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8,26-40; 요한 6,44-51
+ 찬미 예수님
제1독서에서 필리포스는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는데요, 그는 이방인이면서도 하느님을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신명기에 의하면 내시는 이스라엘의 회중에 들 수 없었습니다(신명 23,2). 그런 그가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는 것이 의미심장한데요, 이사야서는 이방인도, 내시도 하느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56장 3절에서 7절까지 이러한 말씀이 나옵니다.
“야훼를 따르는 이방인은, ‘야훼께서는 나를 반드시 당신 백성에게서 떼어 버리시리라.’라고 말하지 마라. 그리고 고자도 ‘나는 마른 장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라.
정녕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며 나의 계약을 준수하는 고자들에게는 나의 집과 나의 울안에 아들딸들보다 나은 기념비와 이름을 마련해 주리라.…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나에게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 …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이 마지막 구절은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시며 인용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태 21,13)
한편, 에티오피아와 관련된 구약 성경의 말씀으로는, 시편에 “이집트에서 우두머리들이 오고 에티오피아는 서둘러 하느님께 선물을 가져오네.”(시편 68,32)라는 말씀이 있고, 스바니야서에 “에티오피아 강 너머에서 나의 숭배자들, 흩어진 이들이 선물을 가지고 나에게 오리라.”(스바 3,10)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이 말씀들이 에티오피아 내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요, 그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야훼의 종의 넷째 노래에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은 사람’이 이사야 예언자 자신인지, 다른 사람인지 묻습니다.
이에 필리포스는,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성경을 풀이해 주신 것처럼 성경 말씀이 어떻게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에티오피아인에게 설명해 줍니다.
마침내 물에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세례를 청합니다. 참 부러운 장면인데요, 예비자 교리가 하루 만에 끝났네요? 우리도 예비자 모집을 시작했는데 작년에는 8개월을 했는데, 올해는 6개월간 교리를 할 예정이고, 첫영성체 교리도 이미 시작되어 한 학기 동안 진행되고 있는데, 이 에티오피아 내시는 단 몇 시간 만에 속성으로 교리를 마치고 세례를 받습니다.
그런데, 내시는 즉흥적으로 세례를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경배를 다녀올 정도로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었는데 자신의 신체적 조건 때문에, 유대교에 입교하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필리포스의 교리를 듣고서는 이제 자기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장애가 될 결격 사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이 내시의 말은 무척 감동적입니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이 말은 예수님께서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그리고 신체적 조건이 어떠하든 간에 아무런 차별 없이 하느님의 아들딸로 받아 들여주신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의 전반부에서 이는, 당신께서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빵”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마지막 절의 말씀, 즉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라는 말씀에서, 이제 생명의 빵은 당신의 살인 성체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 신비로운데요, 요한복음 1장과 삼종기도에서 우리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저희 가운데 계시나이다”(요한 1,14)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사람’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본래 ‘살’, 우리가 ‘살덩어리’라 부르는 그 ‘살’을 뜻합니다. 즉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는, 본래 ‘말씀이 살이 되시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하느님 말씀이라고 하시다가 마침내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라고, 즉 스스로 ‘말씀이 살이 되시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 말씀을 듣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몸을 영하며 예수님의 힘과 영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미사를 통하여 주님의 말씀과 성체로 힘을 얻어 영원한 생명을 우리 안에 모시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초대된 귀한 존재들입니다.
내가 예수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무엇인가 있다면, 내 마음속의 죄책감이나 알 수 없는 불안감, ‘나도 예수님께 환영받을까’ 하는 막연한 죄의식이 있다면, 예루살렘에 다녀오면서도 해결되지 않던 인생의 해답을, 말씀에서 얻은 에티오피아 내시의 당당한 말을 떠올려 보아야 하겠습니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https://youtu.be/cVYnN6vWOWs?si=016cco3OusI6MnZ3
세자르 프랑크, 천사의 양식, 더 프리스츠 (노래)
렘브란트, 에티오피아 내시의 세례, (1620년 경)
출처: Ethiopian eunuch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