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랜디 빠당 줄렉스의 리포트에서
들어가면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는 그리스도인들과 심지어 목회자들이 성령을 거스리는 일을 스스럼없이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말한 것처럼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범했고 신약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거역하는 죄를 범했다면 교회 시대의 사람들은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과 성령을 훼방하는 죄악을 중단하고 주님께로 돌아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개인의 죄 뿐만 아니라 만족의 죄 역시 우리의 회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진심으로 회개해야 할 것이다. 회개 없는 부흥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서도 안된다.
이미 한국교회는 총체적인 위기를 만났다. 매 시대마다 부흥이 필요하지만 오늘날처럼 부흥이 절실하게 요청된 적은 없다. 우리가 직면한 총체적인 위기의 해결책은 위로부터 내리우시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 영적인 대각성운동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역사를 통한 철저한 영적각성만이 개인과 교회와 민족을 살릴 수 있다.
영적각성운동은 성령의 역사였고, 성령의 역사는 말씀을 통해 말씀과 더불어 역사한다는 것이 개혁주의 원리이다. 성경공부, 말씀에 대한 순종, 간절한 기도가 한데 어우러져 진행된 것이 바로 사경회이다.
한국교회가 참으로 부흥을 갈망한다면 말씀과 기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루이스 킹의 말대로 말씀과 기도 없는 부흥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흥 운동이 발흥하는 곳마다 말씀과 기도 이 두 가지가 늘 병행했다. 기도하는 교회가 생명력을 지니며 양적 질적으로 선장하며, 기도하는 교회는 지도자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회개혁과 영적대각성운동
한국교회는 전 세계에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 파송국이 되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반드시 부흥이 일어나야 한다. 부흥이 일어나면 교회가 건강하고 총체적으로 선장케 한다. 한국 교회의 지속적인 발전의 성패는 영적각서에 달려 있다.
자연히 영적대각성운동을 통해 사회와 국가의 문제가 해결을 받는다. 부흥이 일어나면 시대가 안고 있는 문화, 사회, 경제, 정치, 종교, 도덕 제 문제가 해결되었다. 영적대각성운동이 강하게 일어난 곳마다 어떤 것으로도 치료할 수 없었던 노예문제, 마약문제, 술, 담배문제, 성문제를 비롯한 문제들이 치유되었다.
마아어(F. B. Meyer)가 말한 대로 정치적 사회적 개혁이 수반되지 않은 종교적 부흥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미국에서 그런데 이 같은 부흥운동으로 인한 사회적인 변혁, 갱신, 개혁은 각 개인의 영적각성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그 영적각성은 보통 강권적이고 주권적으로 나타났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 앞에 항거할 수 없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불의 혀”처럼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임하자 사도들의 설교를 들은 그 곳에 모인 이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탄식했다. 성령의 강한 임재가 회중 가운데 임하자 잠자는 영혼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깨어 얼어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영적각성운동을 위한 제언
첫째, 한국교회가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 되어 영적인 영적대각성운동에 온 힘을 모아야 한다. 한국교회도 사도들과 제자들처럼 부흥을 주시기기를 원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 부흥을 사모하며 합심(合心)하여 간절히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지하며 부흥을 사모해야 할 것이다. 성령 안에서 이 목적을 가지고 하나 되어 노력할 때 주께서 우리의 소원과 간구를 들어주실 것이다.
둘째, 전정한 회개와 회심을 촉구하는 담대한 말씀선포가 강단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된 부흥이 일어난 장소와 시대마다 담대한 말씀 선포가 있었다. 오순절 베드로가 그랬고 종교개혁 시대 마틴 루터, 요한 칼빈, 존 낙스가 그랬으며, 청교도와 경건주의 운동이 그랬고, 미국 제1차 대각성운동과 1903년부터 1907년도로 특징되는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이 그랬다.
셋째, 한국교회는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강조해야 한다. “어찌할꼬”라고 탄식하는 무리를 향해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 로 받을 것이라고 외쳤던 것처럼 회개를 외쳐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 강단에서 죄에 대한 지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죄를 죄라고 지적하지 않는다면 죄에 대한 영적각성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강단에서 십자가의 보혈에 근거한 회개의 복음을 선명하게 외쳐야 한다. 사도요한이 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외쳤던 것처럼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져야 한다.
넷째, 성령충만을 경험해야 한다. 예루살렘 교회는 물론 기독교 역사 속에서 진정한 부흥이 일어난 곳마다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성령충만을 경험했다. 로이드 존스의 말대로 성령충만이 없는 부흥은 존재할 수 없다.
다섯째, 다시 영적대각성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세계교회사에 나타난 부흥운동은 물론 평양대부흥운동의 발흥과 전개 그리고 결과를 널리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알리는 일이 시급히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평양대부흥운동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지만 아직은 평양대부흥운동의 역사적 내용 이해는 미흡한 것 같다.
여섯째, 연합운동이 있어야 합니다. 교단간, 초교파선교단체간, 교파간의 참된 언합집회는 필요하다. 교회사적으로 성령의 강력한 역사는 한 목적을 가지고 함께 모여 간절히 은혜를 사모하는 집회를 통해 나타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개교회가 집회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합하여 집회를 갖는 것은 영적각성운동을 저변 확대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시찰회 혹은 노회 별로 3-4일간 연합으로 집회를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목회자 자신의 먼저 회개하고 은혜를 받아 영적각성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 역사는 교회 지도자가 먼저 은혜를 받을 영적각성이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과거 하디가 먼저 은혜를 받고 원산부흥운동을 전개했고, 길선주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이 되었고, 김익두 역시 먼저 은혜를 받고 놀라운 영적각성운동과 신유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이다.
지금 우리 모두가 한국교회를 향한 거룩한 꿈을 회복해야 할 때이다. 사도행전 이후 가장 강력한 영적각성운동이었던 평양대부흥운동이 또 이 땅에 임하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 이다.
제 1 장 세계부흥운동의 역사 개관
기독교 역사는 부흥의 역사였다. 일생동안 부흥을 사모하며 부흥을 연구했던 로이드 존스 역시 The Puritans에서 똑 같은 고백을 했다. “분명히 교회의 전행과 역사는 주로 부흥의 역사였고, 성령의 강력하고 예외적인 부으심의 역사였다.
1. 오순절부터 종교개혁시대까지
신약의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교회로서 역사적 출발을 하게 되었다. 초대교회 120 문도가 주님이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며 마가의 다락방에서 간절히 기도했을 때 그곳에 모인 모든 성도들이 놀라운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했다. 베드로의 설교를 동해 3천명, 5천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한 것이다.
암흑의 시대라고 일컫는 중세시대에도 수도원을 중심으로 간헐적이지만 역적각성의 움직임이 있었다.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이 발견한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성경(sola scriptura), 오직은혜(sola gratia)는 잠자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깊은 영적 잠에서 깨우는 역할을 했다.
2. 청교도 부흥운동과 경건주의 운동
부흥운동이 현대적인 의미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청교도들에 와서이다. 청교도들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믿었고 인간의 구원은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이룩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철저한 회개를 통한 죄 사함은 이들이 강조한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였다. 청교도들은 회개하지 않는 죄인에 대한 무서운 진노의 심판에 대해 여과 없이 담대하게 선포하였다.
3. 18세기 영적각성운동
17 세기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에서 간헐적으로 일어난 부흥운동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좀 더 강력한 형태의 영적각성운동의 성격을 띠며 발흥했다. 아마도 이 시대 발흥한 가장 강력한 부흥운동 가운데 하나가 18세기 웨일즈 부흥운동과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일 것이다. 부흥운동이 발흥한 후 웨일즈에는 18세기 중엽부터 강력한 부흥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거의 같은 시대 조나단 에드워즈, 길버트 테넨트, 조지 휫필드, 프릴링하이젠 등이 중심이 된 1차 대각성운동는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강하게 일어나 근대부흥운동의 가장 중요한 모델이 되었다.
4. 19세기 영미부흥운동
18세기 부흥운동 지도자들이 세상을 떠났는데 19세기에 접어들어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미국에서는 부흥운동이 계속되었다. 1787년 햄프던 시드니 대학과 워싱톤 엔드리 대학으로 얼려진 비지니아의 조그마한 두 장로교 대학에서 영적각성이 얼어나더니 곧 동부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 후 50년간 일련의 각성운동이 주기적으로 일어나 동부의 대학들과 교회들이 영적인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1800년~1830년까지 소위 2차 대각성운동이 계속되었고, 그것은 1830년대에 절정에 달했다. 근대 부흥운동의 선구자 찰스 피니가 등장하여 일련의 놀라운 부흥회를 통해 미국인의 부흥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준 것도 이 대였다.
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는 곧 영국으로 확산되어 1858~1859년 사이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에서 놀라운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이 부흥운동이 역시 독자적으로 발흥한 것이 아니라 1857년에 연합기도회를 통해 시작된 미국의 부흥운동과 모종의 연계성을 지니며 발전했다. 1739년 부흥운동을 체험한 웨일즈는 1762, 1791, 1817, 1840, 1848년에 계속 영적각성을 경험했고 1859년에 또 다시 놀라운 부흥을 경험한 것이다. 1859년 웨일즈 부흥운동의 포문을 연 사람은 감리교 목사 험프리 존스(Humphrey Jones)와 칼빈주의 감리교 목사(David morgan)였다. 이것은 토마스 필립스가 증언하는 것처럼 이 보다 더 강력한 부흥이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1760년부터 1860년까지의 기간에 웨일즈에서만 열다섯 번의 중요한 부흥이 발흥했다.
1873~1875년, 1881~1884년 두 번의 강력한 영적 피장을 동반한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 부흥운동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잠에서 깨웠다. 특별히 무디 성경학교와 학생자원운동을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세계 선교를 꿈꾸며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라카 등 전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이 시대 은둔의 나라 이 땅에 도착한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톤, 마펫, 개일 등 대부분의 초기 선교사들은 19세기 영적대각성운동의 산물이었다.
5. 20세기 근대 부흥운동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 여러 곳에서 놀라운 영적각성이 발흥했다. 이반 로버츠로 대변되는 1903~4년의 웨일즈부흥운동, 웨일즈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발흥한 1905년 호주부흥운동, 인도 카시아에서 일어난 1905~6년의 인도부흥운동, 하디와 길선주에 의해 주도된 1903-1907년 원산부흥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 1906년 아주사 오순절부흥운동, 그리고 1908년 만주.중국부흥운동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제 2장 부흥이란 무엇인가
1. 부흥의 역사적 고찰
부흥운동이 현대적인 의미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청교도들에 와서다. 부흥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도 청교도에 의해서다. 신대륙은 근대부흥운동의 요람이었다. 1662년 Henry Vane(1613~1662)이 급하고 강한 부흥이라는 말을 남긴다.
Cotten Marther(1663~1728)가 <미국에서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The Great Work of Christ in America, Magnalia Christi Americana)에서 헨리 베인의 말 “그리스도에 의한 신속하고 급한 부흥”을 인용하면서 널리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의 저서 Humble Attempt에서 revival를 “흘러들어옴“(effusion) 또는 "부어주심"(outpouring) 등의 의미로 사용하면서 18세기에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부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먼저 우리는 전도운동과 부흥과의 차이를 이해해야 하며 이 둘이 동등하게 비교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부흥은 성령의 부으심이다. 부흥은 무언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부으심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고 이것이 에드워즈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2. 성경적, 역사젹 부흥의 정의와 그 의미
부흥(Revival)이라는 명사형의 단어는 KJV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revive"(부흥하다)는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여덟번 나타난다. KJV에 있는 revive 8개는 히브리어 chayah이며 이것은 390번이나 나타난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to live, have life, remain alive, sustain life, live prosperously, live for ever, be quickened, be alive, be restored to life or health."
성경에서 어원적으로 recive는 소성케하다(“to make alive")는 의미이다. 신약에서는 이와 대등한 가장 강력한 단어는 에베소서 2장 1절과 5절에 나타나는 ”살리셨도다“, ”살리시고“입니다.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여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처럼 부흥은 영적으로 죽은 자가 깨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에서 부흥이라고 할 때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신앙의 상태를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윌리엄 스프레그는 “ 종교가 비교적 침체된 상태를 벗어나 활력을 되찾아 갈 때,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의무에 더욱 충실해질 때, 그리고 교회가 새로운 경건성으로 능력을 더해 갈 때 우리는 그것을 주저하지 않고 ‘부흥’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고 말했다.
제 3장 “최초의 부흥, 오순절 성령강림”
오순절 성령 강림은 “최초의 부흥” 모델이었다. 누가가 증언하는 대로 이 최초의 부흥의 역사, 오순절 성령강림에서 우리는 참된 부흥에서 수반되는 몇 가지 분명한 현상들을 읽을 수 있다.
첫째, 오순절 성령 강림에서 대한 간절한 사모함이다.
둘째, 성령 충만이 무리와 각 개인에게 임했다.
셋째,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 담대하게 선포되었다.
넷째,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와 영적각성이 나타났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곧 인류 전체에 구원을 선포한 사건으로 부흥의 이유와 근거를 구체적으로 예시했다. 초대교회 오순절 사건이 보여 주듯 부흥은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이다. 성령의 임재 없는 부흥은 존재할 수 없다.
제 4장 마틴 루터와 비텐베르그 부흥
16세기 종교개혁은 기독교 출발 다음으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종교개혁의 포문을 연 사람은 프러시아 민족성을 그대로 대변한 마르틴 루터였다. 프러시아 민족의 마음을 대변하는 작센의 한 수도사 루터의 지도 아래 모든 국가적 역량이 결집되어 저항할 수도 없는 거대한 물줄기가 형성 되었다. 곧 그 물줄기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며 반 기독교적인 폭정에 항거, 이전의 반종교적 기반을 영구히 변화시켜 버렸다.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당 문에 95개 조항 반박문을 게제한지 불과 3년 6개원 만에 루터의 개혁운동은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하며 프러시아 전역으로 확산 되었다.
종교 개혁은 지적인 면과 영적인 면 모두에게 인류의 역사에서 뚜렷한 분기점을 형성 하였다. 지적인 면에서 종교 개혁은 성경적 교리를 재 벌견하여 기독교 신앙의 틀을 구축 하였고, 영적 측면에서 종교 개혁은 하나의 복음주의 및 실천적 신앙의 부흥을 이룩하였다. 성경의 권위, 칭의론, 중생과 구속사역에서의 성령의 사역은 종교개혁이 후대에 남긴 걸축한 유산들이다. 분명 종교 개혁은 유럽의 지성사를 바꾼 놀라운 사건이지만 영적 측면에서 종교 개혁은 “복음주의 및 실천 종교의 부흥”이었다.
제 5장 존 칼빈과 제네바 부흥
존 칼빈의 대표작으로 편가 받고 있는 “개신교 신앙에 대한 하나의 훌륭한 변증서” 기독교강요는 그의 영적 각성의 결정체였다.
3년간 유배 생활을 마치고 온 제네바로 귀환한 칼빈은 제일 먼저 예배를 개혁하였다. 칼빈은 예배를 라틴어 예배에서 불어 예배로 전환 보는 예배에서 듣는 예배로 개혁 하였다. 들리는 예배로의 전환은 라틴어 형식의 보는 예배에서 말씀의 선포가 중심이 된 들리는 예배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부흥의 위대한 결실은 제네바 아카데미였다. 이것은 제네바 부흥의 결정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1559년도에 설립된 제네바 아카데미는 가장 경건한 훈련이 구현된 곳이었다. 말씀을 통한 영적대각성 운동은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부흥의 근간이 형성하였고, 그 후 칼빈 신학과 사상을 따르는 곳마다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다. 칼빈의 제네바 부흥은 여타 다른 부흥과 본질적인 차이가 많았다. 제네바에서는 회개운동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부흥운동에서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감정적 폭발이 없었고, 그 성격상 종교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이었고, 영적이기보다 도덕적이었다. 하지만 결과를 통해 볼 때 하나님 주권 아래의 놀라운 부흥이었다.
제 6장 존 낙스와 스코틀랜드의 부흥
존 낙스는 사회, 정치, 문화를 종교적인 눈을 통해 통찰하는 탁월한 해안을 지니고 있었다. 이 때문에 낙스의 스코틀랜드의 개혁은 단순한 종교개혁 차원을 넘어 사회구제, 평등사상 구현, 균등한 교육기회 제공을 통해 루터와 칼빈이 이루지 못한 광범한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존 낙스의 종교 개혁의 이상은 신대륙의 수 많은 장로교회를 통해 정치, 문화, 사회 전반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제 7장 영미청교도운동과 영적각성운동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영국에서 일어난 17세기 부흥운동은 청교도 운동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발전 하였다. 청교도들은 철저한 회심, 죄에 대한 각성, 회개를 강조 청교도 영성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최초의 영적각성운동으로서의 부흥이 청교도 사이에서 일어났다.
슈펜너, 프랑케, 진젠돌프를 중심으로 한 경건운동은 요한 아론트의 “참된 기독교로 대변되는 교회 및 신앙개혁운동이었다.
경건주의운동은 테오도르 운데어악익으로 대변되는 개혁파 경건주의운동과 필립 야콥 슈펜너로 대변되는 루터파 경건주의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개혁파 경건주의운동은 청교도에, 루터파 경건주의운동은 루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 8장 필립 슈페너와 피아 데시데리아
슈페너는 개혁의 대상에서 자신을 제외시키지 않았다. 그는 <경건의 열망> 서문에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한다. “ 만약 주님의 나라에서도 인격의 서열과 가치에 따라 평가 되어지는 세상나라와 같다면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볼 때 맨 마지막이 될 것을 깨닫습니다. 다행스럽게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는 그러한 자도 멸시를 받는다는 사실은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이어 자신의 한계와 겸손을 진솔하게 밝힌다. “ 나 역시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는 가운데 주제 넘지 않게 생각을 하지 않길 바랍니다. 내가 진정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 가운데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무엇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만을 신뢰한다거나 어떠한 사실들을 세상에 떠벌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슈펜너가 말하는 “경건의 열망”속에는 경건의 실천이 함축되어 있다. 목회자들의 경건은 나 지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목양의 현장”을 염두해 둔 경건이어야 한다.
제 9장 아우구스테 프랑케와 할레 부흥
17세기 말 프랑케를 통해 독일 작센의 한 작은 도시 할레에서 영적 각성 운동과 사회 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프랑케는 개인의 영적 각성과 사회 개혁의 완벽한 조화를 통해 할레를 유럽의 대표적인 경건주의 요람을 만들었다. 그는 여기서 목회자와 영혼의 위로자, 신학자와 교육자, 거대한 조직자로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다.
제 10장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공동체 부흥
모라비안 공동체에서 성경은 중요한 지침이었다. 여기서는 말씀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되었고, 성경적인 민주적 정치제도가 부활되었으며, 공동의 경건을 위한 찬송과 축제의 시간도 허용되었다. 진젠도르프의 경건주의 운동은 몇가지 점에서 근대 부흥운동의 효시로 평가 받을 수 있다.
첫째, 1727년 이후 헤른후트 형제단이 보여 준 철저한 경건의 실천과 훈련이다.
둘째, 해외 선교운동이다. 헤른후트 공동체는 근대 해외선교의 모형으로 평가 받고 있다.
셋째, 사회 개혁의 저변 확대이다.
제 12장 조나단 에드워즈와 미국 1차 대각성운동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인물, 조나단 에드워즈는 미국 청교도의 거장으로, 노댐프톤의 교회 담임목사로, 탁월한 미국의 신학자요, 사상가로, 프린스톤 총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교회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위치는 역시 미국 1차 대각성운동이다.
미국의 1차대각성운동은 개인의 각성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와 공동체의 각성으로 이어져 영적 변혁을 통한 문화적 사회적 변혁을 태동시켰다. 사회악이 범람하고 온갖 죄악들이 사회와 가정 그리고 국가적 혼란을 가중시키는 현대에서 문제의 해결이 제도적 보완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에드워즈가 부흥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성령의 부어주심”이다. “부흥이란 성령의 부어주심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위의 주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자각할 따름입니다.”
제 13장 조지 휘필드와 칼빈주의 감리교 부흥운동
1. 조지 휘필드와 칼빈주의 부흥운동
해리스와 휘필드가 대변하듯 감리교운동은 구원과 사죄의 체험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에 대한 분명한 체험이 있었던 해리스와 휘필드에게 중생, 거듭난, 감정 그리고 느낌은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휘필드나 해리스 로랜스는 정통교리를 중시했지만 그 정통교리, 바른 믿음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구원의 감격과 충만을 경험하기를 원했습니다. 뚜렷한 회심을 경험한 이들에게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마치 1738년 5월 24일 웨슬리가 올더스게이트 스트리트에서 체험한 것처럼 마음이 뜨거워졌고, 죄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휘필드는 기독교의 참된 신앙이 어떤 누구에도 상처주지 않고 교회 위무를 충실히 감당하도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고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그의 형상을 이루시는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인간의 선행, 도덕적 삶, 윤리적 실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른 신학이 얼마나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2. 하웰 해리스와 웨일즈 부흥운동
1735년 6월 18일 강력한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경험한 해리스는 곧 불타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심령은 성령 충만을 경험한 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죄를 각성하고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칼빈주의 감리교 지도자 조지 휘필드와 하월 해리슨를 통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 칼빈주의와 부흥이 결코 반립적인 갓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형상입니다.
둘째, 부흥운동의 지도자들은 특별한 영적페험을 경험했습니다. 위필드, 해리스, 조나단 에드워즈 모두 이와 같은 영적체험을 경험했습니다.
셋째, 이와 같은 영적인 체험 이후 나타나는 두드러진 현상은 복음전도열입니다.
넷째, 이들의 메시지방식은 역동적이고 성령 안에서의 자유가 있는 설교였습니다. 휘필드와 해리스 역시 충분한 준비된 설교를 위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와 감동 속에 영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제 14장 존 웨슬리와 감리교 부흥
산업형명으로 일어나던 18세기 중엽 미국의 1 차 대각성운동과 비견할 수 있는 놀라운 부흥이 영국에서 발흥했다. 이 부흥은 영국의 사회, 문화, 종교 전반에 대단한 영향을 미쳐 영국에서는 불란서나 미국에서와 같은 혁명을 겪지 않았다. 이 부흥을 주도한 세력은 감리교운동이었고 그 중심에는 요한 웨슬리(1703~1791)가 있었다.
웨슬리의 설교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동반된 설교,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가슴으로 외치는 설교, 듣는 이들 마다 죄의 각성과 회심의 역사가 따르는 설교였다. 그런 의미에서 웨슬리 부흥은 웨슬리 듀웰의 말대로 설교에서 시작된 “설교의 부흥”이었다.
제 15장 미국 제 2 차 대각성운동
1880년부터 1830년까지를 특징짓는 미국의 2차대각성운동, 1858년 전후 전개된 아일랜드와 웨일즈의 부흥운동, 그리고 19세기 후반의 무디 부흥운동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 부흥운동 외에도 19세기에 나타난 영적각성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 세 흐름이 19세기 부흥운동을 주도했다. 따라서 이둘 세 부흥운동의 흐름에 대한 이해는 19세기 부흥운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분명한 사실은 2차 대각성운동 때에서도 칼빈주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상당수의 회심의 역사가 전적인 인간의 타락과 부패를 외치는 설교자들을 통해 나타났다. 1차대각성운동 기간 동안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부패와 타락을 강단에서 외칠 때 청중들 가운데 회개와 통화 가운데 참된 영적각성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은 2차 대각성운동에서도 에외는 아니다.
제 16장 찰스 피니 부흥과 새로운 밥법
미국의 2차 대각성운동에서 역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찰스 피니(1792~1876)이다. 그는 2차 대각성운동 기간동안 가장 활발하게 부흥운동의 지도자로 쓰임받은 인물이었다. 부흥운동의 역사에서 그만큼 예찬과 비판을 동시에 받은 인물도 드물 것이다.
피니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자신이 인도한 부흥회에 나타난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들을 열거했다. 능력 있는 기도의 영이 나타났고, 자신들의 죄를 깊이 깨달았으며, 사람들이 갑자기 아주 강하게 그리스도께로 돌아왔고, 회심한 자들에게 광장한 사랑과 기쁨이 충만했으며, 회심 자들이 바른 정신을 가지고 안정된 모습을 보였고 이들이 매우 진실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였다.
하나님께서 피니를 부흥운동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은 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가는 곳마다 놀랍게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피니의 비판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그가 자신을 도구로 하여 발흥하고 있는 부흥운동을 잘못해석하고 말았다는 시실이다. 그는 부흥운동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라고 믿지 않고 인간의 노력에 의해 일정 조건의 갖추어지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제 17장 정오기도회 부흥과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부흥 1857~1859
1858년과 1859년 2년 사이에 아일랜드와 웨일즈에서 놀라운 부흥운동이 발흥했다. 이 부흥운동은 로이드 존스가 참된 부흥이라고 말한 놀라운 경적각성운동이었다. 모든 부흥운동이 그런 것처럼 이 부흥운동 역시 독자적으로 발흥한 것이 아니라 1857년에 연합기도회를 통해 시작된 미국의 부흥운동과 모종의 연계성을 지니며 발전했다.
이 부흥운동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 인도하는 부흥이 아니라 기도회를 통한 부흥이었기 때문에 그 파급 속도는 더 빨랐고, 더 강력했다. 이 기간동안 영적, 도덕수준이 눈에 띠게 향상되었고, 루이빌과 켄터키의 일간 신물들은 천국왕국이 도래했다며, 흥분을 가추지 못했다. 이 부흥운동은 과거 부흥운동 지도자들을 통해 일어난 부흥과 달리 평신도들이 시작하고 평신도들이 주도한 밑바닥(grass root)에서부터 일어난 강력한 부흥이었다. 이 부흥을 동해 세상의 어떤 힘으로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를 성령께서 하신 것입니다.
제 18장 드와이트 무디돠 근대 부흥운동.
16세기 하반 영적대각성운동이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를 통해 다시 발흥했다. 1873년~1875년, 1881년~1884년 두 번의 강력한 영적 파장을 동반한 무디 부흥운동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잠에서 깨웠다. 무디의 집회가 가져다 준 결실은 대단했다. 교파의 장벽이 무너져 내렸고, 성경공부가 다시 활성 되었으며 잠자는 수많은 영혼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무디의 또 다른 영향은 19세기말부터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놀랍게 발흥한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입니다. 지난 50년간 학생자원운동을 통해 파송한 선교사가 2만 5백명이었다. 이렇게 해서 학생자원운동의 양향으로 10세기 해외선교운동은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제 19장 찰스 스펄전과 근대 칼빈주의 부흥
“만일 내가 일천 번의 생을 살 수 있다면 나는 그 일천 번의 생 모두를 그리스도를 위해 바치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를 향한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부답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다고 느낍니다.” 19세기 말 칼빈주의 부흥을 견인한 찰스 스펄전(1834~1892)의 고백이다. 그의 가슴은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가 휘필드 이후 ‘설교의 황태자’라고 평가받은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스펄전이 한 세기를 넘도록 영향을 미치고 있는 원동력은 복음에 대한 열정, 어거스틴과 칼빈, 청교도들과 휘필드를 통해 계승된 칼빈주의 부흥운동의 복고에 있다. 스펄전은 “칼빈이 전파했던 그 옛 진리, 그리고 어거스틴이 전파했던 그 옛 진리는 나 자신이 오늘날 전파 해야 할 바로 그 진리”라고 외쳤다. 스펄전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dfl의 면전에 계시며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동기”라 믿었다.
제 20장 웨일즈 대 부흥운동(The Welsh Revival)
1904년과 1905년에 발흥한 웨일즈 부흥운동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나타난 가장 강력한 성령의 현시 가운데 하나였다. 이미 17세기부터 영적각성을 여러 차례 경험한 웨일즈 교회가 20세기에 막 접어들면서 또 다시 강력한 부흥을 경험한 것이다.
웨일즈 부흥 운동은 당시 영미에서 알고 있던 복음주의 부흥운동과 밀접한 연계성을 지니며 발전했다는 사실,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사회개혁이 수반되었다는 점에서 근대 부흥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모든 것보다 현대 영적각성운동의 역사에서 웨일즈 부흥운동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역시 그 부흥운동이 인도와 한국의 부흥운동을 필두로 아프리카, 호주, 미국, 중국에 이르기까지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부흥운도의 진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제 21장 1905-6 인도 카시 부흥
북부 카시족 가운데 부흥이 일어났을 때 그 성령의 역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부흥의 역사가 카시족 가운데 확산 될 때 어린이들 가운데서도 놀라운 역사가 임했다.
카시아 지방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는 카시 구릉지대, 루시아 구릉지대, 그리고 평야 지역의 마을들로 널리 확산되어 나갔고, 카시아 지방의 부흥운동을 접한 인도 전역의 수많은 교회들로 그 은혜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카시 지방에서 일어난 부흥의 역사는 “마치 대양으로부터 큰 파도가 계속 밀려오듯” 지속적으로 일어났으며 인도 전역의 영적각성운동의 진원이 되었다.
인도부흥운동은 교세의 급신장을 가져왔다. 군투를(Guntur)의 미국 루터교는 부흥운동으로 18,964명의 교세가 40,198명으로 급증했고, 하이데라바드(Hyderadad)의 도르나칼에서는 아자리아 주교가 일 년에 3천 명씩 30년간 세례를 베풀 만큼 지속적으로 교회가 성장했다. 특히 부흥운동을 통해 인도의 카스트 계급의 사람들이 부흥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제 22장 1906 아주사 스트리트 부흥(Azusa Street Revival)
아주사의 부흥의 포문을 연 사람은 전직 흑인노예 아들 조셉 시무어였다. 아주사가 부흥은 체험적 신앙, 성령의 은사를 갈구하는 영적으로 굶주린 수많은 영혼들에게 대단한 자극을 주었다. 1906년 9월에 행한 “값진 구속”이라는 설교가 보여 주듯 시무어의 설교는 단순했다.
아주사의 브흥은 곧 백인, 흑인, 인디언, 황인 등 인종을 넘어 광범하게 확장되어 나갔다. 인종적 벽이 결코 오순절운동의 세계화를 막을 수 없었다.
제 23장 한국의 오순절, 원산.평양대부흥운동
한국에 부흥운동이 하나의 종교적 운동으로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03년, 남감리교 선교사 로버트(Robert Hardie)를 통해서이며 이것은 절정에 달한 것이 1907년 1월 평양대부흥운동이었다. 사도행전 이후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평가받는 평양대부흥운동은 기독교 역사속에 일어난 어떤 부흥운동보다도 건전하고 훌륭한 굘과를 낳았다.
원산부흥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은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임재로 특정되는 철저한 영적각성운동이었다.
제 24장 1908 만주 및 중국부흥운동
1908년과 1909년 사이 중국 여러 곳에서 부흥운동이 나타났다. 1909년 4월 산동기독대학교 문과대학에서 부흥이 일어났고, 웨이센에서 부흥이 일어났다. 핸리 루스 목사에 따르면 이 부흥은 그 대학을 졸업한 딩 리 메이 목사가 그해 5월 30일 인도한 특별 예배 때 임하기 시작했다. 부흥이 일어나자 예전에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성령의 임재를 경험 하였다.
제 25장 빌리 선데이 부흥
1910년대와 1920년대 미국이 세계 1차대전, 공황, 그리고 근본주의 대 현대주의 논쟁으로 전에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 인물이 빌리 선데이였다.
빌리 선데이 부흥은 목회자나 평신도를 막론하고 이 땅에 영적 각성을 꿈꾸는 이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를 교훈해 주었다. 이 때문에 이후 등장한 부흥운동의 지도자 중에는 드가 이룩한 부흥의 신화를 한 차원 승화시킬 수 있었다.
제 26장 로이드 존스와 근대 칼빈주의 부흥
30년 동안의 사역을 통해 그가 남긴 영향은 참으로 놀랍다. 그는 교회사에 나타난 부흥을 성경적인 영적 각성의 메시지를 통해 생생하게 제시했고 설교와 목회 사역, 목회 철학 전반을 통해 부흥의 중요성을 늘 새롭게 환기 시켜 주었다. 그처럼 부흥을 신학적 성경저그로 선명하게 정리한 살은 드물다. 그가 말하는 부흥은 교회 성장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 성령의 비상한 간섭을 의미한다. 그는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의 임재, 성령의 비상한 부르심이 부흥이라고 강조 했다.
제 27장 빌리 그래함과 근대 복음주의부흥
빌리 그래함의 오랜 협력자 크립 바로우스의 말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는 세상을 사랑하시고 그가 개개인을 사랑하신다”는 메시지는 빌리 그래함이 일생동안 외친 메시지의 핵심이었다. 바로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의 사역을 후원하는 주된 이유다. 복음에 충실하며 일생동안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깨끗한 생애를 살아온 빌리 그래함은 지난 수세기 동안 미국을 넘어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아 왔다.
제 28장 미국 캠퍼스 부흥의 두 모델: 에즈베리와 휘튼리바이벌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부흥운동 지도자 빌리 그래함을 배출한 휘튼대학은 에즈베리 대학과 더불어 20세기 캠퍼스 부흥을 이끈 주역이었다. 지금부터 10년 전 1995년 휘튼대학에 놀라운 부흥이 임했다. 하지만 이 부흥은 휘튼대학이 처음 경험한 부흥이 아니었다. 1936년 , 1943년, 1950년, 1970년, 그리고 최근 1995년에 이르기까지 휘튼대학은 여러 차례 놀라운 부흥을 경험 하였다.
에즈베리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산물이지만 동시에 부흥을 사모하는 목마른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에즈베리 캠퍼스 부흥은 근대부흥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 느낀 점
“부흥의 역사”라는 방용규 교수님의 강의 책을 읽으면서 너무 많은 도전을 받았다. 재 모국어인 인도네시아어로 아닌 한국어로 읽었는데도 책의 내용을 너무 잘 정리하셔서 많은 은혜와 도전 그리고 통찰력을 얻었다.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과 방식으로 역사하시는지 알게 되었다. 가의 책을 통해서 자세하게 몇까지 깨달았는데, 그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이세상의 역사를 이끄시는 것이다. 책을 통해서 깨달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이세상의 역사를 이끄시고 특별하게 당신의 교회를 이끄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세상의 역사를 어떤 위대하고 유명하고 능력이 있는 인물들 동해 이루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배후에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단 4:25)”라는 말씀을 생각난다. 이 진리를 알게 된 후 나에게 얼마나 큰 힘과 위로와 기쁨과 소망이 되는지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역사를 이끄실 뿐만 아니라 이 세사의 역사를 교회를 통해서 좋을 데로 이끄시는 것을 또한 깨달았다. 부흥이 얼어날 때마다 개인과 교회의 영적각성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사회까지 변화되는 것을 역사가 말한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고 이 진리를 깨달으면서 너무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께 감사과 찬양을 드렸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의 올바른 선포를 통해서 부흥을 일으키신다. 베드로가 요엘서를 이용해서 말씀을 선포했을 때는 수천 명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구약성경의 성취라는 사실을 떠나서 베드로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고 선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들을 때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된다. 그래서 말씀을 올바른 선포, 즉 복음을 성경대로 선포되었을 때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고 의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고 죄인을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하나님의 진리를 올바르게 선포했을 때 노댐프해턴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변화되는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말씀에 대한 깊은 지식 없이 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빌리 선대이가 주도했던 부흥에서 회심한 사람들은 그들 마음에 부흥의 뜨거움이 사라졌을 때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다. 그만큼 말씀에 대한 올바른 선포는 중요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부흥의 역사를 통해 사사기에서 반복되는 심판, 회복, 승리를 또한 보게 되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의 신을 섬기고 토착 종교를 따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갔을 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고 세우신 인물을 통해 그 백성을 다시 이기게 하셨던 것처럼, 신약의 백성인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가 이 세상의 철학과 죄로 인해 오염된 풍습과 문화를 따를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심판하시고 교회가 회개하고 말씀을 대로 믿고 순종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다시 교회를 용서하시고 부흥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교회는 교회의 소명과 사명이 무엇이지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붙잡아야 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교회가 부흥을 경험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진리와 비진리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임을 분명한다. 이 시대의 교회는 너무 세상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필요로 하는 것이다. 안인섭 교수님 말씀처럼 “목회자는 항상 한손에 성경 책이요 한 손에는 역사책이라고 하셨다. 역사를 알면 과거에 벌어졌던 교회의 잘못한 것들을 반복되지 않고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역사를 너무나 중요하는 것이고 박용규 교수님의 부흥의 역사라는 교재를 통해서 부흥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넷째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갈망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기도를 통해서 부흥을 일으키신다. 부흥은 하나님의 주관이시지만 동시에 사람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흥이 인간의 노력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흥이 하나님의 주관적인 역사라고만 인정하면서 인간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관적인 역사만을 기다리는 것은 여기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련된 문제라, 인간이 마치 로봇처럼 모든 것이 다 세팅된 것처럼 느낄 수 밖에 없다. 부흥은 하나님의 주관적인 역사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간절히 갈망하고 부흥을 위해서 온힘으로 애쓰고 기도했을 때, 그 기도를 통해서 부흥을 일으키신다는 사실이다. 이 진리는 성경전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리이다. 특히 초대교회부터 이 시대까지 일어났던 영적대각성운동은 기도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책을 통해서 이 진리를 발견했지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지만 동시에 인간의 책임도 물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이 성도들로 하여금 더 열심히 기도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시고 부흥을 일으키시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사실은 핍박과 환난 가운데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하는 그의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 백성이 올려 드리는 기도가 절대 헛되지 않다는 것이다. 스가랴 1:3에 기록된 말씀도 기억난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라고 말씀하신다(슥1:3). 부흥을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섯째는, 역사책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미치는 영향도 다르다. 같은 역사사건임을 불구하고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내용도 다르다는 사실이다. 세상전체역사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어떤 시각이나 관점으로 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용한 일입니다. 역사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것인지 이 세상의 관점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해석될 내용도 다를 수 밖에 없다. 감사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교수님이 하나님의 눈으로 역사를 해석하시고 쓰심을 느끼고 하나님을 갈망하고 보라보는 박용규 교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교회사를 가르치신 신학자와 교수로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역사를 쓰셔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교수님의 부흥에 대한 갈망하는 마음을 얼마나 뜨거우신지를 느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난 후 정말 많은 것들을 얻었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많은 것을 배웠지만 책을 통해서 더욱 그러하다. 이 책을 통해서 나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과 그의 역사와 부흥을 갈망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교수님의 건강을 지키시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된 역사책들을 교수님을 통해서 계속 나오시기를 기도한다. 듣기로는 한국교회사 3집 쓰시려고 한다고 들었는데 하나님께서 영육간을 지키시고 명철과 지혜와 능력을 주시도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교수님을 사용하셔서 다시 한 번 한국교회에 큰 부흥이 일으킬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기도한다.
◈ 적용
우리교회는 인도네시아 근로자를 위한 안디옥국제선교회(Antioch International Community)라고 합니다. 1995년 설립된 이 교회는 처음에 다국적인 사람들 위한 교회였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줄어들고 인도네시아인들이 많아지자 나중에 1997년부터 집중적으로 인도네시아 근로자를 중심해서 사역하게 되었다. 설립한지 16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이 선교회는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인도네시아 돌아갔을 때 옛날 삶을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나도 인도네시아 외국인 근로자로 한국에 왔고 이 선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고 신학까지 하게 된 케이스 중에 한 사람이다. 30초반에 신학을 접해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내가 받은 은혜를 한국에 와 있는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에게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싶다. 저는 지금 안산에 있는 안디옥선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하고 있다. 부흥을 위해 우리교회에 적용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먼저 사역자인 내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철저한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역자인 내가 먼저 회개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회개하라고 하는 것은 바리새인의 삶과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삶을 책망하시고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지적하셨다. 표면적으로는 좋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메마른 뼈와 같은 위선적인 삶이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살고 총체적인 삶을 살기를 추구하고자 한다.
2.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하고 올바르게 가르치고 복음을 올바르게 전하고자 한다. 올바른 말씀의 선포는 개인과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연구하고 열심히 가르치고자 한다.
3. 기도의 중요성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부흥의 영적원동력임을 가르치고자 한다.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이미 죽은 교회고 기도하지 않는 목회자는 삯꾼이며 부흥을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스스로 교회나 집에나 일터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자 한다.
4.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 기도하고자 한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는 사건은 단회적인지 비단회적인지를 떠나서 성도들이 날마다 성령의 충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라고 말씀하고 있다(엡 5:18). 이것은 날마다 받으라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의 말대로 성령 충만이 없는 부흥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의 충만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여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되고 성령께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장래 일을 알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요1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