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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마인드
래리 도시Larry Dossey, M. D. 1940~
「내과의사로 댈러스시립병원 원장을 지냈으며, 대체의학. 통합의학 분야를 이끌어온 선구자이다. 영성과 과학의 개념을 융합하고, 건강과 마음의 관계를 전 세계에 알려온 국제적 전도사로 꼽힌다. 전문의학저널(익스플로어: 과학과 치유 저널)의 편집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그가 집필한 <치유하는 기도>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으며, 그 밖에 <질병을 넘어서> <영혼의 회복> 등 11권의 저서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었다. 존스홉킨스 의학대학원부터 하버드, 코넬, 펜실바니아, 캘리포니아, 워싱턴, 텍사스, 플로리다, 미네소타 의과대학원 등 미국의 주요 대학과 병원에서 강연했고, (오프라 윈프리 쇼)를 비롯, 텔레비전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치유와 영성에 관심을 둔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국제적인 강연자로도 활발히 활동하면서,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각지에서 몰려든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다.」
[감사의 말]
이 책을 마무리하던 막바지에 몇 가지 일이 일어났다. 그 일들이 내 마음에 빛을 비춰준 덕분에 나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아내 바버라와 함께 뉴멕시코주 북부 생그리더크리스토 산맥의 산기슭에 산다. 책을 쓸 당시 코요테들이 자주 찾아왔는데, 마침 인간 마음과 동물 마음 사이의 연결에 관한 부분을 쓰고 있던 때라 특별히 흥미로웠다. 내 서재 창문으로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의 코요테가 나를 엿보고 있었고, 나는 컴퓨터로 향하던 얼굴을 들어 그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코요테들이 내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순간, 나는 그들이 원고 내용에 호기심을 갖고 내가 제대로 쓰고 있는지 지켜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몇 차례 순간이 지나고 그들은 느릿느릿 걸음을 떼며 사라졌다. 코요테들은 내 작업을 체크라도 하듯 이따금 다시 돌아왔다. 이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뒤 차가운 눈이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살쾡이 한 마리가 창밖에 나타났다. 그 녀석은 어느새 벌렁 드러누워 털을 쓱쓱 다듬고 한 시간 동안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이 또한 전에 없던 신기한 일이었다.
[저자의 말]
-마음과 의식에 관하여
1933년 봄,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카를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체커와 닐스 보어는 스키를 타며 휴가를 즐기기 위해 바바리아의 어느 허름한 산장에서 몇몇 친구를 만났다. 당시 하이젠베르크와 보어는 물리학의 세계무대에서 잘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책에 따르면, 어느 날 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면서, 보어가 원자 실험 결과를 기술할 때 나타내는 언어상의 한계에 관해 토론을 시작했다고 한다. 보어가 말했다. “우리가 하는 설거지가 우리가 쓰는 언어와 꼭 같구먼. 물도 더럽고 행주도 더럽지만, 어떻게든 그릇이 깨끗해진단 말이야. 언어에서도 우리는 깨끗하지 않은 개념들과 명확하지 않은 한계에 묶인 논리의 형태로 작업해야만 하지.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그것을 사용해서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명료성을 이끌어오잖아?”
[소개의 글]
이 책은 한마음One Mind의 개념에 관한 것이다. 한마음은 지성의 집합적이고 단일한 영역으로서, 모든 개인의 마음은 이것의 한 부분이다. 한마음은 당신과 내가 만나는 차원이며, 지금 당신이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우리는 여기서 만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우리는 의식, 전의식, 잠재의식, 무의식, 집단의식, 집단무의식 등 세분된 마음의 하위 부분을 알게 되었다. 한마음은 이런 구분에 추가된, 정신세계를 조망하는 또 하나의 관점이다. 차이가 있다면, 한마음은 하위 부분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마음은 모든 개인마음의 모든 정신 구성요소가 속해 있는,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의 차원이다. 각 개인이 가진 작은 마음과 구분하기 위해 나는 한 마음을 대문자로 표기한다.
-한마음 왜 중요한가?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한마음이야말로 이 세계를 집어삼키려고 위협하는 분리, 쓰라림, 이기심, 욕망, 파괴로부터 빠져나오게 해주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느 한계점이 지나면 거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지 모른다. 의식의 가장 높은 수준과 하나 됨을 느끼는 것은 우리 시야를 맑게 해주고, 도덕과 윤리의 동맥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막아주며, 우리가 행동할 수 있게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이 책이 작용하는 방식
-한 마음과의 만남
한마음이 존재하다면 우리는 다음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 감각의 접촉 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사람과 생각, 감정, 심지어 육체의 감각까지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 보통의 수단으로는 얻을 수 없는, 이미 죽은 사람이 가지고 있던 지식을 자세히 설명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 애완동물과 같은 다른 종의 생명체와 인간 사이에 원거리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 양 떼, 물고기 떼와 같은 동물의 큰 무리가 고도로 조직화된 방식으로 행동함으로써, 공유되고 겹쳐지는 마음이라는 개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죽어가는 사람, 또는 건강한 사람조차 초월의 영역에 직접 가닿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영역 속에서 당사자는 자신이 실제로는 무한한 시간과 공간인 더 큰 마음의 일부임을 깨닫는다.
• 정신적인 방법만으로 숨어 있는 대상이나 잃어버린 물체를 찾을 수 있으며, 또는 다른 누군가가 알고 있는 멀리 떨어진 장면을 감각의 접촉 없이도 세밀하게 지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능력은 가정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실제이다.
-비국소적 마음
한마음에 관한 궁극적인 논의는 의식의 비국소성에 놓여 있다. ~~~개인의 마음은 뇌나 몸 같은 특정한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현재와 같은 특정한 시점에도 묶여 있지 않다. 마음은 시간과 공간에서 비국소적이다. 이 말은, 개인의 마음은 상자(뇌) 안에 가두어 서로 격리시킬 수 없으므로 마음 간의 분리는 환상이라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마음은 하나로 합쳐져 단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 ~~~그중에는 “오직 하나의 마음뿐”이라고 선언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에어빈 슈뢰딩거가 있으며, “깊은 심층에서 인류의 의식은 하나”라고 확언한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이 있다.
-생존
의사이자 연구가인 루이스 토머스보다 자연과학을 더 중시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에서 연구를 주도해왔다.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발표한 광범위하고 재치 있는 논문에서 그는 자기 생각과 충돌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논쟁으로 맞섰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주제 가운데에는 몽테뉴와 말러가 있다.~~~심지어 그는 사후에 의식이 생물권 신경 체계 안으로 들어와 재활용되리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가 말하길 의식은 자연이 허비하기에는 너무나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멸종을 면하기. 멸종은 우리 사회가 직면하기를 바라지 않는 위협적인 개념이다. 냉전시대를 겪고 나서 많은 사람은 앞으로 부드러운 항해가 찾아오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우리는 그렇지 않음을 잘 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체계적이며 이미 넓게 퍼져 있다. ~~~우리는 끊임없는 욕망과 마비된 의지, 흐려진 전망, 그리고 토모스가 소중히 여겼던 엄격한 과학을 향한 고집 센 무지 등에 사로잡혀 행동하기를 선택한다. 이런 까닭으로 세계는 점차 쇠락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심각한 장애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통제하는 고위센터들이 손상되어 마비증을 겪듯이, 문화 전반에 걸쳐 우리는 행동장애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난관을 뚫고 나가게 해중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지구의 기후변화, 환경파괴, 환경오염, 가난, 기아, 인구과잉, 사막화, 물 부족, 멸종 등의 문제에서 벗어날 길을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토머스가 암시했듯이, 오늘날의 과학을 넘어서는 뭔가가 필요하다. 바로 “지혜의 희망” 말이다. ~~~우리가 분리될 수 없는 지구생명의 일부라는 지각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자연에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음을 잘 안다.
-공동연구소
아내 바버라와 나는 20년 동안 유기농으로 텃밭을 가꾸고, 우리 집의 남쪽 지붕과 벽면 전체에 태양광 전지판을 붙여놓았다. 이런 대책들은 우리를 좀 더 기분 봏게 하고, 환경에 대해 책임지려는 우리의 결의를 보여준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의 체계 안에서 이런 것이 아무 소용없다는 느낌이 반복되면, 그 또한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과학자들을 당황하게 한 운석
-에머슨과 나
[1부] 한마음과의 만남
01 다른 이들을 구조하다
2007년 1월 2일, 퇴역해군 출신의 50세 흑인 건설노동자 웨슬리 오트리는 오후 12시45분쯤 어린 두 딸과 함께 맨해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캐머린 홀로피터라는 20세의 젊은이가 발작을 일으켜 선로로 떨어지고 말았다. ~~~홀로피터는~~~선로로 뛰어내렸다. ~~~오트리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괜찮아요, 근데 거기 위에 제 두 딸이 있어요. 아빠가 괜찮다고 알려주세요. ~~~오트리는 왜 그렇게 했을까? ~~~내가 뭐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지 않아요. 난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본 것뿐이죠.
-왜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가?
-다른 누군가가 되기
쇼펜하우어가 제기한 멋진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한 사람이 타인의 고통과 위험에 그토록 깊이 관여하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심지어 자기 목숨을 걸고 자발적으로 타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것일까? 쇼펜하우어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공군에 처한 사람과 자신이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믿었다.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분리감을 완전히 넘어선다.
-추락한 헬리콥터
1968년과 1969년, 나는 베트남 오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나는 오트리가 처했던 상황과 유사한 위기의 순간에 여러 번 휘말렸다.
1969년 10월 어느 날, 내가 머물던 부대기지 가까운 곳에 헬리콥터 한 대가 추락했다. 나는 곧장 추락 장소로 달려갔다. ~~~조종사는 아직 의식이 있었으나 잔해 속에 갇혀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거꾸로 뒤집힌 비행체의 문을 뜯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결과를 재보지도 않고 바로 행동에 옮겼던 것이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지 1년쯤 지난 어느 날을 기억한다. 손에 닿는 대로 책을 읽던 나는 쇼펜하우어가 쓴 어떤 문장에 시선이 멈추었다. 위급한 순간에는 구조하는 사람의 의식이 위험에 처한 사람의 의식과 하나로 녹아든다는 것, 따로 떨어진 것이 용해되고 개인성이 뒤로 밀려나며, 분리가 극복되고 하나 됨이 현실이 된다는 것. 나는 그 문장이 전쟁터에서 일어났던 나의 불합리하고 위험한 행동을 설명해 주고 있음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조지프 칠턴 피어스는 <진화의 끝>에서, 성체라는 단어처럼 희생이라는 단어가 온전하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희생은 동물을 도살하는 것과 같은 부정적 의미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희생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경험에서 포착된다. 피어스는 이렇게 말했다. “전체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부분을 떠나야 한다. 전체는 부분들의 총합이 아니며, 전적으로 다른 상태이기 때문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우리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때 뒤에 남겨지는 모든 이름 붙여진 대상에 관해 이야기했다. 모든 것이 거기에서 솟아나오는 e나일한 하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분들을 넘어서고 다양성의 세계를 떠나야 한다. ”
9세기 인도 철학자 상카라는 이렇게 썼다. “질병은 약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치유되는 게 아니라, 그 약을 먹음으로써 치유된다. 브라만의 이름을 염송함으로써가 아니ㅐ라 브라만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해방이 일어난다.
02 한마음의 수호성자
슈뢰딩거는 한마음을 믿었다. 그는 “마음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마음의 수는 다 합쳐서 단 하나라고 나는 말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한마음에 대한 슈뢰딩거의 통찰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 굶고 병들다 그리고 현명해지다
제1차 세계대전이 1600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휴전한 1918년 1월, 오스트리아 군대는 만신창이가 되어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슈뢰딩거 가족이 살고 있던 빈의 상황은 형편없었다.
당시 31세로 미혼이던 슈뢰딩거 역시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 ~~~결핵임이 분명했다. ~~~거리는 거지들로 가득했고, 넝마 쪼가리에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불구가 된 군인들이 곳곳에 깔렸다.
이런 격변의 시기에도 슈뢰딩거는 빈 대학의 물리학 연구소에서 이론물리학에 관한 연구 작업을 계속해나갔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제 쇼펜하우어와 함께, 또 그를 통해서 <우파시냐드>의 가르침인 통일성의 교리에 커다란 열정으로 더욱더 친숙해지고 있다.”
슈뢰딩거를 위로했던 쇼펜하우어의 관점중 하나는 삶의 조화에 관한 이해였다. 한 존재의 모든 사건이, 인생을 관통하는 그 사람의 궤적에만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라 동시에 다른 모든 개인의 인생 흐름과도 뒤섞이며, 심지어는 그가 모르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드라마와도 하나로 섞인다고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퍼즐처럼 한 덩어리로 뭉쳐진 다양한 삶 속에서 바라볼 때, 전체 패턴은 너무도 복잡해서 어떤 특정 개인의 이해를 넘어서 있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상호간에 조율된다. 쇼펜하우어는 무질서와 외견상 무작위처럼 보이는 것에서 질서를 보았고, 그것은 위아래가 뒤집힌 슈뢰딩거의 세계에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오직 한마음
슈뢰딩거는 자신이 읽은 핵심적 가르침들에 관해 깊이 생각했다. ~~~<나의 세계관> <삶이란 무엇인가> <마음과 물질>등과 같은 책에서는 ‘단 하나의 마음’이라는 개념을 구축하고자 애썼다. 그 개념 속에서 의식은 초개인적 우주적, 집합적이고, 시간과 공간에서 무한하며, 그러므로 영원불멸이다. 인간의식이 단일하다는 관점을 수용하면서 슈뢰딩거는 그 자신이 “산술적 패러독스:라고 브른 것을 깨달았다. 비록 겉보기에는 수십억의 분리된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이 지닌 세계관은 서로 상당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마음, 혹은 의식의 단일성이 그것이다. 다양성은 단지 외관상일 뿐이며, 실제로는 오직 한마음만 존재한다.
-코타리 교수와 내가 인도에 진 빛
03 한마음의 경험들
2009년 <예감의 힘>이라는 책으로 전국을 돌며 북 투어를 하는 동안, 한마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담을 갖고 있었다. ~~~“이 경험은 평생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이런 이야기에는 오명이 따라붙는 경우가 많아서 그동안 주저했던 것이다.
-일련의 숫자
미국 동부해안에 사는 한 중년여성은 수천 마일 떨어진 반대편에 살고 있던 아들이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무시하려고 애썼으나, 느낌은 오히려 점점 더 강해졌다. 그때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일련의 숫자가 갑자기 떠올랐다. 문득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전화를 걸자, 아들이 사는 멀리 떨어진 도시의 대형병원 응급실과 연결되었다.
-집요한 친구
친구가 호텔 방으로 찾아와 비행기를 타지 말라고 말렸다. 전날 밤 꿈을 꿨는데, 비행기가 추락해서 탑승자 전원이 죽었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다고 말하면서 곧 말다툼이 일어났다. ~~~친구는 비행기의 이륙시간이 지날 때까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던 참에 실제로 그 전용기가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암은 바로 여기 있어요
한 여성은 유방암에 걸리는 꿈을 꾸었다. ~~~지금껏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미세한 유방암이로군요 하고 그가 말했다.
-파멸에 대한 암시
1972년 12월, 미국의 한 사업가가 니콰라가를 방문했다. 그는 수도인 마나과에 일주일째 머물고 있었고, 한 주 더 머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급박함이 느껴졌다. 일찍 떠나버리면 사업상 거래가 깨질 수 있어서 ~~~그러나 충동이 너무 강렬했기에 그는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12월 23일 오전 12시 29분, 진도 6.2의 지진이 도시 중심부 밑에서 발생했고 ~~~~5000명이 죽고 2만 명이 부상했으며, 25만명이 집을 잃은 재난이었다. 그가 머물던 호텔은 붕괴되었다.
-무너진 다리
2007년 8월 1일, 미네소타 미니애풀리스에 사는 한 중년여성은 혼잡한 퇴근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왠지 다른 길로 가야겠다는 충동이 강렬해서 그녀는 다른 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미시시피강 1-35W 다리가 붕괴되어 강으로 떨어졌다는 뉴스였다. 13명이 사망하고 145명이 다쳤다고 했다.
04 한마음은 무한한 크기의 거품 덩어리가 아니다
모든 개인의 마음이 더 큰 마음의 부분이라면, 한마음 안에서 모든 정신활동이 한데 뒤섞여 아무 특색 없ㄴ느 혼돈 속으로 혼합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무엇일까?
-깐깐하고 정확한 한마음
심리학자 조지프 칠턴 피어스는 특수성의 문제를 깊이 생각했다. ~~~~“우리의 모든 사고는 실제로는 하나이고, 우리가 가지는 분리감은 단지 환상이라는 가정은 터무니없다”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는 여러 사고가 상호교환 될 수 있는 수준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못하는 수준도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70억 동료 지구인에게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생각의 홍수에 빠져들지 않게 되니까. 하나의 입자에서 생긴 변화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멀리 떨어진 입자에 즉각적이고 동등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아원입자들 사이의 얽힌 상태(양자 얽힘)에 관한 발견에 견주어, 피어스는 그런 입자 사이의 연결성을 지배하는 규칙이 있다고 관찰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모두 뒤섞여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피어스는 말했다. “입자들이 모두 묶여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되면 그저 아무 입자도 묶여 있지 않은 상태만큼이나 커다란 혼돈이 될 거이다. (.....)바탕을 이루는 전체에 대한 우리의 직관은 동질의 덩어리로 용해되는 것을 암시해서는 안 된다. ” 왜냐하면 우리 마음 하나하나는 용해되어 동일한 것이 되지 않으며, 특수하고 개별화된 한마음의 사건들이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이다.
한마음은 우리 삶 속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내가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는 한마음이 우리 몸의 줄기세포 같다는 것이다. 줄기세포는 다능성을 지닌다. 즉 줄기세포는 몸의 어떤 특별한 세포라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줄기세포 스스로가 무작위로 아무 세포나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부름에 응한다.
줄기세포처럼 모든 것의 원천인 한마음 또한 지시와 요청을 기다린다. 이것이 바로 한마음에서 나오는 정보가 무작위적이 아니라 각자에게 알맞게 극도로 개별화되는 이유다.
한마음 안에는 모든 가능성, 모든 정보의 형태가 서로 중첩되어 잠재력으로 존재하는 듯 보인다. 그것들은 경험의 세계에서 실재성으로 변형되기 위해 어떤 촉발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물리학자들이 즉각 인지할 수 있는 이미지다.
대다수 물리학자는 양자 수준에서 측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입자는 이론적으로 가능한 모든 상태에 있다고 믿는다. 이 상태에서 진짜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다만 중첩되어 모두 한꺼번에 공동으로 존재하는 잠재력들의 앙상블만 있을 뿐이다. 측정이나 관찰이 일어나면 이 잠재력들은 수학적인 기술인 파동함수의 붕괴를 겪고 슈뢰딩거의 유명한 사고실험에서 나오는 고양이처럼, 가능한 여러 형태 중 오직 하나의 모습만 드러낸다. 측정, 즉 관찰은 유령 같은 잠재력을 진짜로 만든다.
-카오스와 프랙털
개인의 마음이 한마음 안에서 어떻게 합쳐지는지를 설명하는 하나의 모델이 놀라운 원천에서 솟아올랐다. 그 원천은 카오스 이론과 프랙털이라는 수학 영역이다. 1975년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는 부서진 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프랙털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거기서 골절, 파손이라는 단어도 파생된다. 프랙털 구조에서는 유사한 패턴들이 점점 작아지는 것이 반복된다. 프랙털은 크리스털 결정의 성장, 액체의 난류현상, 은하의 형성과 같은 카오스 현상이나 부분적인 무작위 현상을 묘사하는 데 사용됐다. 프랙텅 패턴들은 구름, 해안선, 눈송이, 크리스털, 혈관망, 파도, DNA, 심장박동 리듬, 꽃양배추와 브로콜리 같은 채소, 산맥, 강줄기, 단층선 등 자연의 모든 수준에서 발견되었다. 수학자들과 프랙털 예술가들이 컴퓨터로 만드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패턴들 덕분에 프랙털 예술은 이제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학의 수학자 랠프 에이브러햄은 카오스이론의 대가이다. 카오스 이론은 초기 조건에 극도로 민감한 역동 시스탬을 이룬다. 이것은 체계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장기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날씨와 나비효과이다. 나비효과에 따르면, 중국에서 일어난 나비의 날개짓이 미국 어딘가에서 토네이도를 촉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프랙털은 서로 닮지 않은 사물들이 함께 모이는 거품투성이의 넓은 지역이라고 에이브러햄은 말한다. 그는 자연에서 프랙털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모래해변의 예를 든다. 지도상에는 해안선이 선명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보면 분명한 구분이 사라져버린다. 해변에서는 물이 모래 안에 있고 모래는 물 안에 있다. 육지에서 바다로의 전이가 하나의 프랙털이다. 에이브러햄은 말한다. 그것은 공간적으로 카오스다. 그것이 자연이다. 은하수는 하늘의 모래해변이다. 그것 또한 자연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기하학과 카오스 이론을 가르쳐 준다.
에이브러햄은 마음 안의 프랙털과 세계혼 안의 프랙털이 있다고 믿는다. 그는 정상적인 정신에서 깨어 있는 자각, 무의식 등 마음의 구성요소 사이의 경계는 정신 구성요소 사이에 일종의 다공성을 허용하고 그래서 서로 통합하게 해주는 밀집한 프랙털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가 건강한 삼리의 작용을 설명하는 모래해변 모델로 부르는 것이다. 건강하지 않은 마음에서는 경계들이 콘크리트벽이나 철의 장막처럼 될 수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마음의 고립된 구성요소들은 의사소통할 수 없으며, 그 결과 정신영역들이 분열되고 고립되는 다중인격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에이브러햄은 다중인격디스카오스, 즉 카오스결핍증이라고 정의했다.
카오스결핍이라는 뜻의 디스카오스는 사회와 세계의 차원에서도 일어난다고 에이브러햄은 말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집단의식과 무의식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 그래서 (철의 장막처럼) 경계들이 너무 단단하면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다. 에이브러햄은 밀집해있고 거품이 많은 프랙털 경계가 문화의 안전성과 지속성 혹은 개인의 건강에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개인들의 마음 안에서, 그리고 지구의 70억 개인의 마음 사이에서 상호연결, 의사소통, 통합을 위해 필요하다. 그와 반대로 경직된 경계들은 의사소통의 흐름, 관용과 이해를 막아버려서, 결과적으로 개인들과 지구사회의 분열을 낳는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점점 투과가 어려워지는 경계를 세움으로써 우리 사회의 프랙털을 제거하는 과정에 있는 듯 보인다. 에이브러햄이 적었듯이. “우리 문화는 벽으로 둘러싸인 요새에 과도한 주의를 기울여왔다. (.....)도시 주변에는 콘크리트벽이 있고, 문과 집들은 잠겨 있으며, 건물 주변에는 감시장치, 은행 현금인출기에는 비디오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폐쇄적 공동체들은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분리한다. 스칸디나비아어로 ‘전쟁’을 뜻하는 단어에서 온 총기gun는 미국 내에서 미국인의 숫자만큼이나 많다. 점령자들과 99% 사람들은 1% 사람들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의회에서 상호간 예의는 사실상 사라졌다. 통기성 없고 투과성 없는 경계들이 이처럼 만연한 적은 없었다.
댈러스 텍사스대학의 예술 및 인문학 교수인 프레더릭 터너는 우주적인 한마음 안에서 개인의 마음들이 통합되는 길을 프랙털과학에서 발견하였다. 그는 자신의 책<자연 종교>에서 잠깐의 경이로움으로 우리를 가득 채우는 시각적 경험이 “마음을 기절하게 하여 몽롱해지게 한다”고 했다. 예를 들자면 강렬한 예술작품이나 입이 떡 벌어지는 일몰 광경 같은 것이다. 터너가 말하길, 그런 순간에는 “셈세한 조율이나 조정”이 뇌에서 일어날 수 있고, 거기에서 “신의 마음을 끌어오는 이상한 끌개”가 개인의 마음에 영향을 주어, 개인의 마음은 “우주 마음 그 자체의 프랙털 미니치어”가 된다. ‘마음을 기절하게 하는’ 수없이 많은 방법이 있다. 나중에 우리는 고도로 창의적인 사람들을 통해 배우게 될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초월적인 한마음으로 깨어나기를 방해하는 습관, 판에 박힌 행동, 관습의 디스카오스 효과, 프랙털을 제거하고 마비시키는 효과를 극복해냈는지 방법을 탐사할 것이다.
- 누가 관리하는가?
한마음을 조종하는 것은 누구일까?, 아니면 무엇일까? 누가 정보의 마개를 열었다 닫는 것일까? 아마도 기독교인에게 그것은 차별 없는 허공에서 형상과 질서를 창조한 하나님일 것이다.
-언어를 넘어서
현대의 이론 시장에는 의식의 작용을 설명하는 모델이 많이 진열돼 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모델을 소리치며 팔러 다니는 것처럼 봉니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 이르면 얽힘이든, 비국소성이든, 홀로그램이든, 접힌 질서든, 그 어떤 설명이라도 소용없게 된다. 위대한 지혜 전통의 신비적인 측면을 대표하는 현자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이해가 자라나면 절대로 묘사하는 모든 언어를 결국 넘어서게 된다고.
05 응시 받는 느낌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그 한 예이다. 뒤로 흘낏 보거나 고개를 돌려보면 다른 사람의 눈과 만나는 경험은 대다수가 갖고 있다. 이 형상을 광범위하게 연구해온 영국의 생물학자 루퍼트 셀드레이크는 유럽과 북미 지역 성인과 아동의 70~97%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보고했다. 또한 이 현상은 다른 방법으로도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을 응시함으로써 그 사람이 뒤돌아보게 하여 자신의 응시와 마주치게 할 수 있다고 보고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셀드레이크는 이처럼 떨어져 있는 사람의 원격응시 감지능력을 제7감 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제 7감이 텔레파시와 예감을 포함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일곱 번째 일까? 셀드레이크에 의하면, 그 이유는 이들 능력이 일반적인 제5감의 범주와는 다른 곳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전기, 자기, 열감을 감지하는 능력처럼 동물에게 있는 제6감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떨어져 있는 사람이 폐쇄회로 텔레비전 장치를 통해 바라볼 때조차 응시를 감지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이 많다. 종종 이 감각은 응시를 받는 사람의 피부 전기전도율에 발생하는 변화와 연관이 있다. 두 사람 사이에 마음에서 마음으로 직접 연결되는 의식의 겹침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두 마음이 일순간 하나가 되는 것처럼 떨어져 있는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다.
-다시, 생존의 중요성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전투상황에서 응시 받는 느낌의 경험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이 능력의 기능 중 하나가 생존임을 암시한다. 위험을 느끼는 능력이 있는 생명체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고, 그래서 자손을 낳게 되며, 그것은 우리에게 생물학적으로 긴요한 일이다.
감시원과 경찰 등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과 인터뷰를 계속해나가는 가운데, 셀드레이크는 그들 대부분이 이런 감각이 진짜라고 확신하는 것을 발견했다. ~~~탐정들은 때때로 그들이 추적하는 사람을 너무 자주 응시하지 않도록, 혹은 일부러 그의 등을 바라보도록 훈련받는다. 용의자가 자극받아 뒤돌아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용의자를 멀리서 쌍안경으로 r마시하는 경우에도 종종 이런 대비가 필요하다.
한 미군 해병대원이 셀드레이크에게 1995년 보스니아에서 저격수로 활동한 자신의 경험을 말해주었다. 그는 소총에 달린 망원경으로 테러리스트들을 겨눌 때 그들이 그것을 알고 있다고 느꼈다. “최후의 순간이 오기 1초 전, 목표물이 왠지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처럼 보이곤 했어요. 1마일 떨어진 곳이었지만, 그들이 어떻게든 내 존재를 감지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들은 불가사의한 정확성을 가지고 그렇게 느꼈고, 그 결과 내 시선 쪽을 바라본 겁니다. ”
유명인을 몰래 찍는 사진사도 유사한 경험을 보고했다. 몇백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사진이 찍히는 유명한 사람들도 뒤돌아보며 카메라 렌즈를 응시할 때가 많다. 사냥꾼과 야생동물 사진작가들도 비슷한 일을 보고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동물들도 망원경이나 카메라를 향해 머리를 돌린다. 마치 추적자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곳 뉴멕시코주 북부의 여름 동안 나는 사무실 밖에 벌새의 먹이통을 놓아둔다. 평소 책상 위에 쌍안경을 같다 놓고 벌새 한 마리가 먹이통에 날아와 앉으면 재빨리 쌍안경을 집어 들고 확대하여 관찰한다. 벌새는 거의 항상 몇 초 이내로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쌍안경을 들지 않고 그냥 맨눈으로 흘낏 보면서 새를 응시하지 않으면, 새가 훨씬 오랫동안 먹이통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어떤 사람들은 자고 있는 개나 고양이를 응시함으로써 그들을 깨울 수 있다고 믿는다며 루퍼트 셀드레이크에게 보고했다. 많은 사람은 반려동물이 자신들의 눈을 보지 못할 때도 자신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현상들이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서 발생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는 차츰차츰 자연과 멀어져왔다. 그런 까닭에 이런 현상들이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지 인식하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겪는다. 오늘날 아이들은 자연으로 나가 직접 야생과 만나는 것보다 텔레비전에서(동물의 왕국)을 볼 가능성이 더 크다. 삶의 순간마다 자연과 생명에 친밀히 접촉했던 우리 선조들의 경험과 비교해보라. 그들은 크든 작든 뭇 생명과 공유하는 의식의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 의식은 시간과 공간과 한계를 모르는 의식, 모든 살아 있는 존재가 함께 참여하는 한마음이었다.
[06] 그들은 하나처럼 움직인다
집단행동에 가장 숙달된 새 중 하나는 찌르레기이다. 거대한 집단을 이루어 움직이는 그들의 공예는 일종의 공중 발레처럼 우아하다. 겨울 동안 영국에서는 저녁만 되면 수천 마리의 찌르레기가 먹이사냥을 마치고 오트무어로 돌아온다. 오트무어는 영국 남동부에 자리 잡은 400에이커 넓이의 습지초원이다. 작은 무리는 머머레이션이라고 부르는 더 큰 무리와 하나로 합쳐진다. 그때 그들은 자연에서 가장 우아한 배열의 하나를 이루며 소용돌이치듯 회전한다.
생명체들이 집단행동을 보일 때는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더 큰 무엇이 개입하는 것일까?
코끼리 한 마리가 죽으면, 종종 그 무리가 죽은 코끼리 주변에 모여 들어 며칠간 머물면서 마치 정말로 슬픔과 애도를 경험하듯이 행동한다. 코끼리들은 이동하기 전에 죽은 코끼리를 땅에 묻고 나중에 다시 그 자리를 찾아와서 뼈들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진다고 알려졌다. 데이비드 앨더턴은 <동물의 비탄: 동물은 어떻게 애도하는가>에서, 동물행동학자들이 볼 때 진짜 애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은 개와 말과 고릴라들 속에서 관찰됐다고 밝히고 있다.
어느 까치 장례식을 보고를 들여다보자. 길에서 차에 치어 죽은 까치 한 마리가 있었는데. 약 40마리의 까치 떼가 주변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새를 치어 죽인 자동차가 그곳으로 골아왔을 때. 까치들이 떼 지어 달려들어 그 차를 거의 길 밖으로 내몰았다. 유사한 예로, 한 남자가 달걀을 훔쳐가던 까마귀 한 마리를 총으로 쏘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남자의 집은 30여 마리의 까마귀로 포위됐는데, 새들은 며칠 동안이나 둘레를 돌며 그 집을 에워쌌다. 그 뒤로 남자는 까마귀 사냥을 영영 포기해버렸다.
-집단지성
동물, 새, 물고기 집단은 어떻게 단 하나의 존재인 것처럼 조화로운 방식으로 일치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잘 알려진 설명은. 1980년대 dslrhdwlsmd과 로봇공학 연구자들이 소개한 집단지성 혹은 집단이론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집단 안에서 한 개체 단위는 서로 간에 그리고 주변 환경과 국소적으로 상호작용한다. 개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중앙통제가 없더라도, 개체간의 국소적이고 때로는 무작위적인 상호작용이 어떻게든 일어나고 또 지성적인 집단행동으로 이어져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개체는 특별히 영리하지 않지만, 집단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집단이론은 네발짐승과 새, 그리고 물고기 떼를 짓는 것, 개미가 군락을 이루는 것, 벌집과 박테리아의 성장과 같은 자연현상에 적용되어왔다. 집단이론은 실제로 생활에도 응용되었다. 항공기 운항에 가장 좋은 발권 및 탐승방식, 항공편을 공항게이트에 할당하고 화물트럭을 배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결정하는 데 이 이론이 사용되었다.
또 과학자들은 곤충군집의 행동을 모방한 단순한 규칙을 이용하여, 로봇집단 혹은 군집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왔다. 이런 소프트웨어의 목표는 응급처치 요원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구조작업과 위험한 업무를 로봇에게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언젠가 로봇군집이 화성 표면을 탐사할 날이 올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네발짐승, 새, 물고기 또는 곤충들이 군집을 이룰 때, 그들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만일 청어 떼 가운데 어떤 개체도 전체 그림을 갖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개체인 것처럼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집단이론 연구가들은 어느 개체도 책임지지 않는 게 열쇠라고 말한다. 명령을 내리는 대장은 없다. 만약 대장이 있다면, 군집 전체에 명령을 퍼뜨리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대장으로부터 내려오는 명령 대신, 비교적 단순한 규칙들이 복잡한 행동을 관장하는 것이다.
1986년 컴퓨터 그래픽 연구가인 크레이크 레이놀즈가 그 스스로 보이드boids 로 부른 단순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들 규칙을 탐사했다.. 그의 시뮬레이션에서 일반적인 새와 같은 물ㅊ체, 즉 보이드는 각자 다음 세 가지를 지시를 받는다. (1)보이드를 가까이 몰려들지 말 것. (2) 근처 보이드들의 평균적인 방향으로 날 것. (3) 근처 보이드들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것. 그가 컴퓨터 스크린에서 프로그램을 작동하자 놀랍게도 살아 있는 듯한, 예측할 수 없는 군집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하지만 생명체는 왜 이런 규칙을 따르는 것일까? 그리고 애초에 왜 거대한 군집을 이루는 것일까? 생물학이 건네주는 표준적인 대답은 그렇게 하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동물들이 군락을 이루면 포식자가 식별할 눈을 많이 얻게 된다. 공격받을 때는 조직화된 집단행동으로 포식자를 교란할 수 있다. 개체로서는 짝을 찾고, 먹이를 발견하고, 이동방향을 따라잡는 데 유리하다. 집단구성원으로서 개체는 혼자 고립해 잇을 때보다 살아남아서 번식할 가능성이 더 크다.
-집단 마음
생물학자들은 집단행동을 감각정보로 설명하려고 애썼다. 하나의 개체가 바로 옆의 개체로부터 감각정보를 얻어낸 뒤 이 과정이 집단 전체로 뻗어간다는 식이다. 이런 설명은 어떤 종류의 집단지성도 필요하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또는 집단지성의 불필요성을 말하는 사람도 잇다. 하지만 레이놀즈의 보이드들 처럼 컴퓨터로 처리되는 모델들에는 문제가 있다. 영국 생물학자 루퍼드 셀드레이크는, 평면 컴퓨터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일은 3차우너의 진짜 새 떼 행동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셀드레이크의 말에 따르면, 2차원 모델들은 생물학적으로 나이브 하다.
1984년 유타대학의 생물학자 웨인 포츠는 워싱턴 주 북서부에 있는 퓨젓사운드만에서 큰 민물도요 떼가 선회하는 움직임을 필름에 담았다. 초고속 카메라의 재생속도를 늦추자 이웃 개체 사이의 행동변화가 1,000분의 15초 이내에 일어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런 변화들은 한 마리 새에서, 또는 무리 안의 작은 집단 어디에서든지 시작될 수 있고, 거의 동시적인 파동으로 전체에 퍼져나갔다. 다음으로 포츠는 실험실에서 민물도요가 얼마나 빨리 자극에 반응하는지를 실험했다. 그 결과 민물도요가 빛의 번쩍임에 놀라 반응을 시작하는 데에는 평균 1,000분의 38초가 걸린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은 새들이 비행방향을 바꾸기 위해 이웃들에게서 오는 시각적인 신호에 의존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방향변화는 실험실에서 입증된 반응시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포츠는 개체들이 실제로 시각적으로 반응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때 이웃들에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군락 전체를 하나로 통과하는, 그가 작전파동maneuver wave이라고 부른 것에 반응한다고 했다.
이렇게 빠른 전달은, 사람들이 합창할 때 일어나는 것과 아주 유사한 방식으로 얻어지는 것 같다. 개체는 작전파동이 다가오는 것을 관찰하여 그 파동의 도착과 함께 자신의 실행이 동시에 일어나도록 타이밍을 맞춘다.
셀드레이크의 말에 따르면, 수십 년간 많은 자연연구가들은 조류군락의 방향전환이 그토록 빨리 일어나는 것이 집단사고나 텔레파시 때문인것 같다고 추측해왔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이는 물고기 떼의 일치된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보이드 같은 2차원적인 컴퓨터 모델들이 개발되었다. 물고기들이 보여주는 가장 멋지고 장엄한 광경은 이른바 순간확산이다. 물고기 떼가 포식자의 공격을 받으면 각각의 물고기는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쏜살같이 달아나서, 물고기 떼는 마치 폭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전체의 확산이 천분의 20초 안에 일어날 수 있다고 셀드레이크는 기록하고 있다. 이 현상 역시 단순한 감각만으로는 tfj명할 수 없다. 신경의 자극이 물고기의 눈에서 뇌로, 그 다음에 근육으로 이동한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빠르게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텔레파시의 진화론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는 rth은 사회집단의 형태장이라고 셀드레이크는 기술한다. 텔레파시란 말이 완고한 유물론자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가셌지만, 셀드레이크의 관점에서 볼 때 rjrldp 도%께비처럼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말로 그것은 당연하다. 비감각적인 의사소통은 먹고 먹히는 야생의 자연 속에서 어떤 생명체라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그것은 생존에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생존을 돕고, 그 결과 번식을 도와주게 되므로 생물의 유전적 구조 속에 받아들여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종 전체에 걸쳐 작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능력은 거의 확실히 무의식 수준에서 진화해왔다. 의식적인 분석과 결정은 시간이 걸리는데, 그렇게 되면 포식동물을 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텔레파시 또는 비국소적 자각은 거의 모든 인간의 무의식 속에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회의론자들의 내면에도 말이다.
셀드레이크 형태장은 한마음에 구조와 특이성을 부여해준다. 형태장은 특정한 생명체의 필요에 맞추려는 진화적 압박을 통해 진화해왔으므로 종에 따라 특별할 수 있다. 그래서 찌르레기 떼의 형태장은 물고기 떼의 형태장과 다르다. 희개미와 같은 사회적 곤충들은 그들 자신만의 필드를 가진다. 그들은 대단히 복잡한 통로와 방과 환기 시설을 갖춘 10피트 높이의 정교한 서식처를 건설할 줄 안다. 어느 희개미든 단 한 마리도 구조물 전체의 설계계획은 알지 못하게Twlo만, 전체로서의 군집은 알고 있다.
텔레파시는 제7감각의 특성이다. 익서ㅕ은 집단 구성원이 다른 개체들의 움직임과 활동에 응답하고 그들의 감정과 필요와 의도에 응답할 수 있게 해 준다. 텔레파시로 전달되는 느낌에는 두려움, 경고, 흥분, 도움 요청, 특정한 장소에 가기 위한 부름, 도착이나 출발의 예감, 고통과 죽어감 등이 포한된다.
07 동물과 인간의 한마음
-무언의 일치를 넘어서
듀크대학의 J. B.라인 박사와 샐리 라인 페더 박사의 연구에서 원격의 비국소적인 앎을 암시하는 동물행동을 다섯 가지 범주오 기술했다.
1) 자신과 자기 주인에게 임박한 위험에 대한 반응
2) 멀리 있는 주인의 죽음에 대한 반응
3) 주인이 돌아오는 것을 예감하는 것
4) 집으로 돌아오기
5) 추적하기
- 귀가하는 주인
셀드레이크는 주인이 집에 돌아올 때 반려동물이 아는 것처럼 보인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는 동물의 주인들이 믿는 것에 증거를 제공하기 위해 5년간 세심하게 실험했다. ~~~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을 다양하게 바꾸고 택시를 타는 등 귀가수단을 여러 가지로 바꾸며 속이려 애썼지만, 개는 여전히 알아차리고 주인이 나타나기 몇 분 전에 문이나 창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집에 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도 일어났다.
-생태학적 타당성
동물의 초능력에 관해 폭넓은 저술활동을 해온 캘리포니아 홈볼트 주립대학의 철학 및 여성학 교수 수전 J. 암스트롱은 ~~~~인간과 다른 동물 종 사이의 감정연결이 먼 거리에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를 기술했다. 1970년대 후반 그녀에게는 코커스패니얼 사냥개 한 마리와 잉꼬 두 마리가 있었다. 개가 잉꼬들을 해칠 거라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으므로 그녀는 거실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게 새들을 풀어놓았다. 그러나 어느 날 오후, 정원을 가꾸려고 밖으로 나갔을 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대단히 폭력적인 감각을 갑자기 느꼈다. 거실 안으로 달려가 보니 개가 잉꼬 한 마리를 잡아먹으려고 털을 뜯고 있던 참이었다.
-생각을 공유하기
개와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은 흔히들 반려동물이 자신의 기분을 감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많은 이는 동물들이 때때로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루퍼트 셀드레이크가 영국 북서부의 애완동물 주인들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개 주인 53%와 고양이 주인 33%는 동물이 자신의 생각이나 말 없는 명령에 응답한다고 생각하며, 비슷한 비율의 사람들은 자신의 반려동물과 때때로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구를 위한 암시
한마음 안에 인간과 그 밖의 다른 종들이 모두 포함된다면, 동물은 실험자의 기분을 감지하고 그에 따라 행동을 바꾸지 않을까? 주인이 언제 돌아오는지 아는 개들에 관한 셀드레이크의 실험은 적절한 예가 된다. 셀드레이크는 반려동물의 확장된 자각과 인간 - 동물 간 비국소적 원거리 의사소통 능력에 관한 견해에 마음이 열려 있다. 이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그의 주의 깊은 실험은 지속해서 긍정적 결과를 산출해내고 있다.
-생사가 달린 일
사람이 개를 구하고 개가 사람을 구한 보고사례는 무수히 많다. ~~~1904년 7월 10일 자정이 조금 지났을 무렵, 잠자리에서 꿈을 꾸던 라이더 해거드(영국 소설가)는 곧 숨이 멎을 것만 같아서 인간 힘을 쓰다가 비명을 질렀다. 아내가 깨우자 그는 흐느끼며 상처입은 동물처럼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아내에게 그때의 감각이 어땠는지 말해주었는데, 우울함에서 시작하여 살려고 몸부림치는 느낌으로 발전했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냥개 봅의 몸 안에 자신이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나는 우리 늙은 개 봅이 물가의 관목 덤불 사이에 옆으로 누운 것을 봤소.” 그는 말했다.~~~~나흘 후 그는 집에서 1마일쯤 떨어진 곳에서 봅의 사체를 발견해t다. 봅은 웨이벌리 강에 떠 있었다. 봅은 두개골이 파열되고 앞다리가 부러지는 끔찍한 부상을 당했다. ~~~아마도 그 개가 기차에 치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들은 해거드가 꿈을 꿨던 그 시각에 가차가 다리 위에서 봅을 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08 원자 그리고 쥐들
어떤 연구가들은 아원자입자들이 얽힌 행동이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우너격연결의 밑바탕이 된다고 믿는다. 캘리포니아 노에틱사이언스 연구소의 수석 연구가 딘 라딘은 선구적인 책 <얽힌 마음>에서 이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는 얽힘이란 인간 수준에서 마음 사이의 연결성을 말해주는 비유 이상의 어떤 것임을 강력히 암시하는 수많은 실험을 검토한다. 만일 파인먼이 옳다면, 즉 동물이 하는 모든 일을 원자가 한다면, 그는 자기도 모르게, 무한하고 단일한 마음의 바탕이 되는 메커니즘을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셈이다.
표준 물리학 교과서들은 현재의 과학지식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 교과서들은 벽돌, 뇌, 동물 등 중간 크기의 세계와 행성, 별, 은하 등 거대한 세계가 뉴턴법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의해 기술되는 고전물리학의 영역이라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아원자입자와 원자 수준까지 내려가면 고전물리학이 이상한 양자행동으로 바뀌어버리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나타난다. 이때 양자행동은 양자역학이 제공하는 틀에 의해 지배된다.
-뭔지 모르는 일을 미지의 뭔가가 하고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탐험하는 뇌- 몸 밖의 다양한 현상이, 마침내 양자 수준에서의 얽힘으로 설명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것은 이것이다. (1)아원자입자들은 얽혀 있다. 일단 접촉했다가 분리되면, 아무리 멀리 떨어지더라도 하나에서의 변화는 즉각적으로 그리고 동일한 정도로 다른 하나에서의 변화와 상호 연관된다. 이들 원격의 비국소적 연결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일련의 실험들로 입증되어 현대물리학 법칙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인간도 얽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서, 심지어 전 지구적인 거리에서도 생각과 느낌과 신체적 변화를 공유할 수 있다. . 이런 현상은 수십 년에 rfjcu 수많은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조심해야 한다. 양자얽힘이 인간얽힘과 정말로 같은 것인지 알지 못하므로 우리는 아직 양자얽힘이 인간얽힘을 일으킨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는 우연한 언어적 상관관계를 다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3) 생물학적 유기체 시스템 안에서의 얽힘에 반대한 옛 주장들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법칙을 어기기 때문에 뇌-몸 너머의 현상이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자들의 지루한 경고는 이제 논란 없이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는 마음껏 궁금해 할 수 있다. 아원자입자들이 양자얽힘이 위대한 연결, 즉 한마음 안에서 가장 장엄한 표현을 찾는 통일성의 원시적이고 기본적인 전조라는 사실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영국의 천체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 경은 현대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뭔지 모르는 일을 미지의 뭔가가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뇌- 몸 너머의 현상과 그 현상이 가리키는 한마음을 탐험하고 있기에, 이것은 아주 훌륭한 모토이다.
[2부] 한마음에 대한 연구
09 뇌 너머의 마음
한마음을 반대하는 주된 근거는 의식이 어떻게든 뇌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러므로 뇌에 국한한다는 뿌리 깊은 신념이다. 뇌가 두개골 안에 들어 있으므로 마음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이 신념을 얼마나 많이 지지하고 있을까?
미국의 행동심리학자 칼 레슬리는 먹이보상을 추구하는 것처럼 특별한 일을 수행하도록 쥐들을 훈련했다. 그런 다음 쥐 뇌의 특별한 부위에 손상을 입혀 그것이 행동의 지속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쥐들에게 수백 번 실험했으나 그는 기억을 관장하는 단일한 장소를 찾는 데 실패했다. 그는 자신의 발견을 이렇게 요약했다. “신경계 안의 어느 곳에서도 기억흔적의 독립된 장소를 찾아낼 수 없다.” 레슐리는 기억의 쥐 뇌의 특정한 영역에 위치하지 않고 대뇌피질 전체에 퍼져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것은 쥐의 뇌 안에서 “기억이 모든 곳에 있으며 특별히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는 패러독스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당신의 뇌는 얼마나 필요한가?
영국의 신경학자 존 로버는 ‘정상적인 정신활동에 손상되지 않은 대뇌피질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수두증이 있는 수많은 환자를 컴퓨터 단층촬영으로 검사한 결과, 그중 많은 사람이 정상이거나 정상 이상의 지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의식의 수신가. 뇌
과학자들이 마음과 뇌가 하나의 동일한 것이라고 가정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뇌가 신체적 외상이나 발작 등으로 손상을 입으면 결과적으로 정신활동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비타민 결핍과 영양결핍도 사고과정에 장애를 일으키며, 환경독소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뇌의 동양과 감염은 정신활동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 이런 효과들을 보면, 마음과 뇌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가정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관찰 중 어느 것도 뇌가 마음을 만든다거나 마음이 뇌 안에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1890년대에 옥스퍼드의 철학자 퍼디낸드 실러는 “물질은 의식을 상자에 가두어서 의식을 조절하고 제한하고 억제하기 위해 교묘하게 계획된 기계”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물질은 의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제한하고 어떤 한계 안에 의식의 힘을 국한한다.(....)” 뇌종양에서 의식의 현현은 영향을 받지만, 의식 자체는 소멸하지 않는다고 실러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또 우리가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은 기억보다는 망각에 관해서라고 말했다. 뇌의 한계만 아니라면 완전한 기억이 가능할 것으로 그는 믿었다.
[10] 불멸과 임사체험
[11] 재탄생
2009년 미국의 여론기관인 퓨리서치센터는 미국인의 24%가 윤회, 즉 사람이 세상에 계속 반복하여 태어남을 믿는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22%의 기독교인, 34%의 흑인, 29%의 히스패닉이 이 신념을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 망자와의 대화
[13] 삶의 초기에 나타나는 하나 됨
심리학자 조지프 칠턴 피어스는 애팔래치아 남쪽에 정착한 앵글롯개슨족 원주민에 관한 연구를 기술했다. 그들은 여러 세대 동안 고립되어. 연구자들이 텔레파시라 부른 방법을 일상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들은 그것이 t니기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피어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실제로 이 모든 텔레파시 같은 의사소통은 일반적인 삶의 질을 높였고, 가족단위 안에서 감정적 결속력을 강화해주었다. 어머니가 저녁식사 때 텔레파시로 가족을 부른다든가 가족구성원의 고난이나 어떤 심리상태를 느낀다든가 하는 일이다.
-보는 방법이 또 있다.
전근대 문화의 먼 거리에서 아는 현상을 연구한 사람으로는 두찬 게르시가 있다. 그는 모험가이자 탐험가이자 영화제작자이며, 지구상 가장 고립된 지역에서 그가 전통의 사람들로 부른 문화를 기록하면서 인생 대부분을 보냈다. 마음을 사로잡는 책<연기 속의 얼굴들>에서 그는 비국소적 한마음의 지식이 자연스럽고 순수한 방식으로 이들 문화 속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그 장면을 기술했다.
어느 날 차를 몰고 사하라의 황폐한 사막을 가로질러 가는 동안, 게르시는 낙타 옆에 앉아 있던 투아레그족 유목민 한 사람과 마주쳤다. 발자국으로 보아 게르시ㅐ는 그가 며칠간 같은 지점에 머물렀으리라고 추론했다. 주변과 구별되는 특징이 전혀 없어서 그 지점은 마치 허허 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듯했다. 있는 거라고는 흔하디흔한 모래와 돌과 바위언덕뿐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게르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남자와 차를 한 잔 나누었다. 유목민은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7개월 전에 600마일 떨어진 말리에 있는 한 마을에서, 이 특별한 시간, 이 특별한 지점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둘은 여행 중이었고 서로 다른 방향에서 이 지점을 향해 다가오기로 되어 있었다.
게르시는 주변을 둘러보며 광막한 사막 한가운데서 과연 이 짖머을 찾아낼 수 있을까 미심쩍었다. 반대편에서 다가오던 두 사람이 거기에서 마주칠 가능성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곳을 그냥 지나치는 건 불가능해요. 유목민은 주변의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며 이렇게 말했다. 유일한 문제는 유목민의 물이 거의 다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친구가 3일 안에 도착하지 않으면 그는 떠나야만 했다. 다음날 그는 게르시에게 계획대로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간밤에 친구와 대화했는데, 친구가 이틀 후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친구 꿈을 꾸었나요? 하고 게르시가 물었다. 아뇨, 꿈을 꾼 게 아닙니다. 친구가 그냥 자기가 어디 있는지 알려줬지요. 유목민이 대답했다. 그는 친구가 물통에 물을 채우기 위해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알려줬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말해줬다는 거죠? 게르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친구가 내 마음에 그렇게 말해줬어요. 유목민이 말했다. 같은 식으로 나도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대답해줬지요. 여전히 의심스러워서 게르시는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틀 후 그들이 계획한 대로 투아레그족의 친구가 도착했다.
14 서번트증후군
-배우지 않고 글자도 모르지만 천재적인
일상대화에서는 58개의 단어밖에 모르는 한 서번트가, 미국 전역에서 5,000명 이상이 거주하는 각 도시와 마을의 정호가한 인구수를 알고 있으며, 또한 각 주의 가장 큰 도시와 다른 도시 사이의 거리, 3000개의 산과 강과 관련한 통계수치, 그리고 2,000개 이상의 주요 발명과 발견에 관한 핵심내용을 알고 있었다.
한 서번트 소녀는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에 자기 선물 꾸러미 안에 뭐가 들어 있을지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16. 텔레소매틱 사건
1960년대에 미국의 신경정신과 의사 베르톨드 E. 슈워츠는 멀리 떨어진 몸이란 의미의 단어에서 텔레소매틱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슈워츠는 먼 거리에 각각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유사한 감각이나 실제로 물리적 변화를 경험하는 사건들을 기록해왔다. 수백 건의 텔레소매틱 사건이 수십 년에 걸쳐 보고되었다. 이 사건들은 관련 인물들이 어떻게든 의식을 통해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마치 두 몸이 하나의 마음을 공유하는 것과 같다.
-마치 한 몸처럼
유명한 풍경화가 아서 세 번. 어느 날 세 번은 아침 일찍 깨어나 가까운 호수에 보트를 타러갔다. 러스킨의 사촌인 그의 아내 조안은 집에 남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뚜렷한 이유 없이 입에 고통스러운 타격을 입은 느낌을 받았고 그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잠시 후 남편 아서가 피가 흐르는 입을 천으로 막은 채 돌아왔다. 남편이 말하길, 갑자기 바람이 확 불어서 돛 아래쪽 활대가 자기 입을 때렸고 그로 인해 보트에서 떨어질 뻔했다고 했다. 그 시간은 아내 조안이 타격을 느꼈을 때와 같은 시간이었다.
-감정이입 공명
버지니아대학의 정신과 의사였던 이안 스티븐슨(1918~2007)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유사한 신체증세를 경험한 수십 건의 비슷한 사례를 조사했다. 대부분 이런 일은 부모와 아이들, 배우자, 형제자매, 쌍둥이, 연인,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 일어났다. 역시 공통맥락은 떨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적인 친근함과 공감인 것처럼 보인다.
한 어머니가 대학에 들어간 딸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확실한 이유 없이 오른 손이 심하게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려 펜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는데, 실험실에서 산acid에 의한 사고로 딸이 오른손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 의사, 과학자, 그리고 교수 : 그들이 믿는 것
스토니브룩대학 가정의학과 임상 부교수인 로버트 S. 바브로우 박사는 <대기실의 마녀>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밝히고 있다. 자신의 환자, 간호사, 동료 중 많은 수가 의학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마음의 힘을 개인적으로 믿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은 그 사실이 알려지면 오명을 덮어쓸까 봐 자기 혼자서만 신념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바브로우는 1980년 <미국 정신의학 저널>에 발표됐던 연구를 언급했다. 그 연구에서는 정신과 교수, 수련의, 그 외의 다른 의료진과 의과대 학장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정신과 교육에 심령과학 연구가 포함되어야 할 것인가?” 반수 이상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조사를 담당했던 연구자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많은 심령현상이 사실일 수 있고 우리 모두 또는 대다수가 초능력이 있으며, 치유과정에 비의학적 요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확신이 의과대 학장들과 정신과 교수들 사이에 만영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령현상의 연구는 정신과 교육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4년 미 전역에서 다양한 전공분야에 걸쳐 의사 1,100명을 조사했다. 연구자는 그중 74%에 과거에 이른바 기적들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고, 73%는 지금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의사의 59%가 개인적으로 환자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51%는 집단으로 환자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경향을 살펴보면서 스테판 A. 슈워츠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비국소적 마음이라는 개념과 관련 있는,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들이 일반대중과 의학계 모두의 견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 역시 신념이 비슷하다. 영국 저널(뉴 사이언티스트)는 1973년 독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저널은 독자들에게 ESP, 즉 초감각적인 지각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1,500명의 응답자 중에서 67%가 ESP를 확정된 사실, 또는 적어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했다. 88%는 심령과학 연구가 과학ㅌ마구 영역에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1,100명의 미국 대학교수를 조사했다. 55%의 자연과학 교수들, 66%의 사회과학 교수들(심리학자 포함), 그리고 77%의 예술, 인문학, 교육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ESP가 확고한 사실이거나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17 절대적인 확신
1974년 타그는 스탠퍼드연구소의 동료 물리학자 해럴드 푸토프, 캘리포니아 버뱅크시의 은퇴한 경찰청장인 팻 프라이스와 함께 9건의 원격투시 실험을 공동으로 작업했다. 이 실험에서 먼 장소로 이동한 푸토프의 위치를 프라이스에게 묘사하게 했다. 60개의 가능한 장소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인데, 프라이스는 7회나 처음에 그 장소를 골라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확률은 1만분의 3이었다.
18 추락한 비행기와 가라앉은 배
원격투시는 보통 육체적 감각이 닿을 수 없는 목표물에 관하여 먼 거리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람의 능력을 말한다.
-첩보위성보다 더 뛰어난 시각능력
카터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소련의 폭격기 Tu-22가 아프리카 자이르의 울창한 밀림에 추락한 것이다. 첩보위성이 비행기를 찾아내는 데 실패하자 공군과 CIA는 추가로 원격투시라는 새로운 기법을 이용하여 비행기를 찾아냈다. 몇 년 후 카터는 당시 사고를 다시 언급하며 말했다. “원격투시자는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서 그 사이에 위도와 경도를 말해주었다. 우리는 위성카메라를 해당지점에 집중했는데, 비행기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실제로는 두 명의 투시자가 참여했고, 그들의 그림과 고해상도 사진과 지도 이미지를 맞추는 데에 몇 번의 세션이 필요했다. 그러나 최종결과는 그들이 실제로 추락한 소련 폭격기를 원격투시를 통해 찾아낸 것이었다.
한마음은 집단의 크기와 상관없이 작용한다. 어떤 한 사람이 정보를 가지고 잇으면, 원칙적으로는 누구나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모든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고 있고,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요한 정보가 70억 지구인 모두의 마음속에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열려 잇음과 관계가 있고, 그 정보가 어떤 사람의 소망과 필요와 의도에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딥 퀘스트 작전
내가 아는 이들 중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은 스테판 A. 슈워츠이다. ~~~사무엘리 연구소의 뇌, 마음. 힐링센터의 선임연구원이며, 기초실험실의 인지과학 실험분야의 임상연구원이기도 하다. ~~~슈워츠는 원격투시의 초기 작업에 매료되었다. 시간과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것을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알 수 있단 말인가?
이 영역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각하는 사람과 멀리 떨어진 장소 사이에 어떤 신호가 전해질 것이라고 상상한다. 마치 무선ㄴ통신과 텔레비전 통신에서 전자기 신호가 전달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슈워츠는 여러 책에 나와 있는 과학실험을 재조사한 결과, 어떠한 종류의 전자기적 신호도 전달된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첫째 이유로는, 이런 사건에서 거리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만약에 전자기적 신호가 관련되어 있다면, 거리가 증가함에 따라 신호도 약해질 것이다~~~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19. 잃어버린 하프와 도서관의 천사
20. 치유와 한마음
21. 어두운 측면
한마음 경험은 흔히 깨달음이나 황홀경으로 묘사되지만, 거기엔 그냥 무시해버리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고 표현할 만큼 어두운 측면이 있다.
-집단사고
일치된 한마음 사고의 또 다른 병적인 형태는 집단사고이다. 집단사고란 구성원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어떤 생각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하지 않고 합의에 도달하려는, 응집성 있는 소집단에 의해 수행되는 담론 형태이다. 집단사고는 개인의 창조성을 소멸시키고, 결정된 것에 대한 책임감을 최소화한다.
[3부] 한마음에 닿기
22. 우주 수프
23. 자아
24. 한마음이 신일까?
한마음이 알려질 수 있는 모든 정보의 원천이라면 그것은 전지전능하다. 전지전능은 보통 신성에 부여되는 특성이다.
내면에 거하는 신성이라는 개념은 서양문화에는 잘 맞지 않는다. 우리의 우세한 종교들은 우리가 구원의 행위를 통해 죄 사함을 받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원죄를 지닌 채 태어난다고 단언한다.
화학적 구성에서는 바닷물 한 방울이 바다 전체와 같지만, 부피와 힘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처럼 인간은 어떤 면에서는 절대자와 동일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한마음을 통해 우리가 신성과 하나 되는 것이 얼마나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인간과 신성이 하나로 용해되는 것은 연원한 철학의 주제이다. 영원의 철학은 올더스 헉슬리가 쓴 같은 제목의 책에 의해 대중화되었다.(헉슬리는 영원의 철학이라는 말을 라이프니츠가 만들었다고 인정했다) 헉슬리는 영원의 철학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영원의 철학은 (.....)사물의 세계와 삶과 마음에서 신성한 실재가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형이상학이다. 영혼 안에서 뭔가 유사한 것, 심지어 같은 것인 신성의 실재를 발견하는 심리학이다. 내재적이고 초월적인 모든 존재의 토대를 아는 것, 이것을 인간의 최종목적으로 삼는 윤리학이다.”
25. 막힌 열쇠구멍 뚫기
-구체화의 저주
한마음 영역에 들어가는 것을 보장해주는 공식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자신보다 더 위대한 지혜와 지성의 원천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한마음에 접근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주어진 것에 감사하자. 한마음은 불확실성, 예측 불가능함, 그리고 자유에서 번성한다. 그것은 tfka과 가능성, 그리고 끝없는 다양성에 열려 있다. 한마음과의 효과적인 상호작용을 가장 확실하게 파멸하는 방법은 진입과정에 특별하고 결정적인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구체화란 우리가 혐오하는 불확실성을 감소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뭔가를 구체화하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의 범위를 좁히고 문을 닫아 생명으로부터 분리한다. 그러면 그것은 생명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펼쳐지기를 멈춘다.
구체화의 한 예로 요가를 들 수 있다. 요가는 영적인 통찰과 평등심을 얻기 위해 행해지던 고대인도의 훈련법이다.
또 다른 구체화의 예는 기도의 치유효과를 고도의 인공적인 방식으로 연구하려는 어떤 연구자들의 시도이다. 그것은 실제 삶에서 기도가 쓰이는 방식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이런 노력이 종종 성공적일 수 없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한마음과 관련하여 구체화는 하나의 덫이다. 한마음에 닿는 길이 공식화되면 문은 닫혀버린다. 하지만 비어 있음과 가득함의 상호작용과 허용하기 안에 내재하는 행동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한마음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다.
26. 꿈의 길
꿈은 한마음으로 들어가는 보편적인 입구다. 꿈 속에서는 지금 여기에 국한된 개인적 자아라는 감각이 시간적 공간적 경계와 개인에 구속되지 않는 경험으로 대체된다. 꿈에서 우리는 모순, 패러독스, 또는 합리적인 이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창조성은 흔히 꿈속에서 피어난다.
과학과 의학의 역사에서 꿈의 역할은 평가절하 되어왔다. 이는 과학자들 대부분이 꿈꾸는 자의 이미지보다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분석적 사고자의 이미지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꿈에서 얻는 정보는 과학자들이 대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주제가 아니다.
-무의식 속으로 뛰어드는 탐험
-예지몽
-공동으로 꿈꾸기
캐나다 오타와 칼턴대학의 신경인류학자인 찰스 D.래플린은 공유된 꿈 또는 상호적인 꿈의 전문가이다. 그는 인류학자 마리안 조지의 경험을 보고했다. 뉴기니섬의 바로크족 사이에서 연구할 때, 그녀는 부족의 중요한 여성 지도자와 가까워졌고, 그 여성 지도자는 그녀의 후원자가 되었다. 어느 날 밤, 조지는 집주인인 후원자가 자기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지시하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아침에 집주인 아들이 와서 조지가 밤중에 들었던 지시를 이해했는지 확인하면서 , 꿈에서 들었던 후원자의 지시를 글자 그대로 반복했다. 아들은 어머니가 자기들과 대화하고 싶을 때면 거리가 얼마나 멀든지에 상관없이 대화한다고 조지에게 말해주었다. 꿈은 어떤 식으로든 찾아온다고 했다. 그 늙은 여성은 세상을 떠났지만, 공유되는 꿈은 rPt고해서 일어나고 있다.
-조심할 것. 체포될 수도 있다
-무작위 마니아, 통계광, 그리고 우연의 일치 신봉자
마음이 놔와 몸, 시간과 장소에 국한되어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언급한 예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
영국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프리스틀리는 <인간과 시간>이라는 책에서 예지몽을 논의하며 이렇게 썼다.
“과학적 초연함이 황소고집의 편견으로 바뀌는 시점이 있듯이, 우연의 일치가 우리에게 어떤 설명을 요구하면서, 뭔가 다른 것으로 변화하는 시점이 있다. (....) 이 관점을 채택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순수한 과학적 초연함에 관하여 글을 쓰는 것처럼 가장한다. 이런 경험을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 체험들을 잘 통제된 연구와 연구실 실험에 맡겨달라는 것뿐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단순히 통제되고 실현되지 않는 경험의 범위를 다루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것들을 과학적 실험과 증거의 분야로 가져오면, 시들어 버린다. (,,,,)그리고 정신을 마치 한 덩어리의 나트륨처럼 취급하려드는 실험 주의적 심리학자들이 예지몽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마음은 그런 것에 적대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27. 마지막 단어는 사랑
사랑은 고립과 분리와 개인성의 힘을 누그러뜨리기 때문에, 한마음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개인성은 연결성과 통일성을 보충해주어 가치가 있지만, 지나치면 과도한 자아가 되고, 우리가 서로 그리고 모든 것과 하나라는 자각을 방해한다. D.H로런스는 이를 신랄하게 표현했다. “증오는 사랑의 반대가 아니다. 사랑의 반대는 개인성이다.”
프린스턴공대 이상현상 연구소에서 30년 동안 실험한 연구에서, 프린스턴 공대 전 학장 로버트 G. 안과 동료들은, 감정적으로 결속한 커플들이 무작위 사건 발생기가 만든 숫자 1과 0의 배열을 전달할 정신능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더 나아가 감정적으로 친밀한 쌍들은 대륙 간, 또는 전 지구적인 거리만큼 떨어져 있어도 서로 정신적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요약하며 얀은 이렇게 말했다. “성공적인 전략은 (....) 기계를 작동하는 사람과 기계 사이, 또는 정보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물론 이것은 모든 형태의 사랑을 위한 레시피이기도 하다. 그것은 파트너를 위해 자기중심적인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사랑은 물질 세계의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결론이다.
-외로움을 넘어서
-사랑의 귀환
[4부] 앞으로 나아갈 길
28. 확장하는 과학
지금까지 내가 제시한 증거들이 그토록 vdn부하고 압도적이라면, 왜 여전히 의식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는 것일까? 개인의 마음이 몸을 넘어,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해 활동할 수 있다는 전제에 대한 저항, 또 위대한 연결, 즉 한마음 안에서 하나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저항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왜 베테랑 과학자들은 이 문제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대단히 복잡하며, 여기서 자세히 분석하기에는 너무 방대하다. 하지만 논쟁의 위험이 있음에도, 나는 이 논쟁을 절대 끝나지 않게 하는 가장 분명한 이유 중 몇몇을 살펴보고자 한다.
과학은 과학사회가 승인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부정하는 정보는 무시함으로써(수프의 기름을 걷어내듯) 겉으로 떠오른 부분을 정기적으로 걷어낸다.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용어를 소개한 과학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머스 쿤은<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영향력 있는 책에서 이 패턴을 묘사했다.
전문적인 잡지에서 출판을 거부당했다고 해서 데이터 자체가 w니실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연구를 인가하고 논문출간을 결정하는 일은 GOBSAT 방법(good old boys sat around a table. 테이블에 둘러앉은 권위자들이 자기들 맘대로 결정하는 것)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결정되는 것 같다. 그 테이블에서 한쪽 옆으로 밀쳐진 정보들 중에는 시간과 공간, 뇌와 몸이라는 물질적 한계에 국한되지 않고 의식이 비국소적으로 세상에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막대한 증거들이 끼어 있다.
29. 초월
“나는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알고 있다.” 주목을 끄는 이 문장은 1982년 리처드 애튼버러가 연출한 마하트마 간디의 전기영화인 <간디>의 한 자극적인 장면에서 나왔다. 이 영화는 1947년의 인도를 배경으로 한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을 얻은 후,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격렬한 시민전쟁에 휘말려들었다. 간디는 비폭력 저항운동의 선봉에 섰다. 캘커타 거리가 피로 물들고 도시 전역이 불타오르는 가운데, 중년의 한 미친 힌두교도가 간디의 침소에 찾아왔다. 마하트마는 금식으로 허약해져 있었는데, 금식은 전국에 퍼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멈추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는 거의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남자는 간디에게 먹을 것을 주며 말했다. “여기요! 드세요! 드세요! 나는 지옥에 가겠지만, 맹세코 당신은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요!” 간디는 묵묵히 대답했다. “누가 지옥에 갈지는 오직 신만이 결정하십니다.” 그러나 죄책감에 시달리던 남자는 자기가 이슬람교도 아이를 죽였다고 자백했다. “나는 그 아이의 머리를 벽에 짓물렀어요!” 간디는 남자에게 왜 그 아이를 죽였는지 물었다. “그 아이가 내 아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 내 아이요! 이슬람교도들이 내 아이를 죽였어요!” 그러나 복수심에 불타는 증오에는 쉬운 해결책이 없다. 간디가 그 남자를 지옥에서 꺼내는 방법은 엄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어린아이를 찾으세요. 그리고 그 아이를 당신의 아들로 키우세요. 그 아이는 이슬람교도여야 합니다. (....)당신은 그 아이를 이슬람교도로 키워야만 합니다.” 힌두교도인 남자는 경악했다. 그는 용서를 받기 위해 그처럼 극단적인 되갚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간디가 내려준 처방의 진실성을 느끼고 무릎을 꿇고 흐느껴 울었다.
나는 이 책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이 되기를 의도하며 썼다. 우리 이전의 사람들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위협에 직면한, 역사상 특별한 순간인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 말이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과, 근시안적인 선택 때문에 지구는 지금 퇴락의 길을 걷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어떤 짖머을 넘어서면 더는 빠져나갈 길이 없으며, 또 캘커타 시나리오와는 다르게 더는 속죄의 길이 없을지 모르는 지옥이다.
지구 위기의 증거는, 길거리에서 광고판을 목에 걸고 “종말이 가까워졌다!”고 소리치는 미친 사람의 말에 있지 않고, 풍부한 과학에 근거한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일부러 눈을 감지 않는 한 모를 수가 없다. 지구 기후변화, 공기와 물의 오염, 인구 팽창, 종의 멸종과 서식지 상실, 물 부족, 사막화, 살인적인 이념들, 자원고갈, 혹독한 가난, 끝없는 전쟁, 윤리적 종교적 증오 등이 그것이다. “나는 내 것을 챙겼으니 각자 자기 것을 챙겨라”는 철학이 현재 우리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많은 저자가 해왔듯이 특정한 위협을 집중적으로 논하고 싶지는 않다. 그와 달리 내 접근법은 두루뭉술하고 우회적이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 “진리를 모두 말하라. 그러나 넌지시”라고 충고한 것처럼
나의 메시지는, 모든 문제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인 반응을 재조정 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수많은 해결책이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 접근법은 지구와 서로를 향한 도덕적, 윤리적 자세에 재부팅을 요구한다. 이는 채널을 바꾸는 것과 같으며, 우리가 누구인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또 우리를 지탱하는 지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고나한 기본개념을 다시 정립하는 일이다.
나는 단일하고 집합적인 한마음의 개념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서 뭔가 차이를 만들어낼 충분히 강력한 비전이라고 믿는다. 이는 단순히 지적인 개념이 아니라, 뭔가 가장 깊은 곳에서 가능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한마음은 모든 생명체의 마음이 그 일부로서 포함된 전체적 지성이다. 헤세는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끊임없이 뭔가를 찾는 구도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이제 나는 별들이나 책 속에서 길을 찾지 않는다. 내 피가 몸속에서 속삭이는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음 체험의 영적인 측면
이 책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한마음의 체험들은, 우리가 직면한 어두운 미래로부터 어떻게 우리를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그 과정은 어떻게 일어날까?
이런 체험들 대부분은 초현실적이거나 초심리적이라고 여겨진다. 그것이 신체감각을 넘어서는 비국소적인 앎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런 체험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개인들 사이의 연결을 보여준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사람들 사이의 연결은 흔한 경험이다. 휴대전화와 전화를 생각해보라. 연결성에서는 초월적인 어떤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한마음의 체험도 별것 아닌 게 될 수 있다.
-바늘구멍
한마음을 체험하는 순간에는 생생한 자각, 연결, 친밀함, 그리고 더 큰 전체와의 교감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한마음의 체험은 통과하고 나면 돌아올 수 없는 바늘구멍이다. 이 체험은 우리에게 최상의 희망이지만, 희망 이상의 그 무엇이다. 그것은 모두의 손에 닿을 수 있고, 이미 많은 사람이 경험해온 것이다.
[Review]
이 책에서 말하는 한마음은 모든 개인의 마음이 동일하다기보다는 부분적으로 만나는 차원이다. 이러한 만남은 우리가 늘 경험하는 일이며 사람과의 만남뿐 아니라 메스미디어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서 인간은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며 인식의 변화, 도덕적, 윤리적 자세를 재부팅하여 새로운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실제적인 만남을 넘어서 동물, 식물과의 만남, 그리고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불가능한 원거리에서의 만남이라면 생각이 달라진다.
“개인의 마음은 뇌나 몸 같은 특정한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현재와 같은 특정한 시점에도 묶여 있지 않다. 마음은 시간과 공간에서 비국소적이다. 이 말은, 개인의 마음은 상자(뇌) 안에 가두어 서로 격리시킬 수 없으므로 마음 간의 분리는 환상이라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마음은 하나로 합쳐져 단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본문)
시공간에 국한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이 교통한다는 사례는 새삼 희귀한 일은 아니다. 텔레파시, 길을 가다가 누군가 자신을 응시한다는 느낌, 사고를 미리 알려주는 예지몽 등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든지 듣고 또 경험되는 일이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다.
“미국 동부해안에 사는 한 중년여성은 수천 마일 떨어진 반대편에 살고 있던 아들이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무시하려고 애썼으나, 느낌은 오히려 점점 더 강해졌다. 그때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일련의 숫자가 갑자기 떠올랐다. 문득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전화를 걸자, 아들이 사는 멀리 떨어진 도시의 대형병원 응급실과 연결되었다. ”(본문)
20세기에 들어와 인간은 의식구조에 대한 더 세부적인 하위 부분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인간이 아직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양자역학 미시 세계의 한 분야를 정신세계와 결합하려는 시도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다수 물리학자는 양자 수준에서 측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입자는 이론적으로 가능한 모든 상태에 있다고 믿는다. 이 상태에서 진짜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다만 중첩되어 모두 한꺼번에 공동으로 존재하는 잠재력들의 앙상블만 있을 뿐이다. 측정이나 관찰이 일어나면 이 잠재력들은 수학적인 기술인 파동함수의 붕괴를 겪고 슈뢰딩거의 유명한 사고실험에서 나오는 고양이처럼, 가능한 여러 형태 중 오직 하나의 모습만 드러낸다. 측정, 즉 관찰은 유령 같은 잠재력을 진짜로 만든다. ”(본문)
이 책 속에는 다양한 사례들,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의 집단행동이 어떻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지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들어있다. 저자는 미국 태생의 내과의사이자 대체의학. 통합 의학 분야를 이끌어온 선구자이며, 영성과 과학의 개념을 융합하고, 건강과 마음의 관계를 전 세계에 알려온 국제적 전도사로 꼽힌다.
이 책은 한마음을 순전히 자연과학적인 접근법으로 쓴 책이지만 우리는 이런 내용들을 통해서 오늘날 극도로 분리된 인간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통합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기독교인이라면 한마음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인간과 하나님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초월적인 연결을 이루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
(본문)
“나는 이 책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이 되기를 의도하며 썼다. 우리 이전의 사람들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위협에 직면한, 역사상 특별한 순간인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 말이다.”
“나의 메시지는, 모든 문제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인 반응을 재조정 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수많은 해결책이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 접근법은 지구와 서로를 향한 도덕적, 윤리적 자세에 재부팅을 요구한다. 이는 채널을 바꾸는 것과 같으며, 우리가 누구인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또 우리를 지탱하는 지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관한 기본개념을 다시 정립하는 일이다.”
"한마음은 집단의 크기와 상관없이 작용한다. 어떤 한 사람이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원칙적으로는 누구나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모든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고 있고,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요한 정보가 70억 지구인 모두의 마음속에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열려 있음과 관계가 있고, 그 정보가 어떤 사람의 소망과 필요와 의도에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꿈은 한마음으로 들어가는 보편적인 입구다. 꿈 속에서는 지금 여기에 국한된 개인적 자아라는 감각이 시간적 공간적 경계와 개인에 구속되지 않는 경험으로 대체된다. 꿈에서 우리는 모순, 패러독스, 또는 합리적인 이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창조성은 흔히 꿈속에서 피어난다. ”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한마음이야말로 이 세계를 집어삼키려고 위협하는 분리, 쓰라림, 이기심, 욕망, 파괴로부터 빠져나오게 해주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느 한계점이 지나면 거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지 모른다. 의식의 가장 높은 수준과 하나 됨을 느끼는 것은 우리 시야를 맑게 해주고, 도덕과 윤리의 동맥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막아주며, 우리가 행동할 수 있게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사랑은 고립과 분리와 개인성의 힘을 누그러뜨리기 때문에, 한마음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개인성은 연결성과 통일성을 보충해주어 가치가 있지만, 지나치면 과도한 자아가 되고, 우리가 서로 그리고 모든 것과 하나라는 자각을 방해한다. D.H로런스는 이를 신랄하게 표현했다. (증오는 사랑의 반대가 아니다. 사랑의 반대는 개인성이다.)”
“2004년 미 전역에서 다양한 전공분야에 걸쳐 의사 1,100명을 조사했다. 연구자는 그중 74%에 과거에 이른바 기적들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고, 73%는 지금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의사의 59%가 개인적으로 환자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51%는 집단으로 환자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경향을 살펴보면서 스테판 A. 슈워츠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비국소적 마음이라는 개념과 관련 있는,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들이 일반대중과 의학계 모두의 견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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