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사는 지금, 2022년 4월까지 정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도망으로 넘어온 제주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나는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오히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이 도망이 운명인 거겠지.
나와 맞는 주파수를 가진 제주.
나는 현재 이곳에서 미래를 그리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주시에 사는 내게 서귀포 바다는 조금 낯설다. 그리고 새롭다. 잔잔하게 흐르는 바다와 제주시의 에메랄드빛 바다와는 다른 느낌의 짙은 파란색의 바다는 오히려 동해의 바다와 비슷해 더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런 내게 얼마 전 새로운, 또 특이한 이름으로 다가온 곳이 있다. 그곳은 박수기정이라는 곳인데 특이한 이름만큼이나 멋진 풍경을 자랑했다. 이름처럼 그 장면을 만나는 순간 연신 박수를 쳐댔다. 서귀포의 바다 특징을 정확히 담은 이곳 박수기정은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거나 아예 만나지 못하는 곳인데, 이번 계기로 많은 사람이 알고 지나가길 바라며 글을 써본다.
절벽의 모습은 굉장히 웅장하다
박수기정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1008
박수기정은 이름에 들어간 '박수'를 친다는 뜻을 가진 것은 아니다. 제주어의 합성어로 샘물을 뜻하는 '박수'와 절벽을 뜻하는 '기정'이 합쳐진 말로, 말을 풀어쓰면 '바가지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절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박수기정의 특징을 알려면 대평리부터 이해하는 것이 좋다. 대평리는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넓은 지대로 예전엔 '용왕 난드르'라고 불렸는데, '난드르'는 '넓은 돌'을 가진 제주도 방언으로 말처럼 주변 전체가 넓은 평지와 용암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박수기정엔 여러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박수기정은 대평동과 같은 특징을 지녔다. 특히 박수기정은 용암과 가장 잘 어울리는 지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약 100m 높이의 수직 절벽의 모습으로 기괴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절벽은 서귀포의 중심에 서서 바다를 지키는 느낌을 하고 있다.
이곳 박수기정을 가장 쉽고, 또 알맞게 보는 방법은 대평포구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일몰 시간에 여행하는 게 가장 알맞다. 일몰 명소로는 아름아름 소문이 났다. 섶섬과 문섬 등을 함께 바라보며 석양을 보는 것. 그것만큼 멋진 일은 또 없을 것이다. 일몰 시간에 박수기정을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절벽 위에 올라서서 해안 풍경을 바라보는 것과 포구에 서서 병풍처럼 펼쳐진 박수기정의 웅대한 모습을 보며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와 비친 노을과 함께 즐기는 방법. 필자는 후자를 택하라 말하고 싶다. 노을과 절벽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박수기정을 즐기는 가장 큰 재미니까.
박수기정에 핀 갯무꽃
박수기정 여행기
대평리에 위치한 박수기정은 중문의 주상절리, 애월 한담해안도로의 해안 절벽만큼, 혹은 그 이상의 멋을 지닌 곳이다. 제주 올레 9코스의 시작점이기에 잘 알고 있던 이곳. 올레 9코스를 걸을 땐 박수기정 정상으로 오르는 거라 절벽의 멋진 모습은 제대로 바라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에 여행을 하며 박수기정을 제대로 곱씹을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윗길을 따라 오르지 않고, 대평포구에서 시작해 포구 아래의 자갈 해안으로 걸음을 옮겨 여러 바위와 자갈들을 지나고, 물웅덩이를 넘어 여러 낚시꾼들이 있는 낚시 포인트까지 가서 박수기정을 만났다. 박수기정을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그곳에서 나는 깎아지르는듯한 절벽, 박수기정을 제대로 만날 수 있었다.
박수기정을 여행하며 좋았던 것은 꽃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곳보다 빠르게 갯무꽃이 만개한 이곳. 유채와 보라색 갯무꽃이 섞여 멋진 모습을 하고 있던 박수기정은 봄의 꽃내음과 멋진 절벽을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에 큰 메리트가 있었다.
*갯무꽃
바닷가레 즐겨 자라는 갯무꽃은 높이 90cm 정도로, 드문드문 가지를 치며 드물게 털이 나있다. 잎은 어긋나고 깃꼴 겹잎으로 털이 있다. 4월에서 5월 중에 보라색 꽃이 피는데 갯무꽃은 제주에서 가장 많이 피고, 여러 자생지로 유명하기도 하다.
가장 알맞은 곳에 자리를 잡은 나는 낚시하는 낚시꾼들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즐겼다. 저 멀리 보이는 섬과 바다 위를 가르는 배의 모습은 내게 따뜻함으로 또, 평온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100m 높이의 거대한 기암절벽은 산방산만큼이나 터프한 모습으로, 또, 깎아지르는듯한 풍경은 웅장함으로 고스란히 다가와 두근 거리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며 합쳐지니 설렘으로 다가왔다. 시원한 바람, 설레는 기분 그 모든 것을 담은 게 바로 이곳 박수기정이었다.
완벽한 수직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절벽의 모습에 새삼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 나는 왜 사람들이 제주도를 여행하는지, 또 서귀포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서귀포를 여행하다보면 이런 지형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박수기정은 그중 원 탑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곳을 여행하러 온 것이 내겐 알맞은 일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대평동의 박수기정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아직은 잘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이 기회다. 사람이 없을 때 이곳을 찾아야 한다. 대평포구에 차를 대고 이곳을 여행해 보자. 저 멀리 보이는 '박수기정'을 향해 걷는 여정은 마치 요새를 향해 여정을 떠나는 원정대 느낌을 선사할 것이다. 만약 서귀포를 여행한다면, 지금 바로, 봄 날씨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박수기정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결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