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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백두대간 버리미기재~은티재 구간[산행기]과 같이 한 안내산악회 백두대간 종주팀의 계획에 따라 다만 "무박 선자령 구간"이라는 정보만 있을 뿐인 대간 달리기에 참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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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봉[老人峰]
높이: 1,338m
위치: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오대산은 크게 보아 진고개를 지나는 국도를 사이에 비로봉(1,563.4m), 호령봉(1,561m), 상왕봉(1,491m), 두로봉(1,421.9m), 동대산(1,433.5m)의 다섯 봉우리와 그 사이의 많은 사찰로 구성된 오대산지구, 그리고 노인봉 (1,338m)을 중심으로 하는 소금강지구로 나뉜다.
노인봉 남동쪽으로는 황병산(1,407m)이 있고, 북동쪽으로 긴 계곡이 청학천을 이룬다. 노인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하류로 내려가면서 낙영폭포, 만물상, 구룡폭포, 무릉계로 이어지는데 이름하여 청학동소금강(靑鶴洞小金剛)이다. 노인봉은 정상에 기묘하게 생긴 화강암 봉우리가 우뚝 솟아, 그 모습이 사계절을 두고 멀리서 바라보면 백발노인과 같이 보인다고 하여 노인봉이라 불렀다 한다.
노인봉은 현재 오대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소금강 계곡을 감싸 안고 있는 노인봉(1,338m)이 진고개로 오대산과 그 맥을 잇고 있을 뿐, 소금강 계곡은 오대산과는 사실 별개의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오대산국립공원은 월정사 지역과 소금강 지역으로 구분해 부른다.
소금강이라는 별칭을 가진 명소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1970년 우리나라 최초 명승 1호로 지정된 청학동소금강이 대표적인 절경이다. 소금강이라는 별칭을 부여할 때는 대개 지역 이름을 앞에 붙여 경기소금강, 정선소금강 등으로 부른다.
소금강 하면 청학동소금강을 지칭하기도 하며, 오대산 국립공원 속에 포함되면서 오대산소금강이라고도 하고, 일부에서는 연곡소금강, 청학천이라고도 불린다.
노인봉에서 발원한 청학천이 13km 흘러내리며 이룬 이 소금강은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소와 담, 폭포 등이 절경을 빚고 있다. 무릉계를 기준으로 상류 쪽을 내 소금강, 하류 쪽을 외 소금강이라 한다. 외 소금강에는 금강문, 취선암, 비봉폭, 그리고 내 소금강에는 삼선암, 세심폭, 청심폭 등이 대표적인 경관을 이룬다.
이 밖에도 30개가 넘는 경관지가 있는데, 특히 금강산의 그것과 흡사한 만물상, 구룡연, 상팔담 등이 볼만하다. 계곡 요소마다 철난간이나 구름다리 등이 놓여 있다. 소금강은 무릉계 무릉폭에서 그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무릉계에서 1.1km 거리에는 계곡물이 열십자 모양의 못을 이룬 십자소가 낭떠러지 아래에서 깊은 물을 일렁이고, 다시 600m 지점에는 식당암이라는 평평한 암반이 있다.
식당암에서 극락고개를 오르면 세심대와 청심대를 지나 구룡폭(구룡연)에 이른다. 아홉 폭포가 연달아 내리꽂히는 자태가 장관이다. 구룡폭 바로 위에는 만물상이 있다. 거인의 옆얼굴을 닮은 귀면암, 촛불 형상의 촛대석, 암봉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 낮이면 해 같고 밤이면 달 같은 일월봉, 거문고 타는 모습의 탄금대 등이 만물상을 장식한다. 관리사무소에서 만물상까지는 약 4km로 2시간쯤 걸린다.
노인봉은 여름의 계곡 산행으로 으뜸이며, 가을의 기암들과 어우러진 단풍, 등산로가 양지쪽으로 나 있어 겨울에도 포근한 명산으로 겨울 산행지로 좋다. – 한국의 산하
황병산
높이: 1,407m
위치: 강원도 평창군, 강릉시 연곡면
황병산은 바위보다는 흙 지대가 많은 흙산이라 그리 험하지는 않으며 골이 깊고 수목과 계곡의 수량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희귀식물도 많다. 인적의 자취가 적다 보니 태고의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북쪽으로는 노인봉이, 동북쪽으로 뻗어 내린 곳에 청학동 소금강이 흐른다. 여름철에는 시원한 계곡이 있는 관계로 특히 인기가 높은 코스이다. 오대산 노인봉은 널리 알려졌지만, 바로 능선으로 이어져 있는 황병산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5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만만치 않은 산행이지만 오염되지 않은 울창한 수림과 맑은 물을 한껏 만날 수 있다.
오대산 소금강은 해발 1,470m인 황병산을 주봉으로 노인봉, 좌측의 매봉이 학의 날개를 펴는 듯한 형상의 산세를 이룬다. 소금강의 울창한 숲 사이로 기암의 수려함을 드러내어 찾는 이로 하여금 한눈에 빨려들게 한다. - 한국의 산하
선자령[仙子嶺]
높이: 1,158m
위치: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강원도를 영동과 영서로 가로지르는 구름도 쉬어 간다는 대관령. 고개 너머 동쪽이 강릉, 서쪽이 평창이다. 대관령은 겨울철에 영서지방의 대륙 편서풍과 영동지방의 습기 많은 바닷바람이 부딪쳐서 우리나라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 3월 초까지도 적설량이 1m가 넘는다. 대관령의 강릉과 평창의 경계에 있는 선자령은 눈과 바람, 그리고 탁 트인 조망이라는 겨울 산행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선자령은 해발 1,157m로 높지만, 대관령휴게소가 840m로 정상과의 표고 차 317m를 긴 능선을 통해 산행하게 되므로 일반인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등산로는 동네 뒷산 가는 길만큼이나 평탄하고 밋밋하여 가족 단위 산행으로 알맞다.
선자령 산행의 백미는 정상에 서서 바라보는 산들의 파노라마. 정상에 올라서면 눈을 덮어쓰고 있는 남쪽으로는 발왕산, 서쪽으로 계방산, 서북쪽으로 오대산, 북쪽으로 황병산이 바라다보이고, 맑은 날에는 강릉 시내와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등 전망이 일품이다. 주 능선 서편 일대는 짧게 자란 억새가 초원 지대를 이루고 있지만, 동쪽 지능선 주변은 수목이 울창하다.
고개에서 등반을 시작하는 1,000m 이상 되는 산행지로 전국에 계방산(운두령,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1,577m), 조령산(이화령, 경북 문경시 문경읍 1,017m), 노인봉(진고개,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1,338m), 함백산(만항재, 강원도 태백시 1,572m), 백덕산(문재,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1,350m), 소백산(죽령, 경북 영주시 풍기읍 1,440m), 태백산 유일사 코스(화방재, 강원도 태백시 1,567m) 등이 손꼽힌다. 이들 산은 1,000m 이상이지만 표고 차가 적어 산행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인기 명산[75위]
강원도를 영동과 영서로 가로지르는 대관령 능선에 있는 선자령은 고개라기보다 하나의 봉우리이다.
대관령은 겨울철에 영서 지방의 대륙 편서풍과 영동지방의 습기 많은 바닷바람이 부딪쳐서 우리나라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고 내린 눈이 세찬 바람에 잘 녹지 않기 때문에 태백산, 계방산, 백덕산과 함께 강원지역의 대표적인 겨울 눈 산행의 명소이다.
등산로도 완만하여 성급하게 눈 산행을 기대하고 12월부터 찾지만 1-2월에 눈 산행으로 집중적으로 찾는다. - 한국의 산하
한국의 주요 거점 봉우리 정상은 군부대, 통신시설, 기상관측 시설 등이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관악산, 화악산, 일월산, 오도산, 감악산, 팔공산, 무등산 등등. 해서 그런 봉우리는 그 옆의 봉우리를 인증 장소로 삼거나, 일정한 시기에 며칠만 개방하거나, 정상석까지 통로를 만들어 인증을 찍을 수 있게 한다. 많이 좋아진 거다. 현재 제일의 목표로 진행하고 있는 천고지 산 중 하나인 황병산 정상 또한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힘들게 올라가 봐야, 정상에서 인증 남기는 건 불가능하다. 해서 대부분 산꾼은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백두대간 위에 있는 소황병산에서 인증을 남긴다. 고로 대간 종주 팀을 따라 가면 자연스럽게 (소)황병산 인증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백두대간 연결 산행을 하기 전부터 이 구간 대간 산행 팀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앞선 산꾼의 산행기와 백두대간 구간 구분 지도 등을 보고 알고 있는 "선자령 구간" 남진의 들머리 진고개부터 날머리 대관령에 이르는 구간은 봉 감독이 적극적으로 추천해 한 번쯤 달려보고 싶었던 코스이기도 하다. 특히 겨울에! 다만, 27km가 넘는 거리임에도 두 구간으로 나눌 수 없어, 무박으로 진행하는 산행이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갈 수 있는 천고지가 몇 개 남지 않아 겨울이 아님에도 이번 "선자령 구간" 산행을 신청했다. 와중에 노인봉 삼거리에서부터 매봉까지는 오대산 국립공원 소금강지구로 통행 제한 구역이다. 해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안내산악회 산행 게시판에 들머리, 날머리, 코스 등 어떠한 정보도 없다. 고로 인증 남기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보여주기 위해 천고지를 오르는 게 아니기에, 인증은 중요하지 않으나, 어쨌든 최선을 다해 정상석(있다면) 사진이라도.
앞선 백두대간 연결 산행에서 언급했듯이, 그 구간 중에 있는 국립공원이나, 인기 100 산 등은 이미 다녀온 뒤라, 연결 산행을 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중복 구간이 발생한다. 이번 구간 또한 진고개에서 ‘안개자니골 갈림길’까지는 2019년 8월 24일[산행기]에, 대관령에서 선자령 왕복은 2020년 1월 19일[산행기]에 했다. 고로 초행 구간은 ‘안개자니골 갈림길’부터 선자령까지의 13.7km로 전체 27km의 절반 정도다. 바꿔 말하면 절반은 이미 다녀온 구간이다. 정상적인 내 산행 스타일이라면, 다시 가고 싶지 않아야 하나, 봉 감독의 추천도 있고, 진고개부터 대관령에 이르는 전체 구간을 한번에 달리고자 하는 욕망이 진작부터 있어 반복에 대한 짜증을 상쇄할 수 있었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산행 당일 선자령 부근은 날이 흐리고 체감 기온도 20도 내외라, 조망이 어떨지 약간 불안하기는 하나, 산행에는 괜찮은 날씨를 보여줄 거라 생각된다. 습도가 높은 게 약간 꺼림칙하지만. 물론 산행 시작 시각이라고 생각되는 새벽 4시경은 11도 내외라 약간 춥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그럼에도 평소 입고 다니는 복장이면 문제없을 거 같아 따로 뭘 챙기지는 않는다. 4시에 시작해 14시경에 산행이 끝날 거라 예상해 먹거리는 평소와 같이 들고 가서 9시경 아침을 먹고 점심은 대관령 식당가에서 하산주를 겸해 먹을 생각이다. 고로 배낭에 들어가는 먹거리나, 장비도 평소와 다를 바가 없으나, 만약에 대비해 500mL 생수는 한 병 더 들고 가기로 했다.
2 - 1
안내산악회 버스가 24시에 양재역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이기에 불광역에서 늦어도 23시 1분 열차를 타야 해 10시 45분에 집을 나섰다. 심야 시간이라 그런지 불광역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승차장 의자에 앉아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중년의 남성이 바지의 지퍼를 내리며 자판기 옆으로 가더니 쉬를 한다. 열차 시간은 급하고 쉬는 마렵고 해서 잘 보이는 않는 자판기 옆에다 일을 본 거 같은데, 국뽕 유튜버들 이 장면을 봤으면, 그들이 그렇게 욕하는 중국인보다 한국인 더 낫다는 소리는 하지 않을까? 아니면, 중국인이라고 우길까? 어쨌든 그가 막 일을 끝내자,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심야라 텅 빈 열차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 먹을 때 마신 수면제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똑바로 앉아,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봤다. 물론 이어폰을 끼고. 그리고 23시 41분에 양재역에 도착하자, 수면제의 영향인지, 쉬가 마려워 화장실에 들러 일을 보고 12번 출구로 나가니, 저 멀리 국립외교원 앞에 심야 버스로 각 산행지로 떠나는 십여 명의 등산객이 보였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아직 이른 시간이라, 누군가 주차해 놓은 전동 킥보드에 배낭을 내려놓고 짐칸에 실을 것과 버스에 가지고 탈 것을 구분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내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23시 56분에 처음 들어보는 "양각지맥" 버스를 선두로 24시 출발 버스가 속속 도착했다. "양각지맥?' 이러니 내가 "영주 대간"이라는 목적지를 보고 저건 어느 지맥이지 궁금해하며, 버스를 그냥 보내는 바람에 5월 8일 “늦은목이~고치령” 산행을 못 한 게 당연하다.
이 글을 쓰며 처음 들어보는 양각지맥이 궁금해 '남한산경도'와 구글링해보니, 2020년 11월 14일에 오른 양각산이 눈에 띄었다. 당시 신나게 달린 구간이 양각지맥이다. 해서 산행기를 찾아보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산행기를 보면 양각지맥 분기점이라는 표지를 찍은 사진도 있다.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다 보니, 웬만한 지맥에 다 한 다리씩 걸친 거 같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종주한 지맥은 없지만. 어쨌든 그 '양각지맥'으로 떠나는 버스를 선두로 속속 버스가 도착해 배낭과 보조 파우치를 들고 버스 앞창의 목적지를 유심히 살피며 뒤로 가다가 세 번째 버스 LED가 "대간41-46"이라고 빛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대간 산행은 기수와 구간 번호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절감하는 순간이다.
버스에 타, 자리에 앉으며, 앞 좌석의 주머니를 보니,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지도가 없다. 뭐 지도가 없다고 코스를 모르는 것도 아니라, 보조 파우치에서 슬리퍼를 꺼내 갈아 신고, 바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버스의 실내등이 들어와 실눈을 뜨고 상황을 확인하니, 휴게소다. 볼일은 이미 본 상태라, 무시하고 다시 잤다. 그리고 조금 후 소란스러워 다시 실눈을 뜨고 보니, 인솔 대장이 지도를 나눠주고 있었다. 무시할까 하다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몰라, 지도 한 장을 받아서 특이 사항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잤다. 그런데, 대장이 대낮 산행과 다름없이,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이번 산행의 코스와 주의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어이가 없는 순간이다. 다른 대장은 등산객이 충분히 잘 수 있도록 휴게소에서 1시간가량 쉰 후 출발하기도 하는데, 20분 휴식 후 바로 출발에 마이크를 잡고 설명까지.
비몽사몽 중에 대장이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 구간 산행에서 북진은 그런 일이 없는데, 남진은 세 곳에서 알바할 위험이 있으니 조심하라며 그 위치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지도에는 4시에 산행 시작으로 나와 11시간 후인 15시에 마감으로 나왔으나, 3시에 시작하니, 14시에 마감하겠다고. 그 설명을 듣는 사이에 완전히 잠이 깼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다시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3시가 아니라, 2시 반 진고개에 도착할 예정이니, 마감도 14시가 아니라, 13시 30분 즉 오후 1시 30분으로 30분 앞당긴다고 공지했다. 이미 잠은 다 깼고, 들머리 도착이 얼마 남지 않아, 등산화로 갈아 신고, 희양산 신이 달라고 해서 은티주막에 두고 온 숏 스패치 대용으로 이번 산행을 위해 산 스패츠를 착용했다. 그리고 기온이 낮다는 예보에 따라 바람막이는 입고 가기로 하고, 워머를 꺼내 목을 보호했다. 그렇게 산행 준비를 끝내자, 정확히 2시 27분에 진고개에 도착했다.
2 - 2
버스가 진고개에 도착할 때 창으로 밖을 보니, 우리보다 조금 앞선 버스가 등산객을 풀어놓고 있었다. 분명 내가 아는 안내산악회 중에는 이번에 동행한 산악회 외에는 이 구간 산행을 진행하는 산악회가 없었는데, 의외였다. 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 버스로 다가가 앞 유리창에 어떤 정보가 있나 살펴봤지만, 어떠한 것도 없었다. 이런 버스는 처음이다. 소속이 어딘지 궁금했으나, 알 방법이 없어, 아쉬운 가운데, 핸드폰의 등산 앱을 기동 후 스마트 워치를 등산으로 설정하고 다른 대간꾼을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산행 시작이 데크 계단이다, 그것도 차량 두 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이 계단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거로 봐서는 2019년 8월 이후에 만든 거 같기도 하고, 내 머리가 나쁜 걸 수도 있고.
새벽 2시 반에 시작한 산행이라, 랜턴 빛에 의지해 앞사람 발꿈치만 보고 간다. 와중에 애용하는 막대형 랜턴은 언제든지 쉽게 꺼낼 수 있도록 배낭 허리띠 주머니에 넣어 두는데, 버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며 보니, 혹시나, 짐칸이 어두울까 봐 주머니 속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버튼식 막대형 랜턴의 문제다. 잘 못 건드리면 동작하는, 누군가 배낭을 넣으며 랜턴을 건드린 거 같다. 어쨌든 그걸 발견한 순간 스위치를 껐다. 그리고 산행 시작할 때 동작시켰는데, 바로 꺼진다. 짐칸을 밝게 비추느라 배터리가 체력을 다했다. 죽은 자식 붙잡고 있어 봐야 의미가 없어, 바로 배낭에 넣고 혹시나 해서 들고 온 헤드 랜턴을 꺼냈다. 그 헤드 랜턴에 의지해 그저 앞만 보고 노인봉으로 향했다.
다시 데크 계단을 오르는 등 앞만 보고 달려, 3시 정각에 노인봉에서 2.4km 거리의 이정표에 도착했다. 그런데, 500m 단위로 거리와 속도를 음성으로 알려주는 핸드폰의 등산 앱이 어딘가 이상하다. 지는 500m를 왔다고 알려주는데, 500m치고는 너무 짧다. 말인즉 이정표와 비교해 상당히 멀리 왔다. 해서 스마트 워치의 거리를 확인해보니, 이정표와 어느 정도 부합한다. 당연히 등산 앱의 거리와는 다르다. 그런데, 등산 앱의 이 증상은 산행이 끝날 때까지 지속돼, 실제 거리보다, 6km가량이 더 긴 34.5km로 최종 마감했다. 같은 시간에 더 먼 거리를 왔으니, 당연히 산행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인 4.3km/h를 기록했다. 얘가 업그레이드하고 멍청이가 됐다. 어떻게 GPS 측정에 오류가 있을 수 있나?
등산 앱의 오류를 확인하기 위해 앱이 음성으로 알려주는 정보를 주의해 들으며 앞만 보고 달려 3시 35분에 노인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번 산행을 계획할 때는 그 좁은 정상에서 인증 남기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가뜩이나 어두운 새벽에 인증을 찍을 수 있다고 해도 인물 구분도 안 될 게 뻔해 노인봉 왕복 400m는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진고개에서부터 삼거리까지 대략 4km 정도를 한 시각밖에 걸리지 않아, 시간적 여유가 있어, 비록 인물 인증은 남기지 않더라도, 대간 연결 산행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노인봉을 다녀오기로 했다. 물론 다시 돌아와야 해서 배낭은 이정표 기둥에 올려두고 카메라와 핸드폰만 들고 갔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정상으로 향해 가는데, 정상 바로 아래에 한 무리의 등산객이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조금 앞섰던 버스 승객이다. 해서 플래카드의 내용을 읽어보니, "등산 이야기" 대간 종주 팀이다. 아래 주차장에서 품었던 궁금증이 해소되는 순간이다. 그들을 뒤로하고 바위를 오르느라 병목이 발생한 정상을 정규 코스가 아닌 암릉 코스로 먼저 올라가 분위기를 보니, 예상대로 인증을 찍기 위해 줄 서서 대기 중이다. 다행히 모든 랜턴이 정상석을 향하고 있어, 어두운 새벽이나, 인증을 남기는 데는 이상이 없었다. 나야 인물 인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물이 교체되는 순간을 노려 정상석 사진만 몇 장 찍고, 정상에서 내려왔다. 당연히 암릉을 올라오는 등산객을 피해 다른 코스로. 그런데, 내려가며 보니, 정상 바로 아래 바위에 누군가 십자가를 그려 놓았다. 예수쟁이? 그들은 붉은 십자가인데, 흰색 원에 검정 십자가인 걸 보면 아닌 거 같고. 그럼 누가? 항공 표지? 설마, 사격 표적은 아니겠지?!
여전히 기념 촬영에 정신이 없는 등산 이야기 팀을 뒤로하고 배낭이 기다리고 있는 노인봉 삼거리로 돌아갔다. 내가 배낭을 두고 갈 때만 해도 주인을 기다리는 배낭은 내 것이 유일했는데, 돌아와 보니, 몇 개 더 있다. 이정표 기둥에 올려놓았던 배낭을 내려 다시 둘러메고, 노인봉 대피소를 향해 달려갔다. 자고 일어나면 바로 화장실로 향하는 습관이 50년이 넘었는데, 버스에서 자고 아직 화장실을 가지 않아, 뱃속이 요동 치고 있어 화장실이 급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휴게소에 있는 화장실에 갔어야 했는데, 괜찮은 거 같아, 그냥 올라왔다가, 후회를 많이 했다. 대피소의 의자에 배낭을 벗어두고 화장실로 달려가 뱃속의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고 가벼운 기분으로 나와보니, 나보다 앞서 내려갔단 등야 팀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대간은 대피소 앞 출입 금지 경고문 뒤로 가야 하는데, 무턱대고 아래로 내려가서 대간이 아니라 소금강 가는 다른 팀인가 했었다.
목책 너머로 보이는 음지를 감상하고 있는데, 내려갔다가 돌아온 팀이 먼저 목책을 넘는다. 나도 그들을 따라 3시 55분에 목책을 넘어 음지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 소황병산까지 백두대간은 어두운 건 둘째고, 울창한 숲에 가린 능선이라,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저 앞만 보고 가야 한다. 다만, 안개자니골 갈림길을 찾기 위해 계곡 방향인 오른쪽을 유심히 보며 갔다. 뭐 찍을 것도, 볼 것도 없어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가, 안개자니골 갈림길을 지나쳤다는 걸 지도를 보고 알았다. 와중에 동해 쪽에서 여명이 밝아와 울창한 숲을 뚫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급경사가 나타나 헉헉대며 경사를 오르자, 앞에서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소황병산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더 가자, 제 기능을 상실한 윤형철조망이 나타났다. 그 너머가 소황병산이다.
4시 51분에 철조망을 넘어 소황병산으로 올라갔다. 그렇다고 양지는 아니다! 비록 음지의 세계이나, 광활한 목초지에 수십 명의 등산객이 퍼져서 끼리끼리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천고지 산 중 하나에 올라왔으니, 먼저 정상석이 있나 찾아봤다. 없다! 다만, 감시 초소와 CCTV가 있을 뿐. 이것들을 인증이라고 찍을까 하다가, 오른쪽을 보니, 산 정상에 마을이 보인다. 산행 시작 때부터 오른쪽 정상에 보이던 불빛으로 처음에는 등산객이 줄지어 가는 랜턴 빛이라 생각했는데, 갈수록 등산로에서 벗어나는 걸 보고, 혹시 마을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마을이라기에는 너무 높지만. 그 불빛의 정체를 소황병산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황병산 정상의 군부대다! 지도로 확인했지만, 저렇게 규모가 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비록 정상에서 인증을 남기지는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황병산에 갈 생각이었는데, 그 생각을 버렸다.
철조망을 넘어 도착한 곳이 소황병산 정상이라 생각하고 어떻게 인증을 남길까 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 앞에 작은 언덕이 있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보이는 언덕이라면 여기보다 높다는 얘기다. 그러면 혹시 저기가 소황병산 정상?! 해서 주변의 대간꾼에게 물어보니, 맞다. 저기가 소황병산 정상이다. 당연히 저 멀리 보이는 정상을 향해 가려고 보니, 어제 내린 비를 목초가 머금고 있어 잠깐 실수했다가는 하체는 금방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거 같았다. 그나마 다행은 비 때문이 아니라 오지라 착용한 숏 스패츠가 있다는 거. 그렇기는 하지만, 목초가 적은 차바퀴 자국을 따라 정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 있는 소황병산 표지! 아쉬운 게 있다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상이 아니라 정상 아래 9부 능선에 있다는 거.
해서 정상으로 올라가 반대편을 보니, 상상도 못 했던 텐트가 있다. 분명 여기 출입 금지 구역 아닌가? 그런데 야영? 우리야 요원을 피해 재빨리 인증만 남기고 도망가는데 텐트 치고 야영한다고? 그런데 주변에 보이는 경치를 보면, 나도 체력만 되면 야영하고 싶은 장소다! 먼저 주변의 절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배낭을 물을 머금은 목초 위에 놓고, 그 위에 카메라를 둔 다음 타이머를 이용해 군부대가 정상을 차지한 황병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나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등산객이 정상으로 올라왔다. 당연히 둘이 상부상조하여 황병산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고 정상을 떠나, 다시 소황병산 표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인증을 찍고 있던 등산객에게 부탁해 표지를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고 목초지를 가로질러 대간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절경에 감탄하며, 소황병산 정상에서 대간으로 돌아가는 길의 목초지는 오래된 차바퀴 자국이 있으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벌써 무릎 아래는 물에 푹 담근 것과 다름없었다. 그나마 다행은 아직 등산화에는 물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거. 대간으로 돌아오자 앞서가던 등산객 두 명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게 보였다. 출입 금지 경고문과 목책 때문에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다가 난 그냥 목책을 넘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두 여성은 목책이 벌어진 틈을 발견해 그 사이로 들어왔다. 랜턴은 소황병산 깔딱을 만났을 때 필요가 없어 배낭에 넣고 이후 해가 뜰 때까지 여명에 의지해 길을 찾았다. 그런데, 이 대간 길은 지금까지와는 아주 달랐다.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해서 다른 길이 있나 주변 여기저기를 쑤시고 돌아다녀 봤지만, 길다운 건 찾지 못해 다시 돌아와 그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렇게 거의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자 저 앞으로 목책이 보였다. 아까 넘었던 목책이 여기까지 이어진 거다. 그리고 그 목책 너머에서 인솔 대장을 만났다. 대장이 이르기를 본인이 얘기했던 3곳의 알바 장소 중 하나가 위의 목책이었다고, 목책을 넘지 말고 그걸 따라가라고 했는데, 왜 넘었냐고 뭐라고 한다. 그런데, 길 상태는 목책을 따라가는 게 좋을지 몰라도, 대간은 우리가 따라 내려온 길이 맞아 보인다. 어쨌든 거의 달리다시피 하는 인솔 대장과 대간꾼을 따라 매봉으로 향해, 다시 목책과 윤형철조망을 만났다. 그 너머로 보이는 광활한 목초지! 가끔 가랑비가 흩날리는 가운데, 등산화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며 그들을 따라 매봉으로 갔다.
매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등산객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였는지, 길에 있는 모든 풀이 물에 흠뻑 젖어 있다. 사실 등산 이야기 대간 종주 팀이 우리에 앞서가며 싹쓸이해주기를 바랐는데,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물론 이번에 같이 온 팀 대부분을 먼저 보낸 이유도. 그런데 매봉 기슭에 누구로부터 보호하는지 모르겠는데, 온통 대나무로 만든 보호 틀에 갇힌 무언가가 있었다. 뭔가하고 틀 내부를 보니, 침엽수라는 건 알겠는데, 수종은 모를 어린나무가 있다. 굳이 수종을 알 이유도 없어, 수고하는 구나 생각하고 정상을 향해 가는데, 저 위에서 녹음된 아리따운 목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CCTV와 센서, 스피커다. 목적은 비탐구간에 들어가는 걸 경고하는 거다. 그럼 나는 비탐구간에 탐방구간으로 넘어가는 거니, 경고 대상이 아닌가? 어쨌든 6시 24분에 음지 생활을 끝내고, 요원의 전향 환영사를 들으며 양지의 세계로 들어섰다. 역시 음지보다는 양지가 좋다.
비탐구간인 노인봉 삼거리에서 매봉 CCTV 구간을 지났으니, 이제부터는 국립공원을 벗어나, 산림청 구간이다. 여기서 대관령까지는 비탐은 아니나, 그 중간에 삼양목장이라는 사유지가 있다. 미국이라면 사유지 침입으로 총을 맞아도 할 말이 없는. 쫓겨 다닐 일 없는 양지의 세계로 전향해 목책을 따라 위로 올라가며 보니, 목책 주변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몇 사람이 있었다. 그들이 앉아 있는 주변을 보니, 물을 머금은 풀이 없는 유일한 마른 공간이라, 이만한 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아침을 먹었다. 애초 계획은 9시경 먹는 거였으나, 환경이 6시 27분에 먹게 강요했다. 물론 이른 새벽 화장실을 다녀와 배가 무척 고프기도 했고. 대략 3분 만에 간단히 아침을 먹고, 모든 인적을 인멸하고 다시 목책을 넘어 매봉 정상으로 향했다.
매봉 정상 아래 아직 꽃을 피우고 있는 함박꽃을 사진으로 남기며 올라가, 능선 갈림길에 도착했다. 국립공원이 아니니, 이정표가 있을 리 없는데, 형세 상 좌가 매봉 정상이다. 그럼 우는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 아리송했다. 와중에 나를 앞질러 갔던 건강한 체격의 6명의 “등야” 회원이 오른쪽에서 오고 있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알바하고 돌아오는 거 같은. 해서 나도 매봉 정상이라 생각되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위로 가자, 정상이 멀지 않았는지, 엄청나게 소란스럽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노년의 등산객이 내려오며 '별거 없어!'라고 얘기한다. 별것이 있든 없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다시 내려온다는 건 아까 등야 회원이 왔던 길이 대간이라는 거다. 고로 삼거리에서 매봉을 왕복하고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해서 돌다리도 두들기라고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 그 노년의 등산객에게 물었다. 역시 생각대로다. 뭐 별거 없다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정상은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계속 올라가니, 좁은 정상에 20여 명의 '등산 이야기' 회원이 사진을 찍느라, 발 디딜 틈이 없다. 해서 누군가 바위에 "매봉"이라 쓴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매봉이 중요한 이유의 첫째는 여기까지가 국립공원 구역으로 비 탐방 구간이라는 것과 진고개에서 대관령까지의 전체 구간의 대략 중간 정도 위치라는 거다. 총 27km가 조금 넘는 거리에서 14km 정도를 왔다. 이제는 매봉에서 하산해야 하는데, 앞에 또 윤형철조망이 나타났다. 분위기로 봐서는 산림청이나, 국립공원이 아니라 사유지라는 의미에서 삼양목장에서 설치한 거로 보였다. 물론 대간꾼들이 밟고 다녀 원래 기능을 상실했다. 그 철조망을 넘어가자 많이 보던 리본이 보였다. 그리고 급경사를 내려가자 이상한 소음이 들리더니, 눈앞에 광활한 목초지에 우뚝 선 거대한 바람개비가 나타났다. 삼양목장 내로 들어왔다. 이 상황에 대해 인솔 대장은 혹시 관리자가 뭐라고 하면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지나가라고 했었다. 그런데 대간은 저 아래로 보이는 임도와 나란히 달리고 있는데, 문제는 저 임도까지 가기 위해서는 이 넓은 목초지를 지나는 건 아무런 도구 없이 넓은 개울을 건너는 것과 다름없다.
인솔 대장은 임도를 따라가라고 했지만, 엄연히 백두대간은 임도에서 조금 올라간 능선에 있었다. 대간꾼이 거의 다니지 않았는지, 희미하나 길의 흔적은 있었다. 해서 이왕 백두대간 종주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임도를 버리고 그 길을 따라 500여 미터를 가자, 저 아래에서 임도와 합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 하체는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가 됐다. 물론 등산화 내도 물이 가득 차 불편하기 그지없어, 대간이고 뭐고 더 이상 목초지로 갈 생각이 싹 사라져 대장이 시키는 대로 임도로 남진하기로 했다. 해서 임도와 만나는 곳에 도착해 입간판을 보니, 사유지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었다. 국립공원은 과태료 30만원인데, 여기는 벌금 500만원이다!
임도? 아니 거대한 바람개비 관리 도로? 목초지 관리 도로, 뭐든 백두대간을 따라 난 도로라 기복이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햇볕이 좋아 임도를 따라가는 동안 옷이 다 마른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문제는 등산화 내부였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없어 그냥 질퍽거리며 대관령까지 가기로 했다. 잠깐 버스에 슬리퍼를 두고 온 걸 후회하기는 했지만. 저 멀리 황병산 정상의 군부대를 감상하며 임도를 따라 남진해 7시 28분에 동해 전망대에 도착했다. 처음 전망대에 관해 들었을 때 목적이 뭔지 궁금했는데, 도착해서 보니, 일반인을 위한 게 아니라, 삼양목장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다. 그것도 일출 관람용! 전망대에 올라가 먼저 바람막이를 벗어 배낭에 넣고, 얼음물을 꺼내 한잔한 후 동해 방향과 반대 방향의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동해 전망대를 떠나, 7시 34분에 셔틀버스 정류장을 지나, 7시 36분에 바람의 언덕 갈림길에서 어디로 갈까 잠깐 고민하다가 임도를 따라 계속 가, 7시 41분에 바람의 언덕 반대편 길과 합류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여기가 대장이 알바할 위험이 있다고 했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장소다. 임도 갈림길로 큰 임도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고 좌회전하는 임도에는 출입 금지 경고문이 붙어있다. 대간은 그 출입금지 임도 위다. 당연히 백두대간 위로 난 기복이 심한 임도를 따라 갈림길에서 20여 분을 가자 등산 앱이 봉우리 정상에 도착했다고 음성으로 알려주는데, 어디에도 봉우리는 없다. 그 정상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하며 임도 정상에 도착하자 오른쪽에 바위가 있다. 저게 정상이다. 해발 1,131m의 곤신봉이다. 남은 건 선자령과 새봉이다!
곤신봉에서 아래를 보니, 임도는 한참을 내려갔다가 구름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 구름에 가린 게 선자령으로 임도의 오르내림만 봐도, 마지막 고비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곤신봉을 떠나 급경사의 임도로 1.5km가량 가자 차단봉이 임도를 가로막고 있었다. 삼양목장의 끝을 알리는 차단봉이 아닐까 생각됐다. 차단봉에 가까이 접근해 보니, 차단봉 옆 공간에는 윤형철조망을 설치해 옆으로 사람이 들어올 수 없도록 했다. 그걸 보고 아니, 차단봉 밑으로 기어 다녀도 되는데 굳이 윤형철조망을 설치한 사람들. 그리고 꺾일 수는 있지만, 굽힐 수는 없다는 패기로 밑으로 기어 다니기보다는 윤형철조망을 짓밟고 다니 대간꾼 중 대간꾼에게 박수를 보내고 삼양목장을 떠났다. 다시 올 일이 있으려나?
삼양목장의 차단봉을 떠난 지 17분 만에 선자령 갈림길에 도착했다. 임도로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이번 산행 최고로 힘들었던 거 같다. 이 갈림길은 2020년 1월 등산방 정기 산행 때 선자령에서 내려와 계곡을 따라 대관령으로 갔던 길로 이미 한번 거쳤던 길이라[산행기], 대간 연결만 놓고 보면 어디로 가든 무관했다. 그래도 제대로 된 선자령 사진 한 장 없다는 생각이 들어 방향을 틀어 선자령으로 올라갔다. 비록 새봉이 남아 있으나, 사실상 이번 산행의 마지막 깔딱을 올라가는 거라 쉽지 않았다. 가다 쉬기를 반복하며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올라, 8시 51분에 선자령 바로 아래 전망대에 도착해 지금까지 달려온 백두대간을 감상했다. 그리고 200여 미터를 가자 선자령이다. 그런데 내가 알고 선자령과 달라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다. 2020년 당시에는 강한 바람과 눈, 엄청난 숫자의 관광객, 등산객 때문에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선자령의 전체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기도 쉽지 않아, 그저 꽤 넓은 고개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아니다!
선자령 정상석 앞에서는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서너 명의 대간꾼이 인증을 찍고 있어, 재빨리 그들 카메라의 사각지대인 정상석 뒤로 가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정면으로 돌아 나와 막 도착한 대간꾼과 상부상조해 인증을 남겼다. 백두대간 표지석을 배경으로 단독 인증을 남긴 건 처음인 거 같다. 그렇게 인증을 남기고 선자령을 떠나 대관령으로 향했다. 대관령까지 남은 거리는 4.4km, 멍충이가 된 등산 앱이 인정하는 속도면 한 시간 거리다. 사실 지금부터 대관령까지는 탄탄대로의 하산 길이라, 멍충이가 된 등산 앱이 아니라도,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현재 시각이 9시가 조금 안 됐다. 10시에 대관령 도착은 문제가 많다. 1시 반까지, 3시간 30분 동안 할 일이 없다. 해서 10시 30분에 혼술 하산주 할 식당에 도착하는 거로 목표를 정해 선자령에서 출발했다.
삼양목장 구간에서는 쨍쨍한 햇볕이라, 다소 덥기까지 했는데, 선자령을 떠나려는 순간, 비구름인지 안개인지가 몰려와 20여 미터 전방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안개 속을 뚫고 내려가는데 광활한 목초지의 거대한 바람개비 사이로 원색의 텐트 몇 동이 설치된 게 보였다. 전체적인 풍경이 한국적이라고는 보이지 않아 그걸 사진으로 남겼다. 하긴 요즘 대한민국은 어디를 가도 거대한 바람개비고, 그 아래에는 텐트가 있지만. 그런데 바람개비가 돌든 안 돌든 끊임없이 들리는 소음을 참고 텐트를 친 그 패기에 감탄했다. 텐트촌을 지나, 10여 분을 내려가자 저 멀리 안개 사이로 하얀 구조물이 보인다. 대관령 기념탑이다. 전면의 새봉을 보며 저거야말로 마지막 봉우리로 꽤 힘들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정상을 향해갔는데, 등산로는 정상을 우회하고 있었다. 2020년에도 그랬나?
9시 31분에 대관령 갈림길에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도 대관령이다. 정규코스는 약간 오른쪽으로 휘고, 그보다 100m 짧은 코스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당연히 정규코스로 갔는데, 그 길은 고속도로라고 불러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은 정도였다. 사실 그래서 한 시간 정도면 대관령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던 거고. 그리고 다시 삼거리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도 선자령이다. 좀 전의 삼거리가 여기서 합류하는 거다. 침엽수림의 숲 사이로 난 고속도로 수준의 등산로를 따라가며 동영상을 찍기도 하며 전진해 9시 47분에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났다. 다 왔다. 전면에 보이는 능경봉을 감상하며 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갈림길이 나타났다.
직진하면 비포장 등산로고, 좌회전하면 포장도로로 성황사로 간다. 2020년에는 성황사에서 올라왔고, 직진하는 등산로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당연히 직진하는 게 백두대간이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그보다 앞서 9시 54분에 국사 성황사로 내려가는 사거리에서 성황사 방향으로 10여 미터 내려갔다가 이왕 하는 백두대간 연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다시 올라온 게 신의 한 수라는 걸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 지금까지와 같은 수준의 등산로를 따라 대관령으로 향해 갔는데, 그 끝에 처음 보는 대관령 소개문이 서 있었다. 그걸 보자 제대로 대간 연결을 했다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대단히 좋았다.
그 소개문이 서 있는 곳에서 등산로는 계단으로 아래로 향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소개문에서 직진하는 게 맞다(지도의 붉은 선). 분위기로 봐서는 직진하면 현재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군부대다. 해서 아래로 방향을 튼 거 같다. 그 계단으로 내려가자 다시 성황사로 향하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났다. 사실 산행은 이 순간에 끝났지만, 그래도 대관령 표지석에는 다녀와야 할 거 같아 도로를 건너 대관령 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10시 16분에 도착해 표지석과 동해안의 강릉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거로 150번째 천고지 산행이자, 아홉 번째 백두대간 연결 산행인 진고개에서 (소)황병산을 거쳐 대관령까지 달린 산행은 끝났다. 그 시각이 10시 17분이다.
3
이제는 식당을 찾는 게 급선무다. 과거 산행 때 휴게소에서 식당을 많이 본 거 같아 별걱정 없이 휴게소로 향했다. 휴게소에는 관광버스를 비롯한 많은 차량이 주차해 있었는데, 주차요금을 받고 있었다. 그럼 휴게소라 불러도 되나? 어쨌든 옷은 다 말랐으나, 질퍽거리는 등산화를 그대로 신고, 배낭을 둘러멘 채 식당으로 가기 위해 휴게소에서 식당을 찾았는데, 생각과는 달라 약간 당황했다. 그 와중에 없을 거로 생각했던 산악회 버스가 주차해 있는 걸 보고, 배낭을 벗어 짐칸에 싣고 차에 타서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양말을 비닐봉지에 넣고, 버스에서 내려 식당으로 가며 주차해 있는 버스를 보니, 멀리 광주광역시에서 온 차를 비롯해 7대가량 있었다.
휴게소 건물에는 군것질거리는 많이 있었으나, 식당이라고는 황태전문점과 국수전문점 단 두 개뿐이었다. 해서 지도 앱으로 주변의 맛집까지도 아닌 식당을 찾아보니, 5km 이상 내려가야 했다. 남는 게 시간이라 택시를 불러타고 갔다 올까 하다가, 그냥 황태에 만족하기로 하고 식당으로 들어가 메뉴를 보니, 그나마 황태구이가 안주로 적당했다. 그리고 주방 밖에 있는 냉장고에 어떤 술이 있나 스캔했는데, 이슬이다. 그리고 국수 전문점으로 가 안줏거리가 뭐가 있는지 보니, 감자전이 있는데, 결정적으로 냉장고에서 빨갱이를 발견했다. 대관령 휴게소 식당에서 빨갱이를 발견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그러면 여기서 해결해야 하는데, 감자전과 빨갱이는 어울리지 않아, 먼저, 황태식당으로 가 구이를 주문하고 얼마나 걸리는지 물으니 15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다시 국수 식당으로 와서 장칼국수와 빨갱이를 주문했다. 그리고 셀프인 밑반찬과 빨갱이를 챙겨 옆에 있는 황태식당으로 갔다. 국수 식당 주인장의 장칼국수가 준비되면 가져다주겠다는 말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먼저 겉절이와 마늘장아찌로 빨갱이를 홀짝이고 있는데, 국숫집 주인장이 장칼국수를 들고 와 그걸 안주로 빨갱이를 마셨다. 그리고 조금 있자, 황태구이도 나왔다. 예상대로 정식이다. 난 밥까지 필요 없는데. 주 안주가 나와 본격적으로 빨갱이 혼술을 즐기고 있는데, 속속 등산객이 도착해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인솔 대장은 나를 보자 놀라는 눈치다. 그렇게 빨갱이 한 병을 비우고 다시 국숫집으로 가 현금을 주고 빨갱이 한 병을 냉장고에서 꺼내자, 주인장이 빨갱이 때문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수긍하는 분위기다. 이 주인장이 술에 대해 안다. 그러니 빨갱이를 준비했겠지. 그렇게 빨갱이 두 병과 장칼국수, 황태구이 정식을 깨끗이 비우고 12시가 조금 넘어 식당을 나왔다.
식당을 나와 화장실로 가 깨끗이 씻고 가져간 양말도 빨았다. 그리고 버스로 돌아가 흠뻑 젖은 등산화를 들고나와 버스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등산화를 말렸다. 물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일찍 술자리를 마친 사람들이 광합성 하듯이 주차장 턱에 일렬로 앉아 등산화를 말리며 이번 산행을 비롯해 다양한 산행과 안내산악회의 문제점 등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 중간에 버스 기사와 인솔 대장도 합류했다. 대장이 내게 물은 첫 질문이 천고지 산행은 잘 돼가는가였다. 내가 언제 얘기했는지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홍도인가? 그런데 대간 전문 팀답게 모든 대간꾼이 일찍 도착해 예정보다 빠른 1시 5분경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1시경 출발이니, 최소한 5시에는 집에 도착할 거라는 통보를 와이프에게 하고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버스가 고속도로에 주차해 있고, 차가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고속도로에 이상이 생겼다. 한참 지나 차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홀랑 타버린 버스를 지나갔다. 아니 무슨 사고면 버스가 홀랑 탔나? 이 글을 쓰며 구글링해보니, 영상이 있다. 덕분에 지체돼 4시에 여주 휴게소에 도착해 10분 휴식 후 다시 출발해 4시 52분에 양재역에 도착했다. 서둘러 집으로 가려는 데 인솔 대장의 한잔하자는 말에 인솔 대장, 이번 산행 내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산꾼, 나 이렇게 셋이 소머리국밥집에서 국밥을 안주로 이슬이를 마셨다. 인솔 대장이 먼저 집으로 돌아간 후 둘이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영문과 84다! 그렇게 둘이 소주 3병을 마시고 헤어져 집에 도착한 시각이 8시 40분이다. 그럼 대략 2시간 반 정도 마셨다는 얘긴데!
안내산악회 대간 종주 팀의 계획에 따라 '진고개 → 노인봉 → 노인봉 대피소 → (CCTV) → 안개자니골 갈림길 → 소황병산(초소·CCTV) → 계곡(샘터) → 매봉(CCTV) → 동해전망대 → 곤신봉 → 나즈목이 → 선자령 → 새봉 → 새봉전망대 → 대관령'의 28.32km(스마트 워치), 7시간 59분의 백두대간 연결 산행이었다. 이동 7시간 55분, 휴식 4분!
※ 업그레이드로 트랭글을 멍청이로 만드는 바람에 거리 측정에 오류가 심해, 거리 데이터는 신뢰할 수 없으나, 시간과 트랙은 정확하다.
이번 진고개~대관령 구간 산행으로 백두대간 두로봉부터 백복령까지 잇는데, 성공했다.
무박 산행이었음에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해 무박의 공포를 벗어나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구간이다.
황병산 정상을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더라도, 오를 생각이었으나, 멀리서 정상의 모습을 보고 그 생각을 버렸다.
이 구간은 눈 내린 겨울에 다시 한번 도전할 생각이다. 물론 이번 같은 속도가 나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