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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축 우보만리 한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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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이야기 스크랩 053_한국의 美 | 한국의 탑_석탑. 석가탑_01
우보만리 추천 0 조회 58 13.01.12 23: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00602. 위대한 유산 .

053_한국의 美 | 한국의 탑_석탑. 석가탑_01

 

붓다의 무덤에서 기원한 인도의 수트파에서 유래한 탑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오면서 석탑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한국의 탑을 대표하는 석탑은 불국사 석가탑에서 그 절정을 이뤘다.

 

 

우리는 지금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어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할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 외국인과 함께 절에 가면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탑입니다. 이런 경우에 외국인에게 이 탑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우리 한국인들은 불교문화에 익숙한 나머지 탑이 무엇인지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워낙 자주 보는 것이라 탑이 어떤 사물인지 의문을 갖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정작 외국인 친구에게 탑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탑은 원래 붓다의 유골을 보관하는 ‘붓다의 무덤’

탑은 한마디로 말해 ‘붓다의 무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탑의 양식은 붓다 이전에 이미 존재했습니다. 붓다가 타계하고 화장을 한 뒤 남은 사리, 즉 유골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것이 바로 탑인 것입니다. 사람의 사후 그 유골을 보관하는 곳을 보통 무덤이라 하니 붓다의 유골을 보관하는 탑을 붓다의 무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탑에는 붓다의 유골만 모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한국만 해도 탑이 엄청 많지요? 붓다의 유골이 얼마나 많기에 그 많은 탑에 다 모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중에 탑은 실제로 붓다의 사리를 모셨다기보다는 붓다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바뀌게 됩니다. 탑돌이 등을 하면서 탑을 예배하는 것은 그런 생각 끝에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들도 타계 후 화장하면 사리가 나온다고 하지요? 스님들의 사리를 보관하는 곳은 탑이 아니라 부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탑은 대개 절 안에 있지만 부도는 절의 뒤쪽이나 바로 바깥쪽에 모셔놓습니다.

 

인도의 수트파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탑이 되었다

탑이란 인도 말인 수트파에서 온 것입니다. 수트파가 중국에서 탑파(塔婆)로 음역되었고 이것이 줄여져 탑이 된 것입니다. 한국 탑은 인도부터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발달했기 때문에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한국 탑의 정수는 석가탑인데, 그것이 완성되는 모습을 아주 간단하게 보도록 하지요. 석가탑과 더불어 동일 사찰 내에 있는 다보탑은 한국 탑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경우에 속합니다. 석가탑이 그 뒤 한국 탑의 전형(model)이 되는 것에 비해, 다보탑의 경우에는 다시는 그런 양식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보탑은 그 양식이 인도의 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 한국의 토양에는 정착되지 않습니다.

 

인도의 산치에 있는 전탑.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chromatic_aberration/

 

그에 비해 석가탑은 그 양식이 중국에서 온 것으로, 한마디로 중국식 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불교의 탑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도의 산치에 있는 큰 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탑은 마치 사발을 엎어놓은 모양을 하고 있지요. 이 탑은 그 뒤 계속해서 변형·발전하는데, 그 양상은 아주 복잡한지라 대부분 생략하고 중국 이후의 시기만 보기로 하겠습니다. 한국 탑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중국 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인도 탑의 모습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한국 탑에서도 인도 탑의 모습이 보입니다. 인도 탑의 모습은 아주 재밌게도 하단의 그림에서처럼 한국 탑의 맨 꼭대기에 남아 있답니다. 이것을 상륜부(相輪部)라고 부르는데, 여기를 자세히 보면 사발을 엎어놓은 부분이 있는 등 인도 탑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도 탑의 모습은 한국 탑의 맨 꼭대기에 남아 있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도 목탑과 전탑이 세워져

그러나 이 부분을 제외하고 밑부분은 중국 고유의 양식으로 대체됩니다. 중국인들은 탑을 붓다의 거주처로 생각해 자신들이 사는 집의 형태로 탑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석가탑 같은 탑을 보면 한옥과 비슷하게 생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나무나 벽돌 등과 같은 재료를 가지고 탑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중국 전역에는 목탑과 전탑이 세워졌고 지금도 중국에 가면 곳곳에서 이 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목탑은 집과 똑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황룡사 9층 목탑 모형. <출처 : Rennles (a flickr user)>

 

이런 예를 한국에서 찾으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물론 황룡사 9층 목탑 등 기록에는 대단히 많이 남아 있지만, 현재는 보은 법주사에 있는 팔상전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탑을 보면 꼭 집처럼 생겼죠? 그래서 법당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남한에 남아 있는 유일한 목탑입니다. 탑과 법당이 다른 것은 탑에는 붓다의 사리를 모셨고 법당에는 불상을 모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목탑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목탑은 아무래도 화재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탑의 재료로서 중국인들이 제일 좋아했던 것은 벽돌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가면 지금도 엄청나게 큰 전탑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전통은 우리나라에도 전달되었는데 한국인들이 탑의 재료로서 가장 선호한 것은 벽돌이 아니라 돌이었습니다. 물론 전탑을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안동이나 의성 같은 경북지방에는 전탑이 꽤 발견됩니다. 그리고 중국의 예를 따라 목탑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두 전통은 한국에서는 결국 석탑으로 귀결됩니다. 그 귀결의 절정이 바로 이 석가탑이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입니다. 물론 이 석가탑은 단번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약 100년간의 실험 끝에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 실험을 거쳐 목탑이나 전탑의 흔적이 남은 석탑으로 발전해

그래서 석탑에는 목탑이나 전탑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굳이 목탑이나 전탑을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석탑을 돌로 만든 집으로 생각하고 그 흔적을 보면 되겠습니다. 그것을 보기 위해 잠깐 탑의 구조에 대해서 보아야 하겠습니다. 석탑은 언뜻 보면 아주 단순하게 보이지만 세부로 들어가면 대단히 복잡한 부분으로 되어 있고 그 부분마다 각기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가령 상륜부만 해도 거의 10개나 되는 부분으로 되어 있고 각각 ‘노반’이니 ‘복발’이니 하는 아주 어려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런 것들을 모두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아주 간단하게만 보지요.

 

탑은 크게 보면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 이렇게 셋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기단부와 탑신부인데 이것을 구별하려면 집의 지붕에 해당하는 ‘옥개석’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됩니다. 옥개석(지붕)이 있는 것이 탑신, 즉 탑의 몸체이지요. 우리가 ‘3층탑’이다 ‘5층탑’이다 하는 것은 이 탑신의 숫자를 가지고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사리는 바로 이 탑신에 모셔지게 됩니다. 반면 기단은 이런 것 없이 그냥 네모 형의 돌만 있을 뿐입니다.

 

 

한국의 탑은 석가탑에서 절정을 이뤘다.<출처 : 양병주(http://www.ZenPhoto.kr)>

 

집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바로 이 탑신부에서입니다. 여기에는 우선 집처럼 지붕이 있지요? 그리고 ‘옥개받침’이라 불리는 처마가 있습니다. 이 처마는 집의 그것처럼 층층으로 되어 있고, 우리 한옥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 끝이 살짝 올라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탑신의 네 귀퉁이에는 기둥의 모습을 새겨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탑이 완벽한 집이 되었지요? 한국의 경우 이렇게 생긴 탑은 앞에서 말한 대로 석가탑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한국의 탑의 절정은 석가탑

석가탑이 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이니 꽤 이른 시기에 전형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절에서 보는 대부분의 석탑은 석가탑의 연장으로 보면 됩니다. 이 정도 설명이면 여러분은 아마 외국 친구들에게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탑에 대해서 그 대강을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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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그림 최준식 _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문화와 인간의식 발달에 관심이 많으며 대표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다.

 

 

 

100602. 위대한 유산 .

053_한국의 美 | 한국의 탑_석탑. 석가탑_01

옮김_seorabeol_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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