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여유
40기 이정태
부모가 건강해야 자식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노년에 들어서 평화와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요즘, 나는 지금 이 나이가 참 좋다. 이른 아침 가을이 물들어가는 집 앞 공원에서,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며 운동길에 나선다.
남편은 유압 부품(펌프, 실린더, 밸브)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근무한다. 회사에 필요한 기계를 개발하여 설계도면부터 전기까지 혼자 완성하는 기술 전문 엔지니어이다. 현장에서 생산 공정을 개선하고 고품질 제품이 필요한 곳에는 자신의 아이디어로 지그를 만들어 신의 한 수라는 극찬을 받기도 한다. 남편의 기술은 지나온 세월 녹록지 않은 삶 속에서 오직 미래의 꿈을 향해 노력한 댓가다. 젊은 날 잠을 줄여가며 책으로 얻은 정보와 기술은, 오직 독학으로 쌓은 지식이라 남편한테는 스승이 없다. 요즘 침체한 경기에도 불구하고 몸값이 천장부 수로 올라가는 남편을 보며,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대가 없이 그냥 주어지는 건 없다는 사실을 되새겨 본다.
나는 성인 중고등학교에서 4년 동안 공부를 했다. 재학 중 선생님들의 관심과 배려로 나의 절친인 카메라를 이용해 봉사했다. 각종 행사 때마다 학우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영상을 제작해 각자 USB에 담아 주었다. 작년 이맘때쯤, 학교에서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여수 국가 정원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교복을 입은 학우들이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들떠 있는 모습은, 마치 꿈많은 소년 소녀 같았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거닐거나 웃고 떠드는 모습, 잔디밭에서 포즈를 취하는 여학생들을 발견하고 짓궂은 남학생들이 우르르 뛰어 올라가는 재밌는 표정과, 연출이 담긴 스냅 사진들을 보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여행 온 관광객들은 성인 학생들이 교복 입은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예쁘다며 눈을 떼지 못하고 다가와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날 수백 장의 사진을 편집하며 배경에 맞은 애니메이션과 음악을 삽입하느라 몇 날 며칠이 걸렸다. 졸업 후, 각자 삶을 영위하는 동기들이 가끔 TV로 가득 찬 영상을 보면 실장님이 생각난다며 고마움을 전해온다. 이럴 때면 힘들게 배운 사진에 대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사진과 영상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겨나 남편과 함께 올해 영이공 시각 영상디자인과에 입학했다. 남편이 독학으로 배운 실력을 엄지 척하며 입학을 권유한 교수님은 우리 부부에게 “꿈나무 작가”라는 귀여운 닉네임을 붙여 주었다. 현대미술 디자인과 사진들로 구성된 우리 과는 모두 현직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이다. 학교 수업은 화려한 조명과 카메라 장비들이 갖추어진 스튜디오에서 진행하기에 현장감이 있어 매우 좋다. 미술을 전공한 작가들과 내가 경험한 사진과 영상으로 상호작용을 할 때면 몹시 뿌듯하다. 미래를 위한답시고 일찌감치 카메라 이론부터 줄곧 가르쳐준 남편이 고마운 따름이다. 내가 아는 것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포토샵과 인 디자인을 배우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고 진지하다. 가끔 동기들과 미술 전시회를 다니게 되면서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년 후 내 삶의 가치를 높여줄 사진과 영상을 기대하며, 늦깎이 대학 생활에 최선을 다하여 노년을 밝고 건전하게 보내려 한다..
나는 남편과 주말엔 학교, 휴일날은 함께 출사를 다니며 노년의 즐거운 삶에 관한 대화를 주로 나눈다. 10여 년 전 현실에 안주하며 살던 어느 날, 남편의 권유로 사진과 기타를 배우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틈틈이 배우고 익힌 사진과 통기타는 노년에 들어선 나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얼마 전 지인이 개원한 한의원 대기실에 내가 찍은 강원도 태백산 일출 사진이 걸렸다. 원장이 태백산 정기를 가득 담아 옮겨놓은 듯한 작품이 볼수록 애정이 간다고 하니 흐뭇하다. 수년 전, 새해 첫날 헤드 랜턴으로 어둠을 밝히며, 강추위에 무릎까지 쌓인 눈과 칼바람에 맞서, 밧줄에 매달리며 산을 올랐던 기억이 난다. 몇몇 진사들 틈에 끼어 주목 옆에 언 손으로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시린 발을 동동 굴리며 기다렸다. 마침내 어두운 하늘을 벌겋게 달구며 붉은 해가 솟아오를 때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으로 나도 몰래 함성이 터져 나왔고, 셔터를 누르는 손이 바빠졌다. 날이 밝아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설경의 아름다움은, 밤새 지친 몸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하산하는 길은 아슬아슬하고 얼마나 험난하던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식이 용감하다’라는 옛날 속담처럼 오직 아름다운 일출만 상상하며 무턱대고 감행한 건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모험이었다. 원장은 누가 부탁한다고 작품을 선뜻 내어준다는 게 쉽지 않은데, 반드시 대가를 치르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취미생활로 보람을 느끼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정중히 사양했다. 두고두고 감사함을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원장의 ‘밝은해한의원’이 대박 나고 승승장구하길 기원해 본다.
추석 전, 딸램들과 여행에서 담은 사진을 포토샵으로 옮겨와 편집한다. 어느새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세 딸과의 이번 여행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지난 내 생일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더 늦기 전에, 중국 장가계의 멋진 풍경을 한번 담으러 가고 싶다는 내 말에 사위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해 주었다. 여행을 떠나던 날, 가을을 알리는 입추가 지났건만 무더위는 뜨겁게 대지를 달구었다. 대구에서 출발한 막내와 나는, 수원에서 내려오는 두딸렘들과 청주공항에서 만나 함께 움직였다. 공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절차는 딸렘들이 알아서 했기에, 나는 곁에 줄만 서 있었다. 우리는 오후 7시 비행기에 탑승해서 3시간 30분 만에 중국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는 생각보다 까다로워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늦은 밤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밖에 안개가 자욱해 내일 날씨가 걱정되었다. 우기로 인해 행여 멋진 풍경을 못 담을까 봐 염려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에 조식을 먹으려 내려가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조금 후 첫 일정이 시작되었고, 숙소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 산 중턱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장가계로 출발했다. 장가계를 오르는 동안 우기가 걱정되어 기도했다. 한참 후, 셔틀버스가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장가계에 도착 했을 때는, 나의 간절한 염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다행히 맑게 개여 우리에게 큰 행운을 안겨 주었다. 마치 ‘아바타’ 영화 속 장면처럼 펼쳐진 풍경은 너무 장엄하고 신비해, 넋을 잃고 바라보다 부지런히 카메라에 옮겨 담았다. 일 년에 200일 이상 비가 온다는 천자산 무릉도원은 짙은 안개로 인해 볼 수 없었지만, 인간의 상상력을 동원하는 대협곡 유리 다리, 천문산 귀곡 잔도, 굴속에 이어진 천문산 에스컬레이터, 초고속 백룡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 나는 신선한 충격과 인간의 능력은 무한대라는 걸 느꼈다. 나는 이번에 네모녀가 함께했던 여행의 묘미와 즐거웠던 순간들을 고스란히 담아 추억을 저장하는 중이다.
나에게 행복이란 취미생활에서 얻는 기쁨과 여유이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과 어울림도 좋지만,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취미를 가지는 것도 행복의 지름길인 거 같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늘 나에게 힘이 되어준 남편이 고맙다. 즐거운 소풍으로 이어지는 내 인생은 언제나 화창한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