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 추미애 `이승만, 전작권 없는 나라 만들어, 日 독도침략전 터지면 美 우리 도울까?` - 매일신문 (imaeil.com)
추미애, 이승만. 연합뉴스, 매일신문DB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출생일이었던 지난 3월 26일을 계기로 보수 진영에서 긍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후반기 독재만이 과이고 공적이 훨씬 많을까?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최근 국가보훈처가 기념관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기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냈다.
▶추미애 전 장관은 28일 오후 5시 17분쯤 페이스북에 '이승만의 독재만이 과이고 잘한 게 훨씬 많다? 민족 열등감을 주입시킨 이승만'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주호영 의원의 말대로 이승만 대통령은 후반기 독재만이 과이고 공적이 훨씬 많을까?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역사 시간에 졸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소리다. 잊을 뻔한 지난 사실을 일깨우는데 도움을 주시다니 고맙기까지 하다"고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추미애 전 장관은 우선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을 언급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큰 과오는 전작권 없는 나라로 만들어 군사주권에 구멍을 낸 것"이라며 "군사대국 세계 6위의 나라가 전시에도 군사주권 없는 나라다. 전작권 없는 한미군사동맹은 고무줄 없는 팬티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터진 나라에서 싸울 생각은 않고 재빨리 도망가면서 전작권을 전쟁 발발 20일 만에 이양했다. 3년 후 이승만의 휴전협상 반대는 전작권이 없으니 하나마나한 소리였다.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었다. 미국은 전작권 이양해놓고 무슨 딴소리냐며 국내정치용으로 큰소리치는 것으로 그 속을 내다 봤다. 실제 38이북에서 작전 중인 우리 군이 이 대통령의 명령을 듣지 않은 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추미애 전 장관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늘 따라붙는 '한미군사동맹'을 가리켰다.
그는 "이승만의 배짱만으로 한미군사동맹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라며 "한국으로서는 전작권도 없으니 군사적 보호 요구는 불가피한 귀결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으로서도 한반도의 내전이 공산통일한 중국이 개입해 미중전쟁이 되고, 미소 대립의 냉전 구도로 전장의 성격이 전환된 상황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없었더라면 한미상호 방위조약을 체결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박2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부와 3월 16일 도쿄 긴자의 한 스키야키·샤부샤부 전문점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추미애 전 장관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언급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후미오 일본 총리)가 독도 문제를 언급했다고 일본 언론이 대대적으로 떠들어도 강력한 항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 현실화에도 아무런 긴장감조차 안보인다"면서 "그런데, 만일 전작권 없는 상황에서 재무장한 일본이 독도 군사도발 시 우리는 어떤 대책이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추미애 전 장관은 "독도침략전이 터지면 미국은 동맹인 우리를 도울 것인가?"라고 회의적인 의견을 펴면서 "그래서 이런 우울한 결론을 이승만의 업적으로 미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26대 대통령. 매일신문DB
▶이어진 글에서 추미애 전 장관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사실상 도운 1905년 미일 간 '가쓰라 태프트 밀약' 체결 당시 미국 대통령이며 같은 해 '을사조약'도 목격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26대 대통령의 말을 인용했다.
"조선사람은 자기 나라를 방어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 쳐들지 못하는 민족이다."
이는 추미애 전 장관이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언급한 조정래 작가 소설 '아리랑'에도 나오는 문구로, 이에 대해 추미애 전 장관은 "이는 20세기 초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이다. 그 무렵 일제 통감정치를 옹호한 미국 고문 스티븐스를 저격한 의사 장인환과 전명운을 위한 법정 통역을 부탁받은 이승만은 '살인범들'이라며 완강히 거부했다"고 소개했다.
▶추미애 전 장관은 또 "국내에서는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사업을 끝내고 전 국토의 6할을 조선총독부가 차지했을 때, 하와이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국민군을 설립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야간무장군사훈련을 시작했다"면서 "그러나 이승만은 소수의 병력으로 일본 세력을 물리친다는 것은 전혀 가망없는 철부지 짓이고 허황된 망상이라고 비난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만주에서는 홍범도 장군 등이 무장 독립투쟁에 혼신을 다 바치고 국내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직후인 1919년 3월 16일 이승만은 미국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윌슨 미대통령에게 위임통치청원서를 보냈다고 자랑했다. 국내에서는 주권회복 자주독립을 위해 피를 흘릴 때 이승만은 '자주 없는 외교독립론'을 펼치며 자신을 홍보하는 기회로 삼았다"고 재차 지적했다.
아울러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임시정부 시기를 들어 "임정 초대 대통령으로서 공금 횡령, 근무 태만 등으로 탄핵당했다"면서 '대한민국 임시헌법을 기탄없이 저촉하였고, 국정을 혼란 시켜 국법의 신성과 정부의 위신을 타락하게 하여 면직에 해당함을 판정함. 1925. 3. 23.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사법의원'이라는 탄핵 사유가 있었다고 설명, "임정 요인들은 배를 곪아가며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때에, 이승만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구미위원부를 별도로 두어 해외에서 기부된 독립자금을 자의적으로 유용하고, 5년 6개월 재임 중 5년을 무풍지대 미국에 체류하는 등 근무를 태만히 했다"고 비판했다.
참고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다수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
가장 유명한 대한민국 정부 최초 대통령 기록, 그보다는 좀 덜 알려진 임시정부 최초 대통령 기록, 4.19 혁명으로 인한 최초 '하야'(대한민국 정부 초대 대통령 때) 기록, 그리고 추미애 전 장관이 언급한 최초 '탄핵'(임시정부 때) 기록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이후 하야 사례는 없었으나, 탄핵 사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두번째 기록을 썼다.
▶이같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과오를 여럿 열거한 추미애 전 장관은 "인간 이승만의 재주는 뛰어나나 지도자로서 영혼은 모자란다고 할 것"이라고 총평을 내리면서 "민족 열등감을 주입시킨 이승만의 이력을 위해 돈 들여 기념관까지 지을 만큼 나라 안보나 경제가 한가롭지 않다"고 최근 정부의 움직임을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