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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수필
금빛 게으른 울음
임헌영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횡포는 끝이 없는데, 그중 하나가 모든 동물의 언어를 해득 못 한 채 그냥 ‘우는 것’으로 풀이해 버린 것도 포함된다. 꾀꼬리나 뻐꾸기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노래하는 것으로 봐주지만, 두견처럼 소프라노로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노래조차도 울음으로 치부해버린다. 과연 동물들은 울 줄밖에 모를까. 그 해답을 정지용의 <향수>를 통해 따져보자.
정지용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건 중학 3학년 때인 1955년 겨울방학 직전이었다. 고교 입학시험이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출제되던 때라 국어교사는 교재에 없는 글들을 아무 데서나 임의로 뽑아 입시 준비에 대비시킬 때였는데, 시험에 이런 지문이 나왔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향수> 2연
지금은 국민애송시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땐 철통같은 금서로 묶여 정지용이란 이름도 몰랐던 ‘무찌르자 오랑캐’의 북진통일 구호 시절이었다. 가마니를 짜거나 새끼줄을 꼬다가 그대로 퍼질러 잠들던 우리 동네 겨울 머슴방의 풍정이 확 스치면서, 그들의 꼬임에 빠져 옆집 마당에 묻힌 독 안의 물김치를 훔쳐 먹던 상큼한 기운이 솟았다. 집 옆 개살구나무가 앙상하게 서 있던 빈 텃밭의 겨울 밤바람 소리도 들렸다. 나만이 아니었다. 시험이 끝나자 교실은 온통 이 구절을 외워대며 누구 시냐고 궁리들 했지만 아무도 몰랐다. 다들 자기 동네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정겨운 겨울밤을 떠올렸으리라. 청록파나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애국자 연설조로 외워대던 소년들에게 눈을 번쩍 뜨게 해준 절창이었다.
문예반이었던 내 단짝 오상현(吳相鉉, 나중 경북여고 등 국어교사)이 이내 정지용의 <향수>임을 알아내어 그 전문을 구해 와서 몇몇이 쉬쉬하며 비밀결사들처럼 돌려보거나 베껴 쓰기도 했다. 이 시에 맛을 들이자 국어책에서 봐왔던 작품들이 우리네 삶과 너무나 촌수가 멀다는 걸 절감했다.
국민적 애송시인 <향수> 전 5연은 여름, 겨울,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어 봄이 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3연을 늦봄이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여름에 가깝다. 사계절 순서대로 노래한 뒤 마지막 5연에서는 백석의 시처럼 온 가족이 등장하는 명절 풍속을 넣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런 걸 따질 계제도 없이 그저 슬슬 외우고 싶은 명시다.
그렇게들 애송하면서도 정작 아직도 그 의미를 몰라 알쏭달쏭한 시어들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금빛 게으른 울음’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영, <향수> 1연
토착어 연금술사답게 지용은 이 한 연에서만도 ‘얼룩백이 황소’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이라는 세 술어를 창출하여 시어의 귀재임을 한껏 뽑낸다.
육질이 부드러운 얼룩백이 황소는 칡넝쿨을 감은 듯해서 칡소, 힘이 세다고 역우(力牛), 호랑이 무늬를 닮았다고 호반우(虎班牛)로 불렸다고 전한다. 한 축산 전문가는 이를 토종이라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적어도 정지용 시대에는 와규(和牛, 일본소)와는 분명히 달리 이미 우리 소로 여겼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한글학회가 편찬한 《큰 사전》(을유문화사, 1974)에는 ‘칡데기’라는 방언까지 소개해주었고, 그 뒤에 나온 사전들에서는 아예 없는 예도 있으나 대체로 등장하며, 북한의 《조선말대사전》 에도 나온다.
그런데, ‘해설피’는 남북한의 어떤 사전에도 나오지 않던 차에 김재홍 교수가 《한국현대시 시어사전》(고려대 출판부, 1997)에서 “해가 기울 무렵. 해 질 녘. ‘서글프게’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주장도 있으나 잘못된 것이다”라고 명백히 풀어줌으로써 깨끗이 해결되었다.
그러나 ‘금빛 게으른 울음’은 여전히 애매하여 그 정확한 개념이 잡힐 듯 말 듯 아지랑이처럼 아롱거리며 아삼아삼해진다. 이 시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매력적인 이 술어를 이해하려면 타임머신을 타고 내 어린 시절 저 농한기인 한여름 속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웬만한 가뭄이 아니면 실개천 물이 지줄대는 여름은 농촌에서 가장 목가적인 풍경인 소를 방목하는 계절이다. 방목이랬자 야생초가 풍성한 들판이나 산기슭에다 소를 반나절도 못되게 풀어놓고 마음대로 풀을 뜯게 하는 일종의 자연 뷔페식으로 이를 ‘소 먹이기’라고 불렀다. 청소년들이 소먹이기 전담이라 특히 여름방학에는 소만 먹이면 되는 우동(牛童)과 땔감도 마련해야 하는 초동(樵童)으로 신분이 나눠진다. 통상 농촌의 일이란 ‘깐깐 오월 매끈 유월 어정칠월 둥둥 팔월’이라고 하는데, 여름방학은 이 중 일이 적은 어정칠월과 둥둥 팔월에 해당하기에 소들도 한가해져 몇몇 허드렛일은 한낮 더위가 오기 전에 해치우도록 조처한다. 소의 점심은 전날 베어둔 풀로 때우는 간이식이다. 오찬 뒤 소는 마구간이나 나무 그늘에 되새김질로 “엷은 졸음에 겨워” 편안하게 빈둥거린다.
여름철 소의 저녁 식사는 언제나 가든파티다. 또래의 우동들은 ‘소 먹이러 가자’고 소리 질러 온 동네 우공(牛童)들을 일렬종대로 세워 각자 자기 소 이까리(고삐)를 잡고 몰아간다. 마을마다 방목할 만한 냇가나 산 계곡의 야생초지 공간이 있는데, 어디로 갈 것인가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뱃심 센 몇몇이 정한다. 가끔은 혼자서 반대쪽으로 소를 모는 왕따도 있지만, 이내 대세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외로움을 타는 소가 자기 벗들이 많은 곳으로 한사코 내달아 뛰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우동은 소만 몰면 되지만 초동은 지게를 짊어진 채 소까지 챙겨야 한다. 대개 소 먹이러 가는 시간은 태양의 맹위가 한풀 꺾인 오후 3시경이다. 소가 더위를 먹으면 조당수(粟湯水)가 즉효인데 식량이 귀한 판에 좁쌀도 아까운 데다 한더위에 조죽을 끓이는 것 또한 아이들 몫이라 세심하게 소의 건강을 돌보게 된다.
방목지에는 대개 밭이 없기에 학동들은 소 이까리를 목이나 뿔에다 감아 멋대로 다닐 수 있도록 조처하고는 “풀 먹어!”라고 명령을 내린 뒤 초동들은 땔감 하기에 바쁘고, 우동들은 다양한 프로의 놀이나 칡뿌리 캐기, 망개 열매와 잎 따기 등으로 바빠지며, 중학생 이상의 학동들은 그늘을 찾아 책을 뒤적이는데, 나도 소먹이며 순진한 처녀가 등장하는 소설 《테스》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여름 해는 길다.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이면 소들도 북처럼 탱탱해진 만족한 상태에서 나무 그늘을 찾아 편한 자세를 취하고는 조는 듯 되새김질을 한다. 소는 사람보다 정직하여 배가 부르면 욕심이 없어져 한유를 즐기는데 그때 표정은 고즈넉한 안분지족(安分知足)으로 바로 정지용이 ‘해설피’라고 지목한 시간과 일치한다. 해설피에는 하던 싸움도 그만두고 싶을 만큼 만물을 차분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해설피는 잠시 휴식처럼, 명상처럼, 평화처럼 발걸음을 죽인 채 조용히 다가온다.
암소들은 배부르면 얌전해지는데 황소는 다르다. 특히 가임기의 암소가 암내라도 풍기면 황소들끼리 싸움이 치열해진다. 머슴애들이 그걸 빨리 눈치챌 수 있는 건 암소의 국부에서 분비물이 흘러내리며 비릿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러면 그 암소를 차지하고자 황소들의 다툼이 생겨 우리는 싸움을 붙여 즐길 때도 있지만 대개는 곧바로 한 녀석을 몰고 다른 곳으로 가도록 조처한다. 우리 눈으로 씨받이감으로 어느 녀석이 적합한지를 즉결 심판해서 그놈을 짝으로 지어주고자 탈락자를 딴 곳으로 강제연행해버리는 것이다. 엄연한 우권(牛權)과 연애의 자유권에다 황소들의 활동권을 침탈한 조처였지만 예사로 그랬다. 이상하게도 암소는 전혀 마음에 드는 아비를 선택할 의지가 없이 누구라도 받아줄 수동적인 자세다. 오랫동안 한동네에 살며 충분히 선을 볼 기회가 있었건만, 어느 쪽이 퇴출당하든 전혀 관심이 없다.
암소 임자가 코뚜레를 바짝 조여 잡고는 황소와 교미를 성사시켜주는 동안 다른 우동들은 낄낄거리며 요상한 표정으로 열심히 관찰한다. 이상한 건 암내를 미리 풍기며 다소곳이 황소를 유혹한 건 분명 암소였건만, 수소가 암소 뒷등에 기어오르려고 하면 꼭 빠른 걸음질로 몸을 빼며 사리다가 마지못한 척 응해준다. 암컷의 마음이라니 알다가도 모르겠으나 아마 황소의 욕망을 더 부추기려는 교태일 것이다. 교미 직전에 황소가 암소 엉덩이 냄새를 맡으며 웃는 표정은 일품으로 아마 동물들의 전희 중 가장 품격 있는 수컷다운 행위가 아닐까 싶다. 이걸 보면 웃음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닐시 분명하다.
어른들은 슬기로워서 대개 한 마을에다 튼실한 황소를 한 마리만 남긴다. 혹 수송아지가 태어나도 애비 구실을 행사할 때쯤엔 냉큼 팔아버린다. 내가 중학생 때 우리 집이 어쩌다가 인물이 훤한 데다 무척 용맹한 매력적인 황소를 한 1년간 갖게 되어 온 동네 암소의 애인 행세를 하는 걸 감독하느라 속을 태웠던 적이 있다. 동네에서 송아지가 태어나면 괜히 심술이 났지만, 누구도 종잣돈 같은 건 아예 줄 꿈도 꾸지 않았기에 우리 황소는 오로지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동네 모든 암소의 애인이 되어주었다. 내 눈에는 우리 황소 품격에 걸맞지 않은 볼품없는 암소인데도 주인 속내는 개의치 않고 흔쾌하게 씨받이 노릇을 해주는 걸 보면서 필시 저것들은 오로지 후손 번식용으로만 그 행위를 전용하는 미학적 백치구나 싶었다.
사실 그랬다. 인간과는 달리 암내 풍기는 상대가 없으면 황소들은 거의 성욕을 발동하지 않는 듯했다. 가끔 눈을 힐끔거리다가 몇몇 암소에게 돌아가며 수작을 걸려고 강제로 등 뒤에 올라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암소가 날쌔게 몸을 피하거나 설사 황소가 기어오르더라도 긴 꼬리로 음부에다 잭을 잠그듯이 꽉 막아버려 어떤 황소의 완력으로도 어쩔 수 없어 허망하게 포기하고 만다. 소들의 세계야말로 성폭행할 수 없는 것 같다. 무척 윤리적이라 성범죄 따위가 없는 평화로운 암수의 성윤리 준칙이다.
암내 풍기는 유혹자가 없으면 황소들은 무척 온순하다. 황소란 곧 수소이기에 정지용의 ‘얼룩빼기 황소’란 바로 이런 속성을 지닌 수소를 지칭한다. 그들은 이제 적당히 배가 부른 데다 쾌청한 날씨에 해설피 서늘한 바람까지 불어 무척 흐뭇하다. 사람이라면 시를 읊거나 노래를 한 곡 뽑을 법도 하다. 이럴 때 얼룩빼기 황소가 우는(혹은 노래하는) “으으음무우우우” 하는 게 바로 ‘금빛 게으른 울음’이 된다. 혹 그 황소도 정지용 시인처럼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할까. 아니면 어머니나 함께 놀던 벗들을 떠올리거나, 혹 언제 만나게 될지 기약 없는 미지의 애인(암내 풍길 암소)을 그리워하는 세레나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소리에는 간절함이나 애절함, 원통과 비참, 이악스럽거나 생떼 쓰기, 혹은 분노나 원망의 탁한 감정이 강하게 묻어나지 않는다. 바로 낙이불음(樂而不淫)의 경지로 여유로운 농지거리 같은, 울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시조창 같다.
아, 저 평화로운 흡족한 상태에 처한 황소의 유유자적! 이런 순간에만 들을 수 있는 게 금빛 게으른 울음으로 천하태평의 경지다.
그 울음은 곧 한국 농촌이 오순도순 다정했던 품앗이로 함께 살던 시절, 따지자면 농민들이 언젠들 고생이 없었으랴만 그래도 등 따시고 배부를 수 있었던 풍경을 상징한다. 지용이 그런 울음을 그리워 한 건 일제의 수탈로 태평스럽지 못한 고향을 그리워해서 이리라.
금빛 게으른 울음이 그치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학동들은 소 이까리를 목이나 뿔에서 풀어 손에 꼬나 잡고 함께 귀가한다.
그 태평연월의 상징인 금빛 게으른 황소의 울음이 남북 삼천리에 퍼질 날은 언제 오려나. 그런 경지는 소만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도 따라 할 만한 열락이 아닌가. 아마 정지용 시인도 나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이 시인에게 향수란 자기 땅에서 사라져가는 주체성을 그리워하는 민족애였을 것이다.
임헌영
1941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1956~1960년 안동사범학교 졸업, 초등교 교사.
1961~1968년 중앙대학교 국문과와 대학원.
1966년 월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1972~1973년 중앙대 ⸱ 상명여대 강사. 서울디지털대학 문예창작학과 객원교수(현).
2001년 민족문제연구소 소장(현재).
1974년 세칭 ‘문학인 간첩단 사건’ 사건에 연루.
1979~1983년 세칭 ‘남민전 사건’ 연루, 투옥.
저서 《한국 근대 소설의 탐구》, 《문학의 시대는 갔는가》, 《창조와 변혁》
에세이집 《새벽을 위한 밤의 연가》 등 다양한 저서
2021년 대담집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문학가 임헌영과의 대화》(대담 유성호),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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