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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지리산(1,915m)
산행일 : 12월 21~22일(화)
산행로 : 백무동탐방지원센터~장터목(1박)~천왕봉~장터목(아침)~세석(점심)~거림공원지킴터
산행거리 : 첫째날 5.8km, 둘째날 13.1km
산행시각
<1일>
13:36 백무동탐방지원센터 출발
14:59 하동바위
15;56 참샘
16:49 소지봉
20:00 장터목산장
<2일>
6시 30분경 장터목 산장 출발
7:50 천왕봉
9시경 장터목산장 도착
10:37 장터목 산장 출발
11:03 일출봉
11:12 연하봉
12:49 촛대봉
13시경 세석산장 도착
17:00 거림공원지킴터
연말까지 휴가를 낸 김에 동계 지리산능선을 종주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본다. 우선 동행할 동료 1명을 구했다. 일정은 나의 걸음걸이를 생각하여 3박4일로 정한다. 그런데 짐이 문제다. 3박에 해당하는 짐을 지고 산행을 할수 있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믄 음식은 인스턴트로 하기로 한다. 그런데 같이 가기로 동료가 산에서는 잘 먹어야 한다며 자기가 반찬을 책임질 테니 나보고는 쌀을 가져오란다. 그것도 물에 불려서. 쌀을 씻어서 말렸으나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지 다 마르지 않고 물기가 묻어난다. 베낭을 다 꾸린 뒤 무게를 달아보니 16kg 정도이다. 이 짐을 지고 지리산을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결국 짐에 눌려서 계획대로 산행을 끝마치지 못했다.
출발은 동서울터미널에서 하기로 한다. 시각은 첫 차인 7시다. 그런데 동료로부터 전화가 온다. 양수리에서 첫 차를 타더라도 아침 7시 차를 타기는 어렵겠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8시 20분 차를 타기로 하는데, 해가 지기 전에 장터목산장에 도착할 수 있을까 우려가 된다. 정 안되면 야간산행이라도 해야지 뭐. 그런데 이 우려가 다른 이유로 현실로 나타났다.
빨리 도착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버스는 12시 40분이 되어서야 백무동 종점에 우리를 내려준다. 백무동에는 눈이 하나도 없다. 아니 이러다가 눈 없는 산행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천황봉에도 눈은 많지 않았다. 산행 내내 구태여 스패츠를 할 필요가 없었다. 점심을 먹으러 길목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한 팀이 식사를 하고 있다. 올라갈 계획이냐고 물어보니 자기들은 하산하는 중이라면서, 날씨가 따뜻하니 옷은 가볍게 입는 것이 좋을 것이란다. 그리고 참샘 부근까지는 아이젠을 할 필요가 없단다. 산행을 마친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꾸리는데, 동료가 자기 짐이 너무 무거우니 나보고 좀 들어달란다. 아니, 내 짐도 버거운데, 여기에 짐을 더 얹어?! 하지만 어쩌랴? 동료의 짐이 나보다 더 무거운 것은 사실인데. 무슨 과일과 반찬을 이리도 많이 가져왔는지? 사과와 휘발유를 내 베낭에 얹으니 더욱 묵직해진다. 18~19kg 정도는 될 것 같다. 나오는 게 한숨뿐이다. 결국 산행 지연으로 장터목산장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가뜩이나 걸음이 느린 데다 짐까지 무거우니 산행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하동바위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가 걸렸지만 크게 늦은 것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참샘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서 소지봉까지 가는 데 1시간 50분씩이나 걸렸다.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데, 휴대폰 벨이 울린다. 장터목산장이다. 어디쯤 올라오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열심히 올라가고 있다며 걱정하지 마시라고 일러준다.
하지만 속도는 여전히 나지 않는다. 벌써 해가 지면서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든다. 마음은 급한데, 몸은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동료가 내 짐에서 사과를 다시 가져간다. 베낭은 한결 가벼워진 것 같지만 산행속도는 여전히 나지 않고,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이제는 허기까지 진다. 간식을 먹어보지만 해결이 되지 않는다.
시간은 벌써 6시를 넘어섰다. 하늘에는 상현이 지난 달이 떠서 길을 밝혀준다. 헤드랜턴까지 굳이 켜지 않다도 되었다. 날씨도 따뜻해서 별로 추운 줄을 모르겠다. 천만다행이다. 날씨마저 추웠다면 하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속도가 너무 나지 않으니 동료가 먼저 올라가서 자기 베낭을 내려놓고 내려와서 내 베낭을 메고 올라간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너무 지치면 안된다며 내 베낭을 빼앗아서 둘러맨다. 장터목산장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온다. 어디쯤이냐고 묻는다. '장터목산장 1.5km' 이정목을 지났다고 일러주니 조심해서 올라오란다.
오르내림을 몇 번 반복하던 동료가 자신도 서서히 지쳐간다며 장터목산장에 도움을 요청하잔다. 나는 괜찮다며 그냥 올라가자고 했지만, 자신도 지쳐간다는 동료의 말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장터목산장에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한다. 산장에서는 내려오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동료가 휴대폰을 건네받아서 좀 도와줄 것을 조금 강하게 요청을 한다. 20~30분 기다렸으나 내려오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해서 다시 올라간다. 조금 올라가니 장터목산장까지 0.8km가 남았음을 알려주는 이정목이 나온다.
저 위에서 내려오고 있는 랜턴 불빛이 보인다. 산장에서 내려오는 모양이다. 대피소 직원이 건네주는 따뜻한 물을 몇 모금 마시고는 베낭을 직원에게 맡긴 채 발걸음을 옮긴다. 길은 오르막은 거의 끝나고 옆으로 간다. 8시쯤에 장터목산장에 도착했다. 구조 관련 서류를 꾸미고, 모포를 건네받은 뒤 숙소를 확인한다. 대피소 직원은 오늘 저녁에 푹 쉬었다가 내일 하산하란다. 구조신청을 한 상태라서 더이상의 산행은 할 수 없단다. 내일 몸 상태를 봐서 산행 지속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통보한다.
내가 수속을 밟는 동안 동료는 취사장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동료가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니, 나로서는 미안하기 그지 없다. 취사장에는 우리말고도 부자 2명이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 취사장 소등시간이 9시 30분이라 서두른다.
커피까지 한 잔 끓여마시고 모포를 배급받아 갖다 놓았던 숙소로 올라가니 옆에서 누워있던 여자분이 이곳은 여자숙소란다. 대피소 직원이 일러주었던 곳인데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계단을 내려와서 자는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주위를 조심스럽게 세세히 살펴보니 계단이 두 개가 있다. 다른 계단으로 올라가보니 우리 자리가 거기에 있다. 조심스럽게 잘 준비를 마치고 자리에 누우니 실내가 약간 덥다. 자켓과 티셔츠를 하나 벗고 자리에 누웠으나, 너무 피곤해서 잠이 오질 않는다. 엎치락뒤치락 해보지만 눈은 말뚱말뚱하다. 거기다가 사방에서 코고는 소리, 눈을 여는 소리가 들려와 수면을 방해한다. 시간은 벌써 12시를 지나고 있다. 평소에는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뒤척이다가 12시나 1시를 넘어서면 잠이 들게 마련이었는데, 어느덧 새벽 5시에 이르렀다. 잠을 한 잠도 못자고 어떻게 산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6시가 되니 천왕봉 일출을 보러가기 위해 산행 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동료도 일어난다. 오늘 일정을 논의한 결과 일단 천왕봉을 가보기로 한다. 힘들면 중간에 돌아오기로 하고.
준비를 마친 산객들이 다 출발하고 난 뒤 우리도 출발한다. 동료는 혼자서 먼저 가고, 나는 뒤처져서 올라간다. 제석봉 전망대에 도착하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천왕봉 중턱에서 먼저 출발한 산객들의 랜턴 불빛이 번쩍인다. 여기서 결정을 해야 한다. 제석봉에서 일출을 볼 것인가 아니면 일출을 못보더라도 천왕봉을 갈 것인가? 약 10분간 사진 찍으면서 미적거리다가 천왕봉을 오르기로 결정한다. 통천문을 지나니 전망이 트이면서 일출 장면이 보인다. 시간이 7시 39분이어서 해는 이미 온 몸을 드러낸 상태다. 서둘러 떠오르는 태양을 카메라에 담는다. 운해와 일출이 어우러지면서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장관이다. 다른 사람들은 천왕봉에서 일출을 찍지만, 나는 한 장의 사진으로 일출 장면을 천왕봉과 함께 찍을 수 있었다는 위안을 해본다. 천왕봉에 올라서니 아직 태양은 일출을 연출하고 있다. 온 몸을 드러낸 태양을 다시 한번 더 앵글에 담고, 정상석을 찍은 뒤 주위를 살펴보니 동료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뒤쳐져서 함께 못 찍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일출 장면을 카톡으로 보냈단다. 동료와 함께 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뒤 하산을 시작한다. 산객들은 이미 다 내려간 상태다.
장터목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고나니 10시 30분이 지났다. 베낭을 다 꾸렸으나, 대피소 직원은 보이지 않는다. 몸 상태는 엉망이지만 일단 세석까지는 가보기로 한다. 12시 30분 정도까지 세석에 도착하면 서둘러 점심을 먹고 벽소령까지 가기로 하고. 오늘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날씨가 이리도 포근하니 내일은 아무리 지리산이더라도 눈이 아닌 비가 올 것으로 보인다. 마음은 서서히 세석에서 하산하는 쪽으로 기울어간다. 우중산행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당연한 귀결이다.
동료는 12시가 조금 지나서 세석산장에 도착했지만, 나는 1시 무렵이 되어서야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나니, 2시를 넘어섰다. 벽소령까지는 보통 3~4시간이 걸리지만 내 걸음과 몸 상태로는 해지기 전에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잘못하면 어제와 같은 불상사가 벌어질 지도... 내일 눈이 온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무리를 할 필요가 있을까!
결국 내일 아침 날씨 상황을 봐서 화엄사쪽으로 해서 노고단을 오르기로 하고, 거림골로 하산하기로 한다. 거림골은 처음이다. 처음에는 커다란 계곡을 옆에 끼고서 완만하게 내려가더니 길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한다. 온통 너들길이다. 오른쪽으로 남부능선이 보이기는 하지만 전망도 없고 볼거리도 없다. 거림공원지킴터에 도착하니 5시에 퇴근하는 공원 직원을 동료가 붙잡아 놓고 있다. 4시 50분에 진주로 나가는 차가 출발했기에 공원 직원의 차를 얻어타기 위한 것이다. 5분 내에 내가 도착하지 않으면 그냥 출발하기로 했으나,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퇴근하기 위해 문을 잠그고 돌아서는 순간 나의 모습이 보였고, 결국 우리는 공원 직원의 차를 얻어타고 중산리로 갔다.
중산리에 도착해서 교통편을 이리저리 알아보니 만만치 않다. 해서 노고단 등정은 포기하고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로 한다. 나는 내일 저녁에 약속도 있고 해서 그냥 서울로 올라갔으면 했지만, 동료가 산행을 계속했으면 하는 눈치라서 동료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산행계획도 내가 짰고, 그 계획이 틀어진 것도 내 탓이니 내 의견을 피력하기가 힘들었다.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는데, 맛이 영 아니다. 먹는 듯 마는 듯 하고, 민박집을 찾아서 온 거리를 헤맸다. 주중이라서 그런지 영업을 하는 집이 많지 않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았지만 마땅한 민박집을 구하지 못하고, 내려오는 데 좀전에 잠겨 있던 민박집에 사람이 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고 물어보니 민박을 받는단다. 값은 3만원.
큰 방을 달라고 부탁을 하고 방으로 올라갔으나, 인수를 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모든 것이 허술하다. 그래도 어설퍼기는 하지만 샤워시설도 있고, 방도 따뜻하다. 동료는 이불이 얇아서 불만이 많았지만 그냥 이 집에 유하기로 한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개운하다. 오늘 밤에는 잘 잘 수 있기를!
아침에 일어나니 길바닥이 젖어 있고, 보슬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짐을 꾸려서 터미널로 내려오니 진주로 나가는 차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어서 주위를 둘러보기로 한다. 조금 내려오니 관광센터가 있기에 들어가보았지만, 문이 잠겨있다. 적혀있는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오니 곧 출동하겠단다. 얼마 안 있어 건물 안에 있던 직원이 나온다. 그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니 덕산~운리 구간의 지리산둘레길을 추천한다. 운지까지 끊었던 차표를 물리고 덕산까지의 차표를 끊으니,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는 아침부터 환불한다고 싫은 내색을 한다.
덕산에 도착해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베낭을 맡긴 뒤 지리산둘레길에 나선다. 가는 도중에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와 한국선비문화연구원을 구경한다. 이곳 덕산지역은 곶감으로 유명한가 보다. 집집마다 곶감농사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올 가을에는 비가 많이 와서 곶감 농사를 망쳤다고 한다. 늘어놓은 곶감이 시커멓게 썩고 있고, 감 밭에는 버려진 감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곶감을 못 만든 감을 썩혀 퇴비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은 운리까지는 못가고 마근담까지만 가기로 한다. 이름으로 보아서는 마근담은 볼 만한 못인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서보니 마근담은 명승지가 아니었다. 가는 도중 나무에 매달려 있는 감을 따서 먹었는데, 2개 만으로도 요깃가 되었다. 길 바닥은 시멘트 포장으로 되어 약간 불편하기는 하지만 산 속을 걷는 길이라 호젓하니 좋았다. 계속 오름 길이어서 숨이 많이 차다. 곳에 따라서는 상당히 급경사이기도 하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둘레길은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5km 정도를 왔지만 어디에도 마근담은 보이지 않는다. 해서 발걸음을 돌린다. 내려오다가 입간판에 적혀있는 농장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마근담의 위치를 물으니, 고갯마루에서 직진으로 3km 더 가야 한단다. 그리고 마근담은 못이나 소의 이름이 아니라, 종교 관련 공동체 마을 이름이란다.
돌아오는 도중 곶감 농장에 들러 감말랭이를 맛보았는데, 참으로 맛이 좋았다. 감말랭이를 구입해서 베낭을 맡겨둔 식당으로 간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얼마 안 있어 운지로 가는 차가 온다. 차 안에서 산객을 만나 오늘 지리산의 날씨를 물었더니 천왕봉에도 비가 왔단다. 만약 눈이 왔더라면 기분이 얼마나 꿀꿀했을까! 크게 위로가 되는 기분이다. 내려오길 잘 했지!! 운지에서 4시 50분 차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이로써 2박3일에 걸친 산행이 끝났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큰 탈 없이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와 함께 산행하느라 고생을 많이 한 동료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장터목에서 천왕봉 가는 길>
하동바위
제석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여명
천왕봉과 일출
천왕봉 중턱에서의 일출
뒤로 촛대봉과 반야봉이 보인다
천왕봉에서의 일출과 운해
중봉과 하봉 방면의 운해
<천왕봉에서 세석 가는 길>
제석봉 전망대
연하봉. 멀리 반야봉이 보인다
연하봉 정상에서
연하봉에서 바라본 운해
촛대봉
뒤돌아본 천왕봉
<지리산둘레길(덕산~마근담)>
한국선비문화연구원(산청군 시천면 소재)에서 바라본 산안개
지리산둘레길(덕산~운리)에서. 나무가지에 물방울들이 꽃처럼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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