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지키고 보호해 주시기를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 영성체 예식 중 주님의 기도에 이어 사제가 바치는 기도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모든 시련에서 보호’해달라는 기도를 막연하게 태풍이나 폭설 같은 자연재해 또는 교통사고나 재정적으로 어려워지는 현세적인 고통을 겪지 않게 해달라는 청원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렇게 청하는 게 뭐 죄가 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착실한 교우라고 그런 재해를 안 당하는 게 아니고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사업을 하고 교회에 십일조를 바친다고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게 아니다. 보호해 주시고 지켜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신앙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슴에 담긴 이 신앙을 죽는 그 순간까지 지켜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성적(理性的)인 동물이 아니라 이성을 쓸 줄 아는 동물이다. 화가 나면 물불 안 가리고 욕설을 포함해 아무 말이나 막 해대고 폭력도 사용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옳고 정의롭다고 여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앞뒤 안 맞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논리 원리 원칙과 법 규정도 다 필요 없고 어떻게 해서라도 살기만을 바란다. 세례자 요한을 사형시킨 헤로데 임금은 전임자 헤로데 대왕의 아들인데, 나바태아 공주였던 본부인과 이혼하고,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와 결혼했다. 이 때문에 나바태아 임금이 분노하여 전쟁을 걸어오면서 유다는 전쟁에 휘말리게 됐다. 세례자 요한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고, 그도 그걸 모르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도 그는 결국 옳은 말을 하는 요한을 처형했다.
진리에 따라 사는 사람은 자유롭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진리고 생명이고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기억해야 한다. 믿기 어려운 2천 년 전 예수님 이야기까지 생각할 것도 없다. 2백 년 전에 수많은 순교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이라고 마음에 품고 증언했다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과 같은 일을 겪었다. 그들은 망한 게 아니라 신앙을 끝까지 지키고 진리를 따라 살았던 거다. 우리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여기 남아있는 우리를 위해 전구하고 도와달라고 청한다. 그들이 지금 영원하신 하느님과 함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 지학순 야고보 주교는 서슬 퍼런 유신 정권하에서 바른말을 하다가 투옥됐다. 그런 그가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부름을 받고 바티칸으로 갔다. 그는 교황님에게 야단맞을 거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나라에서 그런 큰 소란을 일으키고 교회를 위태롭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교황님은 우리나라 말로 버선발로 뛰어나와 ‘착한 목자님 오셨군요.’라고 하며 그를 맞았다고 한다. 우리 순교자는 모두 국법을 어긴 범법자였다. 예수님도 그랬다. 그러나 역사는 누가 어리석은 자들이었는지 증명하고 증언한다. 히브리서는 오늘 우리를 이렇게 격려한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는 분이시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하느님의 말씀을 일러 준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히브 13,6-7).”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어떤 일을 겪으실지 예고했고,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그리고 그 보상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부활이다. 고 지학순 주교의 그 일화는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이 당신을 따른 우리를 어떻게 맞아주실지 상상하게 도와준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다(로마 8,18). 예수님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 그리고 영원히 살아 계신 하느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히브 13,8).”
예수님, 주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하는 가슴은 뜨거운데 그 실천은 금방 식어버립니다. 죄인이 하느님의 길을 따라가는데 은총을 내려 주시지 않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의 마음을 제게 전해주시고 이 신앙을 끝까지 지키게 보호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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