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5:6-13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모압의 발락 왕이 당대 최고의 역술가 발람을 스카우트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여 몰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들은 결별했다. 이스라엘은 건재했고 평온했다. 그런데 그들이 헤어지고 난 후 평온했던 이스라엘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모압, 미디안 여성들이 립스틱 짙게 바르고 그윽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광야에서 찌든 이스라엘 남성들에게 다가와서 꼬리를 치며 데이트를 신청했다. 매력을 느낀 이스라엘은 그들을 따라갔고, 여성들이 좋아하는 데이트 코스를 따라가다 보니 모압과 미디안 사람들이 즐기는 “바알브올” 전통 축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성들이 너무 좋아서 함께 축제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바알을 숭배하고 있었고, 제사 축제가 무르익어 갈 때쯤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방 여인들에게 푹 빠져 버린 이스라엘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들과 음행을 저지르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성경은 땔 수 없을 정도로 밀착되고 종속된 상태라는 뜻으로 가담했다(3)라고 표현했다. 이 음란과 우상숭배가 엄청난 피바람과 후폭풍을 몰고 오는 줄도 모르고.
모압의 여러 우상 중 하나가 '바알'이었다. '바알'은 '주인'이란 뜻으로서(호 2:16), 주로 생산과 다산(多産)을 주관하는 풍요의 신이다. 따라서 이 바알 숭배할 땐 풍성한 생산을 기원하는 뜻으로 난잡한 혼음(groupsex) 행위가 있었다. 당시 바알 제사에 참여한 여인들과 처녀들은 생식과 다산(多産)의 신에 대한 헌신의 표로 신전에 찾아온 남자들과 음행했고, 바알 숭배자와 바알 신전의 여사제들과도 음행했다. 이들은 이를 죄로 여기지 않았고 축제요 문화요 바알 제사의 절정(꽃)이라고 생각했다. 성 소수자[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들의 축제인 퀴어축제, 브라질의 삼바축제 등에도 이런 문화가 있다. 금욕의 사순절 전에 며칠 동안 방탕하게 즐기는 축제가 카니발이다. 고대 우상숭배에는 항상 이런 타락한 음란이 공존했다.
모압 여성들이 이스라엘 남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바알브올 축제를 데이트 코스로 잡은 것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잘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인 것이었다. 이스라엘을 말살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이 판을 누가 짰을까? 4번씩이나 이스라엘을 축복했던 역술가 발람이 그 중심에 있었고(31:8,16, 계 2:14), 모압과 미디안이 연합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다(3). 급한 호흡 즉 분노가 끓어오르셨다. 출 20:3-5,14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4 간음하지 말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음란에 대해 진노로 그치지 않으셨다. 백성의 수령(지도자)들을 잡아 바알을 상징하는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 처형했다(4,5).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염병으로 쳐서 24,000명이 죽어갔다(9). 피바람이 불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때를 회고하며 현실적인 권면을 했다.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고, 음행하지 말자”(고전 10:7,8) 고린도의 유명한 아프로디테[사랑의 여신] 신전에 여사제[창기]가 무려 1,000명이나 있었다. 우상숭배와 음란은 항상 병행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에 대해 값을 치르신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사랑의 하나님을 외치며 죄를 감싸고 정당화하려고 하거나, 죄에 대해 변호하고 변명한다면 죗값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도 비례하여 커진다. 진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이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랑 타령을 해야 하는가? 아니다. 죄에 대한 처벌을 달게 받겠다는 각오로[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눅 15:19)], 하나님의 긍휼을 고대하면서 엎드려 주의 이름으로 회개하는 길밖에 없다. 계 2:21-23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다행히도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음란죄로 인해 회막 문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출애굽 1세대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예전 같으면 회개 따윈 없고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렇게 죽이느냐며 불평불만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출애굽 2세대들은 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했다.
하지만 아직도 음욕에 눈이 멀어서 돌아가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시므온 지파의 한 지도자 시므리가 파렴치하게도 이스라엘 온 회중이 통회하는 그 순간에도 음행하고자 그 미디안 여인 고스비[속이는 자/주동자]를 자신의 막사로 데려왔다(6). 지도자가 이 정도라면 얼마나 이스라엘이 부패하고 어두워졌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시므온 지파는 이 음란으로 인구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1차 계수 때 59,300명(1:23)에서 22,200명(26:14)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37,100명이 음욕과 우상숭배로 처형되거나 염병으로 죽었다.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시므리는 이스라엘 족장이고 그의 파트너 고스비는 미디안 족속의 왕 수르의 딸[공주]이다(14,15,31:8). 양국의 중요한 인물들이라 잘못 끼어들었다간 이스라엘과 미디안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스라엘 내에선 염병으로 24,000명이 죽어가고 있다. 어느 누가 전염병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 공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전쟁까지 겹치면 이스라엘의 운명은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서로 좋다고 하는데 제삼자가 어떻게 개입할 수 있겠는가? 또한 죄를 지었다고 계속 공개 처형하면 공동체의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어찌해야 좋을까?
모두가 고민하고 있을 때 울며 회개하고 있는 회중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시므리를 따라 그의 막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막사로 따라간 자가 시므리와 그의 파트너 고스비의 배를 찔러 죽였다(7,8).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던 자가 갑자기 살인자가 되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진정으로 회개한 자가 어떻게 남을 죽일 수 있는가? 아무리 음행 현장을 목격했어도 사랑으로 타일러야지 어떻게 과격하고 끔찍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염병으로 하루에 24,000명이 죽어가고 있는데 살인 사건이라니! 그런데 그 살인자가 다름 아닌 아론의 손자이자 제사장인 비느하스였다(7). 거룩하고 사랑이 많아야 할 제사장이 어떻게 살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대혼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의 대혼란이 신기하게도 끝났다. 비느하스의 결의에 찬 행동으로 전혀 그칠 것 같지 않던 우상숭배, 음행, 염병이 모두 종식되었다. 그리고 우려했던 미디안과의 무력 충돌은 없었다.
도대체 어찌된 것일까? 그는 거룩한 자들과 함께 회막(하나님) 앞에서 바알 숭배와 음란에 대해 통탄하며 회개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생겼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11) 우상숭배를 가증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바라보니 음욕에 빠진 시므리와 고스비를 처단하는 길이 하나님의 뜻이요 이스라엘이 살길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즉시 일어나 그들을 따라가 죽인 것이다. 음란죄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전혀 서식하지 못하도록 뿌리를 뽑은 것이다. 죄를 잔인하고 철저히 응징한 것이다. 그들을 죽여 희생제물로 드린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제사장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다.
하나님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가 여러분 대신 분노의 대상에게 분노해 주고 싸워주고 할 말과 못할 말까지 시원하게 다 해 준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에 대해 어떤 마음이 생기는가? 더 가까이하고 싶고 더 신뢰가 쌓이게 될 것이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과 결을 같이 하는 자만이 가능하다. 이런 마음을 가지려면 회개하고 그 열매를 맺을 때 가능하다. 24,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공포의 염병이 회개할 때 그친 것이 아니라 음행하던 자들[죄]을 죽일 때 그쳤다(8). 회개보다 더 중요한 것이 회개의 합당한 열매다.
하나님이 분노하실 때 함께 분노할 줄 알고 질투하실 때 결을 같이하여 질투할 줄 아는 자가 되자.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마음으로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고 환전상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마 21:12, 막 11:15). 말로 내쫓아야 하는데, 뒤엎어야 하는데 하지 않고 행동으로 표현하셨다.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데 태평하고, 짙투하실 때 너그럽다면 이 사람은 분명히 죄를 옹호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하나님의 나라에 죄는 생존할 수 없다. 공생은 불가하다. 반드시 죄는 처단되어야 한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성령의 검 말씀으로 그 죄를 회개함으로써 찔러 죽여야 한다.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혐오해야 한다.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이런 훌륭한 비느하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그와 그 후손에게 영영한 대제사장 직분의 언약, 평화의 언약을 주셨다(12,13). 제사장의 임무는 무엇인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로 막힌 담을 희생제물을 드림으로써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미디안을 쳤고, 미디안의 다섯 왕과 발람을 칼로 죽였다(민 31:8). 왜냐하면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침몰시키기 위해 미디안 왕의 딸 고스비를 비롯한 모압과 미디안 여성들을 전략적으로 시므리와 이스라엘 남성들에게 접근하게 하여 미혹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대혼란에 빠뜨렸기 때문이다(15,18).
결론 -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