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게 “근조(謹弔)”는 사치(奢侈)다. “잘 죽었다(死得好)” !!!
MBC가 죽었다고 유튜브에 조화(弔花)가 쌓여있다. 그처럼 좌파 앞잡이로 국민에게 나쁜 말만 하더니 축화(祝花)가아닌 조화(弔花)가 쌓이는 구나!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인가? 살아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숨을 쉰다는 뜻인가? 죽음은 숨을 쉬지 않는다는 말인가?
생명의 마지막 저녁노을이 서쪽 하늘가에서 조금씩 소멸해 갈 때, 삶을 향한 최후의 여정(旅程)은 고요한 암흑 속으로 묻혀버린다. 이것이 생명 최후의 몰락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다음 인생의 고독한 여정(旅程)에서 마지막은 화장(火葬)터의 재(灰가아니면 흙속에 썩어가는 구더기 밥이다.
중국 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유가(儒家)와 도가(道家)다 여기에서 유가(儒家)의 공자(孔子)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물음에 아래와 같이 대답한다.
▶논어(論語) 제11편 선진(先進) 11장 季路 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죽음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 알겠느냐?” 라고 한다. 이 논어의 생사관(生死觀)은 천년 동안 동양인의 생각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에 도가(道家)의 장자(莊子) 죽음관은 무엇인가. 장자(莊子) 제18편 지락(至樂)2 ▲莊子妻死, 惠子吊之, 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惠子曰:“與人居, 長子, 老, 身死, 不哭亦足矣, 又鼓盆而歌, 不亦甚乎?”莊子曰:“不然。是其始死也, 我獨何能無概然! 察其始, 而本无生; 非徒无生也, 而本无形; 非徒无形也, 而本无氣。雜乎芒芴之間, 變而有氣, 氣變而有形, 形變而有生, 今又變而之死, 是相與爲春秋冬夏四時行也。人且偃然寢于巨室, 而我噭噭然隨而哭之, 自以爲不通乎命, 故止也。
장자(莊子)의 아내가 죽자 친구인 혜자(惠子)가 장자(莊子) 집에 조문(弔問)을 갔다. 이때 장자(莊子)는 가랑이를 벌린 채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서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惠子)가 말했다. “아니 부인은 자네를 위해 늙도록 자식을 키우고 고생을 했네. 부인이 죽었으면 자네는 당연히 곡(哭)을 하고 슬퍼해도 모자랄 판인데 되레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이것은 죽은 부인에 대한 예(禮)가 아니지 않은가!”
장자(莊子)가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네. 아내가 죽었는데 내 어찌 슬프지 않았겠나? 그런데 아내의 처음을 가만 돌아다보니 그녀는 원래 태어나지 않았었네. 태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본디 몸도 기(氣)도 없었네.
아렴풋이 뒤섞여 있다가 한번 변하더니 기(氣)가 생기고, 기(氣)가 다시 변하더니 몸이 생기고, 몸이 다시 변화하더니 사람으로 태어났네.
지금은 또다시 변화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었네. 이것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네 이것은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철이 서로 변해가며 운행(運行)을 하는 것과 같네. 아내가 본래의 지리로 돌아갔는데 기뻐서 축하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라네.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삶과 죽음에 대하여 더 간단하게 말해준다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이요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이라 삶이라는 것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의 뜬구름이 흩어지는 것이다.
MBC가 얼마나 편파방송으로 국민에 악업(惡業)을 쌓았기에 저렇게 조화(弔花)가 쌓여 있는가 !
농월 |