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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와의 대화 - 14 (누가 이단이라 하는가)》
- 작성일 : 2005년 9월 26일
- 바바, 얼마전에 어떤 친구가 저에게 '잡신'들린 것 같다고 그러더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충격' 먹었습니다. 앞이 캄캄해지고 머리가 아찔하더라구요. 제가 예수님이건, 부처님이건 그 당대의 성인들을 다 존경하고 흠모해서 그런건가요. 기독교건, 천주교건, 불교건, 원불교건 호의적이고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될 줄이야...... 처음엔 「기독교 근본주의 유일신앙」에 젖은 그 친구가 괘씸해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며칠 지나고나서부터는 안쓰럽고 측은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친구로부터 이 시대 기독인들의 자화상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 그 친구의 말에 너무 신경쓰지 말아라.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서, 그 하나됨에 이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성경을 제대로 보고, 불경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그 어느 곳에서도 예수를 만나고 부처를 만난다. 하나님의 얼을 느끼지 못했거나, 머리와 입으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그러는 법이다.
- 아, 그리고 '이단(異端)'에 대한 제 멋대로의 기준으로 저를 몰아붙였습니다. 의심의 눈초리로 저를 '이단아' 취급하더라구요.
= 예수도 그 시대에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 등에게 '이단아'로 몰리는 수모를 겪었지 않았느냐. 앞으로 너는 더욱 거센 '이단아' 논란의 폭풍속에 던져질 것이다. 준비를 단단히 하거라. 종교의 참 뜻, 진정한 종교인, 참된 영성의 의미를 회복함으로써 거센 파고(波高)를 헤쳐나가야 한다. 먼저 눈이 뜨인 자의 운명은 고독할 수 밖에 없는 것, 네가 짊어매야 할 이 시대의 멍애를 기꺼이 받아안고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네게 부여된 지상의 명령이자, 의무다.
- 역시, 바바는 저의 편이군요.
= 나는 어느 누구의 편이 아니라, 네가 원하는 만큼 응해줄 뿐이다. 네가 나를 불러내어 말하게 하고 있지 않느냐.
- 근데, 저는 그 친구를 사랑합니다. 그 친구가 올바른 기독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 예수의 참된 가르침은, 2천년의 세월동안 신학자들에 의해 왜곡되었다. 많은 오류와 가필(加筆)로 성경의 참 뜻을 외면하면서, 독선주의과 독단적 행태를 일삼아 왔던 것이다. '종교' 라는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모독한 역사였다. 그나마 하나님의 참뜻을 알고, 예수의 참된 가르침을 이해했던 소수의 성현들에 의하여 유지되어왔던 과정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철저한 반성과 진심어린 회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써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저마다 옳다고 주장하는 교단들이 횡행(橫行)하면서 "무엇이 옳은가 구분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해석의 교리"속에 빠져버렸다. 이럴 때 일수록 성경을 머리속으로 이해하려는 무리속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직접 통할 수 있는 예지력과 직관력 등을 키워야 한다. 오직 의지할 것은 '그 것' 뿐이라는 절박함으로 매달려야 한다.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다는, 단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살펴라. 하나님께 이르는 길, 하나님과 하나됨의 길을 찾기 위하여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머물지 말라. 정말 보아야 할 것은 '달' 그 자체이다. 하나님께 이르는 길과 방법은 다양하고 여러 가지다. '단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조심하라.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위험하다. 이 길로 갔느니, 저 길로 갔느니, 그 방법으로 했느니, 이 방법으로 했느니 비교하고 논쟁하는 것은 어리석다. 중요한 것은, 제가 선택한 그 길과 방법으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그 일념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 예,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좀 부족하지만 나중에 더 알려주세요.
《바바와의 대화 - 15 (범재신론을 넘어서)》
- 작성일 : 2005년 9월 27일
- 바바, 오늘은 신앙고백을 좀 해야겠어요. 최근의 변화되는 심경을 말씀드리면서 해답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 하고 싶으면 속 시원히 풀어보아라. 인간은 '해답'보다 (발설의 해갈을 통하여) '위안'을 구하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백을 함으로써 구원받고, 스스로 답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상처를 치유하고 정화하는 경우가 더 많다.
- 그동안 저는 말과 머리로써만 범재신론(汎在神論)의 개념을 이해해 왔던 것 같습니다. 삼라만상(森羅萬象)에 깃든 - 무기물을 포함한 - 온갖 뭇생명들 속에서도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고 외쳐댔었죠. 온누리에 두루 편재한 하나님의 은총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누구나 저마다 나름대로 믿고 있는 하나님이 있으며, 어떤 형태로든 제 안의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라고 했었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하느님이 있다고 목청을 높이며, 이 세상에 나타나고 표현되는 것들은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 그렇지. 너희들은 모든 곳에서 브라마를 느끼고 마시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단 한순간 살아갈 수 없는 것이 너희들의 운명이지. 그래서 "얻어먹을 수 있는 힘을 주신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 그런데요. 얼마 전부터 제가 문득'거짓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각성이 일어났습니다. 말로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이해하면서,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진실로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하였던 나날이었다는 자각을 하였습니다.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듯이, '온갖 흑심만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소스라쳤습니다. 이렇게 제가 끔찍한 생활로 연명(延命)해 가며 목숨을 부여하고 있었다니, 정말 제 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들었어요. '범재신론'이라는 사상의 범주안에 저를 숨겨온 나날이었다는 자각앞에서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위선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었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 신의 숨결을 느끼지 못하면서 '신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상을 섬기는 것이지. 온전치 못한 제 신앙심과 그 도그마에 빠져 '우상'을 세워본들, 한날한시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을..... 부질없는 짓들에 혈안이 되어 있는 꼴들이 요란하기만 한 것이다. 신에 대한 감흥도 없이, 신과의 교감도 없이, '두루 편재한 신을 노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모순이고 역설인가. 그런 상태로 '범재신론'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자 자기기만이다. 안일하고 방만하게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어설픈 전략이다. 어떻게 제 안에 깃들어 있는 신령스런 기운조차 느끼지 못하면서 밖의 신을 인정하려 하는가.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냔 말이다. 온 몸과 마음속에 '신(神)의 자녀'라는 울림을 느끼지 못하면서 어떻게 외부의 '신(神)'을 말할 수 있겠는가. 너희들 자신이 '신의 또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믿음도 없으면서, 어떻게 곳곳 도처의 신(神)과 진심어린 관계가 가능한 것인가. 좋은 것이 좋은 것이고, 누이 좋고 매부 좋다고, 어영부영 얼렁뚱땅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신(神)과 하나됨 없이, 또는 하나되려는 노력과 의지도 없이, '범재신론'을 논한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짓이지.
- 맞습니다, 바바. 저 좀 살려 주십시오.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이토록 신(神)과 멀어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니, 이미 내 안에 들어차 있는그 분에 대한 영접을 할 수 있도록 제발살펴 주십시오.
= 그 분은 거리로써 측정할 수 없는, 하나됨의 상태에 있으면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아가라, 그 간절한 열망으로. 그 분의 사랑이 너희를 인도할 것이다. 신에 대한 무한한 충만감으로, 신의 축복속에 전율하는 행동으로 그 분을 영접하라. 그 분의 뜻을 섬기는 도구가 되어 그 분속에 침잠하라. 모든 것은 신이 충족시킨다. 너희들은 음식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그 성령의 힘으로 사는 것임을 명심하라.
첫댓글 게시판 활성화를 위하여 쓰려는 측면도 있었는데, 오히려 저 때문에 다른 분들이 들어올 틈을 못드리고 있는건 아닌지.... 제가 너무 위화감을 조성해서 글을 안올리시는 건가요. 제 이름만 있는 것 같아 쑥스럽습니다. 어찌되었건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평안하세요.
아이고ㅡ, 불쌍한 타페쉬지!, 좋은 글 쓰고 이렇게 걱정까지 하게 만들다니..., 미안하우! 나도 글쓰고픈데, 여기선 안된다우...이해해주시기우!...주제가 참 좋습니다. 깊게 생각해보아야할 것들인 것 같아요...
타페쉬, 얼마나 나도 부끄러운지요. 내면의 신에 대한 뜨거운 자각 없이 온 우주에 편재한 신을 갖다 부치는 것은 자신의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의 신만을 고집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나같은 식은 사두개이파의 함정이지요.
친구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미소를 지었습니다. 마치 학생 때, 아니 제가 아난다 마르가에 입문하기 전의 저의 모습이 그 친구분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어요. 그랬던 제가.. 이번 추석에 마이산에 올라 부처님전에 삼배를 했다는거 아닙니까. 아이들에게도 하고 싶으면 같이하자 해서 절하는법을 가르쳐주면서리
그 장면을 비디로오 촬영을 한 마노자야. 온 식구들 앞에 공개를 하고. 천주교 신자인 식구들, 결혼초부터 제 신실하기 그지없는 신앙심을 잘 아는 우리 형님..아니. 동서 어떻게 된거야? 속으로 킥킥 거리면서 태연하게 말했죠. 알고봤더니 다 예수님, 부처님 (속으로만 바바지까지)모두 다 하나이던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