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총알 같다.
내 자녀들이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고 둘 다 떠났다.
집에는 부부 둘만 남았다.
큰 애의 방도 썰렁하고, 작은 애의 방도 퀭하다.
애들이 떠난 이후로 난방도 넣지 않고 창문도 자주 열지 않기 때문에 그런지 더욱 을씨년스럽고 쓸쓸하다.
주인이 떠난 빈 방.
애들이 쓰던 책상과 책꽂이, 옷장과 온갖 물건들은 제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는데 정작 사람이 없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여 얘네들도 처량했다.
며칠 전.
퇴근 후 옷을 갈아 입고 불꺼진 애들 방에 들어가 보았다.
녀석들의 체취가 그리웠나 보다.
불을 켜고 온갖 사물들을 지긋한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그날따라 유달리 아이들 책꽂이에 시선이 머물렀다.
오래된 '독후감' 황화일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여느 땐 잘 보이지 않던 놈들인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눈에 확 띄었다.
딸 방에도 하나, 아들 방에도 하나씩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꽂혀 있었다.
각각의 방에서 이 놈들을 꺼내 거실로 나왔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하게 놓고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애들이 초등학생 때, 몇 년 간 '독서 토론회'를 진행했었다.
내가 강사였고 내 자녀들이 학생이었다.
어쩌다 한번씩 옆 단지에 살던 조카 녀석들이 참석하기도 했었다.
그때 일 주에 한 권씩 독서와 독후감 쓰기를 통해 만들어진 귀한 자료였다.
아주 오래된 독후감 묶음이라 더욱 정감이 갔다.
오랜 세월 동안 잊고 지냈는데 이 황화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간 뭉클한 뭔가가 뭉근하게 치밀어 올라왔다.
아빠와 두 자녀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들었던, 아주 오래된 육필 원고여서 남다른 감회가 일었다.
신언서판.
(身言書判)
우리의 선조들은 한 사람의 인간 됨됨이를 평가하실 때 이 '신언서판'을 중심축으로 삼으셨다.
'신언서판'은 그 사람의 신수, 말씨, 문필, 생각과 판단력 즉 그 사람의 '가치관'을 알 수 있는 평가의 틀이자 판단의 준거였다.
이 네가지 덕목은 부모와 스승이 자식과 제자를 양육할 때 항상 염두에 두었던 기본 지침이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았던 양육과 교육의 출발점이자 근간이었다.
내 딸과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이 개념과 태도를 제대로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래서 수 년 간 '책 읽기'와 '독후감 쓰기'를 진행했다.
강제로 시켰으면 오래 가지 못했을 것이다.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런 속성과 이치를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즐겁고 유쾌하게 진행하고자 노력했다.
분위기 조성과 시간 준수는 가족 독서토론회(이하,독토회)의 선생인 나의 몫이었다.
한 주에 한 권씩 자신들이 선택한 책을 읽었다.
독서 후엔 스스로 직접 글을 쓰고(최소 A4용지 2장 분량) '독토회' 시간에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느낀 점, 교훈, 배울 점 등을 자신의 생활에 조금씩 조금씩 적용해 나가는 긴 여정이었다.
어려서부터 학원을 전전케 하는 방식으로 내 자녀들을 양육하긴 싫었다.
결단코 그런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수가 가는 외로운 길일지라도 우리는 우리만의 독특한 교육방식과 철학으로 양육하고 싶었다.
그런 원칙의 일환으로 여행과 경험, 토론과 공감, 책 읽기와 글쓰기에 방점을 찍고자 매번 진중한 노력을 경주했다.
아빠와 함께 하는 매주 수요일 밤의 '가족 독토회'.
1-2년 했다고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올 리 없었다.
바라지도 않았다.
교육은 그런 게 아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몸에 밸 때까지,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정립하고 조리있게 발표하는 것이 밥을 먹는 것처럼 익숙해 질 때까지, 절대로 서두르지 않되 중단하지도 않은 채 진득하게 인도했고 오래오래 격려했다.
애들이 어느 날 '신언서판'의 개념을 완벽하게 깨우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부모에게도 평생의 과업이자 훈련인데 어린 애들이 이 개념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다만 몸가짐, 말씨, 문필, 논리와 사고력 등이 애들의 몸과 영혼에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내공은 진득함과 오랜 수행에서 나오는 법이다.
니는 이 원칙과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수 년 간 이어진 우리 가족 '독토회'의 핵심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특히, 다양한 분야에 대해 '왕성한 호기심'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경험과 독서를 통해 얻어진 느낌과 감동 그리고 배움들을 <제대로 써보기>와 <바르게 말하기>에 주안점을 두고 진행했다.
그러기 위해선 적재적소의 단어와 문장, 균형잡힌 문맥과 글의 고저장단에 대해서도 가끔씩 언급해 주었다.
'지적질'이 아니라 칭찬 섞인 부드러운 '조언'으로 일관했다.
'바르게 말하기'와 '제대로 써보기'가 어찌 하루 아침에 완성될 수 있는 영역이던가?
어른들은 잘 안다.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을.
말로는 뭔들 못하겠는가.
하지만 막상 자신이 말한 바와 생각한 바를 글로 표현할 땐 그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란 것을 어른들은 잘 알고 있다.
지금 당장은 표출되지 않지만 수많은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세상의 중심세대가 되었을 때, 몸에 밴 身言書判이 얼마나 중요한 인격이자 능력이며 자산인 지를 깨닫게 될 것으로 믿는다.
최소 30년 이상은 걸릴 터였다.
그렇게 몇 년 간 톡토회를 성실하게 이끌었다.
회사일이나 외부 스케줄이 아무리 바쁠지라도 모든 일에 우선하여 '가족 독토회' 시간을 준수했다.
그것은 내 자신 그리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내 아이들과의 단단한 약속이었다.
그런 약속의 이행 덕분에 애들도 성실하게 잘 따라주었다.
애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독토회'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생활도 과제도 너무 빡빡하게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었다.
이 빛바랜 활화일 속에는 애들이 연필로 썼던 삐틀빼틀한 글씨들이 빼곡했다.
"이런 문맥과 흐름에선 이런 단어나 문장이 더 어울리지 않겠니?"
나의 조언에 애들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지우개로 박박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고쳐 쓴 흔적들이 많았다.
오래 전 애들이 쓴 글을 읽다 보니 자꾸만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느 땐 독서와 독후감이 아니라 아빠가 제시한 '주제어' 하나를 놓고 꼬박 2시간 동안 각자의 논리를 총 동원해 작문에 집중했던 적도 많았다.
과거의 자료들은 그 수준이 훌륭하든 허접하든 그 존재 자체로 가치있고 소중한 우리 가족의 역사요 선물이며 스토리텔링이었다.
밤이 깊을 때까지 두 녀석들의 다양한 글들을 순차적으로 읽어보았다.
어떤 내용은 유치했고 어떤 글은 초등학생 치고는 매우 세련되고 쫄깃한 맛이 났다.
즐겁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대학생이 된 두 녀석들.
뛰어난 능력이나 특출난 스펙이 아니어도 좋다.
일생 동안 균형잡힌 身言書判을 위해 더욱 정진해 줄 것을 기도하고 있다.
잠간 왔다 떠나는 지구별 여정이다.
앞으로도 진중한 노력을 통해, 자신이 찍고 간 발자국에서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그런 멋진 삶을 엮어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가능한 한 호흡을 길게 갖고 더 큰 틀에서 사고하며 담대하게 행동하는 미더운 청춘이 되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주인 없는 빈 방.
낡은 두 권의 황화일을 새삼스럽게 일독해 보았다.
아주 오래 전에 함께 웃고 조잘대며 깔깔거렸던 그때가 참으로 아름답고 감사한 시간이었음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책을 읽고, 독후감 쓰고, 쉼없이 토론했던 일들이 그 자체로 귀한 배움이요 사랑이었음을 고백한다.
청년들의 앞길에 주님의 은총이 늘 임재하시길.
GOD BLESS YOU !!
2012년 3월 30일.
아이들의 삐틀빼틀한 글을 읽고,
그리운 마음을 담아 심야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