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에게 글을 지어 주다.
천자께서 봉래전에 정좌 하시고 내시를 보내어 양소유를 부르시니, 내시가 명을 받잡고 한림원에 나아가 본즉 이미 사퇴하였고 정사도 집에가 물어보니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하기로
내시가 황망히 두루 찾으니, 이 때 양상서는 정십삼과 더불어 장안 주루에서 주랑이 라는 명기를 데리고 이미 대취하여 노래를 부르고 취흥이 도도하여 의기양양하더라. 내시가 급히 달려가 입시 하랍시는 어명을 전하니 정십삼은 기급을 하여 뛰어나가고 상서는 취안이 몽롱하여 내시가 이미 누각에 오른 줄을 알지 못하거늘, 내시가 성화같이 재촉하여 상서는 기녀에게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조복을 입고 내시를 따라 대궐에 들어가 뵈온즉, 성상이 앉으라 명하시고 역대 제왕의 치란흥망(治亂興亡)을 논의하시매 그 대답이 명백하니 상이 매우 기꺼워하시며 다시 묻기를,
“군신이 글로써 서로 부르고 화답함은 요순에서부터 비롯하였으니 아직 이를 논의할 계제는 아니옵고, 한고조의 대풍가와 위태조의 월명상희(月明星稀)는 제왕의 시사(詩詞)의 으뜸이옵고, 서경의 이릉(李陵), 업도의 조자건(曹子建)과 남조(南朝)의 도연명(陶淵明), 사영운(謝靈運)의 네 사람이 가장 드러난자들이옵니다. 예로부터 문장이 성함이 우리 국조(國祖)만한 시대가 없사옵고, 국조 중에서도 개원천보(開元天寶) 연간같이 많은 제사가 속출한 때는 없사온지라, 제왕의 문장으로서는 현종황제(玄宗皇帝)가 천고에 빛나시며 신하의 재주로서는 천하에 이태백을 당할 사람이 없나이다.”
“경의 뜻이 실로 짐의 생각과 맞도다. 짐이 매양 이태백의 청평사(淸平寺)와 행락사(行樂飼)를 보면서, 그와 한때에 있지 못했음을 한스럽게 여겼지만, 이제 경을 얻었으니 어찌 이태백을 부러워하리오? 짐이 예법을 쫒아 궁녀 십여 인으로 하여금 학문을 맡게 하니 곧 여중서(女中書)라, 글에 자못 재주가 있고 또 볼만한 자 있는지라, 이백이 취중에 글짓던 모양을 짐이 다시 보고자 하나니, 경은 궁녀들의 바라는 정성을 저바리지 말도록 하라,”
이에 궁녀를 시켜 어전에 유리 벼룻집과 백옥 필상(筆床)과 황옥 연적을 옮겨 놓으셨고, 모든 궁녀가 이미 글을 받으랍시는 어명을 들었으므로 각기 비단수건과 비단부채를 펴들고 상서 앞에 나오는지라, 상서가 취흥이 도도하고 글 생각이 저절로 솟아나, 고운 붓을 들어 차례로 쓰매 풍운이 일고 번개같이 날렵해 그림자가 그림자가 옮기지 아니하여 앞에 그득한 부채 등 속이 이미 다하였더라. 궁녀들이 차례로 꿇어앉아 상께 들은즉, 상께서 낱낱이 들추어 보시니 모두가 주옥 같은 글이라 칭찬하여 마지 않으며 궁녀를 불러 이르시되,
“오늘밤 한림이 수고하였으니 각별 좋은 술을 가져오라.”
하시니, 모든 궁녀가 더러는 황금쟁반을 받들며 더러는 앵무술잔을 잡아 많은 술을 가득히 내오는데, 혹은 잠깐 꿇어앉았다 잠깐서면서 다투어 절하고 다투어 권하므로 상서가 어전에서 좌우 두손으로 잡아 차례로 마시니 십여 배에 얼굴이 봄빛을 띄며 눈에 안개가 서려 있기로, 상이 명하여 술을 물리고 이르시되,
“한림이 글 한귀에 천금으로도 싸니 가위 무가지보(無價之寶)이거늘, 너희는 무엇으로써 예폐(禮幣)를 주려하느뇨?”
궁녀들이 다투어 금비녀를 빼거나 혹은 옥패도 떼어 어지러이던지니, 금이 소리하고 옥이 떨치더라.
상께서 내관에게 명하시어, 상서가 쓰던 지필여눅(紙筆硯墨)등속과 궁녀들의 예폐를 거두어 가지고 한림을 따라가 그 집에 전하라 하시니 상서는 사은하고 일어나다가 다시 자리에 쓰러지는지라, 내관이 부축하여 남문에 이르니 추종(騶從)들이 옹위하여 말에 올리니라.
양상서가 돌아와 화원에 이르니 춘은이 붙들어 조복을 벗기고 묻기를,
“상공께서는 뉘 집에서 이토록 취하셨나이까.”
상서는 취기가 심하여 머리만 끄덕이는데 이윽고 하인이 어사(御賜)하신 필연(筆硯)과 비녀,
팔찌, 가락지 등등의 패물을 받들어 마루에 쌓아놓자, 상서가 희롱하여 이르기를,
“이 물건이 다 천자께서 춘랑에게 상급하신 것이니, 내 소득이 동방삭(東方朔)과 어떠할꼬?”
춘운이 다시 물으려하나, 상서는 이미 정신 없이 쓰러져서 코고는 소리가 마치 우레와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