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락 / 진각국사 혜심
知足樂 / 眞覺國師
浮雲富貴奈吾何(부운부귀내오하) :뜬구름 같은 부귀영화 나에게 무슨 소용
隨分生涯亦自佳(수분생애역자가) :분수 따라 사는 생애도 절로 아름다워라.
但不愁來何必酒(단불수래하필주) :근심이 찾아오지 않는데 어찌 술이 필요하랴
得安心處便爲家(득안심처편위가) :마음 편한 곳 얻으면 그게 바로 집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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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국사 : 법명 혜심(慧諶)
1178년(명종 8) ~ 1234년(고종 21) 고려시대 후기 대선사
성은 최씨(崔氏) 자는 영을(永乙) 자호는 무의자(無衣子) 전라남도 나주 태생
지눌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의 제2세 사주(社主)가 되어, 간화선(看話禪)을 강조하면서 수선사의 교세를 확장하였다.
*생애와 활동사항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출가하기를 원하였지만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았다.
1201년(신종 4)사마시에 합격하여 태학(太學)에 들어갔으며,
다음 해 어머니가 죽자, 당시 조계산(曹溪山)에서 수선사를 만들어 교화 활동을 하고 있던 지눌(知訥)에게 가서 어머니의 재(齋)를 올린 다음, 지눌의 제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힘써 정진하였으며, 지눌은 혜심의 재능을 아꼈다.
1210년 지눌이 입적(入寂)하자 혜심이 수선사로 돌아가 개당(開堂)하였다.
1212년 강종(康宗)이 수선사를 증축시키고 불법을 구하므로 그가 『심요(心要)』를 지어 올렸고, 당시 문하시중최우(崔瑀)는 그에게 두 아들을 출가시켰다.
고종(高宗)은 왕위에 올라 혜심에게 선사(禪師), 대선사를 제수하였으며, 1220년(고종 7)단속사(斷俗寺) 주지로 명하였다.
*문인에는 몽여(夢如)·진훈(眞訓)·각운(覺雲)·마곡 등이 있다.
*저서 :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30권, 『심요』 1편,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1권, 『구자무불성화간병론(狗子無佛性話揀病論)』 1편,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2권, 『금강경찬(金剛經贊)』 1권, 『선문강요(禪門綱要)』 1권
*상훈과 추모
고종은 진각국사(眞覺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부도(浮屠)의 이름을 원소지탑(圓炤之塔)이라 사액(賜額)하였다.
부도는 송광사 광원암(廣遠庵) 북쪽에, 이규보(李奎報)가 찬한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는 전라남도 강진군 월남산 월남사(月南寺)에 각각 세워졌다. 현재 비문은 잔비(殘碑)만이 전해 오고 있으며, 『동국이상국집』, 『동문선』, 『조선금석총람』 등에 그 글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