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은 정의를 외치는 사람입니다. 정의는 좋은 것이지만 기독교 신앙은 정의보다 더 큰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한글 성경의 관용이란 단어는 "남의 잘못 따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관용어 원어적인 개념은 "옳은 것보다 더 큰 것"이란 뜻과 "정의보다 더 큰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어떠한 문제의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다가 분쟁이 일어나서 좋은 관계가 깨어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허물을 덮어주고, 하루에 일흔 번의 일곱 번도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교회의 정의를 외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우리도 세상을 향하여 실천해야 합니다.
남편의 잔소리와 아내의 바가지로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용서받았을 때에 감동을 받고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 교도소를 다녀온 사람들은 "갇혀 살면서 죄값을 다 치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받은 사람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살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고,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용서가 없는 사랑은 반쪽짜리 사랑입니다. 용서는 상대방도 살리지만 먼저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용서란 때린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맞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억울하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은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고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를 감옥에 가둔 자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율법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상대방을 판단하고 정죄하지만 복음의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관용을 베풀며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정의보다 더 큰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