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갈릴리로 가는데 사마리아를 경유해서 가는 것이 가까왔지만 많은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 했기에 멀어도 요단 동편의 베레아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사마리아’를 경유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단지 빨리 갈 수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여기 7절에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의 순수의 정통성이 없기에 경멸하여 개처럼 여기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이 사마리아에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 갈릴리로 가기 전에 ‘사마리아’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의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은 성경 곳곳에서 나타나 있습니다. 여리고성 전투에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기생 라합과 그 가족’의 구원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유대인들과 같이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으십니까? 혹시 차별과 편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문 말씀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하라- 주님은 사마리아에 수가라는 동네에 사는 한 여인을 찾아왔습니다. 계속해서 4장을 몇 주 동안 살펴보겠지만 이 여인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온 여인이었습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셨기에 유대인들의 모든 편견을 깨고 사마리아로 오신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서 말입니다. 주님이 잃어버린 영혼에 대해 생각하는 그 마음을 더 많이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7절 말씀을 이 말씀을 하신 대상은 세리와 죄인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입니다. 이 99마리 양 비유를 통해서 한 마리 어린양을 찾아 해매는 목자는 예수님이시고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은 구원받을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목자되신 주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는 들에 놓고 찾아내기까지 찾아내시고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의 잃어버린 양을 향한 안타까워하는 마음, 그 마음으로 끈질기게 찾아내는 인내, 돌아오는 영혼을 향해 기뻐하는 이 주님의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찬양의 가사 중에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이 찬양처럼 주님이 한 영혼을 안타까워하시고 사랑하셔서 끝까지 인내하며 찾아내시고 회개하고 돌아올 때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고 우리들도 더욱더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회복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두 번째로 전도대상이나 선교대상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갈릴리로 갈 때 많은 유대인들이 먼 길을 선택해서 갔던 것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마리아에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전도나 선교 할 때 혹시 편견을 갖고 선택하는 마음을 갖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친히 보고 들은 말씀도 받지 않았으며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려 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지는 않는지 뒤돌아보며 주님이 한 여인 사마리아 사람을 찾아가신 모습 속에 ‘한 영혼’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에도 ‘주님’의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이 회복되길 원하고 빈부귀천의 편견 없이 복음을 전하려 오신 주님마음을 우리들의 마음에 부어 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