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 2016
예수님과 사도들의 초대교회는 확실히 유대 회당을 기반으로 했고, 초대교회의 예배 방식도 유대 회당의 예배 방식과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유대 회당을 통해서 초대교회의 많은 점을 깨달을 수 있다.
1. 회당에는 회당장이 있었는데 이는 명예직이다. 회당에서 돈을 받는 사람은 회당의 수리및 보수를 맡은 사람이 유일했다.
2. 회당 예배는 신앙고백. 모세오경 읽기. 선지서 읽기. 설교. 축도..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회당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모세오경과 선지서를 읽는 순서였다.
3. 회당장이 회중가운데 몇명을 골라서 모세오경및 선지서를 읽게하거나, 자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읽었다. 심지어는, 어린아이도 읽을 수 있으면 읽을 수 있었다.
4. 설교는 모세오경과 선지서를 읽었던 사람이 할 수도 있고, 회당장이 부탁하거나 또는 역시 자원함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예수님도 모세오경과 선지서를 읽고 설교를 했다. (누가복음 4:16~21)
5. 사도 바울도 회당을 방문했을 때 회당장 부탁을 받고 설교를 했다. (사도행전 13:15)
6. 설교는 회중이 듣고만 있는 일방적인 설교가 아니었고, 설교자와 회중이 질문과 답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설교였다. 예수님도 이러한 회당에서의 설교를 통해서 바리새인과 자주 논쟁했고, 사도 바울도 유대인들과 잦은 논쟁을 했다.
7. 연보는 가난한 자들과 고아. 과부. 그리고 병자를 위해서 모아졌다.
8. 축도는 아론의 후손인 사람이 했고, 만약 회중에 아론의 후손이 없으면 회당장 같은 사람이 성경을 읽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는 사실 Justin Martyr가 First Apology 67장에서 묘사한 예배와 거의 동일하다. 즉, 초대교회가 유대 회당을 중심으로 전파되었고, 이후에는 독립적으로 예배를 드릴 때도 유대 회당 예배의 방식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습과 현대 교회의 모습을 비교하면 충격적으로 다름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현대 교회의 문제점들 중에서 몇가지 중요한 점들을 발견하면서 깨달을 수 있다.
1. 유대 회당에서 아무나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그들의 성경에 대한 교육이 어렸을 적 부터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려준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에 언급했던 예배의 모습도 이와 비슷해서 성도가 순서를 쫒아 모두 설교(예언) 할 수 있다고 했다.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14:31)
2. 하지만, 현대교회에서 과연 목사 말고 누가 능히 다른 사람을 권면하고 가르칠 수 있는가? 도대체, 언제부터 초대교회의 이러한 만인제사장의 전통이 망가졌는가?
3. 유대 회당의 신학적 교사들은 랍비였다. 이들은 평소 회중을 가르쳐서 그들로 능히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유지시켰다.
4. 초대교회에서는 랍비와 비슷한 사도. 선지자. 교사등이 초대 교회의 성도를 비슷하게 가르쳐서 모두 서로를 능히 권면하고 가르칠 수 있었다. 오늘날, 목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 아닌가?
5. 랍비들은 모두 자기 생업을 따로 가지고 있었다. 당대의 유명한 랍비들은 목재업. 석재업. 목수. 신발수리업 등등.. 육체노동을 자랑으로 여겼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천막 고치면서 사역한 것이 특이한 것이 아니다.
6. 오늘날 목사들은 성도를 교육시켜 능히 서로 권면하고 가르칠 수 있게끔 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설교를 해야 한다면서, 그 설교 준비에 시간이 많이 들어가서 따로 생업을 가질 수 없다며, 더 나아가 자기의 생활을 교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도 바울이 교회에 폐끼치지 않기 위해서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는 것을 잊었는가?
7. 유대 회당과 초대교회의 연보는 100% 가난한 자들과 고아. 과부. 병자를 위해 쓰여졌다. 또한 십일조는 성전에 바치는 것이고, 유대 회당과 예루살렘 성전 훼파의 AD 70년 전에 존재했던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는 십일조를 율법으로 인해 받을 수 없었다.
8. 현대교회의 헌금및 십일조는 대부분 목회자 인건비와 건축비로 들어간다. 가난한 자들과 고아. 과부. 병자들을 위해서는 거의 쓰지 않으며, 만약 쓴다면 자신들이 교회에 폐가 된다고 생각하며 또 그렇게 눈치를 준다.
이 모든 문제점은 초대교회의 신실한 참성도들이 만인제사장의 정신으로 교회생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멀어지고, 교회 예배를 주관하고 구제를 주관하고 교육을 주관하도록 세워진 장로 집사의 직분자들이 예배의 모든 부분을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즉, 전문 목회자 계급이 대두되면서 부터이다.
즉, 초대 교회와 비교하자면 오직 목회자들만 초대교회의 일반 성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무늬만 기독교인으로 무능해 졌다. (어떤 사람들은 이 목회자들마저 초대교회 일반 교인보다도 저질이 되었다고 본다.)
이 구조가 다시 깨져서 초대교회의 만인제사장 모습을 회복하기 전에는 현대 기독교는 예전의 제사장-일반 백성의 구약적 율법-제사의 유대교를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즉, 그리스도가 오기 전과 온 후와 비교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고, 거기에 오히려 뻔뻔한 죄사함의 교리만 덧붙여져 유대인보다 더 뻔뻔스럽게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는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어서 율법으로 할 수 없었던..성령을 쫒는 거룩한 지체가 되게 하려고 한 것이지, 십자가 대속 이전의 불신앙 유대인 상태로 그대로 머물면서 사는 삶에다가, 죄사함을 받았으니까 하면서 양심의 가책마저 없이 살도록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