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네가 말하는 이 새 교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행17:19)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 굳게 붙어 믿었는데 그 가운데는 아레오바고 일원인 디오니시우스와 다마리스라 하는 여자와 또 그들과 함께한 다른 사람들도 있더라"(행17:34)
아테네는 대학 도시이며 철학과 미신적인 우상이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우상 숭배를 분히 여깁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아테네에는 다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철학자들은 그를 아레오바고로 데려갑니다.
여기는 아테네 사람들의 법정과 같은 곳입니다.
여기에서 종교와 교육에 대해 통제를 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소크라테스가 새로운 신에 대해 가르친다고 이곳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당시 지성인들이 가장 많이 산다는 대학 도시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디오니시우스는 아테네 최초의 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법정의 재판관으로 신분이 높았다고 하며 순교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지금의 대법원과 같은 곳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복음 전파를 받아들인 아레오바고 일원인 디오니시우스와 다마리스는 학문과 신분, 지식이 높았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는다는 것을 반지성적으로, 무조건, 맹목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인양 가르칩니다. 그러나 철학의 도시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참지혜를 가진 그가 논리적, 학문적으로 증거하였을 일을 상상합니다. 최고의 지성을 갖추었던 디오니시우스와 다마리스는 바울의 증거하는 말을 듣고 복음을 받아 들였습니다. 이 사실이 사도행전 17장 34절에 두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며 기록된 것이 참 감사해서 묵상해 봅니다.
주님을 찬송합니다.
아레오파고스(Areopagos)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라본 아레오바고 언덕
초창기의 아테네 귀족회의가 열린 곳으로 유명하며, 아레오파고스라는 이름은 의미가 넓어져 나중에는 그 회의 자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아레오파고스 회의는 왕의 자문위원회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고대 초기에 아레오파고스 회의는 드라콘의 법전이 공포될 때까지(BC 621경) 전반적이고 막연한 권한을 행사했다. 이 회의의 의원자격은 종신이었으며, 아르콘(집정관으로 세습귀족인 에우파트리다이들만이 얻을 수 있는 고위공직)을 지내면 의원자격을 확보할 수 있었다. 솔론
BC 6세기 중엽부터 약 200년 동안 아레오파고스 회의의 명성은 부침을 거듭했다. 참주정 시대(BC 546~510)가 끝났을 때, 아레오파고스 회의는 참주의 추종자였던 아르콘들에 의해 지명된 의원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평판도 떨어졌다. 페르시아가 아테네를 침략하자 아레오파고스 회의는 애국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명성을 되찾았다. 개혁가 에피알테스
첫댓글 아레오바고 관원....산헤드린과 같은 학문이 높았던 곳, 철학과 학문이 높고 현대의 대법원과 같은 수준의 기관에서 사람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 사이에서는 떨리는 심정으로 조심스러운 태도로 대언했던 사람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저 언덕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지혜롭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주님을 찬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