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중인 학생인권조례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교육청이 2010년 도입한 뒤 서울, 광주, 인천, 전북, 충남, 제주 등 7개 시도에서 시행중인 조례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 및 위험으로부터의 자유 △교육에 관한 권리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정보에 관한 권리 △양심·종교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 △자치 및 표현의 권리 △복지에 관한 권리 △징계 등 절차에서의 권리 △권리 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소수 학생의 권리 보장 등을 골자로 한다.
위 조항으로 보면 알 수 있듯,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내용이다. 조례가 도입되면서 학생 체벌과 엄격한 두발 규제, 복장 규제 등이 사라지고 학생 권익이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40-50대 중장년층이 경험했던 비인격적 체벌, 모욕적 차별 등이 더 이상 학교 현장과 교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며 이른바 “교권 침해”의 원인 중 하나로 엉뚱하게 학생인권조례가 지목되었다. 잇따라 각 지자체에서 폐지 논의가 본격화하기 시작되었고 지난 4월 24일 충청남도의회가 충남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한 지 이틀 후 서울시의회가 일사천리로 서울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 2012년에 제정된 서울학생인권조례는 12년 만에, 2020년에 제정된 충남은 단 4년 만에 폐지된 것이다. 게다가 경기도교육청은 「경기도교육청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하였고 이 조례가 통과되면 부칙을 통해 기존 조례안을 폐지할 것을 명시하였다.
학생인권조례는 누군가에게는 불편하다. 특히나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한국의 교실에서 학생인권조례는 경쟁과 잠재적 평화의 발목을 잡아왔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든 교실은 새로운 교실이었다. 모든 질문과 의문은 대학에 간 뒤로 유예되고 수많은 유혹과 탈선은 입시 뒤에 허락되는 이상한 세상.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누구나 침묵을 묵인하는 교실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평화를 허락하지 않는 것, 그것이 학생인권조례였다.
사실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은 귀찮은 일이며 지루한 과정이다. 시간과 노력이 무척이나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속도보다 방향, 모두가 함께하는 그 지난한 과정의 중요함을 배우는 것, 그것이 바로 교육이다. 또한 무질서한 상태가 기본이다. 처음부터 서로를 배려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정제된 언어와 태도로 의사결정 과정을 밟을 수 있는 인간은 단언컨대, 지구상에 없다.
인간을 야만에서 지성으로 길러내는 그 일을 하기 위해 우리는 공교육의 틀을 세우고 도서관을 지었다. 독서하고 토론하는 이유, 나아가 독서와 교육을 특정 계급에게 한정하지 않고 평등하게 모든 이가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이유는 공동체가 함께 사유하고 실천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교육과 독서를 인권의 개념으로 가져와 학교를 세우고 도서관을 만든 것이다.
반대로 침묵으로 만든 평화는 편리하다. 권력을 가진 자에게 편리하고, 위치가 올라갈수록 달콤하며,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유혹에 휩싸인다. 학교에서 학생 인권을 폐지하고 교권을 말한들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 누구란 말인가. 학생 인권을 폐지하고 모두의 인권을 담은들 과연 그것이 진정한 모두의 인권이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오랜 역사 위에 세운 인권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그 시도를 멈추라.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 인간의 역사에 진보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자로 기록되지 마시라.
2024. 5. 7.
사단법인 한학사(한국학교사서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