 인민의 자손이니
내가 고향을 따로 찾을 이유가 없으며 중국 인민 모두가 부모와
같다고 하며 상을 당하고도 고향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도 인간인데 왜 부모가 그립지 않았으며 고향에 대한 향수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 많은 민족과 국민을 통치하는데는
남다른 가치관과 위용이 필요
했던 것이다.
등소평은 오직 중국 민을 어떻게 하면 잘 살게 할 수 있나 에
대하여 군을 400만에서 300만으로 감군 하고 그 100만의 젊은
노동력을 산업 전선에 투입하여 경제를 일으키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
라고 했다. 이 뜻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를 가리지 않고
어느 나라든 국가에 이익만 있으면 모두 받아들여 인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잘 나타낸 말로 평상시
등소평이 잘 쓰던 말이다.
그는 거실에 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가 같이 있는 그림을
걸어 놓고 즐겨 감상했다고 한다.
등소평은 집권기간 동안 과거의 잘못된 일들로 인해 국력을
소모하지 않았으며 오직 앞으로의 부국 강병만을 생각하며
모든 정열을 쏟았다.
이런 풍토가 중국에 정착되었고 후임 강택민도 그랬으며 지금의
후진타오도 전임 정치 지도자의 비리를 들춰 내지 않고
그들을 예우하면서 오늘의 거대한 중국 대륙을 잘 통치하며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 사회는 누가 대통령이 되면 그 주변 사람과 그가 태어난
고향은 물론 출신 지역 출신 고등학교 사람들만 무더기로
출세하고 요직을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국가 발전과 이익에 도움이 못되며
국론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소인배들이나 하는 이런 작태들은 국민과
역사 앞에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의 오랜 병폐인 지연 혈연 학연을 중심으로 하는
정실 정치 풍토는 이제 이 사회에서 배격되고 영원히
추방되어야 한다
.
우리 나라는 중국보다 아주 작은 땅과 적은 국민인
단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작은 땅을 지역적으로 나누고 패를 가르는
이런 일들은 정말 생각도 상상도 하기 싫다.
우리 정치에도 고향을 따지지 않고 학연과 혈연을 구분하지
않는 사람을 지도자로 모실 날이 속히 오기를 온 국민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사회 제도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중국은 유교적인 사상과 문화로 인해 남존여비나 남녀 평등
면에서 우리 사회만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여자들을 더 우대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지위에서 여성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는 호적이 없으며 호주 제도가 없다.
그리고 자식은 부모의 성 가운데 누구의 성을 따라도 무관하고
부모 모두의 성을 같이 따라도 되며 전혀 다른 성이나
심지어는 외국 성을 따라도 무방하다.
중국도 세계화의 개방으로 인한 추세에 맞추어 요즘은
일본 사람의 성이나 미국 사람의 성을 따서 신고하기도 한다.
개명도 법원의 허가를 받는 것이 아니고 관할청에 신고만 하면
쉽게 개명이 된다.
우리 나라도 현재 입법 예고된 가족법이 개정된다면 호주제 폐지와
부의 성만 따르는 현행법이 개정될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의 가족 제도를 살펴보면서 사회 구조가 어느 면에서는
우리 보다 개방적이고 현실적인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정부는 오늘의 국론 분열을 최소화하는데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지금같이 남의 잘 잘못을 가리기에 온 나라가
어지러우나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이 불안하고 고통스럽다.
이제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을 벗어나 민심을 안정시키는 정책을
세우고 거짓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 정말 국민만을 생각하고
국민만을 위한 통치를 해주기 바란다.
그래야 나라가 부강하고 국민들이 마음 편히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도록정치인들은 책임을 저야 한다.
지난날 우리 국민들은
무수히 속아왔고 배신당해 왔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이상 속으려
하지 않으니 고향을 모르는 진실 된 자세로 봉사하기 바란다.
첫댓글 잘 읽었읍니다 종종좋은글 많이올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