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윤주(왼쪽) 수녀가 교도소 재소자들이 만든 공예품을 열심히 홍보하며 팔고 있다. |
서울에 남대문시장이 있다면, 볼리비아 코차밤바 시내 한복판에는 '라 칸차(La Cancha)'라고 하는 커다란 재래시장이 있다. 식료품과 과일, 옷은 물론이고 가구와 잡화류, 신기한 토속 생산품 등 없는 게 없는 대형시장이다. 사고파는 이들로 날마다 북적대지만, 특히 수요일과 토요일은 전국 각지에서 신선한 식재료와 물품이 더 많이 들어오는 날이라 일주일에 두 번씩 '장을 보는 날'이 돼버렸다.
#낯선 외국인의 진심이 통한 걸까
나 역시 매주 수요일 칸차에 간다. 장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장 한복판에 자리한 산 안토니오성당 바로 앞에 작은 가판대를 차려놓고 노점상이 되기 위해서다. 내가 일하는 교도소 수감자들이 작은 공예품들을 만들면, 난 그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팔아 그날 판 돈을 가져다 준다. 그 돈으로 수감자들은 한끼 식사를 하고 아이들을 먹인다.
수감자들이 만드는 공예품들은 다양하다. 목공기술이 있는 사람은 나무 액자나 저금통, 조각상을 만들고, 뜨개질을 잘 하는 여성 수감자들은 손가방이나 아기옷 등을 만든다. 종이로 선물용 카드나 꽃, 인형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재료를 구하기 어려운 수감자들은 버려진 페트병이나 신문지 등을 재활용해 아름답고 실용적인 생활용품으로 변신시키기도 한다.
이런 물건을 팔면서 늘 느끼는 건 이들이 정말 손재주도 많고 창의적 아이디어도 많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좀 더 좋은 여건에서 자신들의 재주를 발휘할 수 있다면 그들도 남부럽지 않은 살림을 꾸려갈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아무리 좋은 물건들을 만들어도 밖에 나가서 팔 수 있는 길이 제한돼 그들 재주도 그냥 묻혀버리고 생계 또한 막막하다.
그래서 봉사자들과 함께 물건을 받아 팔아주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처음엔 경험도 없는 내가 하루종일 뙤약볕 아래 서서 물건을 파는 게 쉽지 않았다. 외국인이 길거리에서 가판을 하니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고, 시 단속반에 걸려 쫓겨날 뻔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물건이 맘에 들어 관심을 보이다가도 교도소 수감자들이 만든 물건이라는 말을 듣고는 등을 돌리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다. 그럴수록 난 이렇게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도와주자고, 지금은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그들이 절망하지 않고 열심히 살 수 있도록 관심을 나눠 주자고 호소했다.
낯선 외국인이 서투른 자신들의 말로 열심히 호소하는 그 진심이 통한 건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물건을 팔아주며 오히려 나를 격려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재소자들을 돌봐줘 고맙다는 인사까지 덧붙이는 사람들도 이제는 만난다. 그 순간이 바로 사랑과 돌봄이라는 마음으로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사랑하고 돌보는 데는 경계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배우는 순간이다.
장사가 잘 된 날은 가판대를 걷고 교도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하지만 하루종일 고생해도 몇 가지 팔지 못하는 날엔 돌아가는 길에 걱정이 한 가득이다. 그날 번 돈을 철창사이로 건네주며, "호세씨가 만든 나무저금통이 아주 잘 팔렸어요. 다음주에 더 많이 만들어 주세요" "마르타씨가 만든 꽃들이 아주 인기가 많네요" 같은 말을 건넬 때, 수감자들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인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사가 잘 안 돼 건네주는 돈의 액수가 적을 때는 그들이 실망할까 내가 오히려 미안하다. 아픈 아이들 약도 사야 할텐데, 물건을 더 만들 재료비는 있을지, 물값을 내지 못해 한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는데, 하는 생각에 나는 그저 걱정만 한다. 그러면 그들은 농담까지 건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괜찮아요, 수녀님. 다음 주에 더 팔면 되죠 뭐. 안 되면 그 다음주에 또 팔면 되고요. 저희들은 어차피 여기 쭈욱 있을 건데요, 뭐."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느긋한 지혜로움에 나는 또 한 번 감탄한다.
▲ 재소자들이 생계대책으로 만든 공예품들은 조악하지만 땀과 정성이 배 있다. |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곳에 계셨다
난 이제 교도소 식구들 말고도 시장 사람들과도 친구가 됐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늘 물건을 팔다보니 이웃 상인들과도 친해져 서로 도와주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옷을 파는 아주머니와 구두 고치는 아저씨, 구걸하는 아이들, 작은 손수레에 냉차를 파는 할머니, 작은 기타처럼 생긴 전통 악기인 차랑고를 연주하는 거리 악사…. 모두가 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람들이고, 내 이웃들이다.
또 내가 성당 문 앞에 가판대를 벌여놓고 호객행위(?)를 하며 장사를 하고 그야말로 성경 일화처럼 하느님 집 앞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어 놓는데도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미소로 성당 문을 열어주는 신부님도 든든한 후원자다. 내가 파는 물건에 관심을 가져주고, 왜 이 일을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작으나마 성의를 보태고 부끄러워하는 이들이 나의 이웃들이니 이런 사람들 속에서 사는 것이 난 너무나도 감사하다.
가진 것은 없어도 삶의 활기와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진 교도소와 시장.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곳에 계셨다. 나는 그 두 곳에서, 그 곳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다. 그 예수님을 만나러 힘든 줄도 모르고 날마다 나는 보따리를 이고 지고 그곳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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