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양면
안양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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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리구역 : 법정리 13개 / 행정리 29개 |
인구수 : 3,289(남 1,590명/ 여 1,699명) |
가구수 : 1,712호 |
면 적 : 51.16㎢ |
읍면장 : 김동옥 |
주 소 : 전라남도 장흥군 안양면 안양로 125 |
◆ 안양면 기산리 기산마을
○ 마을 인구수 : 172명, 가구수: 87가구○ 지리적 위치 : 전형적인 농촌으로서 1960년대에는 볏짚 가마니를 생산하여 농가소득을 높였으며 20년전 마을뒤 죽림이 무성할 시에는 두루미가 무리를 이루워 살았었다 ○ 전설에 의하면 주기우동 즉, 중국의 주나라 문왕이 도읍하였던 기산과 흡사하 다하여 기산이라고 하였다 한다. 개촌년대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앞, 뒤, 등에 지석묘가 분포되어 있고우물이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기록상으로는 고려말(1373년경) 부안임씨가 입주하여 광산김씨 수원백씨 광산노씨 등으로성촌이 이어진 것으로 전한다.조선조 중엽(1,500년대) 관서별곡의 작자 기봉 백광홍이 조선 팔문장에 듦으로 해서동시대에 봉명재에서 기봉 백광홍과 동문수학하여 남계 김윤, 옥봉 백광훈,죽곡 임회 등 기산 팔현이 배출됨으로 양택지로서의 최고라해서일명 기산팔문장마을 장흥의 제,일 기산으로 일컬어졌다.외기마을 기산리의 밖에 있다하여 외기 또는 밖 기산이라 불리어 왔다.(1880년경)창녕 조씨가 입촌후 김해김씨 천안전씨 등이 이거해 와 마을을 이루었다. ○ 특산물 : 콩, 감자, 참다래 등○ 유명인물 : 기봉 백광홍, 삼당시인 옥봉 백광훈 등○ 가볼만한 곳 : 사자산, 마을앞 관서별곡 시가비, 낙원 소공원,봉명재서당터, 미륵사, 기양사○ 마을의 자랑 :- 로하스타운, 통합의학병원, 통합의학 세계 박람회장,(구)남도대학에 천연자원연구원, 한방산업진흥원, 장흥군버섯연구소○ 수상 :- 道 바이오산업 연구의 중심지로서 2008년 행안부주최 참 살기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으로 전국 대상을 수상함
◆ 안양면 기산리 동계마을
○ 마을인구수: 88명, 38가구○ 지리적 위치 : 사자산 줄기 아래에 위치하여 미맥위주의 연농이 발달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 1500년전 백제 중엽에 다정한 친구 두사람의 부부가 사냥을 즐기다가 이곳에 정착하였다고전한다.고려때에는 100여호의 부촌을 이룩하였으나 조선조 때 불복신의 마을이 되어 한때는 폐촌이 되었다가 1526년경 조선 선조대왕 떄 팔문장의 한분인 백광성이 지금의 청계재에 터를 잡고 수학하므로써 현마을이 형성되었다. 현재는 거주하지 않으나 청주한씨와 해남윤씨가 이곳에서살았다 한다. 본래는 기산리 2구로서 지번은 기산리 지번을 쓰고 있다. ○ 특산물 : 콩, 감자, 복분자 등○ 유명인물 :○ 가볼만한 곳, 먹거리 등- 가볼만한 곳 : 사자산, 기양사, 정열문, 해송 - 먹거리 : 감자,양다래, 복분자 ○ 자랑 :- 마을 뒤 효송이 전남도지정(전남2호) 보호수로 지정
◆ 안양면 비동리 비동마을
○ 마을 인구수 : 119명, 66가구○ 지리적 위치 : 마을내 큰 노거수 느티나무가 있다. 1983년 경지정리오 기형화 된 복합영농의 마을이다. ○ 개촌연대 : 9세기경( 토기, 조개무덤 또는 전설에 의함) 비동마을 : 정묘지에 의하면 옛날 공주이씨 검이 바다로 떠내려와 이곳이 유기가 있어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가멸동마을과 동촌: 9세기 경 백제 유민 부부가 피난 길에 사자산 고산제에 이르러 토기를 살펴보니 이곳이 산자수명하고 땔감이 풍부함에 자손을 기를만하다 하여 터를 잡고 가장동이라 하였다 한다. 그 후손이 산을 내려 와 살게 되므로써 동촌이 이루어졌다 한다. 지금도 가장 골에서는 사람이 살던 흔적이 발견되고 노거수, 절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 마을터임이 분명한다. 행정구역 변천과정 : 수녕현 안양방에 속했으며 비천동 (비동)과 동촌을 합쳐 세칭 비래동촌이라 이름하였다, 1941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양리를 비동리라 하였으나 비동과 동촌이 각각 분리행정을 해오다 1976년 마을 총회의로 동계재산을 합하고 마을 통합하였다. 입초한 조상 : 년대미상이나 공주이상 검이 맨처음 입촌한 것으로 전해오며 그후 수원백씨, 보성선씨, 초계변씨, 장흥위씨, 광산김씨, 김해김씨, 평택이씨, 선산임씨, 청주한씨, 인천이씨, 장흥고씨, 남평문씨등이 들어왔다. 현재 거주하지 않은 성씨 : 공주이씨, 초계변씨, 보성선씨, 선산임씨, 남평문씨 ○ 특 산 물 : 콩, 감자 등○ 유명인물 : 고광훈 농악상쇠○ 가볼만한 곳, 먹거리 등- 가볼만한 곳 : 사자산, 독선골, 절터, 마상개- 먹거리 : 감자, 앵두, 콩 ○ 수상 :- 2007 행자부 주관 참살기좋은마을 가꾸기 전국 최우수 마을
◆ 안양면 당암리 월암마을
○ 마을인구수: 86명, 35가구○ 지리적 위치 : 1960년에 월암 저수지가 시조되고 1984년도에 경지가 정리되어 극대화 농촌으로 탈바꿈 되었으며, 1982년도에는 월계골에 ㅇ농단지가 조성되어 운영 되고 있다. ○ 월암마을은 1772년 관산 계춘동(현 방촌)에서 이거해 온 모헌 위영열이 설시하여 성촌되었다. 현재 마을 거주하고 있는 위성모씨의 6대조가 되는 분이다 장흥위씨 집성촌 이었으나 최근에 타 성씨가 입촌하여 마을 형성하고 있다. ○ 특산물 : 콩, 감자, 한우 등○ 유명인물 :○ 가볼만한 곳, 먹거리 등- 가볼만한 곳 : 사자산, 삼외제, 노거수 - 먹거리 : 감자, 콩
◆ 안양면 당암리 여암마을
○ 마을인구수: 81명, 36가구○ 지리적 위치 : 장흥읍에서 동으로 약 7km, 안양면 소재지에서 서로 약 1.5km 지점에 위치한 평야마을이다. 북으로는 비동리를 지나 사자산이 둘러있고, 남으로는 수양리를 지나 억불산이 있으며, 동으로는 고당마을이 있고 서쪽으로는 국도 18호선을 따라 동계앞들로 이어진다.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수리시설이 좋고 토지가 비옥하여 예부터 미맥을 위주로 한 농업을 주로 하고 있다. 마을주변에 지석묘가 산재한 것으로 보아 삼한시대부터 주거지였던 것으로 보인다.1620년경 안양면 비동리 동쪽 대실에 살던 수원백씨 주부공 백승길이 이거해와 마을을 이루었다.1747년 간행 정묘지에 마을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 것은 고당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면 1910년 경술지의 여리성씨에 여암으로 표기돼 수원백씨와 광산김씨가 세거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1848년 당암리 5개마을에서 분구해 독립마을로 되었다고 전한다. ○ 특산물 : 콩, 감자 등○ 유명인물 : 중령○ 가볼만한 곳, 먹거리 등- 가볼만한 곳 : 사자산, 삼외제, 노거수 - 먹거리 : 감자, 콩, 동동주
◆ 안양면 당암리 고당마을
○ 마을인구수: 64명, 33가구○ 지리적 위치 : 군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8km, 안양소재지에서 약 1.5km 지점에 위치한 해발 700m에 위치한 평야마을이다. 북으로는 월암과 인접하여 남으로는 주교. 청송, 서로는 여암과 인접해 있다. 동으로는 상우과 접해 있다. 월계저수지가 있어 수리시서설이 좋은 편이며, 240여m의 배산이 마을뒤에 있어 따뜻한 마을로 유자나무가 예부터 재배되고 있다. 1580년경에 초계변씨인 변홍건의 아우인 홍달과 홍적이 이곳으로 이주해와 터를 잡았다 하며 그후 창녕조씨와 인천이씨가 입주하였다 한다. 보성선씨가 입촌한 것은 지금부터 약 200여년전 선시계가 처음이라 한다.그러나 마을입구의 지석묘를 보아 선사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특산물 : 마늘, 고추, 고구마 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사자산 - 먹거리 : 고구마, 동동주
◆ 안양면 당암리 주교마을
○ 마을 인구수 : 51명, 24가구○ 지리적 위치 : 군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8km, 안양면 소재지(운정)에서 서쪽으로 1.5km에 위치한다. 장흥~대 덕, 장흥~수문간 도로와 주교~비동간 도로의 교차점이기도 하다. 서쪽으로는 비동천이 흐르고 있으며, 수양과 도로를 경계로 이웃하고 서북쪽으로 여암, 북쪽으로 고당, 동쪽으로 청송과 접하고 있다. 마을이 개활지에 위치하고 있어 평야지대이다. ○ 주교라는 마을 이름은 장흥읍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1938년(무인지)에 간행한 장흥읍지에 당암리에 소속된 마을로 장변이라는 마을이름이 나오는데 이는 1830년대 주교에 안양매일시장이 생기면서 붙여진 이름인 듯 하다, 주교는 원래 여암과 같은 마을이었으나 시장이 개설되므로 인구가 늘어 고아복후에 독립마을로 나누 어졌다. 주교는 기산․비동․당암․수양․모령등 이들 마을의 중심지로서 6,25때는 안양면사무소 옮겨 주지재하기도 했으며, 1960년도 사촌간척지 공사때는 난민정착지가 되기도 했다. 1983년 안양시장이 폐쇄되기 전까지는 상가가 조성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상가는 철시하고 안양주조장과 삼성조미소가 남아있을 뿐이다 ○ 특산물 : 쪽파, 감자, 동동주(안양주조장) 등○ 유명인물 - 가볼만한 곳 : 사자산 - 먹거리 : 감자, 동동주, 표고버섯
◆ 안양면 당암리 청송마을
○ 마을인구수: 71명, 34가구○ 지리적 위치 : 이 마을은 배의 닻 형국으로 뒤의 배산이 주산이며, 목단산이 안산이다. 조산은 문필봉이며 홍거천이 득수를 이루고 있으며 관.귀.이.요의 형세를 이루고 있는 길지이다. 마을 이름은 한때 청운이라 하였으나 동서의 산세를 상징하여 영구 발전한다는 뜻에서 청공이라 하였다 한다. 마을 뒷들의 이름이 배들이라고 하는데 이는 홍거천의 3개 지류(수대, 월계, 도곡)가 합류하는 지점으로 날에 이곳까지 배가 들어왔을 것이라 전하고 있다. ○ 이 마을은 1936년이래 전형록 외 3인이 입촌아여 자연부락 리명을 청송이라 하였다. 그러나 1936~1949년까지는 고당리 1개 반으로 편성되었으며 1949~1966녀까지 주교리의 1개반으로 편성되었다. 1968. 7. 1 행정구역 재조정으로 청송리라는 행정구역으로 독립해서 단독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1994년 취락구조사업으로 10여 가구가 늘어 현재 30호로 규모가 커졌다. ○ 특산물 : 쪽파 감자, 참다래, 오이 등○ 유명인물 :- 가볼만한 곳 : 사자산 - 먹거리 : 감자, 양다래 ○ 자랑 :- 1994년 농어촌 취락구조개선사업이 책정되어 10가구가 신축됨으로써 현재의 성촌을 이루었다.
◆ 안양면 수양리 수양마을
○ 마을 인구수 : 127명, 57가구○ 지리적 위치 : 군 소재지에서 동남으로 약 8km , 면 소재지에서 서북으로 500m 지점에 위치한 평야마을이다. 서쪽으로 주교, 북으로 고당, 동쪼그로 운정, 남쪽으로 홍거천을 사이에 두고 모령과 이웃하고 있다. 장흥∼수문간 도로가 마을 앞을 통과하며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하여 미맥은 물론 원예작물재배 적지이다. ○ 수양리는 원래 수대, 수서 양사로 형성되었는데 그중에서 수양 마을이 가장 오래된 곳으로 1530년경 청주김씨가 처음 정착하 였다고 한다, 1632년경에 김해김씨가 이주하였고, 1715년경에 수원백씨 백이선이 안양면 기산리에서 이거해와 정착하므로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양리라 게 칭하고 현재에이른다. 정묘지에는 수대,양사 당, 서당촌으로 되었다. 1930년에 안양지서가 설립되었ㅇ나 1980년경 운정리로 옮겼다. 농협에서 건림한 대형 최신식 미곡종합처리장이 들어섰다.(1992년) 1970년에 안양서초등하교가 개교하였으나 1995 년 취학아동이 적어 폐교하였다 ○ 특 산 물 : 쪽파 감자, 표고, 조미김 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사자산, 고인돌- 먹거리 : 감자, 표고버섯, 상황버섯○ 자랑 :- 정남진농협RPC, 신성식품(주), 동산표고 등 面 산업시설 중심지
◆ 안양면 운흥리 상운마을
○ 마을 인구수 : 49명, 25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11km, 안양면 소재지에서 북으로 약 1.5km에 위치한 해발 70∼80m의 준 산간마을이다. 남으로 운정마을이 있고 동남간에 요곡마을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숯고개를 넘어 월계와 경계하고 있다. 교통은 불편한 편으로 1.5km의 면소재지에 버스를 이용할수 있다. ○ 1763년 창년조씨가 하귀가 경남 창녕에서 이곳으로 이거하여 성촌되었다고 하며 그 후로 초계변씨와 광산김씨가 입촌하였다 한다. 그러나 정묘지(1747년간)에 상운계와 하운계의 기록이 있고 상운계에 장택고씨와 창녕조씨가 살았다고 하이 그 이전부터 성촌되었다고 본다. 상운계와 하운계를 합혀 운곡이라 하였다. 창녕조씨는 현재 7대손까지 이어오고 있다. ○ 특산물 : 쪽파 감자, 매실(청매원) 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사자산, 청매원- 먹거리 : 매실차, 감자
◆ 안양면 운흥리 요곡마을
○ 마을인구수 : 44명, 31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8km, 면소재지에서 동으로 1km에 있는 해발 약 60mdml 중산간 마을이다. 선인봉 낙맥을 따라 옥녀봉의 요치아래 자리하고 있다. 동으로 여꿋재를 넘어 학송마을, 서로 면소재지 운정마을이 있고 북으로는 상운, 남으로는 교동과 접하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로써 마을앞에 정자나무가 무성하여 풍치를 더해주고 있다. ○ 삼한시대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고 마을 뒷산 태동(밭) 부근에서 고려 때 기와가 발굴된 것을 보면 고려 떄에도 사람이 살았다고 추정된다. 박씨가 살았다 하여 박정골로 불리어 오기도 하며 고씨. 권씨, 주씨가 개촌하였다는 말이 전해온다. 1530년경 수원백씨가, 1532년경 칠원윤씨가 살았다고 함. 보성선씨가 입촌한 것은 1520년으로안양 동촌에서 선봉문(선두환씨의 12대조)이 이곳 산수가 명미하여 이거했다 한다 진주정씨가 대대로 살다가 그 손은 이거하여 현재 보성 회촌면에서 살고 있다. 기후 진주 정민흠이 장흥읍 남외리에서 입촌하여 살았다(선옥녀의 사위) 이 손도 거 의 떠나고 현재 二家口가 살고. 마을 이름은 본래 하운계였으나 그후 요곡으로 1760년경에는 중흥으로 부르다가1946년 광복후에 다시 요곡으로 부르게 되었다. ○ 특산물 : 쪽파 감자 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사자산, 삼비산, 청매원- 먹거리 : 감자, 매실차
◆ 안양면 운흥리 운정마을
○ 마을인구수: 161명, 70가구○ 지리적 위치 : 운정마을은 안양면 소재지로 면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안양면의 교통, 각종 기관이 들어서 있는 중심 마을이다. 군청 소재지와의 거리는 8km이며 평야 마을이다. 동남으로 여꾸재와 광대곡이 있으며 남으로 해창과 삼교마을과 목단저소지가 연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홍거천을 사이에 두고 모령리와 경계하여 북으로는 당암리 단산낙맥이 뻗어 있다. 농촌지역이면서 상가들이 형성된 복합마을이다. ○ 조선조 중엽 양천허씨․최씨․영광김씨․김해김씨․ 여산송씨가 입주하여 터를 성촌이 되였다 한다. 1910년경에 면소재지가 되었으나 1949년 공비에 의하여 면사무소가 소실되고 면장 마태현씨가 참사를 당하였으며 1950년 6.25사변이 발하자 면사무소를 주교리로 옮겼다. 1945년 다시 운정으로 면사무소를 옮겨 1984년 취락구조개선과 함께 시가지를 정비하였으며 모든 기관이 다 들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특산물 : 쪽파 감자 등○ 유명인물 : 선인환 농악 상쇠, 정덕만 인조목 제작공- 가볼만한 곳 : 사자산, 삼비산, 청매원- 먹거리 : 감자, 동동주
◆ 안양면 모령리 모령마을
○ 마을인구수: 86명, 48가구○ 지리적 위치 : 모령마을은 군청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8km, 안양면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1.5km 떨어진 평야 마을이다. 억불산 낙맥이 동으로 뻗어내린 끝부분에 위치하며 지방도 837호선이 마을앞을통과하고 있다. 동쪽으로 운정리, 남쪽으로 풍암마을, 북쪽으로 수양리 양사와 접해있고 서쪽으로 산을 넘어 용산면 계산리 차동마을과 경계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억불산과 사자산에서 발원하는 홍거천이 흐르고 있어 주변에 평야를 형성, 농사짓기에 알맞은 곳이다. ○ 마을에 지석묘군이 있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다고 추정된다. 옛날에 대구배가 마을앞까지 닿았다는 설이 구전되고 있다. 서기 367년경 앙주최씨가 터를 잡았다 하여 최씨성을 따라 최성이라 불렀다 하아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말에는 진령이라 하였으나 기록이 없고 1500여년경 장흥고씨인 고자량이 장택에서 이주해와 세거촌을 이루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때 큰 피해를 당하여 「모래 기」라 부르기도 했다. 1910년 전에 모령이라 했으나 1910년이후 모령이라 부른다 한다. 그러나 1747년(정묘지)에 모령이라 표기되어 장택고씨촌으로 전해오는 것을 보면 모령이란 지명은 그전부터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 특산물 : 유자, 감자 등○ 유명인물 : 한형준 제와장 무형문화재19호, 김기철 시조,위세환 시조, 장철금 상쇠, 고영교 장고- 가볼만한 곳 : 사자산, 삼비산, 제와장 터- 먹거리 : 감자등○ 자랑 :-중요무형문화재 제91호 제와장 기능보유자 한형준 “마지막 남은 조선 기와장”으로서 숭례문 복원에 크게 기여
◆ 안양면 모령리 풍암마을
○ 마을인구수: 69명, 42가구○ 지리적 위치 : 풍암마을은 군청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9km 면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1km지점에 위치한 평야마을이다. 장흥-대덕간 지방도 837호선과 풍암-수문간 군도 9호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며 홍거천의 유역으로 땅이 비옥하고 수리가 좋아 농사짓기에 알맞은 곳이다. ○ 서기 1600년경 해주최씨가 들어와 살다가 이거하고 그후 김해김씨, 온양방씨, 남양방씨등이 입주하여 성촌하였다 한다. 정묘지(1747)에는 풍암에 탐건최씨가 살았던 것으로 나타나있으며 경술지(1910)애는 풍암에 탐건최씨와 중산에 윤씨가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종전에 살었던 씨족 : 노씨, 박씨, 양씨, 정씨. 최씨 ○ 특산물 : 감자 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목단저수지, 무본당, 눌암거사 유적비 - 먹거리 : 동동주, 감자
◆ 안양면 모령리 목단마을
○ 마을인구수: 61명, 31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12km,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km 지점에 위치한 평야마을이다. 풍암에서 홍거천을 따라 500m쯤 거리의 목단저수지 서쪽에 야트막한 산 밑에 위치한 농촌마을이다. 옛날에는 마을 앞에 바다였으나 일제시대(1928년) 간척공사로 농지가 조성되어 경지면적이 늘어 마을이 조성되었으며 간척고사 이전에는 어촌이었다. 마을서쪽은 풍암이고, 동쪽은 저수지 넘어 삼교마을이 있으며 남쪽은 지천, 북쪽은 운정과 접해있다. ○ 조선 영조 때 동주이씨가 성촌하여 100호가 살았다 하나 자세한 기록은 없다. 1928년 간척사업으로 포구의 기능이 없어지고 농경지가 조성되어 사인 백명선․위계형등 쥔이 이주해와 성촌되었으며 마을이름은 처음에는 木端이라 불렀으나 1960년 牧丹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육유재 백영직이 쓴 안양팔경에 목포 귀범이라 한것을 보면 예전에는 목포라 일컬었던 듯 히다. 입촌한 조상 : 진주 정해수- 정동식씨 부친( 장흥월평에서 이거) 수원백명선-백금호씨 부친(용산 상금에서 이거), 장흥 위계형 - 위 연의 조부( 용산 상금에서 이거) 종전에 살았던 씨족: 공주 이씨, 전주이씨, 초계변씨, 수원백씨, 진주정씨 ○ 특산물 : 감자 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목단저수지, 무본당, 눌암거사 유적비 - 먹거리 : 동동주, 감자○ 자랑 :- 면적 4만2천평, 지령 25년, 수심 5M인 목단저수지는 참붕어, 잉어, 민물장어가 많이 잡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강태공들의 명소
◆ 안양면 지천리 지천마을
○ 마을인구수: 142명, 65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11km,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11km 지점에 위치한 해변마을이다. 풍암에서 약 1km쯤 동남쪽으로 들어간다. 남쪽으로 용산면 덕암, 서쪽으로 풍암, 북쪽으로 목단, 동쪽으로 멀리 삼교와 경계하고 있다. 본래는 어촌이었으나 일제때(1938년) 간척사업으로 마을 앞이 농지가 되어 농어촌이 되었다 ○ 1509년경에 마을이 이루어져 지천포라는 포구로 거문도, 평일도, 완도, 진도, 제도 등지에서 어선이 왕래하여 파시를 이루었으나 1938년에 간척공사로 인하여 어촌에서 농촌으로 바뀌었다. 옛날에 박돌세라는 장사와 송천충이라는 당대 천석의 부자가 살았다고 전한다. 정묘지(1747)에 지천이라는 마을명은 있으나 살았던 성씨는 전해지지 않으며 경술지(1910)에 온양방씨, 장흥임씨, 여산송씨, 광산김씨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 특산물 : 감자, 한우 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목단저수지, 지천교회, 산신당, 땅굴- 먹거리 : 감자, ○ 수상 : - 1984년도 농악대를 조직하여 郡대표로 남도문화제에 출전, 인기상 수상
◆ 안양면 해창리 삼교마을
○ 마을인구수: 129명, 81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10km, 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1.5km에 위치한 평야마을이다. 동남은 해창 덕동마을, 동은 교동마을이 있으며 마을 앞에는 간척지 평야가 있고 서쪽으로는 목단저수지가 있다. 마을 앞으로는 장흥-수문간 국도 18호선이 지나고 북쪽으로는 사자산 줄기인 옥녀봉 낙맥이 뻗어 있다. ○ 조선조 중엽에 김해김씨가 정착했다고 하며 밀양박씨, 전주이씨, 광산김씨등이 살았으나 몇 호 되지 않아서 독립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다. 마을앞이 염전이었다가 1938년 간척공사로 농경지로 변해 마을이 형성되었다. 옛이름은 상고지」였으나 앞들에 3개의 다리가 생겨 삼교로 개칭 되었다. ○ 특산물 : 쪽파 감자 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목단저수지, 삼비산 - 먹거리 : 감 ○ 자랑 : - 1997년 노인요양시설인 “안양사랑의집” 준공 후 현재까지 35명이 입소하여 건강한 노후를 보내고 있음
◆ 안양면 해창리 해창마을
○ 마을인구수: 106명, 56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12km,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4km 떨어진 해변마을이다. 북으로는 남산능선 넘어 교동, 동으로 청룡산 넘어사촌이다. 서쪽으로는 해창간척지를 사이에 두고 덕동리와 접해있고 남으로는 득량만을 바라보고 있다. 마을 동쪽으로는 1958년에 준공한 길이 2,600m의 사촌 방조제가 있고 방제조 안쪽으로는 간척지가 조성되어 있다. 장흥-수문간 국도가 삼교를 지나 덕동입구에서 빠져나와 해창에 이른다. ○ 조선조 중엽에 세곡을 수집하여 선박으로 수송한 장흥군의 대항구로 장흥의 삼창(사창:장평, 남창: 관산)중의 하나였다. 1480년경 김종혁이 해상교통이 발달할 것으로 보고 터를 잡아 성촌이 되었다고 전한다, 1910년 이곳에 처음 경찰 주재소가 설치되었으며 1914년에는 현병파견소가 설치되기도 했다. 1914년 안상면과 안하면이 통합이 되어 면사무소가 존치되었다. 1938년에 해창 간척공사가 완공되어 농경지가 늘어났다. 1928년경 건너편 용산면 두암리와 나룻배가 왕래하였으며 1940년 해창의 하루 물동량이 약 100톤이 반출입되었다 하며 1965년 흥업(법인대표 김형서)에서 2차 방조제를 축조하여 간척공사를 하였다. 정묘지(1747년간)에는 해창에 김씨가 살았다고 적혀 있으며 경술지(1910년간)에는 김해김씨와 밀양박씨가 거주하고 있다고 되어있다.종전에 살았던 씨족 : 남양권씨, 성주배씨, 해평길씨, 경주손씨, 창령조씨, 장흥마씨. 양양천씨 ○ 특산물 : 굴, 유자, 감, 굴양식○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해창저수지, - 먹거리 : 굴, 감○ 유명인물 : - 국내 최대 가시연꽃 밀집 군락지 “해창저수지” 위치(1만평)
◆ 안양면 해창리 교동마을
○ 마을인구수: 87명, 36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약 12km 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4km 지점의 장흥-수문간 도로 18호선이 지나는 중산간마을이다. 사자산 줄기인 옥녀봉밑 잠계봉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삼계리, 동쪽으로 율산, 남쪽으로 덕동.해창과 이웃하고 있다. 마을앞으로 해창저수지가 있어 산수의 조화를 이룬 마을이다. 토질이 비옥하고 기온이 온화하여 감자와 쪽파.양파와 같은 특용작물 재배적지이기도 하다. ○ 서기 1500여년경 현 교동 동쪽 안골 청주김씨가 거주하고 서쪽날근터에는 광산김씨가 거주하였다고 전하나 두 마을은 이주하고 그후로 현 교동마을이 설기되었다고 한다. 정묘지(1747년간)에는 교동마을은 기록되어 있으나 거주하는 성씨는 없고 경술지(1910년간)에는 광산김씨와 경주이씨, 밀양박씨가 세거한 것으로 되어있다. 종전에 살았던 씨족:창녕조씨,진주강씨 ○ 특산물 : 마늘, 고추, 쪽파, 감자, 한우○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해창저수지, 옥녀봉, 교동재- 먹거리 : 감자
◆ 안양면 해창리 덕동마을
○ 마을인구수: 66명, 25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11km,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3km 지점에 위치한 해안마을이다. 북으로는 사기점등을 넘어 삼교마을이, 남으로는 해창마을이 접해 있고 동으로는 산고개를 돌아 교동마을이, 서로는 해창 간척지 평야가 있다. 해창 간척지 조성 후에 생긴 신흥마을이다. ○ 1800년경 김해김씨 택선이 용산명에서 이주해와 염전(안가매)을 시작하면서 설기하였다 하며 그후 인천이씨 창규가 입주하여 성촌되었다고 한다.1928년 일본인의 해창 간척지가 조성되어 일본인고나리인 신원검조가 임주하였고 이후 이명춘과 김탸인이 정착하였다 한다. 마을리 길리 번창할 것이라하며 마을이름을 덕동이하였다. 해창마을에 속해있다가 1986년 7월 1일 해창에서 분구되어 해창4구로 행정마을을 이루었다. 종전에 살았던 씨족 : 광산김씨 진주하씨 해주오씨 천안전씨 달성서씨 ○ 특산물 : 보리 감자, 낙지, 굴, 실뱀장어 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해창저수지, 영덕재, 사기점, 가마터 - 먹거리 : 감자
◆ 안양면 사촌리 사촌마을
○ 마을인구수: 258명, 127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13.5km, 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6km 떨어진 해변마을이다 국도 18호선(장흥-수문)을 따라 수문방면으로 가다가 덕산 앞에서 접어든 길목을 따라 500m 지점에 위치한다. 사자산 줄기가 옥녀봉을 타고 내려오다 동으로 뻗은 낙맥이 멈춘 곳으로 서쪽으로는 해창 간척지 평야가 있고 동쪽으로는 수문과 경계하고 있다. 남족으로는 장재도와 연육이 되어 있으며 득량만의 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산과 들과 바다가 어우러진 곳으로 예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인심이 순후하여 모범아을로 알려져 있다. ○ 서기 1392년(탸조 1년) 경에 통정관 농은 김익성과 문희 유창이 조선조 개국에 불복하고 유랑하던 중 한덕산의 줄기를 따라 누루끼미에 조착하여 주위의 절경과 해돋는 득랑만의 황금물결, 비상하는 듯한 장재도의 기상에 탄목하고 이곳을 황금동이라 일컫고 정착하게 된 정착하게 된 후 성촌하게 되었으며 이후 1400년(정종 2년)경에 사촌(모래치)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 (율산, 학송일부가 사촌 이었음). 1961년 사촌 서쪽 갯벌을 막아 간척지가 조성되었으며 1957년 장재도와 연륙을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율산과 학송일부가 분리되어 사촌을 이루었다 ○ 특산물 : 쭈꾸미, 낚지, 조개 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장재도 해맞이 전망대- 먹거리 : 쭈꾸미, 낚지, 조개등 ○ 자랑 : -관광지 장재도에 2ha 면적의 꽃양귀비 단지 조성
◆ 안양면 사촌리 율산마을
○ 마을인구수: 195명, 81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14km, 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8km 지점에 자리한 평야 마을이다. 동은 수문, 북은 학송, 남은 사촌, 서는 덕산마을과 경계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넓은 채경들이 있고 채경들을 지나 득량만의 푸른바다가 펼쳐있다, ○ 1450년경 광산노씨가 입주하여 설기하였다 하며 그후로 보성에서 농로와 수원이 좋아 몇사람이 들어와 살았다 하나 근거는 없다. 그후 김해김씨, 한양조씨, 전주이씨, 경주이씨,안동권씨등이 이주해 와 성촌하면서 현재에 이른다. 1450년경에는 인산이라 불리었으나 부근에 밥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마을이름을 용율산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정묘지(1747년간)의 여리성씨에는 율산은 기록이 없으며 경술지(1910년간)에는 율산에 김해김씨,한양조씨,곡부공씨가 거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특산물 : 쭈꾸미, 감자, 쪽파, 조개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율산 여다시 한승원문학산책로, 해산토굴- 먹거리 : 쭈꾸미, 감자, 조개등○ 자랑 :-문학가 한승원과 관련하여 해산토굴, 한승원문학학교, 한승원문학산책로 등 위치-매년 5월~10월 음력 보름에 달너울 작은음악회 개최(2007년 이후 16회차)
◆ 안양면 사촌리 덕산마을
○ 마을인구수: 45명, 28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13km, 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7km지점에 위치한 평야마을이다 국도 18호선(장흥-수문)을 따라 수문방면으로 가다 사촌으로 들어가는 도로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동으로는 율산, 남으로는 사촌마을이 있고 서쪽으로는 해창저수지가 있다. 북으로는 해발 약 200m의 한덕산이 에워싸고 있다. ○ 덕산마을은 1958년 김형단가 흥업회사를 설립하고 사촌~해창간 간척사업을 벌이면서 당시 6.25동란으로 피닌 살이하던 난민을 정착시켜면서 마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시는 연립주택을 조성하여 정착케 하였으나 그 후 몇년이 지나자 난민들은 거의 떠나고 외지에거 이거해 온 사람들로 마을이 유지되어 온 실정이다. 따라서 성촌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전통으로 전해 지는 것이 거의 없다. ○ 특산물 : 감자 ○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 먹거리 : 감자
◆ 안양면 수문리 수문마을
○ 마을인구수: 463명, 226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15km, 면소재지에서 7km, 동쪽에 위치한 해변마을이다. 마을 북쪽으로는 수락리와 신촌리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용곡리, 서쪽으로는 채경들을 지나 율산리가 있다. 마을 앞은 득량만의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마을 서쪽으로 사자산, 골치산, 삼비산에서 흐르는 물이 합수되어 수문천을 이루고 흐른다. ○ 지금은 수문리로 하지만 1747년 정묘지(장흥읍지)이랴 표기되어 온 마을이름은 수문포라하였으며 속칭「숨포」라 일컬어지고 있다 水門浦를 守門浦라 기록된 것도 있다, 1822순조 22년, 1869고종 6년 발행된 호적단자〕이는 수문포가 장흥의 관문으로서 왜구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한다 해서 붙어진 이름인 듯 하다. 1300여년경 서쪽 서파당에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전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모개나무거리에 있는 「사기그릇 가마터」와 영골에 있는 석실고분」저날재 아래에 있는 「조개무지」그리고 장수 등지의 지석묘」등으로 살펴볼때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이어지는 마한시대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나 추측이 된다. 1400여년경 김해김씨 김종진이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기록에 전한다. ( 김해김씨 족보, 후손 김민주) 1747년(정묘지)에는 박씨, 김씨, 하씨가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910년 (경술지)에는 상주주씨, 밀양박씨, 김해김씨, 완주이씨등의 거주기록이 있고 1938년(무인지)에 상주주씨, 경주 이씨, 밀양손씨, 밀양박씨, 김해김씨, 진주하씨,해주최씨등이 거주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경주이씨 이동휘의 호구단자가 1789년(정조13년)에 발행된 것으로 보아 (7대손 이장수씨의 제보) 경주이씨도 일찍부터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1886년(고종 23) 안양방이 안상, 안하면으로 나누일때 수문포는 안하면에 속했다.1770년 수문포장 개장 (1일,6일) 1918.3.20- 안하면 경찰주재소 설치, 9193.10-수문우편소개국(수문 208번지) 1932.3.22-수문교 준공, 1955.2.10 수문해안 감시초소 신설, 1955. 2. 14- 수문지서 폐지, 1969.7.21- 수문돗지기로 간첩침투, 1980.- 수문 취락 구조개선(10동) ○ 특산물 : 키조개, 피조개, 바지락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수문해수욕장, 삼비산- 먹거리 : 키조개 ○ 자랑 :- 장흥군 유일의 해수욕장 “수문해수욕장” 위치- 매년 5월 정남진장흥키조개축제 개최(2003년 이후 7회차) ○ 수상 :- 수문권역(수문,용곡,사촌,율산,수락) “2007 농어촌종합개발사업 전국 최우수권역” 선정
◆ 안양면 수문리 용곡마을
○ 마을인구수: 181명, 72가구○ 지리적 위치 : 장흥읍에서 동쪽으로 15km, 안양면 소재지에서 동으로 7km지점에 위치한 해변마을이다. 안양면과 보성군 회천면의 경계지역에 위치하여 북으로 수락리, 서로는 수문, 동으로는 회천면 군학리로 넘어가는 고개길이 있다. 남쪽은 탁 틔인 바다와 접해있어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원래 수문리 6반에 속해 있었으나 1982년에 분리되어 생긴 신흥마을이다. ○ 1870년경에 경주최씨와 인천이씨, 광산김씨가 입주 하여 성촌하였다 한다. ○ 특산물 : 키조개, 피조개, 낙지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옥섬워터파크, 수문해수욕장, 삼비산- 먹거리 : 키조개, 피조개, 낙지○ 자랑 : - 물놀이테마파크 “옥섬워터파크 ” 위치, 지상16층 5,000평 부지, 부대시설: 찜질방, 남녀사우나, 야외수영장, 스카이라운지 등
◆ 안양면 학송리 학송마을
○ 마을인구수: 85명, 44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동으로 12km, 면소재지에서 4km 지점에 위치한 해발 70-80m의 산간마을이다. 풍암-수문을 지난 군도 9호선이 마을앞을 지나며 학송천이 마을앞을 흐르고 있다. 서로 요곡재를 넘어 요곡과 경계하며 동으로 장수마을이 있다. 북쪽으로는 학송저수지와 사자산 끝부분인 골치에 이른다. 남쪽 역시 화개산 줄기가 뻗혀 있다. 수원이 좋아 농사짓기에 좋은 마을이다 ○ 1580년경에 뒷산이 화개산일 산 이름을 개동이라 부르다가 학이 안산과 조산소나무에 서식함으로 학송이라 불렀다 한다. 1580년경 장흥마씨 마찬서가 이곳에 정착하여 터를 잡았으며 그후 남평문씨 문덕재가 이거해 오고 진주정씨, 인천이씨, 흥덕장씨 등이 입주하여 성촌되었다 경술지(1910년) 여리 성에는 이상의 성씨외에도 보성선씨와 부안임씨, 초계변씨가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특산물 : 쪽파 감자 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삼비산 - 먹거리 : 감자
◆ 안양면 학송리 장수마을
○ 마을인구수 : 66명, 38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동으로 13km, 면소재지에서 4km 지점에 위치한 해발 70-80m의 산간마을이다. 장흥군도(장흥-수문) 9호선이 요곡재를 넘어 학송을 지나면 장수에 이른다. 북으로 골치산과 삼비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막아 축조한 신촌저수지가 있고 서쪽으로는 학송, 동쪽으로는 신촌과 접해있다. 남으로는 화개산을 뻗어내린 산을 넘어 율산과 접해있다. 신촌저수지가 축조된 후로 수리가 좋아지고 토질이 사질양토로 농사짓기에 알맞은 마을이다. ○ 마을의 형성 당시는 주촌(혹은 주암촌)으로 불리어 오다가 좌로 삼비산의 홍곡천과 우로 이승골과 골치산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맑아 장수마을을 이룬다하여 장수리가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1538년 장흥마씨 마하수가 정유재란에 공을 세우고 입주하였으며, 1653년 보성선씨 선무중이 요곡에서 입주하였고 고종 23년 (1886년)에는 마을 앞 사고에 안하면의 소재지가 있기도 하였다. 종전에 살았던 씨족: 여산송씨, 수원백씨, 밀양박씨, 전주최씨, 나주나씨, 인천이씨, 김해김씨, 광양묵씨, 청주한씨, 조쳬변씨 ○ 특산물 : 쪽파, 감자, 양다래 등○ 유명인물 :- 가볼만한 곳 : 삼비산- 먹거리 : 감자, 양다래 ○ 수상 :- 1969. 9. 10 4H클럽 전남 제1위 표창, 수상금으로 마을회관 건립
◆ 안양면 신촌리 신촌마을
○ 마을인구수: 147명, 83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소재지에서 동으로 13km, 면소재지에서 4km 지점에 위치한 평야마을이다. 군도 9호선(장흥-수문)을 따라 수문쪽으로 가면 장수마을을 지나서 신촌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뒤 삼비산 맥을 이어 받은 주봉산밑에 자리한 신촌마을은 서북으로 장수.학송과 이웃하고 동남으로 수문과 경계한다. 동쪽 길을 따라 수락 마을이 있다. 마을 앞으로는 학송천이 흐르고 토질은 사질양토로 특용작물 재배적지이기도 하다. ○ 1500여년경 청주한씨, 장흥임씨가 입주하여 마을을 평촌이라 하였으나 그들은 보성등 지로 이거하였고 그후로 보성선씨, 진주하씨, 제주양씨등이 입주하여 성촌하였다. 1976년경에 마을이름을 신촌이라 하였다. 옛날에 마을이 큰 감남골에 있었는데 호랑이가 극심하여 현재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하기도 하고, 또한 큰 홍수가(신미년)마을을 덮쳐 현 위치로 옮기면서 평촌을 신촌으로 고쳐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정묘지(1747년간)에는 평촌으로 되어 있고 광산김씨와 임씨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경술지(1910)에는 신촌으로 되어 있고 광산김씨, 보성선씨, 해주오씨, 제주양씨, 장흥임씨가 거주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종전에 살았던 씨족 : 한씨, 임씨, 탐진최씨, 백씨, 황보씨 ○ 특산물 : 쪽파, 감자, 양다래 등○ 유명인물 : 김상용 국악인, 목포국악원 원장 역임- 가볼만한 곳 : 삼비산, 정각사, 신촌리 고인돌군- 먹거리 : 감자
◆ 안양면 수락리 수락마을
○ 마을인구수 : 87명, 43가구○ 지리적 위치 : 군청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18km, 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18km 지점에 위치한 해발 70-80m 의 산간마을이다. 북쪽으로는 사자산 말미의 일임산 낙맥이 뻗혀 있고 남쪽으로는 수문리와 경계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독곡재를 넘어 학송.신촌과 경계하고 동쪽으로는 전일재를 넘어 보성군 회천면 전일리와 접해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어쌓여 있고 수문과 신촌을 연결하는 도로가 있다. ○ 1400년경에는 범부골, 백사골이라 불리어 오다가 전일현봉수대가 설치되면서 그 아랫마을이라 하여 봉수동이라 불리었다. 마을 형국이 임금의 수라를 짓는 곳이라 하여 속칭「수라거」라고도 불리었다. 1600년경에 석우학수라는 시처럼 물이 쉴새없이 떨어진다고 하여 수락이라 일컬렀다 한다. 1387년에 장흥임씨가 계곡의 맑은 물을 보고 정착하였으며 그후 수원백씨, 김해김씨가 들어 와 성촌하였다. 정묘지(1747)기록에는 봉수동 이러고 하여 임씨,백씨,김씨가 거주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경술지(1910)에는 수락이라고 하여 임씨,김씨(김해), 신씨(평산)가 거주한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석기시대의 생활기구가 토굴된 바 있으므로 고대 석기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종전에 살았던 씨족: 범씨 : 범부골 집터, 백씨:백사골 집터, 임씨:조양임씨, 김씨: 김해김씨 ○ 특산물 : 쪽파 감자 등○ 유명인물 : - 가볼만한 곳 : 삼비산, 고인돌, 조개더미, 봉화터- 먹거리 : 감자 ○ 수상 :- 1960년 군민대회 농악경연 1위 수상- 1975~1978 “범죄없는 마을”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