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중국화가 운수평 恽寿平 35세 전후에 보기 드문 의고 산수화 미술사적 의의.
恽寿平三十五岁前后作罕见拟古山水册的美术史意义
2022년 01월 13일 11:06 시나 컬렉션 소스: EK 이페어케이 플러스
1664년(32) 왕총(王 合作)과 합작한 산수책(山水冊·10선3), 타이베이 고궁박물관 소장.나풀나풀 버들가지 화법이 있다.
1667년(35세),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송원산 모방 수책'(10종 3)이다.펜으로 본 박자와 대질하다.박, 늦깎이 면모가 더 많이 남아 있다.수변 갈대, 비온 뒤 운산, 오진산 돌은 모두 본박품과 삼개 호응이 가능하다.
이 시기에 운수평이 지은 많은 "소중견대(小中見大)"의 모사고축본 책 페이지는, 운씨의 한창묵희일 뿐만 아니라, 송원 명가의 화법(畵法)을 파악한 것이다.색과 정신의 기운, 점차 "고인의 법도에 우입", "떨어졌을 때 경도, 샴푸의 새로운 흥미"의 중요한 모습 원고본으로, 운씨 산수화 양식이 전환되는 시기의 중요한 변화를 뚜렷이 반영하고 있다.
이 책자를 보면, 석애단류·연촌모사·풍류노탄·부산난취·운산묵희·안정소석 등의 산수경치가 비록 스스로 모방하였다.여러 집안이 필의를 베풀었으나 자신의 뜻을 많이 나타낸 것은 형체를 탈략하고 멋대로 섭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화가는 산석림옥을 간솔하게 모사하고 버들갈대, 정안박주는 늘 꼼꼼하게 그렸다.유섬에서 세밀하게 경영하였는데, 이는 훗날 남전 산수화의 큰 특색이 된 것 같다.운수평이 혜숭(惠崇)·조령양(趙令 为)을 본보기 시작한 강남의 소경산수(小景山水)에 주목한 것을 반영하여 도식과 의향에 각별한 선호를 보였다.
명청전승의 전형적 인물: 학문과 감정의 이중적 흥분점
운수평산수는 화훼소(花花所)라는 이름으로 근대에 와서야 비로소 재발견과 인정을 받았다.
오호범은 일찍이 "천종선자(天從仙慈)로, 생당명정(生黨明鼎)이 갑자기 멸망할 즈음, 서화로 목숨을 바치고, 필획은 정에 따라 변화하고, 유희조화(遊熙造化)하여 당나라에서 왕마궁(王摩 、)과 함께 죽게 되었다.미양양성문탁대정족"의 말로, 남전산수화성취에 반안을 주었다. "석곡은 일생동안 남전에 대하여 오심절복하고 추앙도 극진히 하였는데, 실남전은 석곡으로 하여금 땅 하나를 나오게 하였으니, 모르는 자는 남전이 약하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오호범제운수평《모방고산수책페이지》,2008 서령박 lot 147)
황빈홍 《고화미》, 부포석 《운남전》 및 《중국회화 변천사강》, 정오창 《중국화학전사》, 왕백민 《중국회화》.화사(畵史)를 비롯하여 유검화(兪劍華)의 『중국미술가족명사전』 등의 저술은 남전산수가 사왕(四王)보다 높거나 운(鸟)씨 화조(花鳥)보다 낫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황빈홍 《고화미》. 黄宾虹《古画微》
비록 운파 연구가 미술사의 현학이 되었다 하더라도, 남전산수에 초점을 맞추면, 소장 분야나 연구 분야에 관계없이 새로운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운씨산수화는 개인의 풍격이 전환되는 시기의 중요한 변화를 명청미술전승에 담으면 더욱 넓고 깊은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이런 흡인력 뒤에는 중요한 이론적 근거가 있다.
청초 6가 "사왕오운(四王吳 ")"은 그림과 사람의 통일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고, 6가는 화사를 정리하여 화단의 정통성을 확립하였다.
6가운데 어떤 화가는 명대의 모습을 근간한, 예를 들면 왕시민과 같은, 어떤 화가는 왕원기의 얼굴을 완전히 청신하게 한다.운수평은 그렇다고 할 수 있다.여섯 중 가장 포괄적이고 명청 사이의 화가를 계승한다.
명대 중기에 심학과 선학이 일어나자 문사는 자심자성에 대해 절대적으로 강조하였다.장기간의 모사는, 10세기 이래부터 4왕까지를 명확하게 정리하였다.시대 남종파 회화의 풍격적 특징, 필묵장법, 산수화 기법의 기본 창조가 이루어졌다.
'포스트 동기창' 시대에 필묵 스스로의 표현성은 어떻게 굴레를 뚫고 스스로 새로운 것을 나타낼 수 있을까.운수평으로 대표되는 산수화의 발전은, 대지를 열었다.스타일과 기법이 어우러져 변이와 심화의 단계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후세에 대한 깨우침과 지도적 의미를 담고 있다.
청초 화단은 옛 풍습을 모방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똑같이 옛 사람을 추모하여, 운수평은 늘 옛것을 배우고 옛것을 마음대로 섭취함을 강조하여, 송원의 산수 제가를 침음하였다.행적을 벗어나 그 신수를 얻으니 천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이러한 명목상의 의고산수는 실제로 침윤을 계발한 후 개인의 풍격을 강조한 창작이다.
▲2021 서령추박
운수평 35세 전후에 보기 드문 의고산수책 (국소)恽寿平 三十五岁前后作罕见拟古山水册(局部)
운수평은 화풍의 시폐에 대해 명확하게 변명하고 있는데, "후대 사대부 추풍효모(追風孝慕)하여 붓을 들었다."는 신명이 다하고 옛 정취가 망했다.남전이 싫어서 빨리 씻고 싶다"고 말했다."운림(예찬)·운서(조지백)·방산(고극공)·해악(미불) 사이를 감안하여 길을 달리하고 묵채를 깊이 하여 연운(煙雲)을 윤택하게 하고 송이통기울(宋以通奇蔚)에 뿌리를 두고 원(元)이 그 서신을 보내어 명나라에 사냥하고, 비록 조예가 깊으나오지도 않았는데 붓놀림이 새로워졌다"고 말했다.
송나라에 뿌리를 두고, 원나라에 인도하고, 명나라에 사냥하다.
송에 뿌리를 두고, 원나라에 인도하는 것은, 왕원기의 "원필 수투송법", 왕翚 "원인의 필묵으로 송인의 구곡을 운반한다"는 관념과 같이, 운수평 시야의 비율이다.사왕이 탁 트인 것은 그가 "명백한 자를 아첨하는 데 있다"는 데 있다.
강남 어디 가 강남 江南何处去 何处是江南
청(淸) 순치(順治) 17년(1660)부터 강희(康熙) 29년(1690)까지 운수평(寿壽平)의 절반은 강남을 누볐다.그는 7~항주, 5~소주, 6~상숙, 3~태창, 남경, 진강, 양주 및 소북을 거쳐 최소 두 차례 방문하였으며, 의흥, 우석 등지는 오가는 도중에 모두 머물렀다.창작의 노고는, 각종 사교에 대처하기 위해서인데, 가계비는 매우 제한되어, 운수평은 늘 "유낭소"이다.자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강남 어디, 강남 어디야.
강남은, 팔부일주의 지리적 총괄일 뿐만 아니라, 더욱 큰 문화적 은유이다.
강남은 만명시학 사상의 효모이자 회화의 대가로서 성장의 산실로서, 유민으로서의 삶의 품위를 되새기면서도 선비를 만났다.사람은 정혁에 즈음하여 만명의 정치질서에 대한 준엄한 검토를 한다.
역사 정리에서 정통을 확립하고, 반성의 구조에서 출처를 선택하며, 강남의 산수에 관한 상상, 차원 혹은 사적인 기억, 강남의 사사인간은 만청 군주와 도통 장악을 다투는 길에서 싸움으로 가득 찼다.
▲2021 서령추박
운수평 35세 전후에 보기 드문 의고산수책 (국소) 恽寿平 三十五岁前后作罕见拟古山水册 (局部)
명청은 중국 고전미술이 발전하는 중요한 시기이다.명청산수회화의 특성상 특별한 문화적 배경이 있다.명청산수유기의 신구전형과 같다.여행기 문체에 개인 전집이 등장한 것은 작가 독립의식의 각성을 보여준다.청나라 초 선비의 산수화 창작에서도 예사로운 경치가 관련 경치로 확산됐다.만명시대 수신청상의 한적함에 비해, 명청역대(明淸易代)의 산수유(山水遊)는 자못 시대적(時代的)이다.특색 있는 사회 활동으로는 항청, 강학, 교유, 결사, 참선 등이 있다.
유랑으로 피난, 남전반생이 유랑하면서 생활상의 계략을 쓴 것처럼, 남전은 본래 시가(詩家)였으나, 도상을 통해 문자 가능대를 피했다.직접적인 재앙도 문자 그대로의 정신력을 전달한다.
▲2021 서령추박
운수평 35세 전후에 보기 드문 의고산수책 (국소) 恽寿平 三十五岁前后作罕见拟古山水册 (局部)
유람을 은닉으로 하여 교유 풍조가 강산이 바뀌었다고 해서 쇠퇴한 것은 아니다.일반 선비들은 만일에 여정을 잘 타고 교제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선비들이, 전란으로 인해서이다.국변으로 강호로 내던져지다.(황과천)
풍중버들: 강호를 어찌 보고 잊을 수 있겠는가?
혜숭은 《강남춘색》의 수려한 필치가 신경에 이르렀는데, 이 경치는 낙락화류(落落畵柳)를 써서 그 법을 본받았고, 거문고를 대련하여 강호를 서로 잊게 하였다.
-《어향관집》청나라 장서가 장광후(蔣光侯)집록 별하재중간본
운수평 《구향관집》 권12집에는 귀중한 창작 노트가 기록되어 있는데, 운수평이 옛 산수를 모방할 때, 총체적인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였다.저자의 논술과 일부 단엽의 창작의 취지:
이월 꽃샘추위와로에서 벼루를 굽는데, 소책자 잡초는 송원의 여러 명가들에 기안되고, 종이의 새 먹이 정체되어 그 취미를 다하지 못하지만, 필선의 선의도 빠지지 않는다.아는 사람과 본받다.
혜숭은 《강남춘색》의 수려한 필치가 신경에 이르렀는데, 이 풍경은 황락화류(黃落畵柳)를 써서 그 법을 본받았고, 거문고를 원대하여 강호를 서로 잊게 하였다.
쌀찜질문에는 《소상도》운기가 희미하여 사람의 호탕하고 기일한 회포를 불러일으키지만, 여정은 그 신취를 얻지 못하고 있다.
임일봉 노인의 소경필치소산부람중일변야
매화암의 주필력은 거령도끼가 화악을 가르는 기세입니다. 오늘날의 꿈에서 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운수평 《구향관집》 권12집. 恽寿平《瓯香馆集》卷十二辑
의고 소책자 혜숭, 미부문, 일봉노인, 매화암주제종
"떨어지지 않을 때 사람의 이랑길도 아는 사람과 감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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