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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여정기(南方旅程記)
온 대지는 흰 눈에 갇혀 설원을 이루고 설원위로 몰아치는 강추위는 사그러들 줄 몰라 사람까지 얼려버릴 기세다.
이 동토를 피해 잠시나마 남방의 더위를 한껏, 몸에 치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꿈같은 일일까?
남태평양의 따스한 물결이 넘실거리며 적도의 태양은 머리위에서 이글거리고 야자수그늘이 어우러지는 그런 곳에서 겨우내 몸속에 스며든 살얼음이나 빼고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같은 일, 그림속의 풍경 같지만 우리는 그런 세상으로 간다.
1월14일 오후3시, 우리를 낙원으로 인도할 15인승 미니버스가 눈과 얼음에 뒤 덮힌, 마을의 길을 뚫고 우리를 태우러 왔다.
동갑내기 친구들 세 가족, 여덟 명이 버스에 오르며 먼 남방 여행은 시작되었다.
수원에서 한 가족, 네 명을 더 태우고 우리 열두 명을 태운 미니버스는 인천공항을 향해 달려 나갔다.
8시50분 비행기라 여유를 두고 출발을 했는데 공항으로 가는 길거리엔 차들이 널 부러져 예상치 못하게 시간이 지연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출국 한 시간여를 남겨두고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을 해서 서두르지 않고 출국수속을 할 수 있었다.
면세구역에서 눈 쇼핑을 끝내고 탑승구 대기실로 와서 비행기의 탑승을 기다리니 드디어 떠난다는 실감이 든다. 우리 가족은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이다. 아내와 막내 홍구도 들뜬 기분이 역력했다.
20여 년 전,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의 동갑나기 친구들 끼리 모은 모임이 오늘의 결실을 이루어 냈다. 같이 갈 수 있는 친구들도 더 있었지만 이 곳 까지 네 가족만이 흘러왔다.
탑승을 알리는 방송소리,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온갖 의 인종들이 뒤섞여 탑승구를 헤쳐 들어간다.
예정 출발 시간을 조금 넘겨 비행기는 활주로로 옮겨지고 잠시 후, 어둠속을 질주한 비행기는 이내 육중한 대지를 박차고 창밖으로 보이는 잠깐의 야경을 끝으로 거대한 어둠속으로 빨려들었다. 잠깐 사이 앞에 보이는 스크린에는 시속 7백Km에서8백Km사이를 오가고 고도는 8천Km를 넘어섰다는 자막이 보인다.
앞에 보이는 것은 숫자일 뿐, 나에겐 속도의 감각도 고도의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 가보는 남방의 그림만이 머릿속에 무성하게 자리하고 벌써부터 모든 것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이런 상태로 다섯 시간을 비행해야 태국의 방콕이라니 어림잡아 만리길이다. 우리들이 쉬지 않고 걸어가도 3~4년은 족히 걸려야할 거리를 이 거대한 비행기가 다섯 시간 만에 해결해 주니 우리는 참 좋은 세상에 와있다.
서울과 방콕은 두 시간의 시차가 있다고 한다. 서울이 두 시간 일찍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다.
비행기가 시간을 만들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고, 태양을 앞질러 가기도 하고 뒷걸음 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갈 때는 시간을 벌었다가 올 때는 다시 반납하는 세상, 참 희한한 세상이다.
이런 저런 생각도 잠시, 비행기는 곧 방콕의 스왓나품국제공항에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1시20분 태국시간으로 11시20분에 비행기는 예정대로 방콕의 스왓나품 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수속을 밟으니 드디어 태국에 왔다는 것이 실감나게 다가 왔다. 길게 늘어선 줄과는 상관없다는 듯, 밤새 입국수속을 할 것 같은 그들의 느려터진 행동은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온 우리들을 대단히 짜증나게 하였다.
서서히 태국이 우리들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임마! 대한민국에선 이런 인간들 처리하는 건 5분도 안걸려.”
라는 말이 입안에서 저절로 맴돌았다
입국수속을 어렵게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와 버스 승차장에 이르니 늦은 밤인데도 식지 않은 남방의 열기가 온 몸으로 덤벼들고 코끗을 스치는 야릇한 태국냄새, 어둠속에 무성하게 정렬된 회색빛의 고가차도가 이국의 낯선 풍경으로 다가왔다.
현지의 우리교포 남성안내원와 현지여성안내원의 안내로 우리는 그들이 안내하는 버스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버스로 밖에서 보면 2층버스인데 1층에는 화물을 싣는 칸인지, 운전석과 조수석만 1층에 있고 2층은 다락방 같은 계단을 타고 오르면 좌석이 정렬되어 있었다. 좌석이 높은 망루에 있는 것 같아서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어콘의 성능도 훌륭했는데 또 버스안에서도 태국의 이상야릇한 향기가 난다.
우리들을 태운 버스는 어두운 방콕시내의 고가차도와 시내 도로를 번갈아 바꾸어 30여분을 달려 시내의 한 호텔로 안내를 하였다.
밤인데도 호텔 입구에 그랜드 타워 인 호텔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시간은 현지시간으로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안내원에게 호텔방을 배정받고 난 다음 한방에 모여서 간단하게 소주 몇 병을 삼키고 이번여행이 아무 사고 없고 즐거운 여행이 되자고 다짐을 하며 태국에서의 첫 날의 여정을 마무리 지었다.
안내원과의 미팅시간이 늦을세라 모닝콜 소리에 깊은 잠을 떨어버리고 세면도 하는둥 마는둥, 호텔 2층에 마련된 아침식사 장소로 향했다.
음식이 입안 깊숙이 들어오질 않았다. 원래 비위도 약한데다 밥에서도 야릇한 냄새가 나니까, 마음 놓고 먹기가 망설여졌다.
그래도 아내와 홍구가 잘 먹어주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첫 날의 관광 일정이 시작되었다 왕궁전문안내원이라는 현지여성이 동승을 했는데 이름이 무이라고 소개하였다. 한국말이 유창해서 의사소통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호텔을 빠져나온 버스는 방콕시내를 한참을 내달렸다. 시내의 풍경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과일가게, 전자가게, 옷가게가 즐비하고 오토바이를 탄 인파들이 유난히 많았다. 길거리의 시내버스들은 많이 낡았고 창문을 개방한 버스들과 창문을 모두 닫고 에어콘을 가동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현지 안내원의 설명으로는 에어콘버스의 버스승차비가 훨씬 비싸다고 하였다. 돈의 위력이 국경이 어디 있으랴.
버스는 곧 오늘 우리들의 첫 관광지인 에메랄드 사원 앞에 도착을 하였다. 사원에 들어 갈 때는 복장을 단정히 해야 한다고 해서 일행중 짦은 치마나 반바지를 입은 사람은 사원 밖에서 그곳의 긴 치마를 대여해 입고 들어갔다.
사원안에는 현지의 학생들도 무리를 지어 다녔는데 수학여행을 온 것이 아닐까 생각 되었다. 단체외국인 현지인들 등등, 사원안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태양의 나라라서 일까? 중천에 솟구친 해는 애메랄드사원 꼭대기에서 이글거리고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 같은 황금 돔은 더 황금빛으로 작열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정렬적인 건축물들은 이국의 문화를 더욱 실감 있게 표현해 주었다.
에메랄드사원 안에 모셔진 에메랄드빛 불상은 외벽의 화려함과는 달리 고요하고 정적으로 신비스러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바라만 보아도 저절로 숙연해지는 참으로 묘한 부처님이다.
안내책자에 의하면 에메랄드 불상이 이곳까지 모셔지기에는 많은 사연이 있었다고 한다. 녹색의 옥을 깎아 만든 이 불상을 맨 처음 발견한 승려님이 에메랄드인줄 알고 에메랄드불상으로 부른 것이 지금까지 그렇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에메랄드불상은 1434년에 태국북부의 치앙라이에 있는 한 사원의 무너진 탑 속에서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발견 당시만 해도 이 불상은 흰 석고로 되어 있어서 그저 평범한 불상인줄 알았는데 어느날 탑에 벼락이 떨어쳐 석고가 벗겨지면서 녹색의 빛이 뿜어져 나와 그때부터불상의 가치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에메랄드사원의 회랑에 그려진 벽화도 볼만했다.
고대 인도의 아요타야왕국의 현명한 왕 라마가 통까 나라의 톳씨깐 왕에게 납치된 자신의 왕비 싸다를 구출하기 위해 전쟁을 한 부분들과 또 다른 장면들을 서사시의 서곡 형태로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림 중간 중간에서 젊은이들이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현지 안내원의 설명으로는 왕실복원학교 학생들이라 하였다.
회랑을 돌아 나오니 왕궁의 후문이 잇닿아 있었다. 현재의 왕인 푸미폰국왕도 거주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화려함보다는 엄숙한 느낌이 들었다. 에메랄드 사원과 왕궁관광을 마치고 현지 안내원과 우리들은 10여분을 사원 앞 큰 도로를 걸어서 짜오프라야강변으로 향했다. 큰 도로를 벗어나 강으로 향하는 골목에는 우리나라의 전통재래시장과 같은 없는 것 빼놓고 있을 것은 다 있는 오밀조밀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호객행위도 심해서 물건에 조금만 관심을 보이면 끝까지 따라오며 한국인임을 쉽게 눈치 채고 “빳쩐원” “오쩐원”하며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나도 야자수껍데기중절모에 관심을 보이다 유람선입구까지 쫒아온 모자장사한테 결국 모자하나 팔아 주어야 했다.
우리나라의 강은 강과 육지가 확연히 구분이 되고 장마가 지면 물이 범람을 하니까 강 옆에는 집을 짓지 않는데 짜오프라야강은 강과 육지가 구별되지 않았다. 강과 집만 있을 뿐 강둑도 없고 둔치도 없다. 강은 항상 이정도의 물만 가지고 있길래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심은 깊은지 검푸른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짜오프라야강을 따라 오르며 수상가옥들을 관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없는 수상가옥들, 강바닦에다 굵은 통나무들을 촘촘히 밖고 강물 1미터쯤 위에 널빤지를 깔아서 지은 집, 대문은 모두 강물로 향해서 배가 닿는 곳이 대문이다. 물위에서 개도 기르고 화초도 심고 물위에 산다는 것 뿐, 육지와 다를 것이 없는 풍경이다.
이 더운 나라에서 물위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시원한 일이랴.
사원이 가까이 자리한 강물 속에는 고기 반 물 반이었다. 사원 앞이 물고기방생자리라 방생도 많이 하고 신성한 곳이라 고기도 잡지 않아서 고기들이 많다고 하였다.
고기는 모두가 똑같은 놈들이었는데 위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메기와 흡사하고 옆에서 보면 붕어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짜오프라야강의 수상가옥을 관광하고 또 다시 짜오프라야강변에 자리잡은 새벽사원으로 향했다.
새벽사원의 탑은 우리나라의 석가탑 비슷한 형태였는데 크기가 어마어마하고 사방에서 탑의 중간부분까지 올라 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는데 계단은 굉장히 가파르고 좁아서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게 하였다.
높이가 20m는 됨직한 탑의 중간부분 통로에서 강 건너에 자리잡은 에메랄드사원과 왕궁을 바라보니 가까이에서 본 것과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새벽사원을 나와 유람선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점심때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방콕시내에 있는 로얄드래곤이라는 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러갔다. 5000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대형 식당이라고 한다. 중국풍으로 지어진 굉장히 크고 넓은 건물이었는데 식당 내부에는 수상정원과 만발한 꽃들이 피어 있어서 말 그대로 용궁을 연상케 하였다. 건물 내부가 얼마나 큰지 종업원들은 롤라스케이트를 타고 음식을 날랐다.
점심은 푸짐하게 나왔는데 또 나에게는 먹을 것이 만만치 않았다. 일일이 냄새를 맡아보고 먹을 수도 없고 나물을 데친 반찬만 먹었다.
벌써부터 배추된장국 밥이나 한 사발 덜커덩 말아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방콕에서 남쪽으로 두시간여 거리인 파타야로 향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이내 방콕의 중심가를 벋어나 파타야로 향하는 고가고속도로를 달리고 차창밖으로 보이는 방콕의 교외풍경은 우리가 피해온 우리나라의 설원과는 판이하게 진녹색의 여유로운 여름풍경이다.
우리나라의 다섯 배의 면적을 가졌다는 태국, 언덕하나 없는 방콕의 교외는 사방이 지평선으로 끝이 보이질 않는다.
방콕에서 한 시간을 더 달려 나오니 우리 동네 뒷산만한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가에 있는 자그마한 휴게소에 잠깐 들러 맥주도 한 잔하고, 용변도 보고 잠깐 휴식을 즐겼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곳의 차들은 운전대도 모두 오른쪽에 달려있고 차량들도 우측통행이라, 차에서 내리고 오를 때 마다 헛갈린다.
그냥 습관처럼 왼쪽으로 가보면 문이 없다.
“앗 차, 여기가 태국이지.” 50년 동안 몸에 벤 습관이 만만찮다.
방콕이 내륙에 있다면 파타야는 우리나라의 인천처럼 바닷가에 있었다. 긴 U자형의 모래톱과 대서양의 물결이 부드럽게 휘어지는 곳,
휴양의 도시, 관광의 도시라고 한다.
태국의 날씨는 하기와 우기, 건기로 세계절로 구분한다고 한다. 지금은 건기에 해당되어서 우리나라의 날씨로는 겨울쯤으로 평균섭씨 25도~30도로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덥다고 느껴지지 않는 우리나라의 초여름 날씨와 비슷했다. 상하의 나라에 파리와 모기가 없다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2월 달부터는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해서 3월달 정도가 되면 섭씨40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두 시간여를 버스로 달려 파타야에 도착을 하였다. 시간을 어느새 현지 시간으로 오후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안내된 곳은 태국전통의 안마 숍이었다. 여행의 피로도 풀 겸 두 시간여 안마를 받는다고 하였다.
나와 홍구는 안마를 받지 않기로 하고 일행이 안마를 받는 동안 안마숍 부근의 파타야 뒷골목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파타야의 뒷골목에는 개들이 유난히 많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유기견들이라고 하는데 태국에서는 개들을 신성시해서 개들이 사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그늘마다 개들이 널부러져 있고 웬만큼 건드려서는 어느 개가 건드리냐는 식으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정말 개판이다.
그래도 험악한 개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정성스럽게 개밥을 보시하는 파타야의 아저씨가 불교의 나라임을 짐작케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거주하는지 골목에는 한국어 간판도 눈에 들어오고 우리나라 교회도 있었다.
안마를 마치고 나니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저녁은 태국의 전통음식인 “수끼”를 먹었다. 우리나라의 “샤브샤브”와 비슷한 것이 었는데 난 그것도 별로여서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었다. 태국의 전통술 쌩솜이라는 것도 한 병 시켜 먹었는데 술 만큼은 거부감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식당을 나오니 식당앞에 과일 노점상이 있어서 파파야, 망고. 용과등 저녁에 호텔에서 먹을 것을 몇 개 구입했다.
오후 여섯시가 조금 넘으니 이곳에도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알 카자쇼”관람을 위해 시내로 들어왔다. 일명 게이쇼라고 하는데 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쇼라고 하였다.
발디딜틈 없이 객석을 꽉 메운 관람객들과 화려한 쇼는 볼만했다.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인지 각 나라의 전통무용도 보여주었는데 우리나라의 부채춤과 아리랑을 먼 이국의 파타야에서 감상을 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쇼를 관람하고 나니 저녁 8시를 조금 넘겼다.
일찍 호텔에 들어가기도 뭣 하고 해서 우리일행은 교포안내원과 함께시티투어를 하기로 하였다.
오늘은 첫 날이라 간단하게 시티투어를 마치니 또 하루의 일이 끝났다. 파타야의 호텔에 여장을 푸니 저녁 10시가 넘었다. 현지교포안내원이 사준 과일과 우리들이 사온 과일을 모두 꺼내놓고 과일파티를 즐기다보니 내일의 시간이 코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 12시다.
내일을 위해 서둘러 잠자리를 챙겼다.
태국에서 이틀 밤을 자고나니 우리들의 관광일정에도 익숙해져간다.
아침 일찍 세면을 하고 호텔2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호텔식은 그래도 뷔페식이라 입맛에 맡는 것만 잘 챙겨 먹으면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니까, 파타야호텔의 음식에 한국식 부페가 많았다.
호텔은 좀 티엔 팜비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좀 티엔 팜비치 호텔이 었는데 우리는 8층에 투숙을 해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야자수나무 사이로 좀 티엔 팜비치의 아름다운 해변과 확 트인 바다를 바라 볼 수가 있었다.
아침을 먹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오늘의 첫 일정인 산호섬으로 출발했다. 산호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에서 쾌속전용보트를 타고 산호섬으로 내 달리다 바다 한가운데서 쾌속선을 이용해 낙하산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수상레저인 패러세일링을 잠깐 즐기고 또 다시 쾌속보트에 올라 산호섬으로 향했다.
산호섬에 내리니 물속의 흰 모래와 어우러진 산호섬 앞의 바닷물은 맑은 에메랄드빛으로 녹여 놓은 유리물처럼 맑았다. 바닷물도 따스해서 물속에서 해수욕을 하기에도 더없이 좋아 많은 관광객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해변에선 일광욕도 하고 있었다. 해변의 가는 모래는 곱고 부드러우며 하얗게 빛이 났는데 그것들은 모래가 아니라 산호의 부서진 가루들이라고 하였다. 우리들은 바나나보트도 타고, 제트스키도 타고 한나절을 산호섬에서 보내고 점심때가 되어서 산호섬을 출발해서 파타야 시내로 나왔다.
오늘 점심은 특별히 삼겹살 파티라고 한다. 파타야 외곽에 있는 한국인식당 ‘고구려’ 라는 곳을 찾아갔다.
삼겹살은 참 맛이 있었다. 돼지특유의 냄새도 없고 삼겹살에 붙어있는 비계도 쫄깃쫄깃해서 먹을 만했다. 된장찌개도 구수했다. 태국의 식당들은 관광객들이 자국에서 가져간 술은 식당에서 마시지 못하게 한다. 현지의 법에 의해 불법이라 이를 적발당하면 식당주와 술을 마신 관광객이 벌금을 내야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내에서 가져간 종이팩에 담긴 술을 종업원들 몰래 물잔에 가득가득 채워서 물마시듯 들이키니 이것도 먼 훗날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을 듯싶다. 종업원들도 모르는 척 슬며시 웃으면서 외면했다. 간만에 고기에 술에 맘 놓고 배를 채우니 졸려 움이 밀려왔다. 점심식사를 포식을 하고 식당을 나오니 오후1시가 되었다. 호텔에 돌아가서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오후2시를 조금 넘겨 또 관광일정에 돌입했다. 호텔을 나와 버스에 오른 우리 일행은 교포안내원의 안내로 뱀 농장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코브라와 3~4m는 거뜬히 됨직한 열대구렁이도 있었다. 현지인 뱀 조련사의 코브라 쇼도 구경했다.
코브라를 어깨에 걸치고 사진촬영도 하였다.
뱀 농장 나온 우리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뱀 농장에서 가까운 코끼리트레킹 장소로 이동을 했다.
생각보다 코끼리는 엄청나게 육중했다. 코끼리 등에 오르니 마치 탱크위에 올라와 있는 느낌이다. 코끼리 조련사는 날카로운 갈쿠리 하나를 들고 그 육중한 코끼리를 마음대로 요리하고 있었다. 초원을 한 바퀴돌며 고생하는 코끼리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
현지인 코끼리 조련사가 우리나라의 동요를 불러주었다.
코끼리트레킹을 마친 우리들은 다음 여정인 농눅빌리지로 향했다. 농눅이라는 이름의 할머니가 평생을 가꾸었다는 농눅빌리지는 우리나라의 평수단위로 200만평이 넘는 거대한 농원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파타야시에 기증을 해서 시가 관리한다고 동승한 교포 안내원이 설명해 주었다. 농눅빌리지에 도착한 우리들은 농눅빌리지안에 있는 야외공연장에서 태국의 전통무용도 관람을 하고 자리를 옮겨 코끼리 쇼도 관람을 하였다. 코끼리 쇼가 끝나고 우리일행은 농원으로 들어섰다. 남방의 수많은 꽃들과 많은 수종들이 농원 안에 가득했다. 열대수림이 무성한 농원 안에는 관광객이 관람하기 좋게 밀림의 사이를 뚫고 지상에서 3m정도위로 긴 육교를 놓아서 육교 위를 걸어가면서 나무들을 볼 수있게 해 놓으니 한 층 더 실감나게 농원의 밀림을 감상을 할 수가 있었다. 치마처럼 길게 늘어뜨린 열대나무숲을 헤치며 육교를 걷는 재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육교를 한참 걸어서 농눅 빌리지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의 정자에서 우리들은 단체사진도 찍고 잠깐의 휴식을 즐겼다. 전망대에서도 한 눈에 다 잡히지 않는 농눅빌리지는 정말 대단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해의 외도섬에만 가도 탄성을 자아내는데 농눅빌리지는 모든면에서 외도섬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정성과 인력을 쏟아야 이런 지상낙원을 건설할 수 있는지 저절로 농눅 할머니가 존경스럽다. 농눅 빌리지의 이곳저곳을 관람하다보니 어느덧 어두워 진다.
날이 많이 흐려서인지 주위는 더 어두워 보였다.
우리일행은 발걸음을 서둘러 주차장에 내려와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오늘 관광일정의 마지막코스인 황금절벽사원으로 이동했다.
버스가 잠깐을 내달려 황금절벽사원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관광객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커다란 산 절벽의 암벽에 얕게 홈을 파고 금색으로 부처님의 윤곽을 그려 넣었는데 그 규모가 대단했다.
수백 길 낭떠러지기에서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 태국인들의 부처를 향한 불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황금절벽사원을 내려와 주차장으로 오니 주위는 더 어두워지고 황금절벽사원의 언덕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파타야 시내는 벌써 불야성을 이룬다. 황금절벽사원에서 버스를 타고 저녁식사장소인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다되었다.
저녁식사는 생선류로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보지못한 이상하게 생긴 바닷가재도 있었고, 새우와게, 오징어, 회도 준비되어 있었다. 생선류는 그렇저렇 먹을만했는데, 회는 먹지 않았다.
저녁을 먹기가 무섭게 교포안내원은 야간시티투어를 나가자고 한다.
호텔앞에서 밴 택시를 잡아타고 우리일행은 파타야 시내야경을 보러갔다. 방콕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물차도 아니고 택시도 아닌, 파타야에는 그런 요상한 택시가 많았다. 밴 화물차를 위에 지붕만 씌우고 화물칸에 군용차마냥 양쪽에 기다란 의자를 배열하고 뒷 적재함 문짝은떼어 버리고 대신 차에 오르기 쉽게 발판을 만들어 놓은 그런 형태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차들이 운전사의 옆에는 항상 여자들이 동승을 하고 다녔다. 안내원의 말로는 태국이 근래까지만 해도 일부다처제의 국가였었기 때문에 남자들은 바람피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한단다. 마누라들이 조금만 방심을 하면 바람을 피우고 딴 여자들과 같이 다녀서 옆에 타고 있는 여자들은 모두 마누라들로 남편을 못 믿어서 항시같이 붙어 다닌다고 하였다.
우리 전용버스에도 안내원도 아닌 아줌마가 항상 운전사옆에 동승을 하고 다녀서 태국엔 아직까지 차장아줌마들이 있구나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런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혼자 벌어도 먹고사는 태국은 좋은 나라여, 근데 애덜덜은 누가 키우나?” 그게 또 궁금해진다.
밴 택시로 한참을 내달려 파타야 시내에서 가장 높다는 산의 산꼭대기공원 전망대에 오르니 파타야시내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다에 둘러 쌓여있는 파타야, 휴양의 도시, 밤의 도시, 관광의 도시답게 야경도 화려하게 빛났다.
파타야의 야경을 뒤로하고 기다리고 있던 밴 택시를 타고 파타야 시내의 중심가로 들어와 걸어서 거리관광을 하였다.
넓은 거리에는 각국의관광객과 현지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노천술집들과 휘황찬란한 조명들, 집집마다 어여쁜 현지 아가씨들이 놀다가라고 호객을 한다. 교포안내원의 안내로 격투기링이 설치되어 있는 허름한 건물의 간이 술집으로 들어갔다. 술을 마시며 격투기와 뱀 쇼를 관람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격투기는 청코너와 홍코너로 나뉘어 1대1로 진행되었는데 흥미진진하였다. 링 앞좌석에서 관전을 하니 흥분된 그들의 숨소리까지 들리고 작열하는 펀치소리 쇼맨 쉽 없는 진정한 승부의 세계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야성의 기질까지 가감 없이 보여주어서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뱀 쇼가 등장을 했는데 뱀을 다루는 솜씨는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길래 저 차디차고 인정머리 없는 뱀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지, 뱀의 공격보다 항상 0.0001초 빠른 그의 행동을 보며 “저런 대단한 땅꾼을 수입해서 무좀약 장사를 하면 돈 좀 벌겠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뱀 농장에서 본 현찮은 쇼의 기억은 머리에서 빨리 빼서 버리고 싶다.
격투기장을 나와서 화려한 거리를 더 걷다가 밴 택시를 잡아타고 또 다른 노천 술집으로 이동을 하였다. 교포안내원의 말로는 태국의 서민들이 즐기는 태국의 전통음식을 파는 곳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야시장 같은 곳인데 넓은 마당에 목제 의자와 탁자를 늘어놓고 한쪽에는 원두막 같은 곳도 몇 채 만들어 놓은 그런 모습이었다. 특이한 것은 집집마다 커다란 스크린을 걸어놓고 스포츠중계화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맥주와 양주, 안주 등을 시켰는데 안주는 화롯불에 오지냄비를 올려서 “수끼” 비슷한 음식을 내왔다. 더운 나라에서도 화로에 데워 먹는 그런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신기하다.
노천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밤11시가 넘었다. 일정에 쫒기는 관광을 하다 보니 여행의 피로도 만만치 않아 모두가 얼른 호텔로 돌아가 푹 잠이나 잤으면 하는 눈치들이다.
시켜놓은 술과 안주도 다 비우지 못하고 노천 술집을 나와 다시 밴 택시를 잡아탔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일행 중의 진영아버지가 술이 취하여 얼큰한지 노래나 한 곡조 부르며 가잔다.
진영아버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가 군가를 선창하였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나 나라지키는...............”
모두가 목청껏 소리지르며 파타야 시내의 대로를 내달리니 지나가던 외국인 관광객들도 좋다고 함성을 지르며 화답해 주고 차량에탄 사람들도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우리가 탄 차량의 생김새하며, 일그러지고 서로 엉켜진 우리의 모습하며, 총만 안 들었을 뿐이지 무장폭도들과 거의 흡사했다.
이국이지만 누구하나 제지하는 사람도, 우리들의 행동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다. 모두들 몸은 곤죽이 되어 호텔에 몸을 푸니 또 내일이 코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오늘만 지나면 집으로 간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모든 짐들을 정리해놓고 호텔 2층으로 내려가 파타야 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호텔에서 몇 끼 밥을 먹다보니 이제 식사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 호텔방에서 모든 짐을 챙겨 나와 이틀 동안 묵었던 좀 티엔 팜비치호텔을 나와 우리 일행들은 마지막 일정에 돌입했다.
교포 안내원의 말이 오늘의 일정은 대부분 쇼핑관광으로 이루어 질 것 이라고 하였다.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마누라 단속을 잘 해야 될 텐데.................”
버스를 타고 처음 찾아간 곳은 라텍스매장이었다.
그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세상에 더 없이 좋은 물건이지만 우리 같은 서민이 백만 원짜리 라텍스 요대기는 언감생심이라
그렇지만 철없는 아녀자들은 견물생심이라고 물건에 탐을 내고 서방들 눈치만 본다.
뒷통수가 가려워 나는 그중에서 가장 싼 10만원짜리 베개 하나 샀는데도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라텍스매장을 나와 다음 행선지인 악어농장으로 향했다.
악어농장에 들어서니 악어 우리 안에 악어들이 널부러져 있는데 미동도 하지 않아서 모조품들을 늘어놓은 줄 알았더니 벌어진 입속의 목구멍만 까딱까딱 숨을 쉰다.
악어농장을 나와 악어농장 옆에 있는 야외공연장에서 악어 쇼를 관람했다. 조련사의 엉그렁과 악어의 멍청함이 잘 맞아 떨어져서 볼 만한 쇼를 만들어 주었다.
“저러다 저 조련사 모가지 덜커덩 하는 것 아냐?”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한다.
악어 쇼를 마치고 악어농장내에 있는 동물원에서 동물구경도 하고, 야외에 진열되어 있는 화석들도 구경을 하고 나오니 오전10시가 넘었다.
이제는 파타야에서의 관광일정을 모두마치고 방콕으로 올라가면서 마지막 쇼핑 관광을 한다고 하였다.
1시간쯤 방콕으로 올라오다 길가에 있는 파인애플 농장에 도착하였다.휴게소와 과일가게를 같이 하고 있는 집이었는데 농장을 둘러보니 휴게소 뒤에 있는 농장은 형식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국도변에 원두막 지어놓고 그 옆 밭에 참외 두어줄 심어놓고 딴 곳에서 받아다 파는 그런 형식이 벌써 태국에도 수출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곳의 작은 농장에는 파파야나무,망고나무,두리안,용과.바나나등도 한 두 그루씩 있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파인애플농장을 나와 버스에 오르니 점심때가 다 되어간다.
파인애플 농장에서 한참을 방콕 쪽으로 내달려 파타야와 방콕의 중간쯤 되는 촌부리라는 곳의 도로변 “팔도강산”이라는 한식당에서 버스는 멈춰서고 그곳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때웠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보석매장으로 쇼핑관광을 나섰다. 매장 안내원의 말이 태국을 보석의 나라라고도 하는데 유색의 보석이 많이 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가공기술은 세계일류라고 설명하였다. 그 드넓은 실내매장이 아름다운 보석 가공품들로 넘쳐났지만 우리들은 아쉽게도 눈 쇼핑으로 끝내고 저렴한 것 몇 가지를 사는데 만족해야 했다. 보석매장을 출발한 버스는 잠깐을 내달려 국도변의 범능휴게소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역시 쇼핑매장인데 교민안내원의 설명으로는 태국교민회가 직접운영을 하는 곳이라며 이익금은 태국교민의 복지를 위해 쓰여 진다고 하였다.
매장에서는 꿀, 로얄제리, 무좀약, 건과, 은잔등 여러 가지 선물용을 팔고 있었다. 나도 친지들에게 줄 여러 가지 선물을 구입했다.
오후 세시가 다 되어서 범릉휴계소를 출발한 버스는 방콕을 향해 내달렸다. 교포안내원은 방콕시내로 진입한 버스를 시내의 어느 복잡한 거리의 쇼핑센터 앞에 세우고 우리를 내리게 했다. 악어 가죽제품 매장이란다. 매장 이곳저곳을 구경했지만 우리 일행이 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매장을 나온 우리는 교포안내원에 이끌려 버스를 타고 방콕시내의 한인이 운영하는 한약방으로 향했다.
안내원의 말로는 대단한 의원님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볼 때는 약장사에 불과한 것 같았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진맥을 봐주기도 했는데 우리가 병원문을 나올 때까지 약을 사라는 말은 없었다. 처음에 우려 했던 것과는 달리 참 좋은 의원님이셨다.
한약방을 나서니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태국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교포안내원의 안내로 방콕시내의 어느 오피스텔 2층에 있는 한식당을 찾아갔다.
주 메뉴는 한식으로 순두부찌개가 나왔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밥도 맛있고 술도 두병을 너끈히 비웠다. 태국의 교포식당마다 들어가 보면 느끼는 점이 있는데 교포식당주인들은 자기나라 관광객들 때문에 먹고 살면서도 우리들을 반갑게 대해주지 않았다. 본척만척하기 일쑤이고 심지어는 주인은 나타나지도 않고 의사소통은 되지도 않는데 현지종업원들만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곳이 허다했다. 그들은 매일 한국관광객들을 대해서 별로 모르겠지만 관광객들은 매일 바뀐다는 것을 이해해주고 좀 더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그런 씁쓸한 기억은 없을 것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니 방콕의 하늘도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태운 버스는 한식당을 출발해서 수왓나품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여섯시 반이다.
새벽 1시20분 비행기라 이른 감이 있지만 우리는 면세구역쇼핑도 하고 공항 내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오후8시에 비행기표를 끊고 화물을 부치고 우리일행들은 교포안내원과 현지여성안내원과 작별을 나누고 출국심사대로 들어섰다.
우리일행은 출국심사를 마치고 면세구역에서 선물들도 마련하고
피자도 사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12시30분이 되니 탑승이 시작되었다.
새벽1시20분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드디어 스왓나품공항의 어두운 활주로를 박차고 북방을 향해 날개를 띄웠다.
몸은 피곤한데도 비행기내에서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나의 왼편에 앉은 러시아아줌마와 오른편에 앉은 아내는 이내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방콕의 스왓나품 공항을 이륙한지 세시간여 스크린에 나타나는 비행기의 항로는 대만을 지나 남지나해의 바다를 지나 계속 북방행이다.
창밖으로 어렴풋이 검은 어둠사이로 선홍색의 빛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비행기의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새벽에 대청봉에서 일출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다. 비행기가 북방을 향할수록 빛은 점점 더 어둠을 헤치며 들어오고 선홍빛 햇무리는 이 높은 고도에 이내 해를 끌어 올렸다.
처음 보는 운해의 바다, 운해의 바다위에 해는 떠오르고 드넓은 세상에 비행기와 운해와 햇님뿐이다.
이 운해의 바다밑에 우리의 세상이 펼쳐져 있다니...........
운해의 바다를 오르락내리락 하던 비행기는 지루한 시간도 느끼기 전에 이제 곧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대지같이 두꺼운 구름을 어떻게 뚫고 나갈까.?
기체가 잠시 흔들리는가 싶더니 비행기는 이내 어두워 졌다. 한참을 어둠속을 질주하던 비행기가 구름 속을 박차고 나오니 어렴풋이 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도 보인다. 대지는 하얀 설국이다.
운해 위에서는 햇빛도 맑고 하늘도 맑고 깨끗했는데 구름을 뚫고 나온 지상의 세계는 안개가 자욱한 혼돈의 세상이다. 해도 보이지 않고 하늘은 잔뜩 찌푸렸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전 8시16분 그래도 육중한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사뿐히 착륙을 한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잠시의 여름은 어디로 가고 몸속을 파고드는 한파가 제 정신을 차리게 한다
기다리고 있던 전세 버스에 오르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같이 같던 모든 일행이 아무 탈없이 즐겁게 여행을 하고 다시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니 남방의 여행이 꿈과 현실로 뒤섞여온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도 영원히 잊지못할 기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현지에서 우리의 즐거운 여행을 도와주신 미래여행사의 현지 안내원
이효민 과장님과 현지여성안내원 예우아가씨, 그리고 끝가지 안전운전을 해주신 미래여행사 현지기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첫댓글 참 멋진 여행을 하셨네요. 글이 넘 길지요. 비행기 탈 때까지의 과정을 팍 줄이고 줄바꾸기에 신경을 쓰면 멋진 기행문이 될것 같습니다.
막대기를 끌어내리다가 끝없이 이어지니 질려서 읽지못했습니다. 언제 한가한 시간을 찾아서 읽도록 죄송.........
한글파일에서 옮기다 보니 글읽기가 불편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춘주문학회원님들 항상 건강과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